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만 ‘자유’를 획득할 수 있었던 여인...뮤지컬 ‘엘리자벳‘
‘죽음’으로만 ‘자유’를 획득할 수 있었던 여인...뮤지컬 ‘엘리자벳‘
  • 주하영
  • 승인 2019.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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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미하엘 쿤체 극본 X 실베스터 르베이 작곡
'엘리자벳' 김소현/사진=EMK뮤지컬컴퍼니
오스트리아 엘리자벳 황후의 삶을 다룬 뮤지컬 '엘리자벳' 콘셉트 컷. 엘리자벳 황후는 '유럽 왕실의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 불렸다./사진=EMK뮤지컬컴퍼니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신데렐라‘와 ‘백설 공주‘,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같은 동화를 읽고 난 후 품게 되는 의문은 보통 하나이다.

‘과연 왕자와 공주는 행복했을까?’ ‘행복’의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나이에 접하게 되는 동화 속 결말은 늘 해피엔딩이다.

“그 후로 그들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도대체 누구의 관점에서 그들이 행복했다는 것일까? 왕자와 공주의 관점에서일까? 아니면 동화를 읽는 아이들의 ‘기대감’을 고려한 어른들의 관점에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사실상 ‘고난’으로 가득한 삶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보길 원하는 어른들의 ‘바람’ 때문일까?

하지만 동화는 동화일 뿐 실제 역사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왕자와 공주의 결혼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세계 역사를 둘러싼 왕가의 ‘러브 스토리’의 결말은 대부분 ‘비극’이며, 권력을 둘러싼 암투와 질투, 스캔들, 정신병과 우울증, 자살과 사고가 난무한다. 왕가의 로맨스에는 행복보다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16살의 나이에 '사랑'에 빠져 요제프 황제와 결혼하게 된 엘리자벳. '사랑'만 있다면 그 어떤 굴레와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 요제프 황제와 엘리자벳 황후는 결혼식을 올린다.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16살의 나이에 '사랑'에 빠져 요제프 황제와 결혼하게 된 엘리자벳. '사랑'만 있다면 그 어떤 굴레와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 요제프 황제와 엘리자벳 황후는 결혼식을 올린다./사진=EMK뮤지컬컴퍼니

영국의 역사가 앤드류 싱클레어에 따르면, 민족주의가 대두되기 전까지 서구 유럽 제국의 영토를 지켜주었던 것은 “전쟁이 아닌 왕실의 결혼”이었다.

제국의 통치는 수상과 장교, 대신들과의 정치적 논의보다 상속과 결혼을 통해 혈연으로 맺어진 사촌들 간의 은밀한 소통에 의해 이루어졌고, 전통과 예법, 규율에 따르는 ‘엄격함’이 강조되었다.

왕조들은 근친상간으로 인한 정신병과 혈우병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들과 딸들을 결혼시켰다. 왕족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무정부주의자들과 공화주의자들, 적국의 첩자들에 의한 ‘암살’이었고, 이 때문에 그들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왕실의 핏줄 외엔 그 누구도 신뢰하질 못했다.

유럽의 가장 영향력 있는 왕실,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헝가리, 체코, 스페인, 이탈리아 남부, 벨기에, 네덜란드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토와 지배권을 자랑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에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씨씨(Sisi)’라 불리던 “왕실의 가장 아름다운 여인” 엘리자벳 황후의 ‘러브 스토리’가 존재한다.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유럽 왕실의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 불렸던 엘리자벳 황후, '씨씨(Sisi)'.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유럽 왕실의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 불렸던 엘리자벳 황후, '씨씨(Sisi)'./사진=EMK 

1853년 8월, 23세의 젊은 황제 요제프는 이미 오랜 인연으로 얽혀있는 합스부르크 왕가와 비텔스바흐 왕가의 맞선 자리에서 예비 황후로 낙점되어 있던 ‘헬레네’를 마다하고 그녀의 동생 ‘엘리자벳’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전통과 규율을 따르던 왕실의 혼인에 ‘정치’가 아닌 ‘사랑’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은 엄청난 스캔들을 불러왔고 왕실의 로맨스는 순식간에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예법 교육에 매진하던 언니와 달리 자유분방한 삶을 영위하던 소녀에게 궁정이라는 낯선 곳이 편할 리 없었다. 16살이란 나이에 갑자기 사랑에 빠져 엄격한 규율과 의무만이 강조되는 궁정에 갇힌 어린 황후의 삶은 ‘감옥 생활’이나 다름없었다.

