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에 위치한 '진실'과 '거짓'...연극 '진실x거짓'
'관계' 속에 위치한 '진실'과 '거짓'...연극 '진실x거짓'
  • 주하영
  • 승인 2019.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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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프랑스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르, 'La Vérité'(진실)/'Le Mensonge'(거짓)
'연극열전 7'이 선보인 연극 '진실x거짓' 공연 장면. 프랑스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르가 4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따로 발표한 'La Vérité'(진실), 'Le Mensonge'(거짓)이란 두 작품을 ‘진실x거짓‘이라는 하나의 제목으로 엮어 관객들이 두 개의 작품을 연달아 보거나 각기 따로 하나씩만 볼 수 있도록 선보였다./사진=연극열전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인간은 언제부터 ‘거짓’을 말하기 시작했을까? 인간이 ‘거짓’을 말하기 시작한 것은 자신을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상대를 위해서였을까?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인간의 ‘거짓말’이 다른 동물에 비해 특별할 것은 없다. 녹색원숭이와 침팬지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 상대를 속이고 맛있는 과일을 가로채는 ‘거짓말’을 한다.

인간의 특별함은 ‘실재하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상상력과 무한한 개수의 문장을 생산함으로써 엄청난 정보를 전달하는 ‘유연한’ 언어능력에 있을 뿐, 상대를 속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거짓말의 기술’은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 이의 거짓말에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진실’을 추구한다. 뿐만 아니라 진실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일부러 ‘거짓’을 선택한다.

인간은 왜 진실을 추구하면서도 거짓을 선택하는 모순을 행하는 것일까?

17세기 스페인의 철학자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말처럼, “어떤 때에는 나 자신 때문에 또 어떤 때에는 다른 사람 때문에” 진실을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독일의 철학자 프란츠 요제프 베츠의 말처럼, “삶의 충격을 완화하고 불안과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자신의 부족함을 견디기 위해” 거짓말이라는 능력이 필요한 것일까?

어찌되었건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거짓말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때로 거짓은 용기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격려와 지지를 더해주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보호막이 되어 주며, 실수로 망가질 위기에 처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한다.

이 때문에 베츠는 ‘불륜예찬‘에서 “사람들이 항상 정직하고 서로 솔직하며 어떤 위장이나 감정의 통제도 없이 적나라하게 사실만을 말한다면 세상은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융통성 없는 정직’이 모든 덕목에 우선한다는 생각은 논란의 여지가 많음을 지적하는 베츠는 “사람은 어쨌든 거짓말로 상대방을 속이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인다.

 연극 '진실x거짓' 공연 장면. 미셸(이도엽)과 로렌스(양소민) 부부(사진 중간)와 알리스(배종옥,사진 맨 왼쪽)와 폴(김진근, 사진 맨 오른쪽) 부부/사진=연극열전 

‘연극열전 7’의 세 번째 작품인 연극 ‘진실x거짓‘이 27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 중이다. 

“동시대 프랑스 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일 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주목하는 가장 핫한 작가”라 일컬어지는 플로리앙 젤레르의 연극 ‘진실(La Vérité)‘과 ‘거짓(Le Mensonge)‘은 불륜을 둘러싼 두 부부의 진실과 거짓, 사랑과 결혼, 그리고 관계를 둘러싼 철학적인 문제들을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낸 연작 작품이다.

2002년 22세의 젊은 나이에 ‘아셰트 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 데뷔한 젤레르는 2004년 이슬람과 서구의 관계를 다룬 소설 ‘악의 매력(La Fascination du pire)‘으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앵테랄리에상(Prix Interallié)’을 수상했다.

25세가 되기도 전에 이미 프랑스의 유명인사가 되어 버린 젤레르는 2014년 ‘몰리에르상’을 수상한 자신의 극 ‘아버지(Le Père)‘의 영국 공연을 앞두고 ‘더 스테이지‘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어떤 일들은 마치 천직처럼 찾아온다”고 말했다.

