[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패러다임'을 바꾸는 '의심'을 향한 전진...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패러다임'을 바꾸는 '의심'을 향한 전진...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 주하영
  • 승인 2019.05.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극작, 이성열 연출
2번[국립극단]갈릴레이의 생애_홍보사진_03_갈릴레이役 김명수 망원경을 통해 별들을 관찰하는 '갈릴레이'(김명수).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콘셉트 컷. 김명수 망원경을 통해 별들을 관찰하는 '갈릴레이'(김명수)./사진=국립극단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미국의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은 혁명을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정의했다.

그는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의 진보는 절대적 진리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직선적인 경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이루는 방식으로 “진보”한다고 말했다.

공동체가 공유하는 한 사고의 ‘틀’이 더 이상 “일군의 변칙현상”을 설명할 수 없게 되면 “위기”가 생긴다. 위기는 세상을 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채택함으로써 “세계관의 변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극복된다.

즉, ‘혁명’은 “한 때는 잘 작동했지만 더 이상 세상의 새로운 문제를 잘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될 때 ”격변을 일으킬 정도로 어려움에 직면한 이전 세계의 관념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진보”하며 발생한다.

이러한 혁명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언급되는 것은 “우주에 대한 관념과 인간과 우주의 관계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가져온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다.

1543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세상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주장하며 ‘태양 중심’의 패러다임으로의 교체를 제안했다.

하지만 우주의 중심으로 존재하던 “하늘의 특별함”과 “창조의 절정”이자 “신의 최고의 피조물”인 인간의 지위를 빼앗길 수 없었던 세상은 한 세기라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지구가 그저 무수히 많은 별들 중 하나의 주위를 맹목적으로 돌고 있는 행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사진=국립극단

최근 명동예술극장에서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지지로 인해 로마교황청의 반발을 사고, 결국 1633년 종교재판소에 회부되어 자신의 모든 주장을 ‘철회’해야 했던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생애를 다룬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의 막이 내렸다.

‘갈릴레이의 생애‘는 연극에 있어 객관적 ‘이성’을 통한 비판적 의식의 확보가 가능하도록 극적 환영을 깨뜨리고 무대와의 거리감을 조절해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이도록 하는 기법”인 ‘생소화 효과(defamiliarization effect)’를 고안한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다.

파시즘과 자본주의 체제에 투쟁하며 양차 세계대전 속에 나치를 피해 “신발보다 더 자주 나라를 바꿨다”는 말을 들을 만큼 ‘망명’을 거듭해야 했던 브레히트를 가장 사로잡았던 것은 ‘지식인의 역할’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믿음’이었다.

마리안네 케스팅의 ‘브레히트와 만나다‘에 따르면, 브레히트가 ‘갈릴레이의 생애‘를 집필하게 된 외적인 동기는 독일의 물리학자들이 우라늄 원자를 분열시켰다는 소식을 들은 것에 연유한다.

‘갈릴레이’라는 인물을 통해 브레히트가 드러내고 싶었던 주제는 “과학적 진보와 사회적 도덕의 문제”와 “지배를 위협하는 진리를 감추려는 권력 앞에서 인식된 진리를 관철시키고 실현하는 문제”에 관한 성찰과 고민이었고, 그의 관점은 명백히 “진보와 도덕 중 하나만 있을 때 사회는 파멸한다”는 것이었다.

케스팅은 이러한 그의 관점에 대한 논거로 브레히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수정한 베를린 공연 버전에서 “혁명적 이론을 내놓고도 실천은 이룩하지 못한 갈릴레이”를 이전 버전에 비해 더 엄격하게 비판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국립극단]갈릴레이의 생애_연출_이성열_01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이성열 연출가/사진=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공연의 연출을 맡은 이성열은 프로그램북의 ‘드라마투르그와의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갈릴레이의 생애‘의 첫 번째 판본이 “압제에 반하는 지식인의 자유를 설파”하고 있는데 비해, 히로시마 원폭 이후에 쓰여진 두 번째와 세 번째 판본에서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된 작가의 메시지가 “맥락 없이 불쑥 튀어나와 다소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점”이 있고, 또 “오늘날 과학자의 윤리적 책임은 익숙한 논제”라는 점에서 윤색을 통해 “갈릴레이가 진실을 발견하고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더 강조하려 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이성열 연출의 ‘갈릴레이의 생애‘는 브레히트의 ‘생존과 실천 사이에서 갈등하는 지식인’보다는 고문과 죽음 앞에서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만 저항하지 못한 자신을 후회하고 비난하는 “미천한 인간”으로서의 개인을 그린 듯한 인상을 남긴다.