아름다운 황후에게 쏠리는 대중의 지대한 관심은 황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시어머니 소피 대공비의 억압과 훈육을 더욱 심하게 만들었고, 아이들마저 빼앗기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황후는 조금씩 자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소피 대공비와 맞서기 시작했다.

역사적 변곡점을 향해 흐르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물결에 관심을 보이던 엘리자벳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향한 대중들의 관심과 명성을 등에 업고 요제프의 곁을 떠나 주로 헝가리에 머물며 왕실과 거리를 두었다.

“모든 아름다움을 갖춘” 왕가의 여인과 젊은 황제의 영원히 행복할 것 같았던 결혼은 어린 딸의 죽음과 남편의 외도, 그리고 1889년 아버지와 갈등을 일으키던 황태자 루돌프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통해 점점 더 암흑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황태자 루돌프 앞에 나타난 '죽음'(토드)과 '죽음의 천사들'. 결국 루돌프는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황태자 루돌프 앞에 나타난 '죽음'(토드)과 '죽음의 천사들'. 결국 루돌프는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사진=EMK 

아들이 죽은 후 검은 상복의 드레스를 평생 벗지 않았다는 황후 엘리자벳은 모든 정치적 영향력을 내려놓은 채 극소수의 수행원만을 대동하고 유럽의 여러 도시를 떠돌다 1898년 스위스 레만호 근처에서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자 루이지 루케니의 칼에 찔려 사망하였다.

당시 그녀의 나이 61세, 오스트리아의 왕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오로지 ‘자유’를 꿈꾸며 자신만의 삶을 찾기 위해 투쟁한지 44년째 되던 해였다.

최근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는 미하엘 쿤체 작사, 실베스터 르베이 작곡의 뮤지컬 ‘엘리자벳‘의 네 번째 재공연 무대의 막이 내렸다.

1992년 미하엘 쿤체는 전형적인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결이 다른 “새로운 어떤 것”을 선보이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벳’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보다 극적이고, 서사적이며, 음악적으로도 포괄적인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그의 노력은 비엔나의 초연 무대에서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비로 즉위한 엘리자벳 황후.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비로 즉위한 엘리자벳 황후./사진=EMK 

관습과 전통이 가장 중요했던 시대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강요된 모습이 아닌 자신만의 모습을 찾기 위해 투쟁했고,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모든 편견에 맞섰으며, 자유를 위해 많은 것을 내주어야했던 황후 엘리자벳의 삶이 “매우 현대적”이라는 그의 해석은 ‘다름’을 추구하는 ‘새로운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적합한 소재로 여겨졌다.

그는 삶에 대한 주체성, 자유와 독립의 추구는 현대인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19세기라는 당대의 한계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여전히 ‘억압’으로 작용하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점에서, 엘리자벳의 삶이 관객들에게 또 다른 ‘울림’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엘리자벳 황후가 남긴 일기장과 시, 편지들을 토대로 극을 구성했다는 쿤체는 2009년 ‘브로드웨이 월드‘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들의 특징을 “드라마뮤지컬(dramamusicals)”이란 용어로 설명한다.