오페라의 ‘리브레토(libretto)’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은 후 처음 극장에서 라이브 퍼포먼스를 접하게 되었다는 젤레르는 “그러한 마술적인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으며 “소설가라는 고독한 존재가 더 이상 매력으로 느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무엇이 되었건 “공유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예술”의 속성을 언급하며 “극장은 질문을 위한 곳이지 답을 위한 곳이 아님”을 강조했다.

2004년 연극 ‘타인(L'Autre)‘을 시작으로 많은 관객들의 관심과 호평 속에 꾸준히 희곡 작품을 발표해 온 젤레르는 2010년 ‘어머니(La Mère)‘와 2012년 '아버지(Le Père)‘를 연작 형태로 선보인데 이어 두 번째로 2011년 ‘진실(La Vérité)'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2015년 ‘거짓(Le Mensonge)'을 통해 좀 더 발전된 형태로 선보이는 시도를 감행했다.

연극 '진실'의 공연 장면. 20년 동안 부부로 함께 살아온 로렌스(양소민)와 미셸(이도엽).
연극 '진실'의 공연 장면. 20년 동안 부부로 함께 살아온 로렌스(양소민)와 미셸(이도엽)./사진=연극열전

이에 ‘연극열전 7’은 4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따로 발표된 두 작품을 ‘진실x거짓‘이라는 하나의 제목으로 엮어 관객들이 두 개의 작품을 연달아 보거나 각기 따로 하나씩만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 구성을 제공했다.

젤레르는 2015년 ‘이브닝 스탠다드‘와의 인터뷰에서 일종의 연작 형태로 짝을 이루어 선보이는 자신의 극작 방식에 대해 “사람들이 자신들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할 때에야 비로소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젤레르는 한 가지 문제의 다른 측면과 다른 논의들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만드는 이러한 방식이야 말로 관객들로 하여금 질문을 던지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극작가 해롤드 핀터(Harold Pinter)의 1978년 극 ‘배신(Betrayal)‘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는 ‘진실‘은 실제로 젤레르가 핀터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블랙 코미디적 글쓰기”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작된 극이다.

젤레르에 따르면, 일종의 ‘놀이‘이자 ‘유희‘라 할 수 있는 ‘블랙 코미디’는 관객들이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르는 것들”을 노출하기에 가장 적절한 방식이다.

그는 희곡 ‘진실‘의 에피그라프(epigraph)에서 핀터의 ‘배신‘의 구절 외에도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 볼테르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거짓은 오직 상대를 해할 때에만 죄가 될 수 있다. 거짓이 이로움을 꾀할 때에는 매우 훌륭한 미덕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진실‘ 뿐 아니라 연극 ‘거짓‘을 관통하는 공통된 주제가 된다.

연극 '진실'의 공연 장면. 호텔에서 불륜의 시간을 보낸 알리스(김정난)와 미셸(김수현). 알리스는 보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을 미셸에게 종용한다.
연극 '진실'의 공연 장면. 호텔에서 불륜의 시간을 보낸 알리스(김정난)와 미셸(김수현). 알리스는 보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을 미셸에게 종용한다./사진=연극열전

연극 ‘진실‘은 미셸과 로렌스, 그리고 폴과 알리스라는 두 부부를 중심으로 서로 얽히고 속이며 감추는 불륜 관계의 속내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진실을 숨기는 것의 이점과 진실을 밝히는 것의 단점”이라는 부제를 통해 암시되는 연극 ‘진실‘의 문제제기는 부부 혹은 친구 관계에 있어 ‘진실 혹은 거짓이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로 이어진다.