갈릴레이는 ‘위대한 과학자’라는 지식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열정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호기롭게 전진하지만 ‘낡은 시대의 관점’에 의해 발목이 잡혀 억눌리고, 결국 폭력의 위협 앞에서 굴복하는 선택을 한 취약한 ‘개인’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시선은 영웅이 되기를 추구한 것이 아님에도 어느 순간 ‘영웅적 선택’을 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 개인이 용기가 부족한 탓에 모든 것을 철회하고 생존을 택하는 모습에 돌을 던지기 보다는 ‘연민’을 품도록 만든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콘셉트 컷/사진=국립극단

삶 속에서 진실을 말해야 할 순간에 침묵을 선택하게 되는 평범한 개인의 모습은 자신이 추구하는 진실에 정직하게 사는 것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은 자칫 책임보다는 생존을 택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에 대한 외면을 옹호하게 되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극은 연출을 통해 갈릴레이를 둘러싼 기득권층의 부패함과 불합리함, 이해관계에만 집중하는 부조리함을 강조함으로써 개인의 부족함보다는 ‘사회의 억압과 부당함의 고리가 개인을 옥죄는 방식’과 ‘이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의 어려움’을 노출한다.

브레히트의 기법과 관련하여 이성열 연출은 ‘서사극’이나 ‘생소화 효과’와 같은 것들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워낙 대사가 많은 작품이라 지루함을 덜고자 “대중적인 요소인 노래와 음악을 원작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선택은 브레히트가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여 ‘이성’을 확보하려던 장치로 사용하던 부분들을 오히려 지루함으로 인해 무대에서 멀어지려는 관객들을 사로잡는 ‘엔터테인먼트’의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장면전환의 순간마다 희곡에 부여된 브레히트의 시는 작가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관객들이 고민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위해 고안된 것이지만 그 ‘함축성’으로 인해 난해하게 여겨지는 것은 사실이다.

1616년 로마 벨라르민 추기경 집의 '무도회' 장면. '가면'을 뒤집어 쓴 귀부인들은 '갈릴레이'(김명수, 가운데)를 유혹하고 비웃을 뿐만 아니라 '이성'은 미흡하고 나약한 것이기에 '종교'를 통해 억누를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는 추기경(강진휘, 맨 왼쪽)의 '압박'에 놓인다. 사제들은 갈릴레이에게 "지식을 감추는 슬기로움을 발휘할 것"을 강요한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장면. 1616년 로마 벨라르민 추기경 집의 '무도회' 장면. '가면'을 뒤집어 쓴 귀부인들은 '갈릴레이'(김명수, 가운데)를 유혹하고 비웃을 뿐만 아니라 '이성'은 미흡하고 나약한 것이기에 '종교'를 통해 억누를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는 추기경(강진휘, 맨 왼쪽)의 '압박'에 놓인다. 사제들은 갈릴레이에게 "지식을 감추는 슬기로움을 발휘할 것"을 강요한다./사진=국립극단

또한, 1616년 로마 벨라르민 추기경 집의 무도회 장면(7장)에서 ‘가면’을 쓴 배우들을 활용해 갈릴레이가 권위로부터 느끼는 심리적 압박을 ‘환상’처럼 표현한 점이나 1632년 사육제의 수공업자조합의 가장행렬 장면(10장)에서 현대의 클럽을 연상케 하는 시끄러운 음악과 ‘쇼’적인 구성을 통해 갈릴레이로 인해 대두된 계급변동의 격렬한 움직임을 관객들이 ‘감각‘으로 느끼도록 만든 점은 흥미로움을 선사한다.

