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과 각색 사이에 존재하는 의미의 '틈'...뮤지컬 '웃는 남자'
원작과 각색 사이에 존재하는 의미의 '틈'...뮤지컬 '웃는 남자'
  • 주하영
  • 승인 20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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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부평구문화재단 SAC On Screen 공연 실황 상영, EMK뮤지컬컴퍼니 창작 뮤지컬
뮤지컬 '웃는 남자'/사진=EMK뮤지컬컴퍼니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이자 극작가, 시인, 정치가인 빅토르 위고(Victor Hugo)는 1848년 제2공화정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던 루이 나폴레옹이 1851년 쿠데타를 일으키고 황제에 즉위하려하자 이에 반대하는 정치적 메시지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프랑스 대혁명(1789)의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고수하는 민주주의만이 계몽주의 시대에 가장 적합한 사회적 이상이라 부르짖던 위고가 제정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치적 탄압을 피해 망명의 길에 올랐던 위고는 1870년 파리로 되돌아올 때까지 19년 동안 ‘레미제라블’을 포함한 대작들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망명 15년에 접어들던 1866년 위고는 자신의 정치적 삶과 문학적 주제들을 모두 아우르는 3부작 시리즈를 집필하기로 결심하고, 1869년 ‘웃는 남자(L'Homme Qui Rit)’를 출판했다.

하지만 개인적 삶의 역사와 철학, 정치적 이상과 꿈, 욕망과 죽음, 후회와 성찰까지 위고 스스로 “지금까지 내가 쓴 그 어떤 책보다도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던 ‘웃는 남자’는 방대한 분량과 지나치게 과도한 설정, 무리한 사건 전환으로 인해 비평가들과 독자들의 혹독한 비난을 받았고 “최고의 실패작”으로 여겨졌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장면/사진=EMK뮤지컬컴퍼니

귀족과 군주, 혁명에 관한 정치소설 3부작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였던 위고는 ‘웃는 남자’의 서문에 “이 책의 진정한 제목은 ‘귀족(Aristocracy)’이며, 다음 책은 ‘군주제(Monarchy)’가 될 것이고, 마지막 책은 ‘93년(Ninety-Three)’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1873년에 3부작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프랑스 대혁명기의 방데 전쟁(1793-1801)을 다룬 소설 ‘93년’을 출판했지만 끝내 두 번째 책은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누구보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가득했던 작가, 민중의 계도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이상주의자 위고는 오랜 망명 생활 동안 자신이 보고 듣고 느꼈던 많은 것들을 ‘웃는 남자’ 속에 쏟아 부었고, 그윈플렌(Gwynplaine)이라는 인물을 창조함으로써 잔혹하고 동정심이 부족한 귀족들에게 착취당하는 빈민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는 사회의 현실을 낱낱이 드러냈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그윈플렌의 평가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약자들을 함부로 희생시키는 왕과 귀족들이 지배하는 사회의 문제점을 한 마디로 축약한 것이었다.

최근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서는 “전국 어디에서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예술의 전당 무대를 만날 수 있다”는 취지 아래 2013년부터 우수한 작품들을 영상화해 지역 공동체에 무료로 제공해 온 SAC ON SCREEN(예술의 전당 영상화사업)의 뮤지컬 ‘웃는 남자’가 상영되었다.

위고의 원작을 바탕으로 창작 뮤지컬로 각색된 ‘웃는 남자’는 EMK 뮤지컬 컴퍼니에 의해 제작되어 2018년 7월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뮤지컬 '웃는 남자' 콘셉트컷. 그윈플렌(박강현)./사진=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와 ‘몬테 크리스토’ 등으로 유명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로버트 요한슨 연출로 한껏 기대를 모았던 뮤지컬 ‘웃는 남자’는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그윈플렌의 문장을 전면에 내세우며 상위 1%에게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잔혹하게 ‘웃는 얼굴’로 만들어진 광대의 이야기를 화려한 무대와 캐스팅으로 선보였다.

와일드혼은 작곡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비행기 안에서 요한슨의 권유로 장 피에르 아메리스 감독의 프랑스 영화 ‘웃는 남자(2012)’를 보게 되었고, 영화에 매료된 나머지 3번을 반복해서 보다 결국 펜을 들어 작곡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이토록 감명을 받은 영화가 사실은 지나친 각색으로 인해 비난에 직면했던 작품이라는 점이다. 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는 1928년 폴 레니 감독의 무성영화를 비롯해 1940년 DC코믹스의 만화 ‘배트맨’의 악당 조커, 2013년 데이비드 하인의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그리고 2016년 칼 그로즈 각색의 뮤지컬 ‘웃는 남자(The Grinning Man)’에 이르기까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지만 정작 “시대의 거울”이라 불리는 원작이 담고 있는 방대한 철학과 사유를 살려내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존재했다.

