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떠나는 여행...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 ’피노키오’
‘내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떠나는 여행...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 ’피노키오’
  • 주하영
  • 승인 201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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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1883년 카를로 콜로디(Carlo Collodi)의 동화 '피노키오 Pinocchio' 원작
 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의 '피노키오' 포스트 컷./사진=LG아트센터
 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의 '피노키오' 포스트 컷. /사진=LG아트센터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브라질의 연극 이론가 아우구스트 보알(Augusto Boal)은 ‘연극, 인간‘이라는 글에서 “연극은 인간의 첫 번째 발명품”일 뿐 아니라 “모든 다른 발명과 발견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말했다.

“보는 행위”(the act of seeing) 속에서 스스로를 관찰하고 자신을 발견하며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상상하는 일인 연극은 “관찰하는 나”(The observing-I)를 통해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을 인지하도록 만든다.

보알은 ‘내가 존재하는 곳’에서부터 ‘내가 될 수 있는 것’사이의 거리를 인식하고 자신을 ‘안’에 위치시키면서도 상황의 ‘바깥’에 위치시킬 수 있는 3차원을 구현하는 능력으로 인해 인간만이 ‘모방’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보는 행위’ 속에서 무언가를 관찰하는 자신을 느끼고 인식하며 발전하는 존재...인간은 여러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고 깨닫게 된 인식들을 바탕으로 ‘자신이 상상하는 무언가’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존재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LG아트센터에서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퍼포먼스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영국 댄스 씨어터 컴퍼니의 연출가이자 안무가인 야스민 바르디몽(Jasmin Vardimon)의 2016년 신작 ‘피노키오‘의 짧은 공연의 막이 내렸다.

공연 장면. 아직 두 발로 서지 못하는 나무 인형 '피노키오'를 바라보는 제페토. '인형보다 더 인형스러운' 퍼포머의 움직임은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피노키오' 공연 장면. 아직 두 발로 서지 못하는 나무 인형 '피노키오'를 바라보는 제페토. '인형보다 더 인형스러운' 퍼포머의 움직임은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사진=LG아트센터

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JVC)는 1997년 런던에서 출범해 2003년 ‘자장가 Lullaby‘로 주목을 받은 후 현재까지 선보여온 모든 작품들이 영국의 관객들로부터 엄청난 환호와 갈채를 받아온 것으로 유명하다.

2006년부터 새들러스 웰스 극장의 협력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스라엘 출신의 안무가 바르디몽은 “인간 행동에 관한 예리한 관찰”을 바탕으로 피지컬 씨어터와 연극적 텍스트가 결합된 다층적인 댄스 씨어터를 구현한 공을 인정받아 2014년 ‘영국예술위원회 특별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로열 홀러웨이 런던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바르디몽은 고난이도의 대담한 안무들과 상호작용하는 무대 세트, 연극적 스토리텔링, 애니메이션과 영화와 같은 기술을 조합한 퍼포먼스로 개인과 사회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관계나 정치적 책임과 같은 문제들을 탐구한다. 교훈적이라기보다는 관객들이 퍼포먼스에 집중함과 동시에 열린 해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하는 특징을 지닌다.

바르디몽은 2017년 리비 워스(Libby Worth)와 함께 출간한 책을 통해 “해석이 예술의 연장”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관객들이 작품의 행간을 ‘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신만의 이해와 해석의 층위를 덧붙일 것이라고 믿는다.”

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의 '피노키오' 공연 장면. 목수 '제페토'는 천막 속에서 나무토막으로 마리오네트 인형 '피노키오'를 만든다. 천막 안의 그림자를 통해 '제페토'가 '피노키오'를 만드는 모습이 동화처럼 펼쳐진다./사진=트레일러 캡쳐 컷
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의 '피노키오' 공연 장면. 목수 '제페토'는 천막 속에서 나무토막으로 마리오네트 인형 '피노키오'를 만든다. 천막 안의 그림자를 통해 '제페토'가 '피노키오'를 만드는 모습이 동화처럼 펼쳐진다./사진=트레일러 캡쳐 

