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라는 이상을 향한 돌진, 그리고 용기...연극 '오슬로'
'평화'라는 이상을 향한 돌진, 그리고 용기...연극 '오슬로'
  • 주하영
  • 승인 2018.10.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이성열 연출, J. T. Rogers의 2017년 토니상 수상작 'Oslo'
오슬로3 [국립극단]오슬로_홍보사진_03_왼쪽부터 라르센役(손상규), 모나役(전미도)
연극 '오슬로' 콘셉트 컷. 이 작품은 1993년 9월 13일 미국의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50년 동안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이의 평화협정이 체결되던 역사적 장면의 ‘뒷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 진영에서 걸려온 전화의 수화기를 서로 바꿔 들고 있는 (왼쪽)티에유 로드-라르센 역의 배우 손상규와 모나 율 역의 배우 전미도./사진=국립극단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독일의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평화란 힘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평화는 오직 이해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고 말했다. 티베트의 지도자 롭상 텐진은 “소통은 이해를 가져오고, 이해는 평화와 안정을 구축할 수 있는 조화로운 상호관계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도의 수상 자와할랄 네루는 “평화가 없다면 모든 다른 꿈들은 사라져 재가 되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평화’에 대해 말하고 평화야말로 ‘인류가 목표로 하는 가장 완전한 상태’임에 동의하지만 막상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완전한 평화를 이룩한 나라를 찾아보는 일은 쉽지 않다.

왜일까? 왜 우리는 그토록 ‘평화’를 외치면서도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지 못하는 것일까?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말처럼 “인류에게서 애국심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조용한 세계를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약하고, 어리석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뒤틀린 속성”(the crooked timber of humanity)이 인간으로 하여금 평화로운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일까?

연극 '오슬로'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는 2017년 토니상과 드라마데스크상, 뉴욕 드라마비평가협회상, 오비상에 빛나는 미국 극작가 J. T. 로저스의 작품 ‘오슬로‘ 공연이 한창이다.

연극 ‘오슬로‘는 1993년 9월 13일 미국의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50년 동안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이의 평화협정이 체결되던 역사적 장면의 ‘뒷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012년 로저스는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다룬 자신의 극 ‘피와 선물‘(Blood and Gifts)을 관람하러 온 티에유 로드-라르센으로부터 ‘오슬로 협정’(Oslo Accords)에 가려져 있던 ‘뒷이야기’를 듣게 된다.

미국이 지향하는 ‘포괄주의 협상모델’이 실패하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긴장이 더욱 고조되던 1992년, 두 나라 사이에서 중립적 위치를 지켜온 노르웨이의 한 부부가 ‘비밀 채널’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고 그 자리에 참석했다 하더라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부인해야 하는 비밀 대화 채널은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협정’에 이르도록 만든다.

사진11 - 모든 출연진들. 뒷 화면에 1993년 9월 13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클린턴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 라빈 수상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 아라파트가 '악수'를 나누는 역사적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연극 '오슬로' 공연의 모든 출연진들. 뒷 화면에 1993년 9월 13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클린턴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 라빈 수상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 아라파트가 '악수'를 나누는 역사적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사진=국립극단

당시 TV화면으로 중계되던 이스라엘의 라빈 수상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아라파트 의장의 ‘악수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던 로저스는 20년 전 역사적 사건의 일부가 되었던 라르센과 그의 아내 모나 율의 이야기가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청난 사건들에 맞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변화’를 일궈낼 수 있는 인물들을 그려내기에 완벽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는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오슬로 채널’과 관련된 모든 문서들을 읽고 회담에 관련했던 세계 정상들, 관련자들, 외교관들을 만나 인터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극작가들이 도달하게 되는 창작을 위한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만약 이 전혀 다른 이질적인 사람들을 모두 한 방에 몰아넣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연극 ‘오슬로‘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함께 진행한 링컨센터 극장의 예술감독 앙드레 비숍은 로저스의 이러한 ‘창의적 도약’이 극을 “매우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으로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그는 “연극 ‘오슬로‘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분명 극 속에 묘사된 사람들은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이지만 ‘오슬로‘ 속 인물들과 그들의 말은 전적으로 극작가의 것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연극 '오슬로' 콘셉트 컷. 비밀리에 진행된 회담 '오슬로 채널'의 주역들. (왼쪽부터) 이스라엘 외무부 법률자문 요엘 싱어(정승길), 노르웨이 외무부 직원 모나 율(전미도), 이스라엘 외무부 국장 유리 사비르(최지훈(뒤)), 노르웨이 파포(FAFO) 연구소장 티에유 로드-라르센(손상규(앞)),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외교보좌역 하산 아스푸르(임준식),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재무장관 아흐메드 쿠리에(김정호)/사진=국립극단 

