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 풍경]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자신'의 이야기...연극 '킬 미 나우'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 풍경]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자신'의 이야기...연극 '킬 미 나우'
  • 주하영
  • 승인 2019.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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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극작가 브래드 프레이저(Brad Fraser) 작, 지이선 각색 'Kill Me Now'
연극 '킬 미 나우' 공연장면. 척추질환으로 인해 점점 육체적 마비와 정신적 마비가 심해지고 있는 아버지 '제이크'의 꿈 속 장면. 아들 '조이'의 졸업식 날 정상인의 몸으로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할 준비를 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본다./사진=연극열전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우리의 삶에 ‘고통’보다 더 강렬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또 있을까?

정신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고통은 그 자체로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간에게 삶의 끝 혹은 죽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감정은 분명 ‘고통’이다.

고통이 지속적으로 끝이 없이 계속될 때 인간은 ‘죽음’을 떠올린다. 고통을 끝낼 방법이 죽음 외엔 없음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 암흑의 깊은 터널과 같은 짙은 고통에서 해방되어 평화와 안식을 얻는 길이 ‘죽음’ 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를 때, 인간은 오로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삶의 끝’을 갈망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위해 “자비로운 죽음”이라 불리는 안락사 혹은 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인간 생명의 절대적 존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선택을 허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답게 죽을 권리와 생명의 존엄성, 이 어려운 논쟁에 명확한 해답이 존재할 수 있을까?

연극 '킬 미 나우' 공연장면./사진=연극열전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는 장애와 성(性), 안락사와 삶, 가족의 희생과 같은 어려운 소재를 따뜻한 감동으로 다루며, 2016년 초연 당시 “관객들의 전 회차 기립 박수”라는 신화를 세웠던 연극 ‘킬 미 나우‘의 세 번째 시즌이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다.

관객평점 9.7점과 객석점유율 92%라는 기록을 통해 이미 많은 한국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것으로 입증된 연극 ‘킬 미 나우‘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논란을 낳는 것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극작가 브래드 프레이저의 2013년 초연작이다.

사회에서 금기(禁忌)로 여겨지는 예민한 소재들을 거침없이 다루고 비판적인 주제의식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평가받는 프레이저의 특징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바로 ‘불편함’일 것이다.

“좋은 극에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연극을 보러 가는 이유가 아닌가요?”라고 되묻는 프레이저에게 연극은 “사회에서 탐구되지 않은 모든 것들의 금기를 깰 필요”가 요구되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열악하고 거친 환경에서 자란 아웃사이더”라고 소개하는 프레이저는 어떤 측면에서는 정상인으로 분류되는 모든 사람들이 부적응자, 소수자, 아웃사이더일 수 있음을 지적하며, 자신은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이며, 그것이 곧 “우리의 이야기”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연극 '킬 미 나우' 공연장면./사진=연극열전

중증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17살 아들 조이(Joey)와 그를 돌보기 위해 개인의 삶을 포기한 아버지 제이크(Jake)를 중심으로 장애 청소년이 겪는 성(性)과 ‘죽음’을 선택할 권리, 장애인 가족이 겪는 희생과 어려움, 사회적 제도의 문제들을 조명한 작품 ‘킬 미 나우‘는 2015년 영국 공연을 거치며 큰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실제 장애를 겪고 있거나 장애아를 둔 가정의 관객들은 연극의 비현실성과 장애인 가족을 그려낸 상투적 편견에 대해 불평과 비난을 쏟아냈고, 신체적으로 정상인인 배우가 장애를 가진 인물을 제대로 연기할 수 없음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던졌다.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인 디아 버킷(Dea Birkett)은 ‘더 가디언‘을 통해 장애 아동의 부모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제대로 상상하지 못하는 연극계를 혹독하게 비판했고, 결국 아버지조차 장애인이 되어버리고 아들을 부담으로 여기며 삶을 끝내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결말에 박수를 치는 관객들을 향해 불편한 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에 프레이저는 ‘더 스테이지‘를 통해 ‘킬 미 나우‘는 특정 장애의 경험의 진실을 반영하기 위해 쓰여진 극이 아니라 갈등과 어려움 속에서 비극에 이른 극적 인물들을 통해 은유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위한 “상상력의 소산”임을 관객들이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연극은 목소리를 찾아줘야 할 필요가 있는 소수자들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프레이저는 막이 내린 후에도 관객들이 연극이 제기한 문제를 오랫동안 이야기하도록 만들기 위해 사회에서 불편하게 여기는 주제들을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연극 '킬 미 나우' 공연장면./사진=연극열전

