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용서를 둘러싼 동의, 그리고 공감...연극 '콘센트-동의'
법과 용서를 둘러싼 동의, 그리고 공감...연극 '콘센트-동의'
  • 주하영
  • 승인 20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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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 풍경]
영국 극작가 니나 레인(Nina Raine)의 4번째 작품 'Consent', 2017년 영국 국립극장 초연
연극 '콘센트-동의' 콘셉트 컷./사진=국립극단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용서하다’는 ‘잊어버리다’와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용서하다(Pardonner)‘에서 만약 누군가가 “저지른 악행”으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어떤 고통과 손실”을 입었다면 그가 용서를 빌거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 혹은 불행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치 않음”을 지적한다.

사건은 발생했고 잘못은 저질러졌지만 과거의 기억은 “환원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흘러갈 수 없는 지난 존재”로 남아 “역전 불가능, 망각 불가능, 소멸 불가능, 회복 불가능, 만회 불가능, 속죄 불가능”과 같은 문제를 남긴다.

그는 ‘용서’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분석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 언어 행위로 ‘용서’라는 수행적 단어를 발음한 순간부터 용서받아야 할 일이 다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요?”

데리다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는 용서란 “용서 불가능한 것을 용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이었지만 그가 칸트의 가르침을 언급하며 설명하듯 “용서란 피해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반드시 가해자와 피해자 두 당사자 간의 대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범죄에는 그것을 판단하는 주체, 즉 ‘법’이란 것이 존재하고, 법은 피해자의 용서와 상관없이 ‘처벌’을 행하기도 하고 오히려 ‘무죄’를 선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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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콘센트-동의' 공연 장면. 에드워드(김석주)와 키티(신소영) /사진=국립극단

결국 제 3자에 의해 “타인에게 저질러진 모욕, 범죄, 손실”에 대한 판단과 처벌이 이루어지고 사회와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핵심은 ‘법’이 불합리와 불공정을 제대로 벌할 수 있을 만큼 공정하며, 개인의 고통과 상처를 대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인간적인 것인가에 놓여있을 것이다.

우리는 법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까? ‘동의’란 어떻게 확인되는 것일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고 ‘동의’와 ‘공감’을 얻는 일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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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콘센트-동의' 공연 장면. 에드워드(김석주), 로라(양서빈)./사진=국립극단

지난 7일 명동예술극장에서는 법과 언어, 결혼과 외도, 복수와 용서를 두고 신랄하고 불편하며 날카롭고 논쟁적인 주제들을 끊임없이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연극 ‘콘센트–동의‘의 막이 내렸다.

‘동의(consent)’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법적 정의, 도덕적 정의, 관계, 배신, 성폭력과 같은 여러 복잡하고 예민한 문제들을 매우 사실주의적으로 펼쳐낸 극 ‘콘센트–동의‘는 2006년 ‘래빗(Rabbit)‘으로 데뷔해 이브닝 스탠더드상과 비평가협회상을 받으며 “영국의 독특한 목소리”로 인정받기 시작한 극작가 니나 레인의 네 번째 작품이다.

2010년 그녀의 두 번째 작품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Tribes)‘은 2012년 호주 멜버른과 미국 뉴욕에 진출해 오프브로드웨이 협회 작품상, 뉴욕 드라마 평론가협회상, 드라마데스크 어워드 작품상을 휩쓸게 되었고, 2014년 한국에 소개되었다.

소설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의 조카 손녀이자 시인 크레이그 레인(Craig Raine)과 영문학자 앤 파스테르나크 슬레이터(Ann Pasternak Slater) 사이에서 태어난 니나 레인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연출가로서 먼저 연극을 시작했다.

2011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가 그녀의 대부(godfather)일 뿐 아니라 남동생 모세 레인(Moses Raine) 역시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문학가 집안에서 늘 글쓰기와 함께 자라온 레인은 아버지의 유일한 충고는 “무엇이 되었든 다른 사람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글을 쓸 것”이었다고 말한다.