사실 브레히트가 묘사하는 갈릴레이는 ‘감각’을 통해 삶을 즐기는 사람이고, “달팽이 요리와 양고기, 와인”에 탐닉하고 연구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발명품을 자신의 것으로 속이거나 페스트가 퍼진 속에서도 연구에 필요한 책을 가져다 줄 것을 어린 안드레아에게 부탁하는 세속적이고 모순된 사람이다.

두 개의 렌즈를 통해 비춰보는 '갈릴레이'(김명수)와 어린 제자 '안드레아'(이윤우). 갈릴레이는 이미 네덜란드에서 발명된 '망원경'을 자신의 발명품으로 속여 연구비를 증액하기 위한 '술수'로 사용한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장면. 두 개의 렌즈를 통해 비춰보는 '갈릴레이'(김명수)와 어린 제자 '안드레아'(이윤우). 갈릴레이는 이미 네덜란드에서 발명된 '망원경'을 자신의 발명품으로 속여 연구비를 증액하기 위한 '술수'로 사용한다./사진=국립극단

그의 의식은 온통 ‘새로운 시대’를 열 ‘새로운 진리’를 증명하는 일에만 사로잡혀 있을 뿐 딸 비르기니아의 행복이나 가정부 사르티 부인의 희생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브레히트는 1938년 ‘갈릴레이의 생애‘를 쓰기 훨씬 전부터 이미 “비만 체질에 못생긴 얼굴을 한 힘찬 물리학자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언급한다.

그에 따르면 이 물리학자는 “소란스럽고 다혈질적이며 유머감각이 있는 사나이로 위대한 교사지만 현세적이고, 호감이 가지만 배가 나오고 두 손을 양쪽 엉덩이에 얹고 머리를 뒤로 젖힌 채 살집 좋은 손으로 제스처를 취하는 새로운 유형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갈릴레이'(김명수). 갈릴레이는 오직 '진리'의 탐구에만 모든 '의식'이 집중되어 있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장면.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갈릴레이'(김명수). 갈릴레이는 오직 '진리'의 탐구에만 모든 '의식'이 집중되어 있다./사진=국립극단

브레히트가 갈릴레이를 위대하고 멋진 인물로 그리기 보다는 결점이 많은 인물로 그린 이유에는 실제 갈릴레이의 전기적 사실에 근거한 것도 있지만 “갈릴레이가 순교자나 영웅이 아니라는 점이 오히려 그에 관한 논쟁을 벌일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갈릴레이의 생애‘에서 갈릴레이는 평생 그를 따르고 존경해 온 제자 안드레아의 예상과는 다르게 자신의 모든 주장을 철회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오는데, 분노한 안드레아가 “영웅이 없는 불행한 나라여!”라고 외치자 갈릴레이는 “영웅을 필요로 하는 나라가 더 불행한 법이네!”라고 응대한다.

어린 '안드레아'(이윤우)에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설명하는 '갈릴레이'(김명수). 갈릴레이는 '가설'들을 '증명'해야 할 필요를 설명하며 "높으신 분들께는 우리의 생각을 절대 말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장면. 어린 '안드레아'(이윤우)에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설명하는 '갈릴레이'(김명수). 갈릴레이는 '가설'들을 '증명'해야 할 필요를 설명하며 "높으신 분들께는 우리의 생각을 절대 말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사진=국립극단

이는 망명시절 동안 브레히트가 가장 집요하게 고민했던 문제라는 점에서 ‘진리’와 ‘혁명’을 추구해야 할 지식인이자 작가로서 자신이 어떤 현실적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지에 대한 그의 고민이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다.

권력에 맞서 싸우는 개인의 ‘저항’에 대한 생각은 브레히트가 1930년 발표한 ‘코이너씨 이야기‘에도 잘 드러나 있다.

폭력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고 있던 사색가 코이너씨는 갑자기 자신의 뒤에 ‘폭력’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한 순간에 입장을 바꿔 폭력을 찬양하고 있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연설을 듣고 있던 학생이 그의 줏대 없음을 비난하자 코이너씨는 “폭력보다 오래 살아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며, 한 일화를 들려준다.