“음악이 있는 드라마”를 강조하는 그는 음악은 중요한 요소이지만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음악은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반드시 어떤 기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대본을 먼저 쓰고 음악을 덧붙이는 자신의 작업방식이 음악이 이야기에 종속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음악이 이야기를 말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뿐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드라마뮤지컬’이란 용어는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언론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나는 그것이 보다 유럽적인 특징을 설명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뮤지컬이라는 예술 형식이 훨씬 드라마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의 전통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나는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단순히 하루 저녁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연극적 경험을 통해 진정한 정서적 감흥에 이르고 무언가에 대해 더 논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엘리자벳 황후의 삶에 드리워진 '죽음'과 '비극'의 그림자를 형상화한 인물, '토드(Der Tod)'.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엘리자벳 황후의 삶에 드리워진 '죽음'과 '비극'의 그림자를 형상화한 인물, '토드(Der Tod)'./사진=EMK 

쿤체의 ‘연극적인 경험’에 대한 생각은 엘리자벳 황후의 삶에 드리워진 죽음과 비극의 그림자를 ‘토드(Der Tod)’라는 하나의 인물로 형상화하는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만든다.

사냥을 좋아하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며 여성편력과 방랑벽이 심했던 아버지 막스 공작을 따라 서커스 구경을 하거나 말을 타고 집시들과 어울려 춤과 노래를 배우는 모험을 감행했던 엘리자벳은 19세기라는 시대적 제약을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꿈꾸게 된다.

자신을 두고 혼자 떠나버린 아버지를 기다리며 줄타기 연습을 하던 엘리자벳은 어느 날, 나무에서 떨어져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한다. 쿤체는 엘리자벳의 삶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그녀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죽음’을 유예시키고 그녀의 생명을 구한 죽음의 신 혹은 죽음이라는 존재 ‘토드’로 형상화한다.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죽음'을 형상화한 인물 '토드(Der Tod)'와 처음 대면하게 된 어린 엘리자벳.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죽음'을 형상화한 인물 '토드(Der Tod)'와 처음 대면하게 된 어린 엘리자벳./사진=EMK 

꿈속에서 왕자님을 만난 듯 포근했던 아련한 기억은 엘리자벳의 가슴에 ‘토드’를 향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남기고, 위기의 순간이 닥칠 때마다 ‘안식’을 갈망하는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실 ‘죽음’이라는 존재가 엘리자벳의 주변을 맴돌며 그녀가 불안한 선택을 하거나 고통에 흔들릴 때마다 자신과 함께 춤을 출 것을 요구하고 유혹한다는 설정은 꽤 섬뜩하다.

하지만 매력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토드’의 모습에 관객들은 그가 ‘죽음’이라는 사실을 문뜩 잊게 된다. 언뜻 ‘죽음(토드)’은 살고자 분투하는 엘리자벳에게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악마처럼 비춰지기도 하지만 사실 그가 대변하는 것은 궁극적인 삶의 종착지와 진실을 의미할 뿐, ‘죽음’ 그 자체보다는 모든 삶의 노력을 포기하고 죽음으로 달려가 안기고픈 ‘고통스러운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루케니에게 암살당한 후 마침내 '죽음(토드)'을 향해 나아가는 엘리자벳.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루케니에게 암살당한 후 마침내 '죽음(토드)'을 향해 나아가는 엘리자벳./사진=EMK 

요제프 황제와의 결혼을 선택한 엘리자벳을 향해 “이 세상 누구보다 특별한 너”를 외치며, “너의 선택이 과연 진심일까? 그를 향한 환상은 착각일 뿐! 미소를 지으며 안겨 있지만 곧 환상에서 깨어날 거야. 마지막 춤, 넌 나와 춰야 해!”라고 노래하는 ‘죽음(토드)’은 사실상 진실을 설파한다.

왕실의 대를 잇기 위해 의무 속에 자신을 희생하고 줄에 매인 꼭두각시처럼 그 어떤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황후의 삶은 ‘사랑’만 있다면 그 어떤 굴레와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고 맹세했던 엘리자벳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한다.