창작 뮤지컬 ‘웃는 남자’ 역시 각색이 존재한다. 연출과 대본을 맡은 요한슨은 어떻게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기형의 모습을 한 청년과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의 사랑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울림을 낳기에 충분했고, 주제 또한 “현실을 보지 않으려는 상위 1% 사람들의 책임”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 시대에도 공감을 불러올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장면. 그윈플렌(수호)./사진=EMK뮤지컬컴퍼니

그래서일까? 뮤지컬 ‘웃는 남자’의 무대는 화려한 귀족들의 세상과 초라한 집시‧광대들의 세상으로 양분되며, 인물들 또한 서로를 무시하고 비아냥거리는 부유한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고 따뜻하게 보듬는 가난한 세상에 속한 사람들로 구분된다.

이 때문에 그윈플렌의 이복형인 데이빗 더리모어 경은 원작과 다르게 악역으로 변경되며, 구속받지 않을 자유를 좀 더 즐기기 위해 결혼을 미뤄온 원작의 설정 역시 신분상승을 위해 빠른 결혼에 이르고자 고군분투하는 데이빗 경으로 변경된다.

원작에서 톰-짐-잭이란 가명으로 서민들의 삶에 섞여 유흥과 오락, 싸움을 즐기며 살아온 데이빗 경은 의회에서 귀족들을 향해 빈민들의 현실을 가감 없이 쏟아낸 그윈플렌의 비난이 피할 수 없는 진실임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인물이며, 그윈플렌을 비웃은 귀족들의 비열함에 도전장을 내미는 나름 용기 있는 인물이다.

반면, 뮤지컬 ‘웃는 남자’의 경우 데이빗 경은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조시아나를 그윈플렌에게 안내하고, 그의 괴이한 외모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조시아나에 대한 질투로 그윈플렌이 사랑하는 데아를 겁탈하려다 제지당하는 비겁하고 졸렬한 인물로 그려진다.

또한, 그는 서자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 행복할 권리”를 빼앗겼음에 분노한 나머지 2살에 불과한 이복동생을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에게 넘겨 입이 찢어진 광대로 살아가도록 만든 파렴치한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원작의 경우, 그윈플렌을 콤프라치코스에게 팔아 넘겨 신분을 알 수 없도록 만들고, 앤 여왕의 이복동생인 조시아나에게 공작이라는 지위를 부여해 데이빗 경과의 결혼까지 정해 놓은 사람은 제임스 2세 국왕이다. 이러한 변경은 위고가 전달하려 했던 주제에 변화를 가져온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장면. 모든 것을 갖추고 태어난 귀족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조시아나 여공작. 앤 여왕의 배다른 동생인 조시아나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갖춘 탓에 삶의 지루함을 느끼고 자극제를 필요로 한다./사진=EMK뮤지컬컴퍼니

제임스 2세가 그윈플렌을 콤프라치코스에게 팔아넘긴 것은 공화제를 끝까지 지지하며 자신에게 반하는 그윈플렌의 아버지 린네우스 클랜찰리 경을 응징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콤프라치코스는 어린 아이들을 사서 인위적인 방법으로 괴물과 같은 얼굴과 몸을 만들어 광대로 훈련시키던 집단의 이름이었다. 왕과 귀족들이 자신에게 반하는 누군가나 성가신 상속자를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콤프라치코스를 활용했다는 사실은 그윈플렌의 “귀까지 찢어진 입, 드러난 잇몸과 으깨어진 코”의 얼굴이 “운수 좋은 자들이 불운한 자들을 향해 벌이는 착취”를 대변하는 것임을 드러내도록 만든다.

있는 힘을 다해 단호한 의지를 표현하려 해도 곧바로 이가 드러나며 우스꽝스러운 웃음을 짓게 되는 그윈플렌의 얼굴은 하층민의 삶의 절망스러움과 비참함을 상징한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장면. 사람들이 모이는 장터에서 공연을 하며 살아가는 집시와 광대들, 데아, 그윈플렌, 우르수스. 뮤지컬 '웃는 남자'의 경우,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위로하고자 애쓴다./사진=EMK뮤지컬컴퍼니

권력을 쥔 자에 의해 영원히 비웃음과 천대를 받도록 운명 지어진 슬픔, 겉으로는 웃고 있으나 속으로는 울고 있는 빈민들의 고통, 운 좋게 모든 것을 쥐고 태어난 자들이 규정해 놓은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좌절과 상처... 그윈플렌의 웃는 얼굴의 흉측함은 그 자체로 상위 1%들의 잔인함과 기괴함, 포악한 욕망과 탐욕의 그림자를 폭로하고 비난한다.

