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맞서는 용기, 그리고 선택…뮤지컬 '마리 퀴리'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 그리고 선택…뮤지컬 '마리 퀴리'
  • 주하영
  • 승인 2019.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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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 풍경] 2018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뮤지컬 부문 선정 작품
뮤지컬 '마리 퀴리' 프레스콜 박영수, 김소향 배우
뮤지컬 '마리 퀴리' 공연 장면.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는 마리 퀴리(김소향)와 피에르 퀴리(박영수)./사진=쇼온컴퍼니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삶은 우리 중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우리는 인내심을 가져야 하며, 무엇보다 우리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 우리는 자신이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것은 성취되고 획득되어지는 것임을 믿어야 한다.”

삶에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이해되어야 할 것이 있을 뿐”임을 외쳤던 과학자, 이제 “더 많은 것을 이해함으로써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주장했던 과학자, “이룬 것 보다 이루어야 할 것들”에 관심이 더 많았던 과학자, 중단 없이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던 과학자... 라듐과 폴로늄의 발견자인 폴란드 출신의 과학자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를 설명함에 있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다름 아닌 ‘첫 번째’일 것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첫 번째 여성, 물리학과 화학 각기 다른 분야에서 노벨상을 두 번 수상한 첫 번째 과학자, 파리 대학 최초의 여성 교수, 국가적 영웅만 묻힐 수 있다는 프랑스 파리의 ‘팡테옹’에 안장된 첫 번째 여성... 조국 폴란드에 대한 깊은 애정과 검소한 삶, 자신의 실험실에서만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위엄 가득하고 냉철한 인물로 알려진 마리 퀴리는 종종 20세기와 21세기 과학 발전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성인이자 개척자, 선구자로 여겨진다.

2018 창작산실 뮤지컬 부문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작품인 팩션 뮤지컬 ‘마리 퀴리‘의 마지막 공연이 6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2017 스토리 작가 데뷔 프로그램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 2’의 선정작으로 발전된 작품으로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팩션(Faction)’이라는 장르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마리 퀴리의 전기적 사실에 맞지 않는 라듐 피해자들의 소송사건과 남편 피에르 퀴리의 죽음을 한 공간에 연결시키고 있다.

뮤지컬 '마리퀴리' 포스터. 마리퀴리 역 임강희, 김소향
뮤지컬 '마리퀴리' 포스터 컷. 마리퀴리 역의 배우 임강희, 김소향

마리 퀴리가 프랑스 물리학자 앙리 베크렐과 피에르 퀴리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것은 1903년이었고, 비오는 밤 마차 사고로 인해 피에르 퀴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은 1906년의 일이었다.

반면,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가 공익을 위해 특허권을 주장하지 않고 인류에게 무상으로 내어준 ‘라듐’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물질로 불리며 모든 산업에 이용되고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진 탓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1917년에 이르러서였다.

또한, 라듐의 과도한 노출은 ‘라듐 걸스’로 알려진 미국의 도장공들 뿐 아니라 라듐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에게도 상당부분 이루어졌기 때문에 재생불량성 빈혈과 백혈병, 골수암으로 인한 과학자들의 죽음도 이어졌다.

결국 1920년대 후반에는 마리 퀴리의 딸인 이렌 퀴리(Irene Curie)에게도 이상 징후가 나타났고 마리 퀴리 또한 백내장을 포함한 여러 방사능 피폭 증상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이를 비밀리에 숨기고 있었다.