워스는 ‘댄스 씨어터’ 혹은 ‘댄스 드라마’라 불리는 바르디몽의 작품들을 특정 장르로 분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독일 표현주의 댄스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고 형식면에서 춤에 좀 더 치우쳐 있다는 점에서 ‘피지컬 씨어터’보다는 ‘댄스 씨어터’라는 용어가 더 적합할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2016년 작품인 ‘피노키오‘의 경우 피지컬적인 특징이 보다 강조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피노키오가 나무로 만들어진 마리오네트 인형이라는 점에 근거하는데, 인간 무용수가 표현하는 ‘피노키오’의 동작과 표정, 행동과 모습이 관객들에게 완벽하게 실제 ‘줄 없는 인형’처럼 인지되고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꿈꾸는 몽상가로서 퍼포먼스 팀과 함께 꿈을 현실로 만드는 마술”을 펼치고자 노력하는 예술가 바르디몽은 영국 온라인 매체 ‘에브리씽 씨어터(Everything Theatre)‘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관객들에게도 적합한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동화인 ‘피노키오‘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공연 장면. 갓 태어난 망아지 혹은 첫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인 양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고 주저 앉아버리는 마리오네트 인형 '피노키오'
'피노키오' 공연 장면. 갓 태어난 망아지 혹은 첫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인 양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고 주저 앉아버리는 마리오네트 인형 '피노키오'/사진=LG아트센터

그녀는 1940년에 제작된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 ‘피노키오‘가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보다 익숙한 버전임이 분명하지만 1883년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Carlo Collodi)의 원작 ‘피노키오(Pinocchio: The Tale of a Puppet)‘를 읽고 난 뒤 훨씬 풍부한 영감과 많은 질문들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소작농이 교육될 수 있었을까, 소작농의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진짜 소년’이 될 수 있었을까, 그들은 단지 당나귀처럼 노동력이 될 운명이었던 것일까”와 같은 교육의 본질에 관한 질문들은 그녀로 하여금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한 탐구의 길을 열어주었다.

사실 나무로 만들어진 인형이 여러 모험을 겪고 자신이 “용감하고 진실되며 이기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진짜 소년’이 되는 이야기인 디즈니 버전의 ‘피노키오‘는 ‘양심’에 따라 옳고 그른 것을 선택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될 필요를 강조한다.

반면 콜로디의 원작 소설은 19세기 이탈리아 소작농의 어린 시절이 어땠을지, 그들의 삶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과 비극적인 요소들은 무엇인지를 꼬집는 풍자로 가득하다.

1881년 아이들을 위한 주간지에 게재되기 시작해 1883년 책으로 출간된 원작은 총 3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원래 어린 독자들만을 겨냥해 쓸 생각이 없었던 콜로디의 사회 비판적 목소리와 소작농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으로 인해 소설의 결말이 1881년 15번째 에피소드를 끝으로 피노키오가 나무에 매달려 죽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독자들의 항의에 의해 콜로디는 ‘푸른 요정’(the Blue Fairy)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지금의 원작을 완성하게 된다.

공연 장면. 아직 두 발로 서지 못하는 나무 인형 '피노키오'가 걷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바라보는 '제페토'.
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의 '피노키오' 공연 장면. 아직 두 발로 서지 못하는 나무 인형 '피노키오'가 걷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바라보는 '제페토'./사진=트레일러 캡쳐 

동화 연구가 잭 자이프스(Jack Zipes)에 따르면, 디즈니의 ‘피노키오‘는 나무인형이 행복한 인간 소년이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콜로디의 ‘피노키오‘는 “왜 마리오네트 나무인형이 그렇게까지 힘든 고생을 하면서 굳이 정직하고 바른 소년이 되려고 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리도록 만드는 험난하고 무시무시한 곤경들이 가득한 희비극이다.

자이프스는 이탈리아 소작농 계급 출신인 콜로디가 피노키오를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할 “선하지만 행실이 나쁜 아이의 모범적인 예시”로 만들려 했다기보다는, 당대의 혹독한 현실을 보여주고 교육받은 지배계층의 시선에서 바라본 교육이 아닌 소작농 소년이 스스로 책임감을 획득하고 인간다운 동정심을 갖춘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을 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으로 해석한다.

