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와 고통, 자유와 '사랑'에 관한 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소외와 고통, 자유와 '사랑'에 관한 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 주하영
  • 승인 201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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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 풍경] 2018 한국어 버전 개막 10주년 전국투어 공연
사진제공=마스트 엔터테인먼트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장면. 공연에는 프랑스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거대한 종'이 등장한다. 무용수들이 100kg이 넘는 거대한 종에 매달려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공연 속 '콰지모도'는 매일 대성당의 종을 울리지만 '에스메랄다'가 체포되어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자 3일이 되도록 종을 울리지 않는다./사진제공=마스트 엔터테인먼트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세기말 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한 세기가 지나고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집단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게 되는 이상 심리 현상... 불안하고 우울한 정서가 지배적이 되는 이 시기에는 종말론과 사이비 종교가 속출한다.

100년이라는 시간을 두고도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런 몸살을 앓는데 하물며 새로운 1000년을 앞둔 시기라면 그 불안감이 어떠할까? 실제로 2000년의 시작을 앞두고 있던 1999년, 전 세계는 새로운 천년의 문턱에서 지구 종말에 관한 초조한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1994년 영화 ‘노스트라다무스‘가 프랑스에서 개봉된 데 이어 1998년 영화 ‘딥 임팩트‘와 ‘아마겟돈‘이 미국의 할리우드를 강타하기까지 세상 사람들은 16세기 프랑스의 점성술사였던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7월 ‘종말론’이 실제로 실현될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불안이 증폭되던 1998년 9월 16일, 파리에 위치한 팔레 데 콩그레 극장에서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초연되었다. 3700석에 달하는 객석을 채우고 120회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관객들의 열띤 성원으로 인해 예정보다 한 달 정도 연장한 1999년 1월 31일까지 공연을 이어나갔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은 OST 앨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이미 개막 1년 전에 발매되었던 앨범이 프랑스 차트에서 17주간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종지기인 꼽추 콰지모도와 노트르담 대성당 주교인 프롤로, 근위대장 페뷔스가 각기 에스메랄다의 ‘아름다움’을 놓고 자신의 관점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Belle’는 44주간 부동의 1위를 지키는 놀라움을 선사했다.

프랑스 관객들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어떤 점에 열광했던 것일까? 또한 20년이 지나 2018년에 이르는 지금까지 전 세계의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여전히 그 힘을 잃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제공=마스트 엔터테인먼트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장면. 아크로바틱과 현대 무용이 접목된 댄서들의 화려한 안무가 많은 부분을 채운다. /사진제공=마스트 엔터테인먼트

지난 11월 2일~4일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한국어 버전 10주년 기념 공연이 있었다. 1998년 초연 이후 전 세계 20개국에서 4000회가 넘는 공연을 하며 1200만의 누적 관객을 돌파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2008년 1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된 ‘한국어 공연’의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6월~8월 서울공연을 마친 후 현재 전국투어 중이다.

1482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꼽추 콰지모도와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 프롤로 주교, 근위대장 페뷔스의 비극적인 “욕망과 사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소설이 발표되었던 1831년은 ‘프랑스 대혁명’(1789) 이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1792-1794)와 1830년의 ‘7월 혁명’, 즉 출판의 자유를 금하고 하원 해산, 선거권 제한을 발표한 샤를 10세에 반발해 민중들이 바리케이드를 쳤던 ‘3일간의 혁명’이 막 지난 상당히 어수선한 시기였다.

자유와 평등, 박애를 중요시했던 당시 29살의 위고는 어느 날 노트르담 대성당을 살펴보다 한쪽 구석에 손으로 새겨 넣은 듯 보이는 ‘ANArKH(아나키아)’란 단어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어로 ‘숙명’이란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위고로 하여금 고통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도대체 어떤 고통이 한 영혼으로 하여금 이런 글자를 새기도록 만들었을까?’에 대한 궁금증과 장구한 세월 속에 닳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글씨만 남긴 ‘삶의 스러짐’에 대한 사유는 모든 ‘고통의 역사’가 시간의 거대함 속에 사라져 버리는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임무는 사회의 불운한 구성원들을 옹호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위고는 파리라는 도시와 프랑스라는 국가의 상징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을 프랑스인들의 마음속에 굳히는 역할을 한다.

당시 ‘노트르담 대성당’은 대혁명 이후로 계속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붕괴된 채 점점 더 흉물스럽게 허물어져 가고 있었고, 이는 마치 성직자와 귀족들로 구성된 사회의 특권층에 맞서 불합리한 구체제를 개혁하기 위해 일어섰던 모든 시민들의 바람이 쇠퇴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상징물’처럼 느껴졌다.

1482년, 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었던 중세의 시대가 가고 인간 중심의 사고와 자유로운 문화, 예술, 학문이 번성하기 시작했던 르네상스 시대로의 격동기에 있던 파리는 위고가 살아가고 있던 1830년대의 프랑스를 반영하기에 아주 적절한 시기였다.