뮤지컬 ‘마리 퀴리‘의 연출을 맡은 김현우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과학을 위한 과학에서 인간을 위한 과학으로 나아가는 인간 마리”를 보여주기 위해 “인생에서 첫 번째 영광의 순간인 노벨상 수상 시기와 그 이후에 발발한 ‘라듐 걸스’ 사태를 연결시켜 가장 영광의 순간에 가장 큰 딜레마에 직면하는 마리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과학자 마리 퀴리의 전기적 사실에 대한 이해가 깊은 관객들에게는 상당 부분 사실 관계가 어긋난다거나 다르게 표현된 부분들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현우 연출은 이미 잘 알려진 과학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내면의 갈등’을 상상을 통해 구현함으로써 “과학자로서 마리가 휴머니즘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관객들이 지켜볼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렇듯 뮤지컬 ‘마리 퀴리‘가 역사적 사실들을 변형하거나 조합하면서 궁극적으로 제시하고 싶었던 가장 큰 질문은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진실 앞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결정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인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 '마리 퀴리' 프레스콜 김소향, 조풍래 배우
뮤지컬 '마리 퀴리' 공연장면. 라듐을 발견한 과학자 마리 퀴리(김소향)와 라듐 시계공장 '언다크'를 운영하는 사장 루벤 뒤퐁(조풍래). '언다크'는 원래 소량의 라듐 가루에 물을 부은 뒤 고무풀 접착체를 섞어 만든 야광 염료 페인트의 이름이지만 뮤지컬 '마리 퀴리'에서는 시계 공장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사진=쇼온컴퍼니 

극은 마리 퀴리가 1896년 앙리 베크렐이 발견한 ‘베크렐선’ 연구를 연장해 실험하던 중 우라늄보다 400배의 방사능을 방출하는 새로운 원소 폴로늄을 발견하고 우라늄의 900배 방사능을 방출하는 두 번째 새로운 원소 ‘라듐’을 발견하게 된 1898년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보이지 않지만 주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마리의 연구 열정은 새로운 원소의 발견이라는 커다란 업적을 낳지만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는 “눈에 보이는 수치를 가져오라”던가 “기준이 바뀌었다”는 잣대를 들이대며 그 존재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폴란드 이민자이자 여성인 마리가 19세기라는 시대의 제약으로 인해 겪었어야 할 어려움은 노벨 수상자 발표에 있어 ‘마리 퀴리’가 아니라 ‘마담 퀴리’로 호명된다든가 연구를 주도적으로 진행한 것은 남편인 피에르 퀴리였을 것이라는 단정 섞인 비아냥거림으로 대변된다.

여성이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는 일도, 위대한 과학자로서 인정을 받는 일도 힘들었던 당대의 한계를 굳건히 헤쳐 나갔던 마리 퀴리의 내면은 “내 이름은 퀴리 부인이 아냐! 잘 들어. 내가 누군지. 내 이름은 마리!”라는 외침으로 표현된다.

새로운 세상, 더 큰 우주와 진리, 의문을 품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들여다보고 싶고, 알고 싶은 마리의 열정은 어둠을 밝혀주는 ‘라듐 시계’를 만드는 ‘언다크’ 시계공장의 직공들의 장면과 병행하듯 배치되며 갈등 구조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뮤지컬 '마리 퀴리' 프레스콜 (2)
뮤지컬 '마리 퀴리' 공연 장면. 시계 공장 '언다크'의 사장 루벤 뒤퐁과 시계 직공들. '언다크'의 직공들은 시계판을 칠하는 작업을 하며 밝은 미래를 꿈꾸지만, 라듐이 인체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사진=쇼온컴퍼니 

다른 직종에 비해 상당히 많은 돈을 버는 시계 직공들은 각자 꿈을 꾸며 붓을 세워 라듐가루가 섞인 페인트를 찍고 바르는 일을 계속한다.

2016년 케이트 모어가 쓴 ‘라듐 걸스‘에 따르면, 폭이 1㎜ 밖에 되지 않는 시계판을 칠하기 위해서는 직공들이 가느다란 붓을 입에 넣어 끝을 뾰족하게 만들어 쓰는 ‘립 포인팅’ 기술을 사용해야 했는데, 당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자 ”경이로운 약품”인 라듐을 먹고 만지는 일은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직공들이 일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라듐을 섭취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고 한다.

한편, 마리는 피에르가 오래된 상처에 라듐을 주기적으로 쏘여 ‘변질된 피부조각을 정상화’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음을 알게 되고, 라듐을 활용해 피부염이나 종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4살이던 때부터 폐결핵을 앓기 시작한 엄마를 1878년 10살이 되던 해에 잃은 마리에게 불치병의 치료법을 발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남다른 의미를 품는다.