이스라엘만의 독특한 집단 공동체인 ‘키부츠(kibbutz)’에서 성장한 바르디몽은 “창의성과 정신, 표현을 개발시키는 교육”이 강조되었던 키부츠만의 교육방식을 통해 습득한 것들을 작업과정에서 많이 활용한다.

‘피노키오‘의 경우 끊임없이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발전시켜줄 필요성과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에 근거해 자신의 여러 감정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할 필요성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4시부터 8시까지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또래 집단의 아이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 자신의 공포를 해결할 방법이나 아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처할 방법을 가르쳐 줄 어른이 없기 때문에 충분한 자유 시간을 가지는 만큼 스스로 책임지는 법 또한 배워야 했음을 강조한다.

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의 '피노키오' 공연장면.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의 모습은 7명의 퍼포머들의 엄지 손가락으로 연결되는 퍼포먼스로 환상적이고 마술적으로 연출된다./사진=트레일러 캡쳐 

매일 전날 밤 자신이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중 하나를 ‘이야기’로 만드는 작업을 이어나갔던 키부츠의 창의적인 교육방식과, 정기적으로 심리학자들과의 면담과정을 거쳐 예술을 통해 내면의 감정들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던 경험은 바르디몽의 “정신 상태를 인식하는 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부인하는 “분노와 질투심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그것들이 어떤 이유로 인해 촉발되었는지를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안무는 단지 “몸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신의 문제이기도 하다”라고 주장하는 바르디몽은 무대 위에서 감정적으로 충만한 에너지를 거침없이 표현하는 퍼포머들을 통해 그 에너지가 관객들에게로 흐르고 어떤 ‘의미’가 형성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배경은 그녀로 하여금 피노키오가 인간이 된다는 것은 ‘감정’을 통해 ‘자유와 책임의 문제’를 배우게 되는 것이라는 의견을 표현토록 만든 것으로 보인다.

무대가 열리면 뻐꾸기시계의 태엽 장치나 오르골을 연상케 하는 퍼포머들의 기계적 움직임이 ‘제페토(Geppetto)’가 시계공임을 알려준다.

오르골 음악 소리에 맞춰 움직이던 퍼포머들이 멈추고 지팡이를 짚고 등장한 제페토는 커다란 천막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어둠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퍼포머들이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만들어 낸 ‘해설자’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 옛적에 나무토막이 하나 있었어요. 평범한 난로의 땔감으로 쓰일 법한 그런 나무토막이었죠. ...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어요. 단지 어느 날 나무토막이 제페토라는 목수 앞에 나타났다는 것 밖에는 말이죠.”

'피노키오' 공연 장면. 목수 제페토는 '살아있는 인형' 피노키오에게 '걷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모든 관절과 발목이 힘 없이 주저앉고 잘못된 방향으로 돌아가는 마리오네트 인형의 특징들을 '퍼포머'는 극대화된 신체적 움직임을 통해 자유자재로 표현한다.
'피노키오' 공연 장면. 목수 제페토는 '살아있는 인형' 피노키오에게 '걷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모든 관절과 발목이 힘 없이 주저앉고 잘못된 방향으로 돌아가는 마리오네트 인형의 특징들을 '퍼포머'는 극대화된 신체적 움직임을 통해 자유자재로 표현한다./사진=LG아트센터

콜로디의 원작에 근거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공연은 무대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커다란 천막 안의 그림자들을 통해 제페토가 피노키오를 만드는 모습을 동화처럼 펼쳐 보인다.

밤사이 ‘소원의 별’에서 내려온 푸른 요정의 손짓에 의해 ‘생명’을 얻게 된 피노키오는 제페토 앞에서 살아 움직이며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다.

마치 망아지가 땅에 발을 딛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듯 혹은 어린 아이가 첫 걸음을 떼기 위해 넘어지고 엎어지는 일을 반복하듯 정말 마리오네트 인형이기라도 한 듯 두 발로 좀처럼 서지 못하는 퍼포머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바르디몽은 기본적으로 콜로디의 원작에 근거한다. 그러나 나무 인형 피노키오가 “호기심과 공포, 외로움,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에 노출되고 강렬한 경험을 통해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용기를 갖춘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야 할 필요성을 깨닫는 과정과 자신이 꿈꾸는 바를 실현시키기 위해 의지를 발현하게 되는 여정에 필요한 장면들을 선별해 무대 위에 구현한다.

