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 풍경] '고독함의 해방'을 통해 완성된 '희망'...뮤지컬 '호프'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 풍경] '고독함의 해방'을 통해 완성된 '희망'...뮤지컬 '호프'
  • 주하영
  • 승인 2019.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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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뮤지컬 'HOPE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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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HOPE(호프)' 포스터/사진=알앤디웍스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희망’을 무엇이라 정의하면 좋을까?

에밀리 디킨슨은 “희망은 결코 멈추지 않을 날개 달린 무언가”라고 말했고, 알렉산더 포프는 “희망은 인간의 가슴 속에 영원히 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희망’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호기심 가득한 판도라가 제우스가 모든 ‘악’을 가둬놓은 상자를 열어보는 바람에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탐욕과 증오, 불신, 슬픔, 분노, 절망과 같은 것들이 빠져나오고 난 뒤 유일하게 남겨진 ‘치유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희망’을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드는 힘, 혹은 거친 세상을 헤쳐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품어야 할 정신으로 인식한다.

존 에이토가 편찬한 ‘언어 기원 사전‘에 따르면, 북독일의 한 지역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희망’이라는 단어는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초기부터 존재했다.

‘hop(깡충 뛰다)’이란 단어에서 ‘hope(희망)’이 생겨났다는 주장에 의하면, 희망은 “절망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뛰어오르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또 다른 학자에 의하면, ‘희망’을 외치던 사람들이 언제나 ‘안식처(refuge)’ 혹은 ‘집(home)’을 갈망했다는 점에서 ‘희망’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절망의 분위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어떤 신뢰와 확신을 가지고 더 나아질 것이란 기대를 품은 채 뛰어드는 것, 즉 ‘빛’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인간의 ‘기대’ 혹은 ‘미래를 건설하는 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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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HOPE(호프)' 공연장면. 젊은 날의 '자신'과 마주한 78세 노인 '호프'./자료=알앤디웍스

삶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본 적 없는 사람들은 “붙들고 살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말의 무게를 알지 못한다. 잃어버린 것이 소유했던 물건이나 성취가 아니라 나 자신 혹은 내 삶의 일부가 될 때 사람들은 그것을 대체할 무언가가 없이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간절함’을 경험한다.

간절함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오히려 자신을 해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자 ‘위로’인 사람들에게 ‘붙들고 살 무언가’는 필연이다.

기나긴 삶의 터널 속에서 예외 없이 무언가를 잃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때 사람들은 그제야 깨닫는다. 자신을 붙들어 줄 무언가를, 나를 구원해 줄 누군가를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들이 절망과 암흑을 물리쳐 줄 ‘희망’을 품는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그러한 ‘희망’을 놓지 못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 그제야 사람들은 인식한다.

결코 실현될 수 없는 헛된 꿈이라 할지라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될 허망한 환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빛’으로 느껴진다면, 그것만이 그들을 살게 하고, 고통을 견디게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그제야 온 마음으로, 온 몸으로 경험한다.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는 30년 동안 고집스럽게 유명 작가의 ‘원고’를 지켜온 78세 노인의 희망과 집착에 관한 뮤지컬 ‘HOPE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삶‘의 공연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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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HOPE(호프)' 공연장면. 무대는 텔아비브 법정의 모습을 유지하며 '호프'의 기억이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조명이 어두워지며 다른 공간을 연출한다. 무대 디자이너 '오필영'은 프로그램북을 통해 "현재의 법원은 그 안에 담긴, 그녀가 간직해 온 지난 시간의 기억들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사진=알앤디웍스

2017년 아르코-한예종 뮤지컬창작아카데미의 작품 개발과정을 거쳐 2018년 5월,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뮤지컬 ‘HOPE‘는 지난 1월 아르코예술극장에서의 짧은 공연에 이어 두산아트센터에서 두 번째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처럼 충격을 줄 수 있어야 함을 주장했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미발표 원고 소송’이라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상상력을 발휘해 완성된 작품인 뮤지컬 ‘HOPE‘는 대본을 맡은 강남 작가가 2011년 우연히 보게 된 기사가 ‘출발점’이었다고 한다.