1882년 결핵균이 발견되고 1905년에 제대로 된 백신이 나올 때까지 폐결핵은 “유럽에서 걸어 다니는 가장 위험한 질병”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시계 직공 '안느 코발스키' 캐릭터 컷. 폴란드 이민자인 안느는 '언다크'에서 직공으로 일하고 있던 언니 아멜리에 코발스키에 의해 시계 공장에서 함께 일하게 된다. 폴란드 출신의 과학자 마리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니고픈 꿈을 간직하고 있는 안느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허구의 인물'이다.
뮤지컬 '마리 퀴리' 시계 직공 '안느 코발스키' 캐릭터 컷. 폴란드 이민자인 안느는 '언다크'에서 직공으로 일하고 있던 언니 아멜리에 코발스키에 의해 시계 공장에서 함께 일하게 된다. 폴란드 출신의 과학자 마리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니고픈 꿈을 간직하고 있는 안느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허구의 인물'이다./사진=쇼온컴퍼니 

뮤지컬 ‘마리 퀴리‘는 마리가 라듐 시계 공장에서 일하는 ‘안느’에게서 라듐의 위해성을 묻는 편지를 받고 실험을 통해 합리적 의심을 할 만한 결과를 얻었음에도 ‘암 치료를 위한 연구 기회’를 잃을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주저하고 외면하는 이유를 이러한 전기적 사실에서 찾은 듯 보인다.

“매혹적이고 흥미로운 가설”과 그 가설을 증명하고픈 타오르는 열정 외에도 그녀는 30년 전 누군가 장티푸스와 폐결핵의 치료법을 발견했더라면 살아있을지도 모를 언니와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자신의 ‘라듐 치료법’이 살릴 수 있는 사람들에만 초점을 맞춘 채 다른 곳에서 ‘라듐’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그녀의 ‘양면성’은 관객들로 하여금 고개를 갸우뚱하도록 만든다.

마리에게 보낸 편지의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세 명의 동료가 더 죽었음을 알리며 시간이 없음을, 더 매달릴 곳이 없음을 호소하는 안느의 편지와 마리에게 라듐치료의 임상실험 지원을 약속하는 프랑스 의학 아카데미의 편지는 완벽하게 대비된다.

홀로 ‘라듐의 위해성’에 관한 실험을 하고 있는 피에르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가고, 안느는 “입이 썩고 이가 빠지고 턱이 부서지는 질병”으로 죽어간 자신의 언니와 동료들을 “매독에 걸린 창녀”로 몰아가는 언다크의 사장 루벤과 맞서기 위해 재판을 준비한다.

언론과 경찰, 그 어디에서도 진실을 알려주지 않고, 부검조차 못하게 하며 증인들을 매수하는 루벤을 비난하며 반드시 ‘진실’을 파헤칠 것을 다짐하는 안느에게 루벤은 이렇게 말한다.

“진실! 아름답지. 양심! 항상 옳아. 정의! 너무 매력적이야. 하지만 또 다른 진실! 과연 내가 그걸 감당할 그릇이 되는가?...차라리 돈을 더 챙겨! 머리를 쓰라고. 넌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서 너의 진실이 공허한 거고. 이 모든 성장의 역사에 희생이 없었던 적이 있었나? 위대한 변화 앞에서 우리 모두 미물이 아닐 수 있냐고?”

_뮤지컬 _마리 퀴리__루벤 역_조풍래
뮤지컬 '마리 퀴리' 포스터 컷. 시계 공장 '언다크'의 사장 루벤 뒤퐁 역의 배우 조풍래
_뮤지컬 _마리 퀴리__피에르 퀴리 역_박영수
뮤지컬 '마리 퀴리' 포스터 컷. 마리 퀴리의 남편이자, 연구 동반자 피에르 퀴리 역을 맡은 배우 박영수.  

질문은 성장을 추구하는 사회, 역사의 발전을 위해서는 개인이 희생되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 진실과 맞설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한 사회로 향한다.

무엇을 위해 발명을 하고 무엇을 위해 지식이 필요한가? 무엇을 위해 성장이 요구되고 무엇을 위해 발전이 계속되나? 역사의 거대한 흐름, 변화 그것을 누가 결정하나? 그것 역시 인간이 결정하고 세워 온 것이 아닌가?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진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늘 문제였을 뿐 역사를 만든 것도, 변화를 낳은 것도 항상 시작은 ‘한 개인’이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음을, 암흑의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를 두려움과 직면해야 함을, 감당하기 힘든 진실일지라도 외면할 수 없음을 인식하는 피에르는 자신의 몸에 직접 실험을 감행하려 한다.