연극 '콘센트-동의'의 무대. 그리스 신화 '메디아(Medea)'의 배신과 복수의 서사를 일부 차용하고 있는 무대는 고대 그리스의 해체된 신전처럼 보이는 잔해들을 배경으로 인위적인 '핫 핑크' 컬러의 상자처럼 구현된다. 무대 미술가 '임일진'에 따르면, 무대는 "마치 TV 드라마 세트처럼 표면적으로는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공간"을 대변한다. 또 '핫 핑크'라는 컬러는 "바비인형만큼이나 매우 이중적이고 모순적"이라는 점에서 인물들을 닮아있다. 인위적으로 보이는 현대의 공간과 고대 그리스 시대 극장의 파편이 보이는 대조는 무대가 '연극'임을 각인시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입장에 자신을 대입해봐야 할 필요성'에 근거한 변호사인 인물들과 배우들 사이의 연관성을 떠올리도록 만든다./사진=국립극단

레인의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언어의 이중성과 불충분함, 그리고 불편하고 대담한 문제들을 노출함으로써 이슈를 만들어내고 제시된 문제에 대해 여러 관점을 적용해 사유하도록 만든다는 점일 것이다.

주로 영국 중산층의 전문직 종사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직업이 품고 있는 문제가 삶에 미치는 영향과 “겉으로는 웃고 있으나 속으로는 울고 있는” 인물들의 허상과 가식, 제도가 품고 있는 사회적, 윤리적 문제와 같은 것들을 “신랄한 농담”으로 꼬집는 레인은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오랜 시간 사전 준비 작업을 거친다.

‘콘센트–동의‘는 사실상 레인이 극작가로 데뷔하기 전인 2005년 코카인을 밀수한 혐의로 기소된 나이지리아 왕자의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다. 그녀는 결국 유죄로 입증된 재판과정에서 “진실이 법적 논쟁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고, 서로 대립하는 경쟁적인 내러티브가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도록 만든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2017년 4월에 초연된 ‘콘센트–동의‘는 원래 2010년에 의뢰된 작품이었다. 물론 7년이라는 기간 동안 레인이 연출 작업과 BBC 드라마 ‘미스트리스(Mistresses)‘의 대본작업에 참여하는 등 여러 일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재판들을 참관하고 변호사 친구들의 모임에 참석하면서 리서치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그녀가 변호사라는 직업에 유독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들의 직업 역시 극작가나 배우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입장에 자신을 대입해 볼 필요”가 생긴다는 점이었다.

프로그램북에 따르면,  무대는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처럼  서로를 투영"한다. 무대 미술가 '임일진'에 따르면, '핫 핑크'가 품은 "거북함과 강렬함"은 "고대 그리스 이후 지금까지의 성 윤리에 대해 곱씹어 보도록 만드는 시간"을 창조한다.
'콘센트-동의' 공연 장면. 공연에는 세 커플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두 커플은 결혼생활 10년째를 맞이한 위기의 부부들이며, 한 커플은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갖기 원하는 싱글 남녀이다. 프로그램북에 따르면, 무대는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처럼 서로를 투영"한다. 무대 미술가 '임일진'에 따르면, '핫 핑크'가 품은 "거북함과 강렬함"은 "고대 그리스 이후 지금까지의 성 윤리에 대해 곱씹어 보도록 만드는 시간"을 창조한다./사진=국립극단

‘이브닝 스탠더드‘와의 인터뷰에서 레인은 변호사인 친구들이 그들 사이에서 의뢰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스스로에게 범죄를 대입해서 말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데, 가령 “내가 세 명의 여성을 강간한 사람을 대변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대신 그들은 “내가 세 명의 여성을 강간했어”라고 편의상 속기(stenography)처럼 줄여서 말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레인은 자신이 관찰해 온 변호사들을 ‘콘센트–동의‘ 속에 그대로 불러올 뿐 아니라 음담패설과 욕설, 윤리적 의식을 망각한 듯 의뢰인과 피해자들을 무시하는 차별적 발언들을 서슴지 않고 비아냥거리며 자신들의 지적 우월함을 즐기는 “추악한 상태(at their ugliest)”에 위치시킨다.

‘콘센트–동의‘에는 세 커플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두 커플은 결혼생활 10년째를 맞이한 위기의 부부들이며, 한 커플은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갖기 원하는 싱글 남녀이다.