디즈니의 ‘피노키오‘에 등장하는 ‘양심’ 역할의 지미니 크리켓(Jiminy Cricket)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해설자’는 검은 옷을 입은 퍼포머들의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구현된 얼굴과 목소리로 표현된다.

제페토는 하나 밖에 없는 외투를 팔아 ABC 알파벳 교재를 사고 피노키오를 학교에 보내지만 호기심으로 가득한 피노키오는 여우와 고양이의 꼬임에 빠져 마리오네트 극장에 이른다.

공연 장면. 마리오네트 극장의 인형들의 '공연' 장면. '인형보다 더 인형스러운' 퍼포머들은 다른 퍼포머들이 힘의 '반동'을 이용해 조절하는 '줄'에 의지해 실제 마리오네트와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의 '피노키오' 공연 장면. 마리오네트 극장의 인형들의 '공연' 장면. '인형보다 더 인형스러운' 퍼포머들은 다른 퍼포머들이 힘의 '반동'을 이용해 조절하는 '줄'에 의지해 실제 마리오네트와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사진=트레일러 캡쳐  

극장에서 줄에 매인 채로 마리오네트 공연을 선보이는 인형들의 모습은 ‘인형보다 더 인형스러운’ 퍼포머들의 신체 움직임을 통해 표현된다.

흥미로운 점은 모든 퍼포머들의 신체적 움직임이 무대 배경에 매달려 있는 나무판으로 된 각종 세트들과 천, 거대한 비닐, 줄을 활용하는 다른 퍼포머들과의 협업을 통해 힘의 반동이나 원심력, 중력과 같은 것에 의지하며 기계장치의 도움 없이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공중에서 벌어지는 에어리얼 퍼포먼스나 마리오네트의 줄에 의지한 공연 장면, 거짓말을 하면 피노키오의 코가 길어지는 장면, 폭풍우가 거센 바다로 돛단배를 타고 제페토가 피노키오를 찾아 나선 장면 등은 모두 8명의 퍼포머들이 펼쳐 보이는 놀랍고도 환상적인 협업과 완벽한 타이밍의 호흡에 의해 구현된다.

공연 장면. 서커스 단장의 채찍을 든 팔은 퍼포머들의 서로 연결된 '팔'에 의해 길어졌다 짧아졌다를 반복하며 '공포감'을 조성한다.
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의 '피노키오' 공연 장면. 서커스 단장의 채찍을 든 팔은 퍼포머들의 서로 연결된 '팔'에 의해 길어졌다 짧아졌다를 반복하며 '공포감'을 조성한다./사진=트레일러 캡쳐  

무대 위에서 거의 대부분의 장면을 소화해야 하는 피노키오 역의 퍼포머를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퍼포머들은 자유자재로 역할을 바꾸며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인간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수많은 모순된 감정들에 반응하며 정서적 혼란을 겪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욕망과 충동이 가리키는 길을 고집하는 소년에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마리오네트 극단 단장에게서 받은 금화 5개를 손에 쥐고 집을 향해 떠난 피노키오는 돈을 빼앗으려는 여우와 고양이의 속임수에 빠져 ‘빨간 가재 여관’에서 금화 1개 값어치의 식비를 계산한 것으로도 모자라 ‘바보들의 함정’이라는 마을에 나머지 금화들을 묻는다.

‘기적의 땅’에 돈을 묻으면 몇 배로 불어나는 나무가 자란다는 거짓말을 믿고 한참을 놀다 돌아온 피노키오는 이미 여우와 고양이가 자신의 돈을 전부 훔쳐간 것을 알고 분노하지만 그들을 잡을 방법은 없다.

공연 장면. 욕심 많은 여우와 고양이에게 자신의 '금화'를 보여주는 어리석은 피노키오. 결국 여우와 고양이의 꼬임에 빠진 피노키오는 모든 '금화'를 도둑 맞는다.
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의 '피노키오' 공연 장면. 욕심 많은 여우와 고양이에게 자신의 '금화'를 보여주는 어리석은 피노키오. 결국 여우와 고양이의 꼬임에 빠진 피노키오는 모든 '금화'를 도둑 맞는다./사진=트레일러 캡쳐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간 정말로 “오직 노동만 하는 당나귀”가 되어버릴 것을 경고하는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고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 푸른 요정에게 ‘거짓말’을 일삼는 피노키오의 코는 검은 옷을 입은 7명의 퍼포머들이 자신들의 엄지손가락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놀랍게 연출된다.