강남 작가는 프로그램북의 인터뷰에서 “까마귀 같은 행색에 고양이털이 수북이 날리는 코트를 입고 있는 여인”을 기사로 접하게 된 순간 “저 사람에게 원고는 무엇일까, 저 코트 안에 숨겨진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면서, ‘읽는 것은 곧 혁명’이라는 사사키 아타루의 말처럼, 주인공 호프가 “자신을 ‘읽게’ 됨으로써 자기 안의 ‘혁명’을 이루는 이야기가 되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뮤지컬 'HOPE(호프)' 공연장면./사진=알앤디웍스

인간 존재의 불안과 부조리를 파헤치는 날카로운 통찰력의 소유자, 꿈과 내면세계를 초현실적으로 기술하는 ‘비현실 세계’를 통해 오히려 ‘현실’을 더 강렬하게 인식하도록 만들었던 작가 카프카는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어로 교육받고 독일어로 글을 썼던 유대인이었다.

평생 체코에도, 이스라엘에도, 독일에도 완전히 속할 수 없었던 탓에 소외와 혼란을 겪었던 카프카는 “문학,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자신을 규정하면서도 원치 않는 보험공사 변호사로서의 삶을 이어가야 했던 무명의 작가였다.

자신처럼 고통 받는 누군가를 위해 끊임없이 밤을 새워 글을 쓰면서도 “자신의 절망감이 상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글을 태워달라고 유언했던 카프카의 실존적 고뇌는 마치 그의 ‘유작 원고’에게 그대로 적용되기라도 한 듯 2009년 이스라엘 국립도서관과 에바 호프(Eva Hoffe) 사이의 ‘소유권 분쟁’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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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HOPE(호프)' 공연장면. 지식인들을 검열하는 '나치'를 피해 자신 대신 요제프의 '원고'를 지켜줄 것을 부탁하는 '베르트'. 베르트를 사랑하는 '마리'에게 '원고'는 "꼭 데리러 오겠다"는 베르트의 약속이자 '희망'이다./사진=알앤디웍스

카프카의 친구였던 막스 브로트(Max Brod)는 자신의 ‘원고’를 모두 불태워달라는 카프카의 유언을 어기고 1924년 카프카의 사후부터 그의 유작들을 보관하게 된다.

1939년 나치의 침공을 피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브로트는 ‘독일어 문학’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작품들이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기회를 엿보며 작품들을 편집해 세상에 발표한다.

1968년 브로트는 카프카의 미발표 원고들을 자신의 비서였던 에스더 호프(Esther Hoffe)에게 맡기며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이나 해외의 도서관에 기증할 것”을 지시한다. 하지만 에스더는 2007년 사망할 당시까지 원고들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그녀의 사후 두 딸들에게 소유권이 이전된다.

브로트가 사망한지 5년째 되던 해인 1973년 이미 에스더를 상대로 ‘원고 소유권’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패소한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은 에스더가 사망한 2007년 또 다시 텔아비브 가정법원에 소장을 접수한다.

2008년 재개된 소송은 2016년 8월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이스라엘 국립도서관 측의 승소로 끝날 때까지 8년간 이어졌고, 긴 법정 싸움 속에 2012년 에스더의 큰 딸 루스(Ruth)가 사망하고 작은 딸 에바는 전 세계의 엄청난 비난에 홀로 맞서야 했다.

