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 풍경] '공포'가 낳은 비극의 '그림자'...뮤지컬 '미드나잇'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 풍경] '공포'가 낳은 비극의 '그림자'...뮤지컬 '미드나잇'
  • 주하영
  • 승인 2019.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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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 작가 엘친(Elchin) 원작, 영국 뮤지컬 '미드나잇(Midnight: A New Musical)'
미드나잇 공연사진(비지터 역 고상호, 맨 역 김지휘, 우먼 역 김리)
뮤지컬 '미드나잇' 공연 장면. '자정'을 알리는 시계가 울리기 전에 자신의 할당량을 '한 명' 더 채워야 함을 밝히며 부부(맨 역 김지휘, 우먼 역 김리)를 위협하는 '비지터(고상호, 가운데). '액터 뮤지션'들은 음악을 연주하며 '코러스'의 역할을 보탠다./사진=모먼트메이커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빛과 어둠, 낮과 밤이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까? 많은 신화와 전설 속에서 빛과 어둠은 선과 악을 대변한다.

낮 동안 숨어 지내던 악령과 괴물들은 밤이 되면 잠든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도록 만들거나 끔찍한 일을 발생시킨다.

행동과학 전문가 위니프레드 갤러거는 “인간 활동에 미치는 빛의 영향은 진화론적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인류의 생존은 몸과 마음의 작용을 낮과 밤의 요구에 어떻게 맞추는가에 달려 있었다”고 말한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토마스 베어는 인간의 삶이 “마치 지구라는 행성에 두 개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낮과 밤으로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낮과 밤에 따라 본성을 바꾸며, 낮 동안 활동하고 밤이면 에너지를 축적한다. 하루 낮의 길이를 측정하는 “생물학적 시계”는 축적된 빛의 정보를 통해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s)을 조절하고 인간의 행동에 변화를 가져온다.

어쩌면 신화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밤의 악령들과 괴물들은 이러한 ‘일주기 리듬’으로 인한 호르몬의 변화와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 고통, 죄의식, 공포와 같은 어두운 감정의 상징적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떠오르는 태양의 찬란함이 생명의 탄생과 밝음, 행복과 희망을 상징한다면, 칠흑 같은 어둠은 죽음과 공포, 불안과 고통을 상징한다.

땅거미가 깔리고 어둠이 깊어져 오늘이라는 시간이 내일로 넘어가는 경계에 이를 때, 일몰에서 멀어져 빛의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정(midnight)’이라는 시간이 다가올 때, 인간의 불안과 후회는 증폭된다.

해가 뜨려면 아직도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 한밤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 의해 지배를 받을 때, 마녀와 악마, 괴물과 악령이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어쩌면 빛을 잃은 인간의 ‘불안’과 ‘공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5) 18미드나잇_공연사진(플레이어 역 김소년, 김사라, 신지국, 이나래)
뮤지컬 '미드나잇' 공연 장면./사진=모먼트메이커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2관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의 부총리이자 작가인 엘친 아판디예프(Elchin Afandiyev)의 연극 ‘지옥의 시민들(Citizens of Hell)‘을 원작으로 한 영국 뮤지컬 ‘미드나잇(Midnight)‘의 공연이 한창이다.

2017년 한국 초연에 이어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뮤지컬 ‘미드나잇‘은 영국 오리지널 프로덕션팀의 합류로 인해 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 기타와 플루트를 포함한 악기들의 실제 연주를 직접 무대 위에서 선보일 뿐 아니라 연기와 노래, 춤을 병행하는 ‘액터 뮤지션(actor-musician)’들의 존재가 더해져 역동성과 풍부한 음악이 강조되었다.

2015년 런던의 세인트 제임스 스튜디오에서 워크숍 공연으로 소개되었던 뮤지컬 ‘미드나잇‘은 2018년 9월 런던 유니온 씨어터 공연을 통해 ‘더 스테이지‘로부터 “잔인한 블랙 유머가 드리워진 암울하고 진지한 뮤지컬”이라 불리며 “스마트한 무대 디자인으로 에너지 가득한 무대를 선보였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스탈린 시대 소비에트 연방에서 1936년부터 1938년까지 공식적으로 68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반혁명분자’나 ‘인민의 적’으로 고발되어 숙청당했던 ‘대숙청(Great Purge)’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뮤지컬 ‘미드나잇‘은 숙청이 가장 집중되었던 1937년에서 1938년으로 넘어가는 12월 31일, ‘자정’을 소재로 하고 있다.