뮤지컬 ‘웃는 남자’의 경우, 제임스 2세의 악행이 제거된 대신 앤 여왕의 탐욕과 잔인한 속성을 추가함으로써 상위 1%의 무자비함과 천박함이 유지된다. 하지만 귀족들의 변태적인 욕망과 허영, 이중적인 잣대를 대변하는 조시아나 여공작의 캐릭터에 깨달음과 변화의 가능성이라는 설정을 더함으로써 힘 있는 자들의 변덕과 오만에 대한 공격과 비난이라는 주제의식이 약화된다.

또한, 권력에 기생하면서도 끊임없이 조시아나의 곁에서 복수의 길을 모색하고 혐오로 일관하는 병마개 제거사 바킬페드로의 기형적 캐릭터를 부각시키지 못함으로써 연민과 자비가 부족한 사회 속에서 점점 인간성을 잃고 분노, 욕망으로만 치닫게 되는 광기 어린 사람들이라는 주제를 단순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물론 엔터테인먼트적 속성이 강조되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단순화와 일반화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원작의 경우, 독자들이 주목하는 것이 ‘그윈플렌과 데아의 비극적인 사랑’이라는 외면적 틀보다 현재와 비교해도 크게 다를 것이 없는 17세기 영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냉소적인 메시지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장면. 상원들의 의회에 참석한 상위 1% 중의 1%, 앤 여왕(김나윤)./사진=EMK뮤지컬컴퍼니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데아가 그윈플렌의 다른 감각에 빗댄 묘사에 의거해 상상 속에 세상을 그려내는 방식에 대한 표현이나 인간 혐오자라 말하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우르수스의 다층적인 측면의 구현,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을 계속 들려주는 바이올리니스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내레이터처럼 배치시킨 점 등은 장점이다.

또한, 무대 디자이너 오필영의 설명처럼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상처’에 대해 보이는 다른 태도에 주목해 부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찢어진 입을 갖게 된 그윈플렌의 ‘상처’를 드러내는 무대 장치들을 배치한 점과 상원 의회에서 앤 여왕과 귀족들의 모습을 희화화한 방식 등도 흥미롭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장면./사진=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웃는 남자’는 10살의 어린 그윈플렌이 위법 행위가 발각될 것을 염려한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항구에 버려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겨울 밤 눈보라가 몰아치는 차가운 대륙의 모습은 온 몸을 흰 천으로 휘감은 퍼포머들의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누더기 차림으로 눈길을 걷던 아이는 죽은 엄마의 젖을 빨고 있는 아기를 발견하고,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품에 꼭 안은 채 마을로 향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문을 열어주지 않고, 아이는 짐수레처럼 보이는 바퀴달린 오두막 앞에 이른다.

세상에 지친 인간 혐오자이자 철학자, 약장수, 복화술사인 우르수스는 말로는 “인간은 짐승만도 못한 존재”라고 하지만 따스한 연민을 품고 있기에 그윈플렌과 아기를 키우기로 결심한다. 심장이 지나치게 약하고 눈이 먼 아기는 ‘여신(goddess)’이라는 뜻의 데아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로 자란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장면.  집시들과 광대들의 공연이 떠들석하게 펼쳐지고 있다./사진=EMK뮤지컬컴퍼니

15년이 흘러 25살이 된 그윈플렌은 자신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하며 우르수스를 아버지라 부르고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고귀한 존재로 여기는 데아와 한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데아는 보이지 않는 세상을 그윈플렌에 의해 그려나간다.

자신의 흉측한 얼굴을 비롯해 모든 추악함을 볼 수 없는 맑고 순수한 데아가 세상을 아름답게 보기를 바라는 그윈플렌은 세상 무엇보다 데아를 사랑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만약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는다.