어쩌면 1990년대에 “가장 프랑스적이면서도 세계 어디서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뤽 플라몽동이 ‘콰지모도’라는 이름에 마음을 빼앗긴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세기가 지나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혼란스러운 마음과 불안, 사회의 변화는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옮겨가는 중요한 변곡점을 다루던 소설의 시대적 배경과 궤를 같이하고 있었고, 중세의 위상을 상징하는 고딕양식의 대성당 위에 앉아있는 낙숫물받이 장식 ‘가고일’을 닮은 콰지모도의 외모는 그 자체로 지나간 시대의 ‘모순’을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신을 섬기는 가장 성스러운 곳인 성당 위에 앉아 ‘사악한 악령’들을 쫓거나 교회를 찾는 신도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었다는 ‘가고일 석상’은 ‘악마’라는 이름으로 매도되었던 이교의 신들을 모델로 한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좋았다고 한다.

사진제공=마스트 엔터테인먼트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장면.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로서 늘 ‘가고일 석상’ 사이에 앉아 파리 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꼽추 콰지모도는 귀머거리, 애꾸눈, 절름발이의 흉물스러운 모습이다./사진제공=마스트 엔터테인먼트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로서 늘 ‘가고일 석상’ 사이에 앉아 파리 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꼽추 콰지모도는 귀머거리, 애꾸눈, 절름발이의 흉물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외모와 다르게 그의 내면은 한없이 맑고 순수하며 진정한 사랑과 희생을 품을 줄 아는 따스함을 담고 있다.

오히려 그 추악함에 고개를 젓도록 만드는 것은 신의 사랑을 실천해야 할 위치에 있는 대성당의 주교 ‘프롤로’와 거리의 질서를 바로잡고 시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 근위대장 ‘페뷔스’이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하늘 끝에 닿고 싶은 인간들이 유리와 돌에 자신들의 역사”를 새기던 ‘대성당의 시대’가 가고 이교도의 무리들이 성 문으로 돌진하는 ‘새로운 천년’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음유시인 그랭구와르의 서곡으로 시작된다.

시간은 흐르고 결국 지나간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이루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조각상과 시와 같은 ‘예술’로 남겨지게 될 것임을 강조하는 그랭구와르는 “이 세상의 끝 또한 2000년에 예정되어 있음”을 노래한다.

파리 성문 밖을 떠돌며 불행하고 타락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은 프롤로 주교에게 은신처를 내어 줄 것을 요구하고, 근위대장 페뷔스는 부랑자들을 파리에서 추방할 것을 명령한다. ‘보헤미안’을 노래하는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에게 시선을 빼앗긴 페뷔스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귀족 출신의 플뢰르 드 리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국적인 매력의 에스메랄다를 향한 뜨거운 욕망에 사로잡힌다.

사진제공=마스트 엔터테인먼트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장면. 44주간 1위를 차지했던 'Bell'(아름답다) 장면. 콰지모도(왼쪽)와 프롤로(가운데), 페뷔스(오른쪽)는 각자 에스메랄다의 '아름다움'을 놓고 자신의 관점에서 '사랑'을 노래한다./사진제공=마스트 엔터테인먼트

대중들의 길거리 축제인 ‘광인들의 축제’에서 어릿광대들에 의해 ‘미치광이 교황’으로 선출된 콰지모도는 마을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세상에서 가장 추한 모습”으로 태어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에스메랄다를 향한 사랑을 노래한다.

하지만 “이방인이자 마녀, 창녀이자 길거리의 짐승”과 다름없는 그녀를 훔쳐보는 것조차 ‘죄악’이라 말하는 프롤로 주교는 ‘교화’를 명목으로 에스메랄다를 ‘납치’해 탑에 가둘 것을 명령한다.

성당 앞에 버려진 자신을 거두어준 프롤로 주교를 ‘은인’으로 여기고 복종하던 콰지모도는 그를 거부하지 못한 채 에스메랄다를 미행하기 시작하지만 곧 페뷔스에게 들켜 ‘바퀴형틀’에 묶여 태형을 당하게 된다. 한편, 자신을 구해준 페뷔스에게 반한 에스메랄다는 다음날 밤 ‘카바레’에서 그와 만날 것을 약속한다.

위고의 소설을 뮤지컬로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것으로 보이는 인물은 이방인들의 우두머리인 ‘클로팽’이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는 클로팽이 단순히 부랑자들을 이끄는 ‘두목’이 아닌 버려진 자들을 이끄는 ‘주동자’이자 에스메랄다의 ‘보호자’로 등장한다.

열여덟도 되지 않은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에스메랄다가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 것을 우려한 클로팽은 남자들의 음흉한 속내에 대해 충고한다. 그는 프롤로 주교가 자신의 끓어오르는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무능력을 오히려 에스메랄다의 ‘유혹’의 탓으로 돌리고 그녀를 “원죄의 씨앗이자 악마의 화신”으로 규정하여 감옥에 가두었을 때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그녀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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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들의 우두머리 '클로팽'과 부랑자들. 거처할 곳 없이 떠도는 이방인들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그들에게 문을 열고 '은신처'를 내어줄 것을 요구한다./사진=마스트 엔터테인먼트

또한, “자유와 해방, 평등과 수용, 평화와 안식”과 같은 것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세상을 향해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권리들임을 강조한다.