로저스 역시 “오슬로 협정에 관한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 사실에 기반하고 있지만 연극적 자유를 마음껏 누리기 위해 모든 것을 재창조”했음을 강조한다. 그는 ‘오슬로 채널’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협정을 가능하게 만든 ‘산파노릇’을 했음은 분명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 일부는 “중동지역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대담한 시도”로 보는 반면, 다른 일부는 “중동지역의 고통을 증폭시키는 무모하고 순진한 간섭”이라 평하고 있음을 피력한다.

하지만 어떤 평가가 맞는 것이든 극작가로서 그는 낯설고 두려운 속에서도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향해 위험을 무릅쓰고 전진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두려움, 기쁨, 비통함”과 같은 것들이 이 사건의 ‘정수’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인다.

이 때문에 로저스는 인터뷰 과정에서 모나 율이 자신들은 비밀 채널의 일부였을 뿐 “이 이야기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그 채널에 속한 사람들에 관한 것”이라 밝혔음에도 모나와 티에유 부부를 극의 ‘중심인물’로 내세운다.

자신들보다 더 커다란 대의를 위해 움직이는 가운데 장애에 걸려 넘어지고 모든 것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들이 믿는 것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 사람들...

그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실현하려고 노력했던 그들의 ‘용기’를 강조한다. 그는 말한다.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증오가 양산되는 가운데 이스라엘 정부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적과 마주 앉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서로를 인간으로 보기 시작했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 귀 기울임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이뤄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발휘된 개인적, 정치적 용기에 경외를 표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잊지 않기를 바라는 역사의 순간이다.”

서로를 향해 손가락을 겨누고 '적대감'을 표출하며 핏대를 세우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진영 사람들. 모나(전미도)가 가운데에서 두 눈을 질끈 감고 귀를 감싼 채 괴로워하고 있다.
연극 '오슬로' 공연 장면. 서로를 향해 손가락을 겨누고 '적대감'을 표출하며 핏대를 세우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진영 사람들. 모나(전미도)가 가운데에서 두 눈을 질끈 감고 귀를 감싼 채 괴로워하고 있다./사진=국립극단
연극 '오슬로'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로저스는 이성적이지만 따뜻한 인간애를 품고 있는 ‘모나’를 극의 해설자로 내세운다. 복잡한 과정 속에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을 설명하고 정치적 상황을 보다 명확하게 정리하기 위해 모나는 극이 진행되는 가운데 정지화면처럼 극 속에서 빠져나와 관객들을 향해 설명을 덧붙인다.

노르웨이의 응용사회과학 연구소 ‘파포(FAFO)’를 운영하고 있는 티에유는 미국이 중동에 평화를 정착시키지 못한 이유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는 가운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협상 당사자들이 모든 문제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모든 기관이 참여하는 가운데 거래를 해 나가는 ‘딱딱한 방식’으로는 효과적인 협상을 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시장을 공격하고 버스를 폭파시키는 사람들”과 함께 도모해야 할 협상 테이블에 “말을 술집에 끌어다 놓고 자기가 마실 칵테일까지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임을 강조하는 그는 조직이 아닌 개인에 기반한 ‘점진주의 모델’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가장 치열하게 대립되는 이슈를 놓고 토론을 벌여 그것이 해결되고 나면 다음 이슈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차츰 상호간의 신뢰를 구축해 나가는 ‘점진주의 모델’은 사적인 영역을 풀어놓고 시작하기 때문에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분노하고 한계 직전까지 몰리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기만 한다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어떤 실수가 나오든 어떤 행동들이 튀어나오든 모든 과정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믿음”과 그 ‘믿음’이 불러오게 될 결과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다.