소피 대공비에게 사정없이 휘둘리는 요제프에게서는 그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 엘리자벳은 고통스러운 순간마다 찾아오는 ‘죽음(토드)’의 유혹을 피해 끊임없이 자유를 되찾고자 조금씩 전진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해 나가기 시작한다.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정치적으로 자신에게 맞서는 엘리자벳 황후를 아들인 요제프 황제 곁에서 떼어놓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소피 대공비.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정치적으로 자신에게 맞서는 엘리자벳 황후를 아들인 요제프 황제 곁에서 떼어놓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소피 대공비./사진=EMK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여 ‘아름다움’을 지키고 운동을 통해 몸매를 가꾸었던 그녀의 ‘미에 대한 집착’과 관련하여 싱클레어는 “비엔나의 고루한 인습과 전통이 강조했던 장대한 의식에 대한 그녀만의 일종의 사적인 복수라 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황후라는 자리에 그녀가 ‘부적합한 사람’이라는 비엔나 궁정의 시선에 반발이라도 하듯 그녀의 아름다움은 세간의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인기라곤 없던 요제프에게 대중의 지지를 불러왔을 뿐 아니라 전 유럽 왕실의 아이콘이 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낡은 세대의 제국주의적 독재자”로 여겨졌던 요제프와 다르게 헝가리와 아일랜드에서 불어오는 자유를 위한 투쟁과 독립을 위한 저항에 관심을 표하고 기꺼이 그들의 ‘명분’이 되기를 선택했던 것은 소피 대공비와 대적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끝없이 새장 속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던 그녀의 정체성 때문이기도 했다.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새장에 갇힌 새처럼 답답함을 느끼는 엘리자벳을 보호해줄 수 없는 요제프 황제와 조금씩 지쳐가는 엘리자벳 황후.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새장에 갇힌 새처럼 답답함을 느끼는 엘리자벳을 보호해줄 수 없는 요제프 황제와 조금씩 지쳐가는 엘리자벳 황후./사진=EMK 

어쩌면 노동자 계급이 부상하고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적 흐름이 ‘혁명’과 ‘독립’을 외치도록 만들었던 시기에 가장 강력한 규율과 법도가 강제되는 왕실에서 ‘죽음’ 외엔 그 위계질서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황후가 반(反)전통과 혁명을 추구하고 ‘해방’을 노래하는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를 탐독하며 독립된 국가 헝가리에 머물기를 원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뮤지컬 ‘엘리자벳‘의 또 다른 흥미로운 구조는 엘리자벳 황후의 서사를 전달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암살자 루이지 루케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이미 절대적 권력을 주장했던 왕조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는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지던 후세의 사고에서 그녀를 비추게 된다는 점에서 역사가 바라보는 ‘엘리자벳’을 드러내게 된다.

막이 열리면 100년 동안 목이 매달려 황후 엘리자벳을 암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루케니가 등장한다. 그는 재판장에게 자신은 일평생 ‘죽음’을 사랑하며 스스로 죽기를 원했던 그녀를 도와줬을 뿐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항변한다.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엘리자벳 황후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신선한 송아지 고기로 팩을 하고 우유로 목욕을 하는 사치스러움으로 인해 군중들이 먹을 우유마저 한 방울도 남겨놓질 않는다. 루케니는 '민중의 해방'을 위해 싸울 것을 외치며 굶주린 군중들을 선동한다.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엘리자벳 황후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신선한 송아지 고기로 팩을 하고 우유로 목욕을 하는 사치스러움으로 인해 군중들이 먹을 우유마저 한 방울도 남겨놓질 않는다. 루케니는 '민중의 해방'을 위해 싸울 것을 외치며 굶주린 군중들을 선동한다./사진=EMK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 황후 암살의 숨겨진 배후에 관한 질문을 한다는 설정은 엘리자벳의 삶에 드리워진 ‘죽음’의 존재에 대한 증언을 하기 위해 ‘죽은 자’들을 소환하도록 만든다.