형제와 다름없는 절친의 아내(알리스)와 불륜 관계를 8개월 째 유지하고 있는 미셸은 자신의 아내 로렌스를 향해서도, 친구 폴을 향해서도 철저하게 ‘거짓’으로 일관할 뿐 한 번도 죄책감을 느낀 적이 없다. 만날 때마다 자신의 남편 폴에 대한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고 최근 부당해고를 당한 폴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회사의 비윤리적 행태”에 분노하는 미셸을 향해 알리스는 ‘죄의식’을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죄의식의 쓸데없음”을 주장하는 미셸은 알리스에게 자신은 ‘그러한 감정을 싫어한다’고 답한다. 호텔에서의 짧은 만남에서 벗어나 좀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을 요구하는 알리스를 향해 펄쩍 뛰며 회의 시간에 늦었다며 서둘러 나가려던 미셸은 막상 알리스가 헤어질 것을 선언하자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회의를 취소하고 ‘그 무엇보다 알리스와 자신의 관계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연극 '진실'의 공연 장면. 호텔 불륜의 현장에서 회의 시간이 늦었다며 빨리 떠나려는 미셸(이도엽)과 불만에 찬 알리스(배종옥).
연극 '진실'의 공연 장면. 호텔 불륜의 현장에서 회의 시간이 늦었다며 빨리 떠나려는 미셸(이도엽)과 불만에 찬 알리스(배종옥)./사진=연극열전

첫 장면부터 미셸과 알리스의 모습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거짓말이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면서도 남편을 속이고 미셸과 1박 2일의 밀월여행을 계획하는 알리스나 친구를 갑자기 해고한 회사의 “윤리적 행태”를 따지면서도 자신이 친구를 배신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전혀 죄책감을 보이지 않는 미셸의 도덕적 모순은 황당함을 자아낸다.

출장을 가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하던 미셸은 자신이 회의를 취소하던 날 우연히 쇼핑센터에서 회사 직원 ‘기용’을 만났다는 아내 로렌스로 인해 진땀을 빼기 시작한다.

아파서 집에 누워있다는 거짓말을 한 채 도대체 어디를 갔던 것인지를 추궁하는 아내를 향해 온갖 거짓말로 변명을 늘어놓던 미셸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되자 ‘20년 동안 충실한 결혼 생활을 해 온 자신을 못 믿는 것이냐’며 발끈 화를 낸다.

연극 '진실'의 공연 장면. 자신을 의심하는 아내 로렌스(양소민)의 추궁을 온갖 '거짓말'로 모면하며 진땀을 빼고 있는 남편 미셸(이도엽).
연극 '진실'의 공연 장면. 자신을 의심하는 아내 로렌스(양소민)의 추궁을 온갖 '거짓말'로 모면하며 진땀을 빼고 있는 남편 미셸(이도엽)./사진=연극열전

우여곡절 끝에 아내의 의심을 종식시키는 데 성공한 미셸은 결국 알리스와 1박 2일의 여행을 떠나지만 이모집에 간다고 거짓말을 한 아내를 의심한 폴이 전화를 걸어 이모와 통화할 것을 주장한다.

알리스는 남편을 안심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미셸로 하여금 이모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전화 통화를 하도록 만든다. 친구의 아내와 바람피우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나이 든 이모 흉내를 내며 즉흥적으로 거짓말을 꾸며대는 미셸의 모습은 폭소를 낳는다.

전화를 끊고 난 후 알리스는 더 이상 ‘끝없는 거짓말’ 속에 살 수 없는 자신을 인식한다. 남편 폴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겠다고 말하는 알리스를 향해 미셸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당신은 그저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그건 전혀 다른 거야!... 진실? 그게 뭐지? 철학자들도 아직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고!”