그 중 4명이 법정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으며, 1명(키티(Kitty))은 편집장으로 일하다 최근 아이를 출산하면서 일을 그만두었고, 연극배우로서 활동하고 있는 자신의 친구 자라(Zara)를 아직 싱글인 남편의 친구 팀(Tim)과 연결해주려 애쓴다.

하지만 팀은 평소에 자신을 ‘암내’가 난다며 놀려대고 무시하는 친구 에드워드(Edward)의 아내 키티에게 매력을 느껴왔음을 숨기고 있다.

40대를 향해가는 자신이 가임기에서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라는 왜 한심하고 미치광이 같은 사람들도 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데 자신은 그럴 수 없는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5번[국립극단] 콘센트-동의_공연사진01_제이크(임준식), 팀(이종무), 자라(주인영), 키티(신소영), 에드워드(김석주)
'콘센트-동의' 공연 장면. 연극배우인 친구 '자라'(주인영)에게 에드워드의 변호사 친구 '팀'(이종무)을 소개시켜주기 위해 마련한 자리. 모두들 '자라'가 맡게 된 그리스 신화 속 인물 '메디아'에 대해 이야기하며 신과 인간, 분노와 복수, 배신에 관해 의견을 나눈다. 제이크(임준식), 팀(이종무), 자라(주인영), 키티(신소영), 에드워드(김석주)/사진=국립극단

에드워드와 키티의 가장 친한 친구들인 제이크(Jake)와 레이첼(Rachel)은 아직 ‘나(I)’와 ‘너(You)’를 구분하지 못하는 큰 아이와 막 걷기 시작한 둘째 아이를 키우고 있는 변호사 부부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문직 맞벌이를 하는 보통의 가정처럼 보이지만 제이크는 주최할 수 없는 바람기로 인해 자신의 아내에게 성병을 옮기고도 아내가 자신을 받아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레인은 게일(Gayle)이라는 스코틀랜드 출신 하층 노동자 계급의 여성을 ‘동의(consent)’없이 성폭행한 혐의로 피소된 패트릭 테일러(Patrick Taylor)의 ‘강간 사건(a rape case)’에 팀과 에드워드를 검찰측 변호인과 피고측 변호인으로 배치시킨다.

레인은 이 사건을 통해 법률제도의 비인간적 속성과 불공평한 측면을 드러낼 뿐 아니라 변호사들이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이자 도구”라 할 수 있는 ‘언어’가 진실을 반영하기에는 얼마나 턱없이 부족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해자인 피고의 범죄 이력은 편견을 방지하기 위해 배제시키면서도 피해자인 증인의 우울증 치료이력은 그녀의 진술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데 이용되는 현실은 가해자를 변론하는 변호사 에드워드의 입을 통해 공정한 처벌을 행할 수 없는 법의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국립극단] 콘센트-동의_공연사진14_에드워드(김석주), 레이첼(정새별), 제이크(임준식), 키티(신소영)
'콘센트-동의' 공연 장면. 에드워드(김석주), 레이첼(정새별), 제이크(임준식), 키티(신소영)/사진=국립극단

게일은 자신의 삶을 망친 가해자를 ‘무죄’로 풀어준 에드워드와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무력하게 자신을 상대측 변호사에게 먹잇감으로 내던져 준 팀이 함께 있는 자리에 들이닥쳐 부당함을 주장한다.

에드워드는 게일에게 이렇게 말한다. “불행히도 법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게 있습니다. 죄가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감옥에 가는 것보다 죄가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풀려나는 게 더 나으니까요.”

그는 “법이란 감정에 치우쳐서는 안 되는 것이고 개인의 이익을 대변해서도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원한을 해결해주는 ‘복수’가 될 수 없으며, “그것은 공평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피해자인 게일의 증언에 타격을 가한 자신의 반대심문에 대해 사과할 마음이 전혀 없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질문인 피해자가 왜 우울증 치료를 받게 되었으며, 왜 진술서에 말하지 못한 것을 재판 5분 전에 털어놓았어야 했는지에 관한 사실에 대해서는 에드워드도 팀도 전혀 궁금해 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들은 정당성을 주장할 자격이 없다.