서로 갈등이 한계 끝까지 달한 상태에서 추운 날씨에 숲을 산책하며 '개인적인 담소'를 나누게 되는 이스라엘 외무부 국장 유리 사비르(왼쪽, 최지훈)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재무장관 아흐메드 쿠리에(오른쪽, 김정호). 뒤쪽에서 라르센과 모나가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연극 '오슬로' 공연 장면. 서로 갈등이 한계 끝까지 달한 상태에서 추운 날씨에 숲을 산책하며 '개인적인 담소'를 나누게 되는 이스라엘 외무부 국장 유리 사비르(왼쪽, 최지훈)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재무장관 아흐메드 쿠리에(오른쪽, 김정호). 뒤쪽에서 라르센과 모나가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사진=국립극단

모나는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바로 이 부분이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이 생각이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도록 만들었던 모든 것이었으니까요. 이 이야기를 지켜보고 판단하시는 동안 이 점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관객들은 이제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판단해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된다. 로저스는 곧바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적대적 관계 속에 발을 들여놓을 이유가 전혀 없었던 노르웨이의 한 부부가 이 일에 깊숙이 관련하게 된 이유를 관객들에게 펼쳐 보인다.

1년 전 모나의 첫 해외 근무지로 카이로에 갔던 부부는 이스라엘에 의해 웨스트뱅크로부터 잘려 나간 가느다란 띠 모양의 땅 ‘가자(Gaza)’에서 일생일대의 장면과 마주하게 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 안정된 전기와 물 공급도 없이 백만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더 이상 퍼져나갈 곳이 없어 고통에 신음하는 가자의 뒷골목에서 부부는 폭도들 틈에 놓이게 된다.

연극 '오슬로'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폭탄이 터지는 가운데 뒤집어진 자동차 뒤로 몸을 숨겼던 부부는 “하나는 군복을 입고 다른 하나는 찢어진 옷을 입은 채 서로를 향해 증오의 눈길을 던지고 있는 두 아이들”을 보게 된다.

모나는 말한다. “두 아이의 얼굴은 전혀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두려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똑같은 절박함, 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 일을 다른 아이에게 하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리고 거기에서 바로 그 순간에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관객들은 부부의 노력을 지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모든 것의 핵심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노력이 실질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평화를 가져왔든 아니든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대물림을 막고 아이들의 미래를 구하기 위해 ‘새로운 가능성’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티에유와 모나의 ‘선한 의도’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로저스는 모두가 부정적인 시선을 던지고 불가능에 대해 이야기할 때 “창을 들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로 보인다 할지라도 ‘이상’을 향해 달려야 할 필요성에 방점을 찍는다.

티에유와 모나는 한 번도 서로 가까이 마주한 적이 없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 진영의 만남을 ‘주선’만 하겠다는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점차 자신들이 그어 놓았던 ‘안전선’을 벗어나게 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 진영에서 걸려온 전화의 수화기를 서로 바꿔 들고 있는 티에유 로드-라르센(왼쪽, 손상규)과 모나 율(오른쪽, 전미도)
연극 '오슬로' 공연 장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 진영에서 걸려온 전화의 수화기를 서로 바꿔 들고 있는 티에유 로드-라르센(왼쪽, 손상규)과 모나 율(오른쪽, 전미도)/사진=국립극단
오슬로2 국립극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 진영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그 내용에 대해 비밀리에 대화를 나누는 부부 티에유(왼쪽, 손상규)와 모나(오른쪽, 전미도)
연극 '오슬로' 공연 장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 진영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그 내용에 대해 비밀리에 대화를 나누는 부부 티에유(왼쪽, 손상규)와 모나(오른쪽, 전미도)/사진=국립극단

흥미로운 것은 협상 당사자가 바뀌고 갈등이 생기며 모든 것이 깨질 위기에 도달할 때마다 비밀 채널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붙들고 의지를 불태우도록 만드는 것은 모두 개인적인 신념과 평화를 향한 갈망이라는 사실이다.

낯설음과 어색함을 친밀하게 만드는 것은 상대방의 딸의 이름과 내 딸의 이름이 같다는 ‘우연이 빚어낸 공통점’이고, 상대를 향한 적개심과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것은 요리솜씨 좋은 스웨덴 관리인 토릴이 만든 ‘어머니의 레시피가 담긴 와플’이다.

인간들이 종교와 민족, 신념을 이유로 서로를 향해 품는 적개심에 대한 로저스의 일침은 이스라엘의 비공식 대리인으로 PLO의 재무장관인 쿠리에를 만나게 된 경제학자 허시펠트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된다.

