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구원하는 '포용'의 사랑...연극 '자기 앞의 생'
삶을 구원하는 '포용'의 사랑...연극 '자기 앞의 생'
  • 주하영
  • 승인 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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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프랑스의 작가 로맹 가리(필명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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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자기 앞의 생' 콘셉트 컷. 왼쪽부터 로자 역(이수미), 카츠 의사 역(정원조), 모모 역(오정택), 로자 역(양희경)/사진=국립극단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평생 한 번 받기도 힘든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작가 ‘로맹 가리’(Romain Gary)는 자살하기 몇 달 전 라디오-캐나다에 출연하여 ‘말과 고백‘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내가 삶을 산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이 우리를 갖고 소유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살았다는 느낌이 들면 우리는 마치 스스로 삶을 선택하기라도 한 것처럼, 자기 삶인 양 기억하곤 하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살면서 선택권을 거의 갖지 못했습니다. 지극히 일반적이고 사적이며 일상적인 의미의 역사가 나를 이끌었고, 어떤 면에서는 나를 속여 넘겼지요. ... 내가 삶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삶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분명 우리는 삶에 조종당합니다.”

매 순간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뒤돌아보면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나 어떤 흐름에 이끌려 어디론가 가게 되었다고 느껴지는 삶, 내가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기라도 하듯 주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되어지는 삶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관계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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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자기 앞의 생‘ 작가 ‘로맹 가리’/Photo J. Robert ⓒ Editions Gallimard, 국립극단

사회는 관계로 형성되고, 관계는 질서를 낳으며, 질서는 삶을 규제하고 억압한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세상은 때로 특정 인종, 계층, 종교의 사람들에게 혹독하며, 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삶을 핍박한다.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이유로, 타 지역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고통을 겪는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 아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사회의 뒷골목에 정착할 수밖에 없게 된 이들에게 누군가의 친절, 서로를 향한 연민, 사랑이 없다면 삶은 그 자체로 지옥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할 대상’이 없이는, 혹은 자신을 ‘사랑해 줄 누군가’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에 사랑은 ‘구원’과 같다.

로맹 가리는 소설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 모모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 사람은 사랑해야 한다.”

연극 '자기 앞의 생' 공연장면. 유태인 '로자 아줌마'(양희경)와 아랍인 소년 '모모'(오정택).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충만하다./사진=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는 1956년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로맹 가리가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해 두 번째 공쿠르 상을 수상한 소설 ‘자기 앞의 생‘의 연극 공연이 한창이다.

1980년 로맹 가리 사후에야 비로소 그가 ‘에밀 아자르’임을 알게 된 프랑스 문학계의 사건은 유명하다.

열 살 꼬마가 주인공인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과 60대 남자가 주인공인 로맹 가리의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가 베스트셀러로 서점에 나란히 진열되었음에도 두 권의 책이 모두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몰랐다는 사실은 로맹 가리의 천재성을 입증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편견에 사로잡힌 프랑스 비평계의 치부를 드러낸다.

2007년 프랑스 극작가인 자비에 제이야르(Xavier Jaillard)가 각색한 연극 ‘자기 앞의 생‘은 파리에서만 18개월 동안 공연을 지속하였고, 2008년 몰리에르 최우수 작품상, 각색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캐나다를 비롯한 해외 여러 나라에서 공연된 작품이다.

제이야르는 프로그램북 인터뷰에서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을 각색하기로 마음먹은 이유와 관련하여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고 많은 독자들이 읽은 작품인 ‘자기 앞의 생‘이 단순히 프랑스나 파리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세상 어떤 사회에서도 찾을 수 있는 하나의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극 '자기 앞의 생' 공연장면. '로자 아줌마'(양희경)가 넋을 놓고 있는 '모모'(오정택)에게 무슨 일인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고 있다. /사진=국립극단

그는 유태인 아줌마 로자와 아랍인 아이 모모를 통해 드러나는 ‘엄마-아들의 관계’가 “실제 사회에서는 출신, 인종, 피부색,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되지만, 로자와 모모는 다름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초월”하고 있기 때문에 그 주제를 부각시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소설이 연극으로 각색될 때 가장 크게 변화되는 부분은 수용자가 ‘독자’에서 ‘관객’으로 달라진다는 점이다.