 연극 '진실'의 공연 장면. 친구 폴의 아내 알리스(김정난)와 1박 2일의 밀월여행을 떠난 미셸(김수현)은 갑자기 걸려 온 폴의 전화를 받아 알리스의 숙모 흉내를 내며 거짓말을 둘러대고 있다./사진=연극열전

미셸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자신을 좀먹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거짓은 “상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오히려 양심의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진실을 밝히는 것이 “이기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멈춘다면 “이 세상에 남아날 부부는 단 하나도 없다”고 외치는 미셸은 거짓의 끝은 곧 “문명의 끝”을 의미하며 자신이 폴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절대로 진실을 밝히지 말 것”을 강조하는 미셸의 위선적인 모습은 사실상 친구인 폴이 자신과 알리스의 관계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으며 오래 전부터 그의 아내 로렌스와 불륜 관계였음을 털어놓는 장면에서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연극 '진실'의 공연 장면. 더 이상 거짓 속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 폴에게 모든 '진실'을 밝혔음을 미셸(이도엽)에게 털어놓는 알리스(배종옥).
연극 '진실'의 공연 장면. 더 이상 거짓 속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 폴에게 모든 '진실'을 밝혔음을 미셸(이도엽)에게 털어놓는 알리스(배종옥)./사진=연극열전

알리스가 폴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았을 뿐 아니라 폴은 이미 6개월 전부터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알고 있었고, 자신의 아내 로렌스 역시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미셸로 하여금 매우 비이성적인 반응을 보이도록 만든다.

그는 자신만 ‘진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과도하게 흥분할 뿐 아니라 자신의 친구와 아내가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속여 왔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절망한다.

그는 폴이 자신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한 이유가 자신이 알리스와 바람을 피우기 훨씬 이전에 폴이 먼저 그의 아내 로렌스와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고, 이 모든 잘못된 관계들을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느낀다.

젤레르는 연극 ‘진실‘의 초점을 두 부부의 복잡한 불륜관계에 두지 않는다. 그는 ‘거짓’의 중요성을 주장하던 미셸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숨긴 ‘거짓’ 앞에서 보이는 ‘이중성’에 관객들이 주목하도록 만든다.

연극 '진실'의 공연 장면. 자신이 폴의 아내 알리스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은 폴(이형철, 우)에게 되려 화를 내는 미셸(김수현).
연극 '진실'의 공연 장면. 자신이 폴의 아내 알리스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은 폴(이형철, 사진 오른쪽)에게 되려 화를 내는 미셸(김수현)./사진=연극열전

자신은 상대를 위해 거짓말을 할지라도 상대는 자신에게 진실만을 말할 것을 바라는 인간의 모순은 사실상 모든 관객들의 내면에 자리한 ‘이중성’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미셸을 향해 무조건 돌을 던질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질문은 관계 유지를 위해 필요한 거짓말, 알면서 속는 거짓말, 몰라서 속는 거짓말, 그리고 ‘진실을 알 필요’의 문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대의 거짓이 밝혀질 때 아픈 것은 ‘진실’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이 바보였다는 인식에서 오는 ‘자괴감’ 때문일까? 무너져 내린 ‘신뢰’ 때문일까, 아니면 빼앗겨 버린 ‘선택’ 때문일까? 관계 유지에 있어 우리에게 보다 필요한 것은 과연 ‘진실’일까, ‘거짓’일까?

연극 ‘진실‘이 던져놓은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은 연극 ‘거짓‘을 통해 또 다른 측면들로 확장된다.

연극 '거짓'의 공연 장면. 미셸(김수현)과 로렌스(정수영) 부부(중간)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 알리스(김정난,좌)와 폴(이형철, 우)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연극 '거짓'의 공연 장면. 미셸(김수현)과 로렌스(정수영) 부부(사진 중간)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 알리스(김정난,사진 맨 왼쪽)와 폴(이형철, 사진 맨 오른쪽)은 담소를 나누고 있다./사진=연극열전

연극 ‘거짓‘ 역시 알리스와 폴, 로렌스와 미셸 두 부부가 등장한다. 알리스와 폴의 집에서 두 부부의 저녁 식사가 있던 날, 알리스는 우연히 쇼핑을 하다 다른 여자와 키스를 하고 있는 미셸을 목격한다.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알리스는 저녁 식사 약속을 취소할 것을 주장하지만 폴은 굳이 다른 부부의 ‘진실’을 밝혀 분란을 일으키고 그들의 관계에 끼어들 필요가 없음을 강조한다.