‘아니요’라고 말하도록 교육받은 에게 씨는 불법시대에 내려진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7년 동안 시중을 들어주는 일을 행하지만 기관원이 죽을 때까지 “내 시중을 들겠나?”라는 말에 대답하지 않음으로써 ‘저항’의 가능성을 남겨둔다.

시중만 받아 뚱뚱해진 기관원이 건강이 나빠져 죽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는 기관원의 흔적을 모두 지우면서 “아니요”라고 말했다는 에게 씨의 일화는 ‘갈릴레이의 생애‘의 마지막 부분과도 일치한다.

베네치아의 메디치 가문의 어린 '코시모 대공'(박건령)과 어린 '안드레아'(이윤우). 갈릴레이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연구를 계속함과 동시에 자신이 발견한 별들을 다른 학자들에게 '눈'으로 확인시키려 하지만 끝내 그들은 거부한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장면.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장면. 베네치아의 메디치 가문의 어린 '코시모 대공'(박건령)과 어린 '안드레아'(이윤우). 갈릴레이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연구를 계속함과 동시에 자신이 발견한 별들을 다른 학자들에게 '눈'으로 확인시키려 하지만 끝내 그들은 거부한다./사진=국립극단

1633년 종교재판 이후 1642년까지 10년 동안 자택에 연금된 채 교회가 요구하는 대로 자신의 ‘지식’을 내어주며 버텨온 것으로 묘사되는 갈릴레이는 학문연구를 위해 네덜란드로 떠나는 길에 잠깐 방문한 안드레아에게 교회의 눈을 피해 밤마다 몰래 희미한 불빛에 비춰 필사해 온 ‘디스코시 Discorsi‘의 복사본을 건넨다.

새로운 물리학의 토대가 될 “새로운 담론”으로 갈릴레이가 태양 흑점에 관한 연구를 할 때부터 언급했던 책을 완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안드레아는 자신의 스승이 “정치적 싸움”에서 벗어나 책을 쓸 시간을 얻고 적 앞에 ‘진리’를 숨겨두는 계략을 품고 있었음을 꿰뚫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기쁨을 내비친다.

신학자이자 과학자인 새로운 교황에게 '기대'를 걸고 중단되었던 '태양의 흑점 연구'를 다시 시작한 '갈릴레이'(김명수, 가운데)와 렌즈 수리공 '페데르쪼니'(강진휘, 왼쪽), '키 작은 사제'(장지아, 맨 오른쪽), 청년 '안드레아'(정현철).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장면. 신학자이자 과학자인 새로운 교황에게 '기대'를 걸고 중단되었던 '태양의 흑점 연구'를 다시 시작한 '갈릴레이'(김명수, 가운데)와 렌즈 수리공 '페데르쪼니'(강진휘, 왼쪽), '키 작은 사제'(장지아, 맨 오른쪽), 청년 '안드레아'(정현철)./사진=국립극단

안드레아는 “장애물이 있는 경우 두 점 간의 최단거리는 곡선”일 수 있으며 “빈손보다는 얼룩진 손이 낫다”고 말하던 스승의 ‘영리한 선택’이 오히려 ‘승리’를 가져왔다고 평가하지만 갈릴레이는 그것은 사실이 아님을 고백한다.

그저 고문도구들을 보면서 “육체적 고통이 겁이 났을 뿐” 계획 같은 건 없었다고 말하는 갈릴레이는 “학문을 추구하는 일에는 특별한 용기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는 “학문연구의 목표는 오로지 인간 존재의 짐을 덜어주는 일”이어야만 하며, “이기적인 권력자 앞에서 위축되어 자칫 지식을 쌓는 일만 목표로 한다면 그것은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는 일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과학자로서의 자세에 대해 안드레아에게 말하는 갈릴레이의 대사는 말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브레히트의 생각을 그대로 옮긴 듯 보인다.

갈릴레이는 자신이 “과학자로서 엄청난 파급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음”에도 ‘비겁함’으로 인해 ‘가능성’을 놓쳐버리고, 모든 지식을 오로지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만 사용하겠다는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같은 과학계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음에도 ‘저항’하지 못하고 물러선 점을 스스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자신이 교회의 권력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지식을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내버려둔 엄청난 ‘배신’을 한 권의 학술 서적을 완성한 일로 용서받을 수 없음을 지적한다.