며느리가 예민했을 뿐 “너무 많은 것을 원한 탓에 불행했다”고 말하는 소피 대공비, “늘 공허했던 삶”을 부르짖으며 아내를 향한 변치 않는 사랑을 토로하는 요제프, “혼자 남겨졌다는 외로움”에 지쳐 죽음을 선택했다는 루돌프, 세상이 부여한 모든 무게를 벗어던지려던 그녀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자신만의 자유”였음을 외치는 루케니는 그녀를 향해 묻는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하나 될 수 없는 그녀! 그대, 아름다운 자! 어떤 꿈을 꾸었나? 대체 무엇을 원했나? 무엇이 그대를 망쳤나?”

언제나 ‘자유’를 갈망했으나 ‘죽음’외에는 안식과 평화를 찾을 수 없었던 여인, 정신병원에 갇혀 자신이 ‘황후’라 주장하는 미친 여인을 바라보며 몸이 묶여 있는 그녀보다 영혼이 묶여 있는 자신이 더 불행하다 여겼던 여인, 오직 광기와 죽음 외엔 탈출구가 없는 것인가 의심하며 그저 끊임없이 한발씩 내딛으며 왕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유럽 전역을 떠돌았던 여인... 사실 무정부주의자 루케니에게 엘리자베스는 목적을 달성하기에 가장 적합한 표적이었다.

그는 암살 후 심문 과정에서 “나는 내가 걸어가는 길에서 만난 첫 번째 왕족을 암살했을 뿐이다. 나는 본보기를 보이고 싶었고 그것이 왕자이든 황후이든 황제이든 상관없었다. 내가 죽여야 할 사람은 반드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어야 했고, 그의 죽음이 신문 곳곳에 실릴 수 있는 유명인사여야만 했다”라고 말했다.

오로지 암살행위를 통해 봉건주의 질서를 파괴할 필요를 알리고 사생아로 태어나 고아원에서 자란 불행한 삶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루케니에게 벨기에의 공작부인으로 변장했으나 이미 스위스 언론에 의해 그 소재지가 모두 드러난 황후는 매우 쉬운 표적이었다.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아들의 죽음 이후 죄책감에 시달리며 검은 상복 드레스를 평생 벗지 않은 엘리자벳 황후.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장면. 아들의 죽음 이후 죄책감에 시달리며 검은 상복 드레스를 평생 벗지 않은 엘리자벳 황후./사진=EMK

그녀의 이러한 행보는 세간의 사람들에게 ‘죽음’을 향해 스스로 다가간 여인이란 평을 듣도록 만들었고, 그녀의 평소 ‘예정된 끝’에 대한 언급 또한 ‘죽음’을 사랑한 여인이라는 상상을 가능토록 만들었다. 엘리자벳은 ‘죽음’을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나는 항상 나의 운명과 조우하기 위해 걸어왔다. 그 어떤 것도 내 운명의 날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가끔 운명은 자신의 눈을 감기도 하지만 곧 다시 눈을 뜨고 우리를 바라본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와 속박, 의무와 역할 속에서 자신의 주체적 삶을 영위할 수 없었던 여인, 민중의 어머니 역할을 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아이에게조차 어머니가 될 수 없었던 여인, 시대가 허락하는 ‘해방’을 추구했지만 자립심이 오히려 이기심으로 읽혀 왕실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여인이 간절히 바랐던 것은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는 세상이었다.

사후 120년이 되도록 그녀의 삶이 이야기되고 예술로 형상화되는 것은 아마도 ‘자유’를 향한 모든 이들의 희망이 같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든 자신만의 상황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속박과 굴레를 느낄 때, 다른 사람의 잣대로 나를 규정하는 차가운 시선을 느낄 때, 나를 위한 삶이 이기적인 것이라 손가락질 당하는 아픔을 느낄 때, 내가 힘들게 지켜온 모든 것들이 싸구려 ‘키치(Kitsch)’로 전락하고 마는 좌절을 느낄 때, 엘리자벳의 “내 주인은 나야!”라는 넘버를 흥얼거리게 되는 것은 모든 이가 외줄타기와 같은 위험한 삶일지라도 새장 속에 갇힌 삶보다는 자유로운 자신만의 삶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2월 21일~24일 대전예술의 전당 아트홀.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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