장애인의 성(性)과 안락사라는 민감한 주제를 부각시킨 ‘킬 미 나우‘는 선천적으로 X염색체를 2개 이상 보유한 ‘클라인펠터증후군(Klinefelters syndrome)’을 앓고 있는 프레이저의 조카로 인해 쓰여진 작품이다.

그는 ‘내셔널 포스트‘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정신이 7세 아이의 발달정도에 머물러 있는 조카의 언어를 오로지 뉘앙스로만 이해하고 적응하게 되는 과정” 속에서 조카가 청년으로 성장해가면서 맞닥뜨리게 될 삶의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결국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성적 욕구가 ‘장애인의 성적 욕구’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 공포와 두려움을 자극하게 될 것임을 인지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더불어 그는 오래 전에 읽은 한 윤리학 칼럼을 언급하면서, 심각한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을 키우고 있는 아버지가 청소년기에 들어선 아들의 성적 욕구를 해결해주기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될 때, 우리는 “사회의 금기를 깰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삶 속에 실제 존재하지만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을 불편해하는 관객들의 ‘혐오’를 인식하면서도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보다는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하는 프레이저의 ‘킬 미 나우‘는 사실상 한국 공연을 거치며 지이선 작가의 각색이 더해져 보다 감성적이고 감동적인 극으로 변모한 것으로 보인다.

연극 '킬 미 나우' 공연장면./사진=연극열전

2015년에 출간된 프레이저의 원작 희곡과 비교했을 때, 한국 공연은 추가된 요소들이 상당부분 존재한다. 가령, 아들이 태어나기 전 제이크가 집필한 소설 ‘춤추는 강 River Run Rapid‘의 “모든 아이들은 완벽하다(All children are perfect)”는 문장은 원작에도 존재하지만 나머지 소설 속 문장들은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다.

제이크가 조이를 목욕시킬 때 등장하는 ‘노란 고무 오리 인형’의 서사 역시 존재하지 않으며, 조이가 고모 ‘트와일라(Twyla)’에게서 선물 받은 태블릿으로 하는 게임에 등장하는 “킬 미 나우”라고 외치는 남자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강사인 제이크의 수업에서 만나 수년 동안 비밀 연인 관계를 지속해 온 로빈(Robyn)의 ‘침대’에 관한 소설도 등장하지 않는다.

연극 '킬 미 나우' 공연장면. 막 목욕을 마치고 나온 '조이'에게 최신형 태블릿 기기를 선물하는 고모 '트와일라'와 이를 지켜보는 아버지 '제이크'. /사진=연극열전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아들 조이가 인터넷 상에서 ‘안락사(euthanasia)’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음을 말하며 아버지인 제이크의 ‘자비로운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다.

프레이저는 조이의 입을 빌어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부모들이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저지를 수 있는 끔찍한 선택인 동반 자살, 혹은 “살해 후 자살(murder suicide)”과 같은 충격적인 문제를 수면 위로 불러온다.

또한 조이는 더 이상 통증과 고통을 견딜 수 없는 아버지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지지할 수 있음을 피력한다.

하지만 한국 공연의 경우, 불편한 주제들이 약화된 대신 “서로를 돕기 위해 한걸음 더 내딛어야 할 필요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외롭고 고립된 사람들이 보다 단단한 가족”으로 거듭나기 위해 희생하고 배려하며 사랑으로 연결되어가는 감동의 과정이 배가된 것으로 보인다.