벨라르민 추기경(강진휘)은 모든 일을 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데 반하는 고집스럽고 불경스러운 '갈릴레이'(김명수, 오른쪽)를 압박한다. '가면'을 통해 자유로울 수 있음을 강조하는 추기경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을 만들어야 할지도 몰라!"라고 말하며, 갈릴레이에게 '가면'을 쓸 것을 권한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장면. 벨라르민 추기경(강진휘)은 모든 일을 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데 반하는 고집스럽고 불경스러운 '갈릴레이'(김명수, 오른쪽)를 압박한다. '가면'을 통해 자유로울 수 있음을 강조하는 추기경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을 만들어야 할지도 몰라!"라고 말하며, 갈릴레이에게 '가면'을 쓸 것을 권한다./사진=국립극단

비평가 헤르베르트 이어링은 “브레히트는 혼돈과 부패를 온 몸으로 느끼는 사람”이라 할 수 있으며, “인간을 항상 다른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본다”고 말하는데, 이는 브레히트가 갈릴레이를 통해 새 시대를 이끌어 갈 안드레아가 깨닫게 된 교훈을 ‘희망’으로 삼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갈릴레이의 진리 추구를 향한 열정, 이성에 대한 믿음, 변혁의 필연성에 대한 통찰 뿐 아니라 지식인으로서 가져야 할 ‘용기 있는 태도’에 대한 성찰을 품고서 “스스로의 선생이 되어”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기를 바라는 갈릴레이의 마음은 안드레아에게 “진실을 외투 속에 넣고 권력 앞을 지날 때는 조심하게!”라고 말하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갈릴레이의 생애‘의 ‘서문 Foreword‘에서 브레히트는 “새로운 시대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것도 변하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놓아두는 법이 없지만 여전히 자신의 성격을 점차 펼쳐보여야 할 어떤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모든 상상력이 펼쳐질 기회를 가지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새로운 시대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진리’를 발견한 연구자는 행복과 흥분을 느끼겠지만 곧 “낡은 것들에 의해 습격을 받고 보복을 당하는” 위험에 처함으로써 자신의 계획을 위해 온갖 것을 희생한 노력이 좌절되고 박해받는 절망에 휩싸이게 된다.

로마교황청의 사제들과 후원자 귀족들. '가면'을 뒤집어 쓴 사회의 지배층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갈릴레이의 주장을 모두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장면. 로마교황청의 사제들과 후원자 귀족들. '가면'을 뒤집어 쓴 사회의 지배층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갈릴레이의 주장을 모두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사진=국립극단

‘새로운 시대’는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새로운 시대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의 적절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더욱 어렵기만 하다. ‘이성’의 눈을 크게 뜨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인식에 도달하는 일도 어렵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갈릴레이가 작품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외치는 “이성의 부드러운 힘에 대한 믿음”은 브레히트 자신의 ‘이성을 향한 믿음’이기도 했다.

하지만 ‘망원경’을 통해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음에도 “2000년 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 온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에 도전”하는 그의 무모함을 비난하는 학자들과 감히 인간이면서 “천문학을 들이대며 신의 오류를 증명”하려는 그의 불경함을 비난하는 성직자들을 설득하기에는 ‘눈’을 통해 확인된 ‘사실’은 턱없이 부족하다.

망원경을 통해 코페르니쿠스와 부르노의 가설을 '확인'할 뿐만 아니라 우주에 관한 여러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 '갈릴레이'(김명수)와 그의 친구 '사그레도'(김정환, 왼쪽).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장면. 망원경을 통해 코페르니쿠스와 부르노의 가설을 '확인'할 뿐만 아니라 우주에 관한 여러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 '갈릴레이'(김명수)와 그의 친구 '사그레도'(김정환, 왼쪽)./사진=국립극단

인간은 이성이 있지만 감각에 보다 의존해 모든 것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 ‘모순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갈릴레이 자신도 육체의 감각이 느낄 고통을 두려워 해 자신의 ‘이성’을 배신했다는 점은 사실상 이를 확인시켜 준다.