어느 날 톰-짐-잭으로 변장한 데이빗 경과 조시아나 여공작이 그윈플렌의 공연을 보기 위해 방문한다. 그윈플렌의 도발적 발언과 태도는 조시아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그녀의 욕망을 부채질한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장면. 흉측한 그윈플렌의 '웃는 얼굴'과 자신의 어두운 욕망, 비틀린 영혼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느낀 조시아나 여공작은 그윈플렌(박효신)을 유혹한다./사진=EMK뮤지컬컴퍼니 

원작과 뮤지컬이 또 하나의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원작에서 그윈플렌의 갈등은 여동생이자 사랑하는 여인, 천사이자 욕망의 대상인 데아를 향해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영혼과 육체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년 그윈플렌의 고뇌를 조시아나가 자극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뮤지컬의 경우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그를 원한다고 말하는 조시아나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행복할 권리”를 주장하며 신분상승을 하고픈 욕망을 드러내는 그윈플렌의 모습으로 캐릭터가 살짝 조정된다. 조시아나의 편지를 받은 그윈플렌이 잠시 그녀를 만나러 간 사이 데아는 겁탈당할 위기에 놓이고, 자리를 비운 그윈플렌을 비난하는 우르수스를 향해 그윈플렌은 “행복할 권리”를 주장한다.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데아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라는 우르수스의 말에 더 높은 곳을 향해 행복을 찾아 삶을 바치겠다는 그윈플렌의 반박이 빚는 갈등은 결국 그윈플렌이 신분상승을 ‘행복의 기준’에 포함시킴과 동시에 현재 데아와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기게 된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장면./사진=EMK뮤지컬컴퍼니

또, 지옥의 사자 와펀테이크에 의해 끌려간 ‘눈물의 성’에서 자신이 15년 전 누군가에 의해 콤프라치코스에게 팔렸던 클랜찰리 가문의 적법한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윈플렌이 보이는 행보는 데아를 완전히 잊은 듯 보이도록 만든다.

의회에서 빈민들의 비참한 삶과 현실을 고발하고 상원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보겠다는 꿈이 완전히 좌절되고 나서야 비로소 데아와 우르수스에게 되돌아갈 마음이 생겼다는 설정은 귀족들의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자 가난한 자들의 세상으로 되돌아온다는 인상을 남길 가능성에 직면한다. 그윈플렌은 되돌아가지만 데아의 약한 심장은 그로 인한 기쁨을 충분히 만끽하기도 전에 멈춰 버린다. 그윈플렌은 데아를 안고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진다.

딸 레오폴딘과 사위의 죽음이라는 전기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그윈플렌과 데아의 비극적 죽음은 두 남녀의 순수하고 고귀한 사랑은 “모든 세속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후”에 이루어지며 결국 “죽음을 통해 불멸에 이른다”는 낭만주의적 사고에 바탕을 둔 결과이다.

낭만주의의 대가라 할 수 있는 위고에게 아름다움은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을 대변하는 여인과 팜므파탈을 불러오는 욕망과 육체를 대변하는 여인으로 양분되는 것이었고, 조시아나에게 흔들렸던 그윈플렌이 데아에게 되돌아 온 것은 낭만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영혼의 승리”이자 죽음을 통해 하나가 되는 “사랑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장면./사진=EMK뮤지컬컴퍼니

사랑과 영혼의 주제 외에 위고가 ‘웃는 남자’를 통해 피력하고자 했던 것은 ‘웃음(laughter)’으로 대변되는 인간 현존에 대한 상징과 미래 혁명의 가능성이었다.

그에 의하면 “미소는 동의를 의미하지만 웃음은 거부를 의미한다.” 인간의 ‘웃음’이라는 감정은 나와 타인을 구분 짓는 ‘거리’에서 시작되고, 다른 사람의 불행과 비참함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냉정함과 연민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불구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는 그윈플렌의 웃는 얼굴이 “군주제가 전체 백성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저지른 범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기를 바랐고, 의회에서 행한 그의 연설이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미래에 곧 다가올 혁명을 예고하는 것”이기를 기대했다. 어쩌면 뮤지컬 ‘웃는 남자’가 궁극적으로 의도했던 것도 현재 사회를 지배하는 상위 1%의 탐욕과 이기심, 잔인함을 밝히고 좀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책임을 다하지 않는 데 대한 비난을 던지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뮤지컬 ‘웃는 남자’ 역시 그윈플렌처럼 모두에게 진실을 말해주고, 정의로움을 보여주며, 승리를 획득하고픈 꿈을 꾸었던 게 아니었을까? 뮤지컬 ‘웃는 남자’의 꿈이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과 새로운 인식을 안겨줄 수 있기를 바래본다.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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