연극 '킬 미 나우' 공연장면./사진=연극열전

극의 초점은 “백조가 될 수 없다 할지라도” 변함없이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 제이크의 헌신적인 사랑과 좀비로 변해가는 게임 속 남자의 ‘킬 미 나우(Kill me now)’가 조이의 어눌한 발음에 의해 ‘힐 미 나우(Heal me now)’로 들리는 서사를 연결하며, 고통에 지친 한 인간의 ‘죽음’을 향한 갈망과 인내, 삶 그리고 선택과 같은 무거운 질문들을 이어나간다.

한국 공연의 ‘킬 미 나우‘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제이크가 쓴 소설의 서문을 통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로빈은 아버지가 소설가였음을 전혀 몰랐던 아들 조이에게 책의 서문을 읽어준다.

“태어나는 모든 아이는 완벽한 존재다.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그 존재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존재를 탄생시킨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와 아빠도 태어난다.”

제이크는 아이를 처음 목욕시키기 위해 “장난감 고무 오리를 띄우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욕조에 띄운 장난감 오리가 말한다.

“안녕, 이제부터 우리는 긴 여정을 시작할 거야!”

아버지는 아이를 욕조 안에 넣기가 두려워 잠시 멈칫 거린다. 장애가 있든 없든, 미운 오리이든 우아한 백조이든 태어난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완벽하다.

그 완벽한 존재를 세상 속에서 온전히 지켜내는 일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시작된다. 빠르게 흐르는 강물 속에 아이가 휩쓸리지는 않을까, 상처입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불안한 마음은 숨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되며 결코 멈추지 않는다.

20년 전 태어날 아기를 고대하며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던 제이크는 염색체이상으로 중증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 ‘조이’를 키우고 있다.

15년 전 음주 교통사고로 어머니와 아내를 동시에 잃고 20대의 나이에 자신보다 10살 어린 여동생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들을 돌보며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제이크는 이제 40대 초반의 학부모가 되었다.

연극 '킬 미 나우' 공연장면. 사춘기의 2차 성징으로 인해 성적 욕구를 느끼는 아들 '조이'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난감해 하는 '제이크'에게 조언하는 '로빈'./사진=연극열전

조이의 현재 나이는 17세, 성호르몬의 증가로 2차 성징이 발현되고, 그로 인해 감정 기복이 심해진 아들은 “괴물같이 생긴 자신을 좋아해 줄 여자는 세상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좌절한다.

늘 어린애일 줄 알았던 아들의 성적 욕구의 발현과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아버지 제이크는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 또 하나 늘었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낀다.

17년 동안 아들의 목욕과 엉덩이를 닦아주는 일, 소변을 보는 일, 성인 기저귀를 채워주는 일 등 모든 민감한 일들을 도와줬던 아버지 제이크는 손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아들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일마저 도와줘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아들 조이는 ‘태아알코올증후군’으로 인해 “감정조절이 잘 안 되는” 경증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한 살 많은 친구 라우디(Rowdy)와 함께 독립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연극 '킬 미 나우' 공연장면. 시설에서 생활하던 '라우디'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던 '조이'는 함께 '독립'할 계획을 세운다. /사진=연극열전

아들 조이와 라우디의 계획을 알게 된 제이크는 조이와 크게 말다툼을 하고, 잔뜩 흥분한 조이의 휠체어에 밀려 그만 바닥에 쓰러진다. 허리와 하반신을 강타하는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아버지를 바닥에 둔 채로 조이는 자신의 어눌한 말투를 알아듣지 못하는 응급구조대원과의 힘겨운 전화통화 끝에 가까스로 구급차를 부른다.

제이크는 척추관 속에 뼈가 자라는 선천적인 질병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이 질병이 점점 자신의 육체를 마비시키고 뇌에까지 영향을 미쳐 보다 심각한 상태에 이를 것임을 인식한다.

이제 아들을 독립시키려는 제이크 앞에서 단호하게 “끝까지 아빠 곁에 있겠다”고 주장하는 조이는 라우디와 고모 트와일라, 로빈 아줌마의 도움으로 심해지는 ‘고통’으로 인해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제이크를 돌본다.