뮤지컬 '미드나잇' 공연 장면. 새해를 알리는 12시 종이 울리면 밝은 미래와 새로운 삶이 열릴 것이라 아내(최연우)를 위로하는 '맨'(홍승안)./사진=모먼트메이커 

명확한 이유도 없이 사람들이 잡혀가고 거짓된 고발로 인해 고문과 총살, 유형, 죽음이 끝도 없이 이어지던 아제르바이잔의 한 아파트에는 남자(맨)와 여자(우먼)가 살얼음판 같은 현실 속을 어떻게든 버텨나가기 위해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옆 집 문이 두드려지고 오늘도 또 다른 부부에게 알 수 없는 고발과 이별, 폭력과 공포가 닥친 순간 여자는 떨리는 손으로 두 귀를 틀어막으며 아직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초초하게 기다린다.

제발 그에게는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라며 집안을 서성이는 여자는 밖에서 들려오는 비밀경찰 ‘엔카베데(NKVD)’의 고함소리와 가구가 넘어지는 소리, 저항하는 남자가 아내를 안심시키는 소리와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테이블을 준비한다.

뮤지컬 ‘미드나잇‘의 원작인 엘친의 ‘지옥의 시민들‘은 2013년 데이비드 패리(David Parry)에 의해 영국 런던에 처음 소개되었다.

아제르바이잔과 친분이 두터웠던 패리는 “20세기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을 영국 무대에 소개한 이유에 대해 “정치적 편집증과 영적 디스토피아를 탐구할 수 있는 작품을 항상 마음속에 그려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구 엘리트층에게 정치인으로서의 엘친이 아닌 작가로서의 엘친을 소개하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그의 바람은 2015년 티모시 냅맨(Timothy Knapman)의 대본과 로렌스 마크 위스(Laurence Mark Wythe)의 음악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뮤지컬 ‘미드나잇‘을 통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왼쪽 위) 불안에 떠는 아내(최연우)에게 "아무것도 막을 수 없어. 너의 옆에 살아 있는 나"라고 노래하는 '맨'(홍승안).
뮤지컬 '미드나잇' 공연 장면. 남편의 가려진 비밀들을 알고 절망하는 아내(김 리)를 위로하는 '맨'(김지휘). 멀리서 '비지터'(고상호)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사진=모먼트메이커 

엘친은 새해를 맞이하는 한 부부의 저녁 식사에 낯선 이방인이 찾아오면서 펼쳐지는 대화를 통해 불편한 비밀들과 숨겨진 진실들을 파헤쳐나가는 과정을 ‘스릴러’와 ‘사이코드라마’를 통해 구현했는데, 뮤지컬 ‘미드나잇‘은 원작의 골격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탱고, 클래식, 재즈를 넘나드는 풍성한 음악과 ‘액터 뮤지션’이라는 존재의 역동성과 유연함을 통해 훨씬 더 흥미진진한 공연을 선보였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액터 뮤지션’은 영국에서 ‘반연극’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던 1936년에 뿌리를 두고 뮤지컬이 번성했던 1950년대 후반~1960년대를 지나 1990년대부터 많은 교육기관들을 통해 인재가 배출되어 온 ‘다재다능한 퍼포머’라 할 수 있다.

뮤지컬 ‘미드나잇‘에서 ‘액터 뮤지션’은 1930년대 스탈린 시대를 상기시키는 복장을 한 채 두 눈 아래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 죽은 이들의 ‘유령’과 같은 모습으로 등장해 옆집 사람들, 변호사 부부, 엔카베데, 과거 속 인물들을 연기할 뿐 아니라 때로는 코러스로 때로는 오케스트라로 쉴 새 없이 변모하며 자유자재로 무대를 가로지른다.

협력 연출을 맡은 제임스 로버트 모어(James Robert-Moore)는 프로그램북을 통해 “액터 뮤지션들은 이야기에 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그들로 인해 더해진 것에 보다 매료되고 흥미롭게 느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무대는 “현실적인 아파트”라는 공간을 구현하지만 12월 31일 ‘자정’이 되기 몇 분 전에 찾아오는 방문객(비지터)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한 꺼풀 씩 벗겨지는 남자(맨)와 여자(우먼)의 비밀과 과거의 기억들이 드러날 때마다 액터 뮤지션들은 시공간을 초월해 움직이며 경계를 무너뜨린다.

무대 뒷면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스탈린 초상화는 한 가정에 드리운 압제와 공포, 두려움을 상징한다. 모든 것이 감시되고 도청되며 어디로도 숨을 곳이 없는 불안함은 벽이 없이 ‘틀’만 존재하는 뻥 뚫린 집의 공간으로 대변된다.