4번[국립극단] 콘센트-동의_공연사진07_키티(신소영), 에드워드(김석주)
연극 '콘센트-동의' 공연 장면. 5년 전 외도한 일에 대해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한 적 없는 남편 '에드워드'(김석주)를 용서할 수 없는 아내 '키티'(신소영)와 자신이 그렇게 원하던 둘째 아이를 '동의'없이 낙태한 아내 '키티'(신소영)에게 불만을 품고있는 남편 '에드워드'(김석주)./사진=국립극단

레인은 무언가에 ‘동의’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는 어려움을 에드워드가 실제로 경험하고 이해하도록 만들기 위해 2막에서 그가 팀과의 외도를 저지른 아내 키티에 의해 ‘부부강간’으로 고발되는 상황에 처하도록 만든다.

에드워드는 누구보다 자신이 이성적이며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변호사이다. 그는 “사과합니다(I apologise)”라는 말은 하지만 “미안합니다(I’m sorry)”라는 말은 결코 해 본 적이 없는 “공감(empathy)”이라는 단어를 혐오하는 인물이다.

그는 하루 종일 피해자들이 쏟아내는 진술과 술에 취한 채 감정에 치우쳐 공정함에 대해 뒤떠드는 의뢰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일이 너무 지긋지긋하고, 인간이 ‘두뇌’가 아닌 ‘가슴’에 기준을 두기 때문에 불공평한 상황들이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 자신과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아내 키티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무언가에 대해 의견을 가지기 위해 반드시 경험을 할 필요는 없어!”

서로 상대를 비난하며 '동의'에 이르지 못하고 논쟁하는 부부 '키티'(신소영)와 '에드워드'(김석주). 키티는 다른 사람의 상처에 결코 '공감'하지 못하는 에드워드를 '이해'에 이르도록 만드는 길은 '복수'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연극 '콘센트-동의' 공연 장면. 서로 상대를 비난하며 '동의'에 이르지 못하고 논쟁하는 부부 '키티'(신소영)와 '에드워드'(김석주). 키티는 다른 사람의 상처에 결코 '공감'하지 못하는 에드워드를 '이해'에 이르도록 만드는 길은 '복수'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사진=국립극단

하지만 키티는 과거에 바람을 피운 사실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거실에 소파 놓을 자리 하나를 놓고도 쉽게 ‘동의’하지 못하고 그 어떤 상처에도 ‘공감’하지 않는 남편을 용서할 수 없음을 느낀다.

분노한 그녀는 소리 지른다. “너는 한 번도 그걸 당해보지 않았어. 너는 속이는 일만 해왔지 결코 속아본 적이 없지. 너는 당해볼 때까지 그게 어떤 건지 결코 모를 거야. 그게 네가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겠지. 그래! 그게 어떤 기분인지 내가 느끼게 해줄게!”

어쩌면 5년 전에 외도한 남편을 아직까지 용서할 수 없는 키티가 시니컬함과 분노를 가득 담아 쏟아내는 에드워드에 대한 분석은 정확한 것인지도 모른다.

키티는 에드워드가 직업상 “정직하지 않고 폭력적이고 성적으로 이상한 사람들을 계속 만나 거짓말을 일삼고 대변하다보니 타락했다”고 분석한다.

언제나 상대와 “대립하는 일에만 익숙해져 반대하는 관점을 취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들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에드워드는 이제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잘못한 일들은 편리하게 잊어버리고” 재빨리 다른 기억으로 대체하는 기술을 연마한 교체 전문가가 되어버렸다.

논리는 법정에서나 효과가 있을 뿐 인간의 삶에는 비논리적인 일들이 가득하다고 주장하는 키티는 용서를 빌려면 “무조건적으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라고 말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10번[국립극단] 콘센트-동의_공연사진06_팀(이종무), 키티(신소영)
연극 '콘센트-동의' 공연 장면. 처음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모르고 '공감'하는 법을 모르는 남편 '에드워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시작된 '복수'였지만 결국 '팀'(이종무)을 사랑하게 된 '키티'(신소영)./사진=국립극단

키티는 ‘복수’를 위해 팀과의 불륜을 저지른다. 하지만 그녀는 예상치 못한 사랑에 빠진다. 아내의 외도를 눈치 챈 에드워드는 집요하게 추궁하고 키티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이성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확신해 온 에드워드는 울면서 매달리고, “이건 공평하지 않아!”라고 외친다.