장 적대적이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외교보좌역 하산(임준식(좌))과 이스라엘 경제학자 허시펠트(정원조(우))가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PLO 재무장관 쿠리에(왼쪽, 김정호)
연극 '오슬로' 공연 장면. 가장 적대적이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외교보좌역 하산(임준식(좌))과 이스라엘 경제학자 허시펠트(정원조(우))가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PLO 재무장관 쿠리에(왼쪽, 김정호)/사진=국립극단
자신들의 일에 개입하고 무언가를 종용하는 티에유(왼쪽, 손상규)에게 짜증스러움을 표출하는 PLO 재무장관 쿠리에(오른쪽, 김정호). 티에유의 '돈키호테'와 같은 돌진은 선한 의도로 좋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성가시다는 이유로 양 진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된다.
연극 '오슬로' 공연 장면. 자신들의 일에 개입하고 무언가를 종용하는 티에유(왼쪽, 손상규)에게 짜증스러움을 표출하는 PLO 재무장관 쿠리에(오른쪽, 김정호). 티에유의 '돈키호테'와 같은 돌진은 선한 의도로 좋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성가시다는 이유로 양 진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된다./사진=국립극단

한 비행기를 타고 가던 랍비와 스님은 ‘적개심’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랍비가 스님에게 말한다. “나는 당신네들이 진주만 때 한 일을 용서할 수가 없소!” 스님이 자신은 진주만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중국인’이라 말하자 랍비가 외친다. “중국인, 일본인, 그게 그거 아닙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스님이 말한다. “나는 타이타닉 때문에 당신네들을 용서할 수가 없소!” 랍비가 타이타닉은 ‘빙하(iceberg)’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말하자 스님이 바로 응수한다. “아이스버그, 골드버그, 스필버그, 그게 그거 아닙니까?”

이 우스꽝스러운 농담은 인간이 품는 ‘분노’가 겨눠야 할 곳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작정 표출되는 소모적인 감정일지 모른다는 ‘우려’를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법률자문이자 미국법률회사 파트너인 싱어가 모나에게 “당신네들은 도대체 왜 이 일을 하는 거요?”라고 물었을 때 그녀의 답변은 많은 울림을 낳는다.

양 진영이 '레드 라인'을 넘지 않으며 방 밖에서 허심탄회하게 술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사적인 삶을 나누는 사람들은 점점 서로에게 '친밀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연극 '오슬로' 공연 장면. 양 진영이 '레드 라인'을 넘지 않으며 방 밖에서 허심탄회하게 술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사적인 삶을 나누는 사람들은 점점 서로에게 '친밀함'을 느끼기 시작한다./사진=국립극단

모나는 되묻는다. “당신이라면 이 일을 하지 않겠어요?” 싱어가 자신은 절대 이 일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묻는 것이라고 말하자 그녀가 대답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내가 답변해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 인간은 때로 목표조차 불명확한 곳을 향해 분노와 적개심을 드러내며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 존재임과 동시에 자신에게 그 어떤 이익이 돌아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존재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현혹되고 옳다고 믿는 것을 향해 무작정 돌진할 수 있는 존재, 그런 인간에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도 두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사고의 틀을 깨고 보이지 않던 측면을 바라보는 ‘변화’를 위한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 진영의 평화협정 체결을 바라보며 뿌듯함과 기쁨을 느끼는 티에유(왼쪽, 손상규)와 모나(오른쪽, 전미도)
연극 '오슬로' 공연 장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 진영의 평화협정 체결을 바라보며 뿌듯함과 기쁨을 느끼는 티에유(왼쪽, 손상규)와 모나(오른쪽, 전미도)/사진=국립극단

결국 ‘오슬로 협정’은 평화로 완결되지 못했고 여전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은 남아있지만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티에유는 관객들을 향해 외친다.

“우리는 ‘과정’을 창조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면 분명히 그렇지 않나요?... 친구들, 우리가 현재 있는 곳을 보지 말고 그 뒤를 보세요. 저기요! 우리가 얼마나 멀리까지 왔는지 보세요! 피와 공포, 증오를 통과해 이렇게 멀리까지 온 거라면, 앞으로 얼마나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겠어요? 저기 지평선! 가능성! 그 가능성이 보이나요?”

어쩌면 마하트마 간디의 말처럼, 평화로 가는 길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평화를 추구하는 그 자체가 길일 뿐. 1993년 오슬로 협정에 가려졌던 ‘뒷이야기’, 각자 나름의 이유로 ‘평화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의 긴박하고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연극 ‘오슬로‘를 통해 확인해 봄이 어떨까? 11월 4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관련기사

관심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