알리스는 자신의 친구나 다름없는 로렌스에게 자신이 본 ‘진실’을 말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며 필요를 주장하지만 폴은 오히려 친구이기 때문에 배려의 마음으로 ‘진실’을 숨겨야 한다고 응대한다.

연극 '거짓'의 공연 장면. 미셸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고민에 빠져있는 알리스(김정난)와 그녀의 남편 폴(이형철).
연극 '거짓'의 공연 장면. 미셸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고민에 빠져있는 알리스(김정난)와 그녀의 남편 폴(이형철)./사진=연극열전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로렌스와 미셸은 도착하고, 네 사람은 응접실에 둘러 앉아 “도덕적 딜레마”에 관한 논의를 이어 나간다.

관계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진실을 말하지 않을 필요성’에 관한 논의는 “반드시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며 ‘지혜’를 강조하는 로렌스와 진실을 말할 경우 불같이 화를 내며 등을 돌려버린 작가들과의 작업 경험을 예로 들며 “사람들은 진실을 원치 않는 경향이 있다”는 미셸의 말이 더해져 폴의 견해에 무게가 실린다.

연극 '거짓'의 공연 장면. '진실을 밝히지 않을 필요'에 대한 논쟁에 민감해진 알리스(배종옥, 중앙)는 미셸(이도엽, 중앙)을 도발한다. 알리스의 남편 폴(김진근, 좌)과 미셸의 아내 로렌스(양소민,우)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연극 '거짓'의 공연 장면. '진실을 밝히지 않을 필요'에 대한 논쟁에 민감해진 알리스(배종옥, 사진 중앙)는 미셸(이도엽, 중앙)을 도발한다. 알리스의 남편 폴(김진근, 사진 맨 왼쪽)과 미셸의 아내 로렌스(양소민,사진 맨 오른쪽)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사진=연극열전

로렌스와 미셸 부부가 돌아간 뒤 지나치게 흥분을 쏟아내는 알리스를 달래던 폴은 그만 미셸이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이 알고 있었음을 털어 놓는다.

때로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지나가는 바람일 경우 사랑하기 때문에 ‘거짓’으로 일관할 수 있다는 폴의 말은 알리스를 도발한다.

“사랑은 진실하고 순수한 것”이며 “그 어떤 것도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그녀는 집요하게 남편 폴의 숨겨진 ‘진실’을 추궁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아내의 말에 속아 자신의 외도 사실을 발설한 폴은 냉랭하게 돌아선 알리스로 인해 거실에서 밤을 지새운다.

연극 '거짓'의 공연 장면. '진실의 중요성'에 관해 서로 논쟁하는 알리스(김정난)와 폴(이형철).
연극 '거짓'의 공연 장면. '진실의 중요성'에 관해 서로 논쟁하는 알리스(김정난)와 폴(이형철)./사진=연극열전

다음 날 아침 간절하게 용서를 비는 남편을 외면하고 출근을 서두르던 알리스는 자신 역시 외도를 한 적이 있다는 폭탄선언을 남긴 채 집을 나선다. 하루 종일 전전긍긍하며 그 남자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던 폴은 자신을 찾아온 친구 미셸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미셸은 알리스가 ‘진실’을 말한 폴로 인해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복수”를 하고자 ‘거짓’을 꾸며 폴을 벌주고 있는 것이라 말하며 폴을 설득한다. 폴은 퇴근 후 돌아온 아내 알리스를 향해 자신을 사랑한다면 진실을 말해달라고 애원한다.