특히 열 살 남자아이의 언어와 사고의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는 ‘자기 앞의 생‘과 같은 소설의 경우, 독자들은 이미 ‘모모’라 불리는 아랍 소년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독자가 아닌 ‘관객’이란 위치에 놓이게 될 때 오히려 ‘낯선 인물’을 만나게 될 위험이 존재한다.

연극은 아랍인 꼬마 모모가 유태인 아줌마 ‘로자’에게 처음 맡겨진 3살의 기억부터 10살로 알고 있는 현재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꽤 긴 시간의 에피소드와 파리의 빈민가에 살고 있는 여러 인종의 사람들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

연극 '자기 앞의 생' 공연장면. '로자 아줌마'(양희경), '모모'(오정택), 모모의 아버지 '유세프 카디르'(김한)/사진=국립극단

게다가 독자들이 인식하는 ‘로자 아줌마’는 모모의 시선에서 묘사되고 그려진 인물이기 때문에 연극으로 옮겨질 경우 독자들의 상상과는 다른 인물로 펼쳐질 가능성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영국 언론 ‘가디언‘의 평론가 마이클 빌링턴은 어떤 소설은 무대 위에서 공연될 때 그 질감을 더 잘 살릴 수 있지만 위대한 소설일 경우 그런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작가가 묘사한 인물을 독자가 마음의 눈으로 상상하고 배경을 구축하는 소설은 근본적으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극이 도리어 잘 알던 사람을 낯설게 그린 이상한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불러올 수 있다.

제이야르는 이러한 각색의 ‘어려움’을 인정하며, 관객들이 연극을 관람할 때 1975년이라는 원작이 발표된 시기가 2차 세계대전의 상처와 아픔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던 때임을 기억해 줄 것을 당부한다. 이는 제이야르가 인종과 종교의 차이를 ‘사랑’으로 극복한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 '자기 앞의 생' 공연장면. 11년 만에 갑자기 아들 '모하메드'를 보게 해달라고 찾아온 모모의 아버지 '유세프 카디르'(김한). '로자 아줌마'(양희경)는 자신이 모모를 '유대교 관습을 익힌 유태인'으로 키웠다고 '거짓말'을 하고 카디르는 오열하며 자신의 아들을 "처음 맡긴 그 상태 그대로"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한다. /사진=국립극단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 온 유태인 로자 아줌마가 무슬림으로 키워줄 것을 부탁받은 아랍인 아이를 키우며 베푸는 사랑과 그런 아줌마를 통해 편견 없는 사랑을 배우고 베푸는 모모의 모습을 통해 인종과 종교라는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허망하고 의미 없는 것인가를 전달하고자 한다.

이 때문에 그는 원작에서 종교와 인종, 유대교의 관습과 이슬람교의 관습, 여호와와 알라를 설명하는 많은 대사들을 선택한다.

하지만 인종과 종교의 차이가 현실로 크게 다가오지 않는 한국 공연의 경우 제이야르의 이러한 의도는 오히려 “세상에 의지할 곳 하나 없이 홀로 버려진” 나이든 아줌마와 어린 꼬마의 ‘떼어낼 수 없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부각시키게 된 듯 보인다.

연출을 맡은 박혜선은 ‘연출가 인터뷰‘에서 “로자의 캐릭터 자체보다 로자와 모모의 관계성”에 주목했다면서, “11년 동안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 서로 쌓아온 애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극은 확실히 원작에 비해 ‘로자 아줌마’라는 인물이 부각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극은 모모의 내면적 고충과 삶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로자 아줌마의 고통과 상처로 얼룩진 삶,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 빠른 속도로 죽음을 향해가는 아줌마의 두려움과 혼자 남겨질 외로운 소년의 공포를 연결하며 두 사람의 ‘관계성’에 집중한다.

연극 '자기 앞의 생' 공연장면. '모모'(오정택)와 '로자 아줌마'(양희경)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걱정'에 마음이 아프다./사진=국립극단 

이 때문에 극에서는 원작에 등장하는 모모와 로자 아줌마 주변의 많은 빈민가의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극은 이미 로자 아줌마가 너무 나이가 들고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 낡고 무너져가는 아파트 건물 7층의 계단을 오르는 일이 힘들어진 후반부에서 시작된다.