복용하는 약이 늘고 의식이 깨어있는 시간이 줄어들며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음을 깨닫는 제이크는 로빈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나 자살하고 싶어. 나는 내 인생, 내 고통을 내 마음대로 끝낼 이유도 있고 권리도 있어. 어떤 법이든 편견이든 그런 거 나 조금도 신경 안 써. 그냥 아무나 붙들고 나를 좀 끝내달라고 매달리고 싶어!”

연극 '킬 미 나우' 공연장면./사진=연극열전

2012년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환자가 된 윌 트레이너의 존엄사 문제를 다루며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조조 모예스의 소설 ‘미 비포 유‘에서 루이자는 죽음을 선택한 윌에게 사랑을 토로하며 만류하지만 윌은 이렇게 답한다.

“나는 더 이상 고통 속에 살고 싶지 않아요. 더 나은 선택은 없어요.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바라는 끝을 내게 선물해줘요!”

사랑이 ‘죽음’이라는 선택을 흔들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에 상처입고 좌절한 루이자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왜 내가 충분치 않은 걸까? 왜 내가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는 걸까?”

하지만 이제 겨우 17살인 조이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다시는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아빠의 말 속에 숨겨진 뜻을 이해한다.

조이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향해 느끼는 제이크의 슬픔과 좌절, 절망을 그 누구보다 가장 깊이 이해한다.

보험금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떠난 후 홀로 남겨질 아들의 미래가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고문’에 가까운 고통을 끝까지 견디려는 제이크가 조이보다 더 어눌한 말투를 쓰기 시작하고 배변활동을 조절하지 못하게 되자 아들은 아버지 제이크의 “조이, 나 좀 목욕시켜 줘!”라는 말의 숨겨진 의미가 무엇인지 인식한다.

연극 '킬 미 나우' 공연장면./사진=연극열전

극장은 ‘타인의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곳’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조이’가 아닌 ‘제이크’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은 현재 그들이 장애를 앓고 있는 ‘조이’가 아니라 장애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제이크들’이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 언젠가 부모가 될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 아이들은 다 키웠지만 곧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기가 올 것임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

‘장애’는 개인이 직접 그 어려움과 고통을 겪기 전까진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 모두는 ‘조이’가 아닌 ‘제이크’를 향해 다가선다.

그리고 깨닫는다. 조이의 선택이, 아버지의 ‘죽음’을 승인하며 함께 그 곁을 지켜주는 그 용기 있는 선택이 같은 고통을 품고 있는 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 깊은 이해가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의 삶에나 ‘장애’가 숨 쉬고 있고, 어느 ‘틈’에서든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내게는 다가오지 않을 일이라고 쉽게 단정 짓고 돌아보지 않는 일들은 사실상 언제나 내 곁 가까이에, 보이지 않는 근접 거리에서 숨 쉬고 있다.

아직 운 좋게 내가 거기에 닿지 않았을 뿐, 미처 거기까지 도착하지 못했을 뿐, 삶 속 어느 지점에선가 만나게 될 그 어려움과 고통은 어디엔가 분명 존재한다.

연극 '킬 미 나우' 공연장면. 척추질환으로 인해 점점 육체적 마비와 정신적 마비가 심해지고 있는 아버지 '제이크'의 꿈 속 장면. 아들 '조이'의 졸업식 날 정상인의 몸으로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할 준비를 하던 두 사람은 서로 장난을 치다 베게싸움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 모든 장면들은 약에 취해 의식을 잃고 있는 제이크의 '꿈'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이 슬픔을 자아낸다./사진=연극열전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들은 그러한 불행이 타인의 것만이 아닌 내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들이고, 연극은 그러한 불편한 진실들을 무대 위에 형상화한다.

관객들이 불편한 진실로부터 더 이상 도망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그리하여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좀 더 겸손한 삶을, 좀 더 연민과 사랑이 가득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연극 ‘킬 미 나우‘는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독에 시달리고 희생에 힘들어하며 고통과 죽음, 삶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무리 정상으로 보이더라도 “어느 한 구석은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 희생 앞에서 우리가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용기’에 관한 이야기, 그렇기에 관객들이 ‘킬 미 나우’를 ‘힐 미 나우’로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7월 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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