액터 뮤지션들은 “집 밖의 공간, 즉 바깥 세상에 존재하는 무언가”라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이야기가 진행될 때에는 집안의 공간으로 들어오지 않지만,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존재인 ‘비지터’가 비밀경찰 엔카베데의 모습으로 들어와 남자와 여자의 삶을 휘젓기 시작하고 마치 ‘악마’처럼 혹은 ‘심판자’처럼 모든 것을 뒤흔들기 시작할 때 집 안으로 침범한다.

사진23) 18미드나잇_공연사진(비지터 역 양지원)
뮤지컬 '미드나잇' 공연 장면. 고발된 반역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하는 일 말고 '서류작업'까지 해야하는 고단함을 토로하는 '비지터'(양지원)와 코러스와 음악을 연주하는 '액터 뮤지션들'./사진=모먼트메이커 

간부회의가 늦게 끝나 집에 일찍 올 수 없었다는 남자는 옆집에 불어 닥친 ‘불행’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집에도 그런 일이 생길까봐 두렵다는 여자에게 12시가 되면 모든 일이 해결되고 밝은 미래와 찬란한 새해가 열릴 것이라 약속한다.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여자에게 12시를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샴페인을 터뜨리자는 남편의 제안은 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얼마 전 자신의 집에 와 저녁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변호사 부부에게 닥친 끔찍한 ‘불행’을 이야기하며 회상에 잠긴다.

시를 읊고 와인을 마시며 “위대한 각하의 건강을 위하여!”라고 건배를 외치던 변호사 부부는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테러 조직에 관여한 반역자로 고발되어 고문을 당하고 총살에 처해졌다.

고상한 척, 잘난 척 하는 위선자였을 뿐 “불 피우지 않은 곳에서 연기가 나는 법은 없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묻는다. “당신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당신 친구였잖아. 그 사람이 잘못한 거라고? 머리가 커지니까 조직에서 반역자로 몬 거잖아!”

남편이 답한다. “사람은 어차피 죽어. 우리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조의를 표할 뿐, 남아있는 사람들은 다시 살아가야 하는 거야! ... 우리가 뭘 할 수 있었겠어? 이 거대하고 악한 세상에 우리는 그저 힘없는 두 사람일 뿐이라고!”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노심초사하는 아내, 두 사람의 가정은 험악하고 공포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사랑’으로 안식을 찾은 듯 작은 평화와 행복을 품는다.

하루 종일 남편을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 누군가 칼을 들고 튀어나오기라도 할까봐” 불안해하는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남자는 국가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일종의 면책권, 즉 ‘프로텍션’을 받았음을 밝힌다.

뮤지컬 '미드나잇' 공연 장면. 자신들보다 더 나쁜 영혼들도 있는데 왜 굳이 자신들을 찾아와 괴롭히냐는 '맨'에게 '비지터'는 "왜 내가 여기에만 있을거라 생각하지?"라고 되묻는다. 비지터는 자신은 '먼지처럼 공기처럼 햇빛 속에 모든 곳에 있음'을 외친다./사진=모먼트메이커 

“방탄복을 입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남편은 암시장에서 구해 온 아내가 좋아하는 ‘재즈 음반’을 건네며 춤을 청한다.

“한 곡 추실까요?” 하지만 행복한 순간은 엔카베데의 요란한 외침과 문 두드리는 소리로 인해 ‘공포’로 변하고, 옆집 남자를 호송하던 동료들이 지나치게 흥분한 탓에 자신을 두고 돌아갔다는 엔카베데(비지터)는 전화를 빌려 쓰겠다며 무례하게 집 안으로 들어선다.

아주 작은 노크 소리에도 민첩하게 반응하는 것이 충성심 가득한 엔카베데의 행동임을 강조하는 남자는 “최근에 숙청으로 인해 너무 많은 이름들이 삭제되는 바람에 전화번호부 출판이 중단되었다죠?”라는 끔찍한 말을 농담으로 던진다.

남자가 전화를 거는 동안 드레스 자락 뒤로 레코드판을 숨기고 있던 아내에게서 음반을 건네받아 책들 틈에 숨기던 남자는 갑자기 ‘모든 시간이 멈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응접실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 누군가가 반역자로 고발한 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하는 엔카베데의 노력에 고마움을 표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비지터’의 넘버는 섬뜩한 유머로 가득하다.

음악은 경쾌할지 모르지만 내용이 끔찍한 넘버는 그 괴리로 인해 음산함을 느끼도록 만든다.