심장이 좋지 않은 로자 아줌마는 이미 68세가 되었고 일곱 명이나 되었던 아이들은 모두 다른 보모에게 보내져 모모 외에 남겨진 아이는 없다.

모모 앞으로 매달 보내지던 300프랑의 우편환은 이미 끊겨 아줌마가 모아둔 돈을 쪼개어 생활비로 쓰고 있는 상황이지만 극에서는 모모가 자신을 돌보는 대가로 아줌마가 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았던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다.

게다가 유태인 의사 ‘카츠 선생님’만 방문할 뿐 로자 아줌마가 아프기 시작한 이후로 방문하던 이웃들과 가장 많은 힘이 되었던 여장남자 ‘롤라 아줌마’, 그리고 모모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던 하밀 할아버지와 같은 인물들은 두 사람의 대화 속에만 존재할 뿐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연극 '자기 앞의 생' 공연장면. '모모'(오정택)와 '로자 아줌마'(양희경)./사진=국립극단 

실제 무대 위 공간에서 관객들이 보게 되는 것은 로자 아줌마와 모모 단 둘 뿐이라는 사실은 세상에 기댈 곳이 없는 그들의 고독함과 외로움, 두 사람의 친밀함과 끈끈함을 더 잘 느끼도록 만든다.

“궁둥이로 벌어먹고 사는” 창녀들이 법적으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이들을 사회보장국에 빼앗겨 빈민구제소로 끌려가지 않도록 맡아 돌봐주는 일을 해 온 로자 아줌마는 자신 역시 젊은 시절에 ‘창녀’로 일했음을 떠올리며 이제는 너무 늙고 추해서 아이들을 맡기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한다.

사회복지사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가짜 증명서를 만들거나 맡겨놓고 데려가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입양가족을 찾아주는 등 자신이 속한 사회 내에서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온 로자 아줌마는 모모의 부모에 관해서만큼은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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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자기 앞의 생' 공연장면. '암사자'에 관한 자신의 공상을 이야기하는 '모모'(오정택). '로자 아줌마'(양희경)는 모모가 혹시 '유전병'에 걸려 미쳐버린 게 아닌가 의심한다./사진=국립극단 

모모의 아버지에 대한 소식은 듣지 못했고 모모의 엄마는 심장이 아파서 돌아가셨다고 둘러대는 로자 아줌마를 향해 모모는 말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어. 난 엄마가 하나 있잖아. 좀 그렇긴 하지만.”

서로를 향해 따뜻하게 미소 짓는 아줌마와 모모는 사랑으로 충만하다.

모모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로자 아줌마가 실제 14살인 모모의 나이를 10살로 속인 탓에 “나이에 비해 너무 어리다”거나 “나이에 비해 너무 조숙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거부당하는 모모는 불만을 표출한다.

‘모하메드’라는 이름과 ‘무슬림으로 키워줄 것’이라는 메모와 함께 감자 3kg, 버터 반 파운드, 생선과 2000프랑만 있었다는 아줌마에게 “부모님 사랑을 못 받으니 개라도 키워야 겠다”고 말하는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가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고 했다고 덧붙인다.

절대 안 된다는 로자 아줌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애견 숍에서 훔쳐온 갈색 푸들 강아지를 키우게 된 모모는 사랑하는 개가 좀 더 나은 “새로운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에 부유해 보이는 아줌마에게 개를 팔아버린다.

극은 ‘사랑’이 때로는 소유보다 상대의 행복을 위해 나의 기쁨을 희생하고 아픔을 무릅쓰는 일이라는 것을 어린 나이에 깨달아버린 ‘감수성’ 풍부한 모모의 사건에 “늙고 병든 아줌마를 힘들게 할까봐 너무 걱정이 되었다”는 또 다른 이유를 추가한다.