연극 '거짓'의 공연 장면. 어떨결에 자신의 외도 사실을 밝혀버린 자신을 한심해하는 폴(이형철)과 냉랭한 반응을 보이는 아내 알리스(김정난).
연극 '거짓'의 공연 장면. 어떨결에 자신의 외도 사실을 밝혀버린 자신을 한심해하는 폴(이형철)과 냉랭한 반응을 보이는 아내 알리스(김정난)./사진=연극열전

그녀는 6개월 전부터 미셸과 만나왔으며 죄책감을 참을 수 없어 3주 전에 헤어질 것을 선포했지만 막상 그가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모습을 보니 화가 났고 끝까지 거짓말을 하는 미셸에게 그 사실을 따져 묻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젤레르는 ‘진실’의 중요성을 설파하던 알리스의 ‘거짓’된 속내를 드러낼 뿐 아니라 ‘사랑’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밝히는 일이 ‘관계’를 얼마나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또 다른 질문에 직면하도록 만든다.

욕망과 사랑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아니면 침묵일까? 무너져버린 ‘신뢰’의 벽 앞에서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면서 방으로 들어가 버린 남편 폴을 향해 알리스는 이렇게 외친다.

“당신 그걸 다 믿는 거야? 어떻게 그걸 믿을 수가 있어?... 당신이 어제 저녁 내내 거짓말에 대한 칭송을 늘어놓으니까 내가 그렇게 지어낸 거잖아!”

연극 '거짓'의 공연 장면. 아내(김정난)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혼란스러워하는 남편 폴(이형철).
연극 '거짓'의 공연 장면. 아내(김정난)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혼란스러워하는 남편 폴(이형철)./사진=연극열전

부부의 평화는 서로에게 ‘진실’만을 말한다는 ‘거짓말’과 ‘모든 것이 다 거짓’이었다는 ‘거짓’으로 회복된다.

그리고 알리스와 폴, 로렌스와 미셸 두 부부의 ‘진실’은 무대 위 커튼콜이 끝나고 이어지는 ‘에필로그(Epilogue)’ 장면을 통해 관객들에게만 폭로된다. 두 부부는 ‘거짓’ 속에 침몰하지만 ‘관계’를 유지하고 ‘평화’를 얻는다.

베츠는 ‘거짓말’의 우선적인 목표는 상대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불안이나 불필요한 질투를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진실을 직시하기란 어려운 것”이며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백’을 하지만 사실 그것은 상대방이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지, 그 진실을 견딜 수 있는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그 ‘거짓’을 오래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극 '거짓'의 공연 장면. 모든 것이 다 꾸며낸 것임을 말하는 아내 알리스(배종옥)로 인해 다시 '평화'를 되찾은 폴(김진근).
연극 '거짓'의 공연 장면. 모든 것이 다 꾸며낸 것임을 말하는 아내 알리스(배종옥)로 인해 다시 '평화'를 되찾은 폴(김진근)./사진=연극열전

한편, 거짓말을 “인간 본성의 치욕스러운 오점”이라 여겼던 임마누엘 칸트는 신뢰를 악용하고 위협하며 파괴하는 거짓말은 자신을 신뢰하는 상대를 실망시키기 때문에, 그리고 진실을 높은 덕목으로 여기는 상대의 가치를 무시하기 때문에, 또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대의 “삶의 결정권”을 빼앗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고 비난한다.

과연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우리가 보다 많이 선택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진실’이 옳은 것인가, ‘거짓’이 옳은 것인가의 질문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조차 진실하지 못한 인간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나감에 있어 중요한 것은 진실도 거짓도 아닌 ‘선택’과 ‘책임’이기 때문이다. 거짓을 믿기로 선택하는 것도, 진실을 수용하기로 선택하는 것도 모두 개인의 몫이다.

핵심은 그 ‘선택’을 하는 순간에 과연 내가 ‘주체’로 있었는지 ‘객체’로 있었는지가 아닐까? ‘거짓’없이 살 수야 없겠지만 내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거짓’은 언젠가 반드시 그 ‘결과’를 남긴다.

질문은 결국 하나일 것이다.

‘당신은 그 결과를 감내할 수 있는가?’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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