어쩌면 갈릴레이의 실패는 지나친 ‘이성’에 대한 믿음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진실을 알면서도 거짓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그들이 ‘바보’여서가 아니라 그들의 ‘감각’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맹시’는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 현상이라 할 수 있고 우리는 끊임없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의심하고 보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훈련’을 할 필요가 있는 존재들이다.

응용행동심리학자 맥스 베이저만에 따르면, 인간은 “눈가리개를 쓴 채 한정된 정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고 “이해관계가 걸린 상황이라면 제 아무리 도덕적 나침반이 잘 조정된 사람이라 해도 편향 없이 접근하기 어려움”을 느낀다.

불법적인 것을 보고도 대응하지 않거나 인지한 사실을 무시하는 “동기화 맹시”는 인간의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극복할 수 없는 문제는 아니다.

“이해관계 충돌”을 인지한 상태에서 당연시 여겨지는 무언가를 발견할 때 의심으로 다가서고 간과한 것이 없는지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갈릴레이'(김명수). 갈릴레이는 오직 '진리'의 탐구에만 모든 '의식'이 집중되어 있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장면.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갈릴레이'(김명수). 갈릴레이는 오직 '진리'의 탐구에만 모든 '의식'이 집중되어 있다./사진=국립극단

세상의 권위를 손에 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기게 될까 염려할 뿐 실제로 우주가 어떤 모습인지 진리가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기독교가 조각 난 마당에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책을 쓰는 갈릴레이의 도발적인 행위가 ‘위협’으로 읽힐 뿐이고, 교회의 교구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지주와 귀족들은 교황청의 지탄과 소작농들의 ‘반란’이 염려될 뿐이며, 신이 만든 완벽한 세상에서 신의 계획과 보살핌 아래 아무리 고난스러운 삶이라 할지라도 인내할 것을 믿어온 하층민들에게는 ‘공허’와 ‘상실’이 두려울 뿐이다.

“불행한 자들의 영혼의 평화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진실을 앞에 두고도 침묵하는 것”이라는 키 작은 신부의 변명은 갈릴레이의 지적처럼, “보이는 걸 두고 눈을 감고 있으라고 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쿤이 말하듯,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 이르러 대체될 ‘세계관’을 채택하는 과정 없이 ‘혁명’이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러한 혁명을 이루는 일에 필수적인 것은 자신이 믿는 것을 향한 끝없는 의심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노력’과 ‘훈련’이다. 브레히트는 말한다.

“의심을 찬양하라! 자네들에게 충고컨대, 자네들의 말을 가짜 동전인양 검사하는 자를 환영하게! 내가 원하는 것은 자네들이 현명하다는 지나친 확신에 차서 말하지 않는 것이라네!”

네덜란드로 '새로운 시대'를 향해 떠나는 젊은 청년 '안드레아'(정현철)와 그를 통해 또 다른 '희망'과 '꿈'을 품게 된 '어린 소년'(이윤우).  어린 소년은 인간이 하늘을 날 수는 없지만 언젠가 '기계장치'를 발명함으로써 날 수 있을지 모를 '가능성'을 꿈꾼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장면. 네덜란드로 '새로운 시대'를 향해 떠나는 젊은 청년 '안드레아'(정현철)와 그를 통해 또 다른 '희망'과 '꿈'을 품게 된 '어린 소년'(이윤우). 어린 소년은 인간이 하늘을 날 수는 없지만 언젠가 '기계장치'를 발명함으로써 날 수 있을지 모를 '가능성'을 꿈꾼다./사진=국립극단

갈릴레이의 경고처럼, “어떤 일이 있어도 낡은 신앙이 새로운 신앙으로 즉, 맹목성에 대한 무서운 소망으로 대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심’과 ‘탐구’, ‘확인’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는 것, 무엇보다 ‘지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패러다임’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절대적인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의심되는 것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놓친 것을 확인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혁명’은 그러한 개개인의 노력 없이 절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관련기사

관심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