뮤지컬 'HOPE(호프)' 공연장면./사진=알앤디웍스

언론들이 보도한 수십 마리의 고양이를 혼자 기르며 은둔하는 “기이한 고양이 여인(an eccentric cat-lady)” 에바의 암울한 이미지는 ‘거짓’에 가까웠고, 그 어디에서도 한 때 취리히에서 음악학을 공부했으며 30년 동안 엘알 이스라엘 항공사에서 근무하다 퇴직 후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스피노자 거리의 작은 아파트로 옮겨간 성실한 독신 여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2018년 9월 벤자민 발린트가 쓴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이라는 책에 따르면, 에바에게 브로트는 ‘제2의 아버지’와 다름없는 인물이었으며 카프카의 미발표 원고를 둘러싼 소송은 독일어로 된 문학작품을 국유화하려는 독일과 유대인 출신인 카프카라는 작가를 독일에 빼앗길 수 없는 이스라엘의 거대한 이해관계와 힘이 얽혀있는 사건이었다.

사실 당시 호프 가족이 소유하고 있던 카프카의 원고들은 이미 90년이 넘는 시간 속에 훼손의 가능성이 높아 이스라엘과 스위스의 안전금고에 보관되어 있었고,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이 소장을 접수하기 전 마르바흐 독일문학 아카이브 측으로부터 학문적 연구를 위한 접촉이 있던 터였다.

이스라엘 도서관이 소유하게 될 경우 독일문학으로의 제대로 된 연구가 어렵고, 독일문학 아카이브로 이전될 경우 유대인을 핍박한 국가에 유대인 출신 작가를 빼앗기는 결과를 낳게 되는 두 나라의 갈등 속에 놓인 원고의 실존적 위치는 카프카가 생전 당시 느꼈던 실존적 고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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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HOPE(호프)' 공연장면. 원고를 품에 꼭 안은 채 혼자만의 '세상' 속에 갇혀 있는 '호프'. 사람들은 과장된 소문과 상상 속에 '호프'를 가두고, '호프'는 자신을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선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사진=알앤디웍스

뮤지컬 ’HOPE’는 이러한 복잡한 이해관계와는 무관하게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주인공 ‘에바 호프’의 삶을 구현한다.

작가의 상상력은 비록 에바에 관한 왜곡된 언론의 이미지에서 출발했지만 그로 인해 전쟁 속에 고통 받고 배신당하며, 상처입고 지쳐 자신을 동굴 속 깊은 곳에 가둔 78세의 늙고 초라한 여인을 창조할 수 있게 된다.

카프카의 원고는 현대 문학의 거장으로 설정된 ‘요제프 클라인의 원고’로 변경되고, 카프카의 친구 막스 브로트는 요제프의 원고를 나치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마리에게 맡기는 ‘베르트’로, 에바의 엄마는 베르트를 홀로 외롭게 사랑하며 평생 원고를 품속에 넣고 지키는 ‘마리’라는 이름의 여인으로 변경된다.

또한, 원고를 향한 맹목적인 집착을 견딜 수 없어하며 “절대 엄마와 똑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호프가 엄마가 죽고 난 뒤 되돌아온 허름한 텐트에서 여전히 원고를 불태우지 못한 채 78세 노인이 될 때까지 살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원고를 의인화한 인물 ‘K’를 설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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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HOPE(호프)' 공연장면. 78세 노인이 될 때까지 '원고'를 놓을 수 없었던 '호프'는 "이 원고는 곧 나야!"라고 외친다./사진=알앤디웍스

산발한 흰 머리에 누더기처럼 낡아빠진 옷을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까마귀” 같은 노인 ‘호프’와는 대조적으로 말끔한 흰색 정장에 흰색 구두를 신고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원고 ‘K’는 마치 할머니와 손자처럼, 친구처럼, 연인처럼 서로 대화를 나눈다.

오직 호프의 눈에만 보일 뿐 법정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K’는 외면적으로 진행되는 원고의 소유권을 둘러싼 재판 내용과는 별개로 70년이 넘는 세월을 거스르는 호프의 ‘과거로의 여행’을 이끌어 나간다. 관객들 앞에 펼쳐진 무대는 텔아비브 대법원의 법정이지만 그들이 듣게 되는 이야기는 그 어떤 이유로도 ‘원고’를 빼앗길 수 없다고 외치는 늙은 여인의 슬프고도 가슴 아픈 사연이다.