이를 다급하게 막아서는 마리는 임상실험이 끝날 때까지만 좀 더 시간을 두고 버텨줄 것을 피에르에게 부탁하며 이렇게 외친다. “우린 발견자야, 구원자가 아냐!”

과학이 뚫을 수 없는 벽이란 없기에, 멈출 수 없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길’을 찾겠다는 마리는 위해성이 알려지면 라듐 치료법을 위한 임상 연구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언다크 시계 공장의 직공들을 외면한다.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는 바람은 희생자들을 낳는다.

단 한번만 별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다면 모든 문제를 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루벤, 단 한번만 시간을 더 확보하고 연구할 기회를 가진다면 자신이 본 모든 것을 세상에 전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리, 마지막 단 한 번이 되더라도 너무 늦기 전에 진실과 마주하려는 결심을 굳히는 피에르...

재판에서 라듐의 위해성을 증언하려는 피에르에게 자신이 이루어 온 모든 것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놓칠 수 없는 ‘욕심’을 드러내 보인 마리는 법원으로 가던 길에 마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피에르의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두려움 앞에 고개를 돌려버린 ‘겁쟁이’였음을 깨닫는다.

믿었던 것들을 바라보며 더 먼 곳을 향해 앞으로 전진만 하는 삶에는 때로 감당하지 못할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가혹한 진실은 잔인하리만큼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지만 그러한 공포를 극복해야만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혼자 남겨진 마리는 언젠가 피에르가 들려주었던 ‘정글북‘ 이야기를 떠올린다. 끝없는 생존 경쟁과 미지의 두려움이 가득한 정글에서 가장 용감한 동물이 누구인지 궁금해 찾아간 모글리에게 현명한 코끼리 ‘하티 할아버지’는 “두려움을 아는 것이 가장 용감한 것”이라고 말해준다.

두려움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모글리는 어느 날 깊은 우물에 빠져 위기에 처하자 하티 할아버지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두려운 게 없다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 누구에게나 두려움은 있고 자신을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극복하는 일만이 자신을 위기에서 구원할 수 있다.

뮤지컬 '마리 퀴리' 프레스콜 김소향, 임강희 배우
뮤지컬 '마리 퀴리' 프레스 콜에서 나란히 무대에 오른 마리 퀴리 역의 배우 김소향, 임강희/사진=쇼온컴퍼니 

마리는 멈춰 서서 잘못된 모든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두려움과 맞서는 일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는 “정글에는 모두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법칙만 존재”할 뿐 왕이 누구인가는 중요치 않으며, 라듐의 위해성을 인정하고 그 ‘위험’이 무엇인지를 연구해야 할 필요가 우선시될 뿐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눈을 감을 필요가 없음을 인식한다.

마침내 그녀는 라듐의 위해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발표를 하고 임상 실험을 철회하는 동시에 “독이건 약이건 인간이 제어할 수 있다면 인류가 더 지켜봐야 할 가치가 있다”는 연설을 통해 앞으로 퀴리 연구소는 ‘라듐의 위해성’에 관한 연구를 이어갈 것임을 공표한다.

미지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세상에 숨겨진 더 많은 진리를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했던 마리 퀴리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개개인의 향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려는 희망을 품을 수는 없다. 그 목적을 위해 우리는 각자 자신의 개선과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모든 인류에 대한 전체의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각자 자신이 가장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도움을 주기 위해 우리의 특정한 의무를 다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각자 세상에 무언가를 제공하기 위해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그 무언가가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일이 아니라 이롭게 하는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때로 무서운 진실과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티 할아버지의 말처럼,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단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 앞에 용기를 내어 맞서는 사람이 있을 뿐... 자꾸만 흐려지는 진실을 붙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두려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내가 아닌 ‘남’을 돌아보려는 마음,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의 개선과 향상을 위해 전진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위대한 사람’이 아니다. ‘위대한 마음’이다.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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