그는 불법체류자들을 모두 체포하고 진압할 것을 명령한 페뷔스로 인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이방인들을 잊지 말 것”을 에스메랄다에게 부탁함으로써 오직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던 에스메랄다를 ‘역사’를 바꾸기 위해, 자신과 같은 이방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나설 수 있는 여인으로 변모시킨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극본 및 가사를 쓴 플라몽동은 욕망을 이기지 못해 갈등하는 인간의 고통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종교와 국가의 권위와 체제를 상징하는 프롤로와 페뷔스가 힘없는 한 개인인 에스메랄다를 어떻게 속박하고 능멸하며 이용하고 버릴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사회 비판적 기능’을 부여한다.

페뷔스로 대변되는 권위가 보이는 호의에 무지와 순진함으로 다가서지만 쉽게 버림받고, 프롤로가 대변하는 종교의 거짓된 허울과 음모에 속아 결국 죽음의 비극으로 내몰리는 에스메랄다는 사실상 힘없는 이방인, 소외된 하층민의 ‘방치된 삶’을 대변한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소비하려던 에스메랄다를 얻을 수 없게 되자 곧바로 다른 선택지인 자신의 약혼녀에게로 되돌아가 외면하는 페뷔스나 자신의 음흉한 속내를 숨긴 채 에스메랄다를 함정으로 몰아넣고 페뷔스를 칼로 찌른 범인으로 몰아 교수형에 처해지도록 만드는 프롤로는 ‘가면’을 뒤집어 쓴 기득권 세력의 부조리와 부도덕을 고발한다.

결국 그녀를 구하고 탈옥에 성공시키는 것은 클로팽을 따르는 분노한 이방인들이며,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핍박받던 꼽추 콰지모도이다.

갈 곳 없는 에스메랄다에게 종탑을 내어준 콰지모도는 다른 사람을 향한 애정으로 가득한 채 자신이 속고 이용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잠들어있는 에스메랄다를 보며 신을 원망한다.

그는 묻는다. “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오만한 자들을 위한 것인가요? 신은 정말로 오만하고 탐욕스러운 자들을 더 사랑하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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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장면. 광인들의 축제에서 '미치광이 교황'으로 선출된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 배경에 숨어서 에스메랄다를 지켜보는 프롤로 주교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사진제공=마스트 엔터테인먼트

콰지모도의 질문은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늘을 향해 묻게 되는 ‘정의’와 ‘존재’에 관한 질문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의 마음에 와 닿는다.

도저히 에스메랄다를 구원할 수 없는 자신의 미약함에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던 콰지모도는 프롤로 주교를 향해 “당신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가슴이 있나요?”라고 묻고 프롤로는 그녀를 교수대에 묶이도록 만든 것이 다름 아닌 자신임을 고백한다.

주교의 위선에 분노한 콰지모도는 프롤로를 성당 계단에서 밀어 버린다. 노예처럼 복종하던 콰지모도는 마침내 주인에게 매여 있던 사슬을 끊어내고 자신의 ‘자유의지’를 되찾았지만 그의 유일한 사랑 에스메랄다는 이미 차디찬 주검으로 변해버린 상태이다.

그는 노래한다. “나를 위해 춤을 춰 봐요. 나는 내 죽음보다도 더 그걸 원해요. 나도 그대와 함께 떠나게 해줘요. 그대와 함께라면 죽음도 죽음이 아니니까요!”

관객들이 콰지모도의 간절한 외침에 전율하는 것은 에스메랄다의 사랑과 콰지모도의 사랑이 결국 같은 ‘속성’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숨 쉴 수 있는 공기와 자유, 사랑”이 가장 소중했던 에스메랄다와 콰지모도의 순수한 사랑이 억압과 권위를 대변하는 두 주체에 의해 스러질 수밖에 없음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을 일깨우도록 만든다.

콰지모도의 절규 뒤로 로프에 매달린 남녀가 춤을 추는 아름다운 장면은 그것이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는 ‘환상’임을 인지하기에 그 슬픔을 배가한다.

음유시인 그랭구와르의 노래처럼 “작은 것은 큰 것을 대신하고, 지나간 자리에 다시 둥지를 틀기 마련”이다. 각자 사랑을 갈구하며 고통에 절규했던 그들의 감정은 시와 노래, 춤이라는 예술을 통해 현대의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더 이상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 가난과 국경이 없는 세상, 굴욕이 없는 세상을 원했던 클로팽과 이방인들의 소망은 15세기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도, 19세기의 혼란한 시기를 거치던 사람들에게도, 21세기를 맞이하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들 모두가 바랐던 것은 ‘수용’이고, ‘자유’이며, ‘평등’이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소외와 고통, 수용과 자유, 그리고 ‘사랑’에 관한 시이다. 9일~11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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