[국립극단]자기 앞의 생_공연사진_04_좌측부터 카츠 의사役(정원조), 로자役(양희경), 모모役(오정택)
연극 '자기 앞의 생' 공연장면. '카츠 선생님'(정원조)와 '로자 아줌마'(양희경), '모모'(오정택)/사진=국립극단 

하지만 로자 아줌마는 그렇게 예뻐하던 개를 팔아버린 것도 모자라 500프랑이란 큰돈을 하수구에 버렸다는 모모가 혹시 ‘유전병’에 걸려 미쳐버린 것이 아닌지 의심하며 카츠 선생님을 불러 진찰을 요구한다.

치료가 필요한 건 모모가 아니라 요즘 들어 부쩍 신경이 예민해진 로자 아줌마임을 지적한 카츠 선생님은 아줌마를 위해 진정제를 처방한다.

연극 ‘자기 앞의 생‘은 원작에서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많은 문장들을 ‘대사’로 바꾸는 과정에서 모모의 삶에 발생했던 여러 에피소드들을 다른 순서로 배열한다.

대다수의 사건들과 모모의 사적인 생각들이 로자 아줌마와 모모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전달되는 연극의 구조는 원작에서보다 로자 아줌마의 비중을 훨씬 강조하게 된다.

로자 아줌마의 삶은 모모의 생각에 의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 시절을 회상하는 아줌마의 회한 섞인 목소리와 아픔을 눌러 담은 슬픈 눈동자의 배우에 의해 구체화된다.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혼비백산하며 자신을 잡으러 온 독일군이거나 아이들을 데려가려고 온 사회복지사 일까봐 숨을 곳을 찾아 전전긍긍하는 아줌마를 보며 “나쁜 놈들! 내가 그 놈들을 납작하게 부셔버릴 거야!”라고 말하는 모모는 사실상 아줌마의 아픈 과거에 대해 모두 알고 있다.

연극 '자기 앞의 생' 공연장면. 과거 자신이 젊었을 때 몸을 팔던 '창녀' 시절의 기억으로 되돌아가는 '로자 아줌마'(양희경). /사진=국립극단

폴란드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건너와 젊은 시절 창녀로 일하게 된 파리에서 사랑에 빠진 남자가 알제리와 모로코, 외인부대에서 일하면서 벌어온 그녀의 돈만 몽땅 빼앗고 프랑스 경찰에 유태인이라고 고발한 탓에 아우슈비츠로 끌려가게 되었다는 사실은 아줌마의 기억 속에 자리한 가장 큰 상처이며 고통이다.

이제는 죽음을 향해 추하게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렵다고 말하는 아줌마를 향해 “늙는 거 두려운 거 아냐. ... 왜 그렇게 죽는 것만 생각하지? 세상에 다른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하면 되지!”라고 발끈하는 모모를 바라보며 아줌마가 말한다.

“난 늘 두려워. 그런데 뭐가 두려운지 잘 모르겠어. ... 살고 싶어 하는 것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도 일부러 그러는 건 아냐. 그게 사는 거야. 두려워하는데 꼭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란다.”

로자 아줌마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퇴행성 치매와 며칠씩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않는 일이 반복되기 시작한다.

연극 '자기 앞의 생' 공연장면. 갑자기 혼비백산해서 지하로 뛰쳐 내려가는 '로자 아줌마'(양희경)를 몰래 따라 내려온 '모모'(오정택)./사진=국립극단 

아줌마의 기억이 불안정해질수록 가장 공포스러웠던 시절과 자신이 몸을 팔던 젊었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해프닝이 발생하고, 악몽을 꾼 날이면 아줌마는 자신만의 비밀장소인 지하 은신처로 뛰어 내려간다.

자신을 뒤따라온 모모를 발견한 아줌마는 “네가 내 은신처를 발견한 게 나쁘지만은 않구나. 계단을 올라갈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라고 말한다.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과거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아줌마가 안타까운 모모는 “모든 인종을 가리지 않고 다 돌봐주고 각자의 종교와 처지에 맞게 ‘종합교육’을 한 아줌마는 아주 훌륭한 여자”라고 칭찬한다.

모모에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로자 아줌마가 답한다.

“기분이 너무 좋아. 행복해서 죽을 뻔 했네! 이제 우리 둘 사이에 비밀 같은 건 없는 거다! 행복은 있을 때 잡아야 하는 거야!”