그 누구도 듣지 못했던 사연, 그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던 이야기, 심지어 자신조차 묻어버리고 외면하려 했던 진실... 진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울린다. 진실은 실수와 아픔, 고통과 슬픔, 후회와 회환, 죄의식과 비난으로 점철되어 있고, 벗어날 수 없는 책임의 무게를 무겁게 인식한다.

추운 겨울날 집을 떠나야 했던 나그네는 눈이 깊어져만 가는 숲 속에서 돌아올 길을 잃어버린 채 하염없이 그대로 서 있다. 가야만 하는데, 어디론가 발을 떼어야만 하는데, 춥고 배고프고 외롭고 무서워 집으로 돌아가고픈 ‘희망’만이 머릿속에 가득한데, 무엇에 매였는지 좀처럼 움직일 수가 없다.

집은 점점 희미해져만 가고 눈 속에 갇힌 나그네는 더 이상 자신의 집이 어느 쪽인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길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강남 작가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를 떠올리게 하는 서사를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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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HOPE(호프)' 공연장면. 더 이상 숨지 말고 자신의 과거의 '고통'과 직면할 것을 요구하는 원고 'K'. 'K'는 그녀가 자신을 해방하고 '일상'을 되찾아 앞으로의 '삶'으로 나아가길 바란다./사진=알앤디웍스

세상에 발표되어 읽히기를 원하는 원고이자 동굴 속에 자신을 가두고 사는 여인 호프의 또 다른 자아 ‘K’는 우리 모두의 ‘삶’이자 ‘희망’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 절망을 이길 힘을 더하고 공감으로 ‘위로’를 받고 싶었던 작가 요제프의 희망, 자신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재능으로 밝게 빛나는 원고를 세상에 내놓아 그 ‘공로’를 인정받고 싶었던 친구 베르트의 희망, 언젠가는 원고를 바라보던 그 빛나는 눈으로 자신을 보아줄 거라 믿었던 ‘사랑’을 향한 여인 마리의 희망, 그리고 최소한 원고를 품고 있으면 버려진 삶에 딱 하나 그것만이라도 ‘소유’할 수 있다고 믿으며 ‘안정’을 추구했던 호프의 슬픈 희망...

삶은 읽히기를 원하고 이해받기를 바라며, 공감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갈망하지만 ‘두려움’ 앞에 멈춰 선다. 희망은 간절하며 세상에 실현되기를, 다른 누군가와 공유되기를 바라지만 ‘실패’라는 그림자에 두 발이 묶인다.

그림자는 어둡고, 춥고, 무섭기에 우리는 그 속으로 선뜻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 그림자를 걷어내고 햇빛 속으로 성큼 나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용기’와 ‘따스함’이지만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사람들에게 ‘용기’란 허망한 메아리와 같으며 ‘따스함’은 차마 기대할 수 없는 환상과 같다.

뮤지컬 'HOPE(호프)' 공연장면./사진=알앤디웍스
뮤지컬 'HOPE(호프)' 공연장면./사진=알앤디웍스

리베카 솔닛은 ’멀고도 가까운’에서 “책은 고독함, 그 안에서 우리가 만나는 고독함”이며,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모두에게 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원고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원고가 어디에 있는지도 중요치 않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읽힐 것인지, 사람들이 그 원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것인지, 그것이 다른 이의 삶을 밝혀줄 수 있을 것인지, 그 자신의 삶을 해방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이 더 중요할 뿐이다.

‘원고’를 둘러싼 재판 한 가운데 자신을 세워놓고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한 꺼풀씩 벗어놓으며 스스로를 재판하는 호프의 모습이 가슴 아픈 것은 그녀의 삶 속에 ‘나’ 또한 자리하기 때문이다.