“자정까지 한 놈! 할당량을 다 못 채웠죠!”라고 외치는 비지터는 여자의 손을 잡고 춤을 추다 급기야 키스를 하기에 이른다. 과로로 인한 실수였다며 사과하는 ‘비지터’에게 남편은 당장 떠나줄 것을 요구하지만 그냥 갈 수 없다며 위스키를 한 잔 하자는 ‘비지터’는 점점 더 불길하고 위협적으로 변해간다.

그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남편의 ‘프로텍션’에 대해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부부가 좀 전에 집안에서 무슨 행동을 하고 무슨 말을 나눴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고 있다.

뮤지컬 '미드나잇' 공연 장면./사진=모먼트메이커 

두려움에 떨며 도청장치를 찾는 남편과 겁에 질린 아내 앞에서 능청스러운 얼굴로 빵을 먹던 비지터는 아내가 모르는 남편의 비밀들을 하나씩 폭로하기 시작한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고발하고, 어차피 죽을 사람이기에 사실이 되었든 거짓이 되었든 괘념치 않고 당국이 원하는 대로 증언하며,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그 누구도 배신할 수 있는 세상에서 목숨을 부지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모든 사람들의 관계를 분열시키고 모두 흩어져 하나로 맞설 수 없도록 이간질을 일삼으며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남몰래 비밀을 간직하도록 만드는 세상에서 사랑을 지키는 일이 가능할까? 자기 자식조차 잡아먹는 ‘권력’이라는 끔찍한 괴물 앞에서 죽음이라는 시간을 유예하기 위해 인간은 어디까지 자신을 저버릴 수 있을까?

“누구나 악마죠. 때로는”이라 노래하는 ‘비지터’의 말처럼 인간의 가면을 찢고 보면 그 아래에 놓인 것은 “더럽고 끈적끈적한 죄악”뿐인 걸까?

뮤지컬 ‘미드나잇‘은 스탈린의 숙청 시대에 끝없이 계속되던 ‘공포’ 속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몰아야 했던 ‘무고하지만 무고하지 않은 사람들’의 타락한 영혼과 잃어버린 양심을 관객들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다.

'맨'이 스탈린 지도자에게 보낸 고발편지를 읽고 있는 '비지터'(고상호). '액터 뮤지션'들(신지국(왼쪽), 이나래(오른쪽))이 음악을 연주하며 편지를 함께 들여다 보고 있다.
뮤지컬 '미드나잇' 공연 장면. '맨'이 스탈린 지도자에게 보낸 고발편지를 읽고 있는 '비지터'(고상호). '액터 뮤지션'들(신지국(왼쪽), 이나래(오른쪽))이 음악을 연주하며 편지를 함께 들여다 보고 있다./사진=모먼트메이커 

관객들은 남편의 비밀들에 경멸을 보이고 혼란스러워 하던 아내 역시 여러 비밀들을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음을 알게 될 때, 위선과 허위로 가득 찬 인간과 직면한다.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과격한 폭력과 광기로 번져가는 그녀의 변화를 보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다.

냅맨(Knapman)은 프로그램북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끔찍한 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지 보게 될 것”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누구를 배신하고 무엇을 희생하는지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스(Wythe) 또한 “자기 자신과 사랑을 동시에 지켜내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던 그들이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라면 행복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뮤지컬 ‘미드나잇‘은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토피아’를 꿈꿨던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믿었던 신념과 이상에 배신당하고 ‘생존’ 외에는 추구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인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폭로한다.

‘비지터’가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다. 그는 부족한 ‘한 명’이라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부부를 이간질하고 갈라놓으려는 현실 속 엔카베데일 수도 있고, 남자와 여자의 영혼을 데려가기 위해 나타난 비현실 속 악마일 수도 있으며,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잠들어있던 고통스러운 양심의 흔적일 수도 있다. 그는 오직 ‘진실’과 ‘타당한 응징’을 부르짖는다.

드디어 멈춰졌던 시간이 다시 흐르고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질 때 관객들의 마음이 무겁고 아픈 것은 ‘비지터’의 마지막 말이 비수처럼 꽂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서워? 뭐가 무서워? 꼬챙이를 든 악마? 불구덩이? 네가 갈 곳은 그런 곳이 아니야. 사실 여기보다 그렇게 나쁘지도 않을 걸? 거긴 웃음도 있고 음악도 있고 춤을 출 수도 있거든. 하지만 넌 지옥같이 어마어마한 시간을 보내게 될 거야!”

암흑 속에서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는 것은 죽음이라는 끝일까? 사후일까? 나의 ‘생존’을 위해 다른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던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이었을까? 죄악이었을까?

‘사랑’을 지키기 위해, 나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 것일까? 선과 악, 빛과 어둠 그 경계에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우리는 무엇에 기대어야 할까? 2월 10일까지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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