자유자재로 길이를 조절하며 유연하게 움직이는 기다란 코는 “짧은 다리를 가진 거짓말과 긴 코를 가진 거짓말”의 교훈을 환상적이고 마술적인 장면으로 구현해 보인다.

거짓말은 결코 ‘진실’을 앞지를 수 없으며 자라나는 ‘코’로 인해 그 흔적을 숨길 수도 없다.

여전히 집으로 되돌아가지 못한 채 친구들 틈에 끼어 왕따를 당하고 ‘슬픔’이라는 감정에 노출된 피노키오는 게으름으로 일관하고 양심의 충고를 무시한 탓에 결국 당나귀 탈을 쓴 채로 끝없는 노동에 착취당하게 된다.

공연 장면. '게으름'으로 일관하고 '양심'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탓에 진짜 '당나귀'로 변해버린 친구들과 피노키오는 끝없는 '노동'에 착취당한다.
'피노키오' 공연 장면. '게으름'으로 일관하고 '양심'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탓에 진짜 '당나귀'로 변해버린 친구들과 피노키오는 끝없는 '노동'에 착취당한다./사진=LG아트센터

우여곡절 끝에 바다로 자신을 찾으러 간 제페토와 재회하지만 그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피노키오는 나의 새로운 모험입니다”라고 말하는 바르디몽은 피노키오가 인간으로 변모하는 이유에 대해 디즈니 버전이나 콜로디의 원작과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적용한다.

바르디몽은 흰 장갑을 낀 손들로 구현된 ‘해설자’의 입을 빌어 마리오네트 인형인 피노키오가 어떻게 커다란 상어(고래)의 뱃속에서 아버지 제페토와 함께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음을 강조한다.

“피노키오가 이 여정을 통해 진짜 소년이 될 수 있을만한 인간의 감정들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감정들은 원래부터 피노키오에게 “내재되어 있던 것들”일 뿐 ‘생명’을 부여받은 나무인형에 불과했던 피노키오가 ‘인간’으로 거듭나는 데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탐구하며 “사랑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꿈을 꾼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닫는 과정에 있었음을 피력한다.

공연 장면. 피노키오가 곤경에 처할 때면 나타나 '도움'을 주는 '푸른 요정'은 피노키오에게 아버지 제페토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것을 충고한다.
야스민 바르디몽 컴퍼니의 '피노키오' 공연 장면. 피노키오가 곤경에 처할 때면 나타나 '도움'을 주는 '푸른 요정'은 피노키오에게 아버지 제페토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것을 충고한다./사진=트레일러 캡쳐  

자유 속에서 여러 가지 감정에 노출되고 경험이라는 깨달음을 통해 변화와 책임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피노키오의 여정은 현대의 관객들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삶을 선택하게 되는 방식과 같다.

때로는 완고함으로 자신이 욕망하는 것만을 탐하고, 뻔히 드러나는 거짓을 일삼기도 하지만 순수함이 외면당하고 속임수와 유혹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세상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친절에 기대고 사랑에 보답할 필요를 느끼며 스스로 책임지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바르디몽이 말하는 ‘진정한 인간이 되는 법’인지도 모른다.

보알의 지적처럼 “홀로 상상의 거울 속에서 자신을 관찰하는 능력”을 갖춘 인간이 끊임없이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미래의 ‘내가 될 수 있는 것’을 향해 움직이는 존재라면, 바르디몽의 피노키오는 결국 자신이 상상하는 바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 낸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리오네트 인형 피노키오는 단순히 ‘줄 없이 움직이는 인형’이 아닌 자유로운 인간이기를 꿈꾸었고 스스로 ‘감정의 소용돌이’를 빠져나와 자신이 상상하던 존재인 ‘인간’으로 완성되었다. 꿈은 현실이 되었고, 삶은 모험을 완성했다.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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