솔닛은 “누군가의 행동의 뿌리에는 다른 인물이나 역사의 힘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그런 식의 논리적 연결에 끝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삶과 마주하는 일은 어렵고 힘들지만 “자신을 모른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자아라는 것 역시 만들어지는 것”이며, 무언가가 되어가는 그 끝없는 과정에 종말이 온다할지라도 “그 과정의 결과는 계속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고의 해방은 곧 ‘고독함의 해방’이다. 호프의 고독함의 해방은 삶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인 ‘일상’을 향해 걷는 첫걸음에서 시작된다. 나를 가두었던 ‘텐트’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인 ‘사회’로 떠나는 새로운 항해의 시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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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HOPE(호프)' 공연장면. 과거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호프'와 그녀를 위로하는 원고 'K'./사진=알앤디웍스

어쩌면 그것은 집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자신의 집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초대’의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돌아가야 할 ‘집’은 언제나 그녀의 ‘마음’속에 있었고 그 문을 걸어 잠그는 것도, 모두에게 열어 보이는 것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제 ‘호프’라는 집은 자신의 삶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K’라는 원고를 해방한다.

“자유를 정면으로 지켜낼 용기가 없는 여자, 자기에 대한 혐오만 남은 여자, 외로운 절망 속에 자신을 밀어 넣고 방관하는 여자”인 호프는 또 한 해가 지나 일흔 아홉이 되면 다시 후회하게 될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연민하고 수용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잃은 적 없는 사람은 몰라. 전부를 잃고 남은 게 하나라면 내 자리를 뺐고, 내 인생을 망쳐도, 그게 내 유일한 세상!”

호프는 자신의 삶을 지탱시켜줄 ‘희망’으로 설정했던 모든 것들의 연쇄반응 속에 갇혀버린 자신의 ‘고통’을 들여다본다.

딸이 아닌 사랑하는 남자 베르트를 ‘희망’으로 붙들었던 마리의 안타까운 ‘집착’이 호프에게 불러온 ‘상처’, 언젠가는 엄마의 사랑이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 믿으며 엄마를 살리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호프의 ‘죄의식’, 자신을 시궁창에서 구원해 줄 존재로 카렐에게 ‘희망’을 품었지만 배신당한 채 홀로 남겨진 호프의 ‘좌절감’, “원고 없는 삶을 증명해 보이겠다”며 엄마를 외면한 채 길을 떠났던 호프의 ‘미안함’... 때로는 누군가의 ‘희망’이 다른 누군가에게 ‘고통’이 되기도 한다.

절망에서 피어나는 희망이 그만큼 ‘절박함’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절박함은 다른 이의 ‘희망’을 살피지 못하고, 다른 이의 삶에 ‘상처’를 남긴다.

뮤지컬 'HOPE(호프)' 공연장면. /사진=알앤디웍스

뮤지컬 ’HOPE’는 요제프 클라인의 ‘원고 소유권’에 대한 판결을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판결문으로 변경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재산은 ‘우리 자신’ 뿐이며, 우리의 삶은 “그 누구에게도 팔아넘길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을 잘 돌볼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언제든 자신을 외면할 수 있지만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와야만 한다. 우리가 되돌아갈 수 있는 영원한 ‘집’은 ‘우리 자신’ 밖에 없기에... 누군가의 읽으려는 노력 없이 읽히는 삶은 없다.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 들여다보려는 관심이 있을 때, 들어주려는 마음이 있을 때, 기다려주는 인내가 있을 때, 그제야 삶은 읽힐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모두의 삶이 읽히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구의 삶이든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세심함’이 아닐까?

뮤지컬 ’HOPE’가 우리에게 남기는 ‘희망’은 호프의 이야기가 더 이상 그녀에게 갇히지 않고 관객들에게 전해져 더 많은 ‘호프’들을 해방할 수 있을 거란 ‘기대’일 것이다.

‘희망’을 품었으나 절망 속에 자신을 가둔 여인 ‘호프’의 삶이 궁금하다면, 뮤지컬 ’HOPE’를 통해 확인해 봄이 어떨까? 5월 2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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