연극 '자기 앞의 생' 공연장면. 악몽을 꾼 날이면 지하 은신처로 도망쳐 내려오는 '로자 아줌마'(양희경)를 따라 내려온 '모모'(오정택)는 아줌마는 '아주 훌륭한 여자'라고 칭찬한다. /사진=국립극단

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다. 모모는 의식을 잃어가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아줌마가 신선한 바람을 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아줌마는 홀로 남겨질 모모의 미래를 걱정하며 많은 약속을 받아낸다.

혹시나 창녀들의 꼬임에 넘어가 포주가 되지는 않을까, 못된 직업을 가지게 되어 인생을 망치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아줌마는 눈물로 호소한다.

“절대 포주가 되지 않겠다!”고 약속한 모모는 아줌마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최장수 식물인간”이 되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고 필요 이상으로 오래 사는 고문을 당하지 않도록 의사들에게 절대 보내지 않겠다는 약속 또한 한다.

모모는 “거꾸로 되돌릴 수 있는 영화 필름”처럼 사람의 시간도 되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삶의 수레바퀴는 결코 거꾸로 도는 법이 없다.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카츠 선생님의 말에 모모는 다급하게 외친다.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신성한 권리가 있어요! 아줌마를 낙태시켜서 구원해 주세요.”

하지만 ‘낙태’라는 말로 ‘안락사’를 요구하는 모모의 외침이 카츠 선생님에게 통할 리 없다.

연극 '자기 앞의 생' 공연장면. 로자 아줌마를 "최장기 식물인간"으로 만들 수 없는 '모모'(오정택)는 '카츠 선생님'(정원조)에게 "아줌마를 낙태시켜서 구원"해 줄 것을 요청한다./사진=국립극단 

이스라엘에서 아줌마의 가족들이 온다는 거짓말로 시간을 번 모모는 지하의 은신처로 아줌마를 데려간다. 두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둘 만의 공간에서 마지막 이별을 나눈다.

로자 아줌마와 모모의 지나간 “꽃 같은 날들”이 무대 뒤 화면에 흑백 영화의 필름처럼 거꾸로 흘러가며 펼쳐진다.

삶은 아름다웠고, 행복했고, 많은 기억을 남겼고, 사라졌다. 그리고 한 사람이 먼 길을 떠난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삶의 기억을 짊어진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 곁을 떠나지 못한 채 3주라는 시간을 지하 은신처에서 보내지만 자연의 법칙은 모모에게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모는 관객들을 향해 말한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이 없이는 살 수 없대요. 그 말이 맞아요.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어요. ... 누군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죠.”

림태주 시인은 ‘관계의 물리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관계의 우주에서 사귄다는 것은 다른 존재를 내 안에 받아들이는 일이고, 친하다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닮아가는 일이며,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다름에 스며드는 일이다.”

로자 아줌마와 모모의 우주에는 무슬림도 유대교도 아랍인도 유태인도 존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 안에 존재하며 ‘다름’을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연극 '자기 앞의 생' 공연장면. '모모'(오정택)는 자꾸만 정신을 잃는 '로자 아줌마'를 위해 신선한 공기를 쐴 수 있는 '외출'을 준비한다./사진=국립극단

로맹 가리는 ‘내 삶의 의미‘에서 “다정함, 연민, 사랑과 같은 여성적인 가치들”이야 말로 자신이 예술을 통해 지향하고자 하는 ‘목소리’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책들이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책”이며, 거의 항상 “여성성을 향한 사랑을 얘기하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모든 ‘다름’을 포용하고 연민하며 감싸 안을 수 있는 힘, 어머니가 자식에게 또 자식이 어머니에게 되돌려줄 수 있는 ‘사랑’이 세상을 지배할 수만 있었다면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했을 거라 말하는 로맹 가리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그저 훗날 사람들이 로맹 가리에 대해 말할 때 여성성의 가치가 아닌 다른 가치를 말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포용하는 삶, 연민하는 삶, 아무도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손을 내밀어주는 누군가가 있는 삶, 그런 삶으로 가득한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손 내미는 ‘사랑’이 아닐까? 3월 23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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