결국 키티와 팀의 예상치 못한 ‘사랑’은 에드워드와 자라에게 배신이라는 ‘상처’를 남기고 아이 양육권과 부부강간혐의로 대치되는 소송을 둘러싼 법적 논리와 현실의 진창 싸움이 시작된다.

연극은 막장으로 치닫고 모든 인물들은 자신들이 규정했던 자신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통해 자신들이 세웠던 논리가 무너지는 현실을 경험한다.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인물들을 이해하며, 도덕적 우위와 지적인 우월감으로 무장했던 사람들은 무대 위에 자리한 그리스 신전의 폐허처럼 부서지고 해체된다.

레인은 성폭력 사건을 극의 소재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강간 사건이 여성에게 불공평하게 적용된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피해자이자 증인인 여성들에게 신뢰를 가질 수 없도록 만드는 어떤 상황들이 계속 생겼거든요. 법은 냉정하고 인간적이지 않지만 우리는 인간이잖아요? 법에 꼭 필요한 것은 인간애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배심원단이 존재하는 거죠. ... 나는 내가 얼마나 무지했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법이 성범죄에 어떻게 접근하고 어떤 것들을 고려하는지, 법의 역학이 성범죄에 어떻게 작용해 정의가 행해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무지했던 거죠.”

그녀는 또한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모든 증언을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하는 사법 현실에 대해 “모순적으로 느꼈다”고 덧붙인다.

그녀는 기억은 왜곡의 성질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씩 어긋나는 것이 일반적”이며 너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경우, 반대로 거짓말일 가능성이 존재함을 지적한다. 또한 그러한 기억을 설명하는 언어 역시 정확하게 세상을 표현하고 진실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9번[국립극단] 콘센트-동의_공연사진11_레이첼(정새별), 제이크(임준식), 에드워드(김석주)
연극 '콘센트-동의' 공연 장면. 아내 '키티'가 친구 '팀'과 바람이 났음을 제이크와 레이첼 부부에게 토로하며 울부짖는 '에드워드'(김석주). 평소 누구보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임을 확신했던 그는 막상 자신이 '배신'을 당하게 되자 모든 것을 잃을 수 없다며 무조건적으로 '키티'의 마음을 돌리려 애를 쓴다. 그는 아내 '키티'에게 아이 양육권을 두고 협박을 하고, 아내 '키티'는 남편을 '부부강간' 혐의로 고소하려 한다./사진=국립극단

레인은 ‘콘센트–동의‘를 통해 변호사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세계관을 정해 놓고 그러한 관점으로만 보도록 만드는 ‘속임수’와 언어라는 무기의 화살을 날려 상대를 늪에 빠뜨릴 경우 무너져 내리는 진실의 ‘이중성’과 ‘애매모호함’을 관객들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누구라도 자신의 진실이 무시당하고 공격당하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공감’되지 않을 때 감정적 폭발과 분노로 인해 ‘광기’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치 “잘난 척하며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당연시 여기던 그리스 신들이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에 휘둘려 서로를 공격하고 상처 주며 결국 분노로 인해 ‘복수’에 이르듯 ‘콘센트–동의‘ 속 인물들은 서로가 ‘동의’할 수 없음으로 인해 갈등하고 미워하며 서로를 용서하지도 잊지도 못한다.

레인이 제시하는 주제들은 신랄하고 날카롭지만 무대 위 인물들의 막장으로 치닫는 행동과 반응은 객석에 어이없는 탄식과 폭소를 낳는다.

웃음은 ‘거리’에서 나오고 관객들은 무대 위 인물들의 삶이 자신들의 ‘삶’이라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냉철한 판단’을 취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한 웃음은 관객들의 ‘지적인 능력’을 발동시키고 절대 웃을 수 없는 게일의 재판장면과 마지막 무대를 채우는 게일의 ‘유령’이 관객들을 응시하는 장면을 통해 ‘법’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확보한다.

극작가 레인의 바램은 성취된다. 그녀가 제기한 모든 문제들은 “공중에 떠도는 이슈”가 되고, 관객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극에 대해 이야기”하며 동의에 대해, 공감에 대해, 그리고 법과 용서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법에 ‘동의’할 수 있을까? 우리는 상대에게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 용서에는 무엇이 선행되어야 할까?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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