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으로 인한 ‘욕망’이 불러온 비극...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결핍’으로 인한 ‘욕망’이 불러온 비극...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 주하영
  • 승인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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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2018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화제작, 마리스 얀손스 지휘 X 한스 노이엔펠스 연출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장면.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속이고 '옐레츠키 공'과 약혼을 지속할 수 없음을 깨달은 '리자'(예브게니아 무라베바)는 '헤르만'(브랜던 요바노비치)에게 비밀의 정원 열쇠를 건네며 자신의 방까지 올 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출처=메가박스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인간에게 ‘집착’이라는 비정상적이고 무분별한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가장 강력한 감정은 결핍과 욕망이다.

부재하는 무언가를 놓고 느끼는 허전한 감정인 ‘결핍’과 그것을 채우고자 하는 강렬한 감정인 ‘욕망’은 인간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불러오곤 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욕망(desire)이란 “무언가를 가지기를 원하는 혹은 어떤 일이 발생하기를 원하는 강렬한 감정”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게 될 때 그것은 나에게는 없고 남에게는 있는 무언가, 즉 결핍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될 경우가 많다. 결핍이 손에 닿지 않는 것일수록, 쉽게 채울 수 없는 것일수록 그것을 향한 욕망은 간절해진다.

무의식 어딘가에서 ‘불가능’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 인간은 그 ‘상실’을 인정할 수 없기에 점점 더 갈증을 느낀다. 그러다 문득 희미한 ‘가능성’의 불빛이라도 보게 되면, 인간은 그것이 ‘환상’일 수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파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단편소설 ‘스페이드의 여왕‘을 원작으로 하는 표트르 차이콥스키 작곡의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의 주인공 헤르만은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귀족 여인 리자를 갈망하는 자신의 통제할 수 없는 마음을 저주하며 이렇게 노래한다.

“내가 너무 싫어. 스스로를 자제할 수가 없어. 그녀의 이름도 알고 싶지 않아. 인간의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 않으니까. ... 그녀를 갈망해. 미친 듯이!”

독일 장교 출신으로 러시아에 와 있는 이방인인 헤르만은 이름조차 모르는 여인을 향해 멈출 수 없는 ‘욕망’을 드러내며 자신이 “치명적인 독에 빠졌음”을 한탄한다.

다른 여인을 찾아주겠다는 톰스키 백작에게 단호하게 “그녀가 아니면 안 돼!”라고 말하는 헤르만은 그녀도 그를 갈망할지 모른다고 위로하는 백작을 향해 이렇게 노래한다.

“그런 희망이라도 없다면 더 우울할거야. ... 만약 그녀를 가질 수 없다면 내게 남은 것은 오직 죽음 뿐!”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포스터 컷./출처=메가박스  

메가박스 클래식 소사이어티는 2018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의 실황영상을 상영 중이다.

75세의 명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와 77세의 오페라 연출계의 거장 한스 노이엔펠스의 만남으로 프로그램 구성 때부터 화제를 모았던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은 ‘뉴욕 타임즈‘의 음악평론가 앤서니 토마시니로부터 “작품 해석에 있어 항상 독특한 관점을 부여하는 것으로 유명한 아방가르드 연출가 노이엔펠스가 여전히 주목할 만한 감독임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19세기를 대표하는 러시아의 낭만주의 음악가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오페라는 총 10편인데, 그 중 3편이 푸시킨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인 ‘스페이드의 여왕‘은 차이콥스키가 말년에 작곡한 작품으로 “그로테스크한 선율의 조화와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의 장대한 음악이 인간의 내면에 꿈틀대는 욕망과 갈망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으며 초연 때부터 관객들에게 많은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인간의 ‘사랑’을 향한 갈망, 욕망과 탐욕에 관한 오페라라 할 수 있는 차이콥스키의 ‘스페이드의 여왕‘은 작가가 주인공에 대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냉소적인 어조로 ‘탐욕’을 연구했던 푸시킨의 원작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작품이다.

극본(libretto)을 맡은 차이콥스키의 동생 모데스트(Modest Tchaikovsky)는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것’에 관한 심리적 연구를 위해 “도박에 대한 강박증과 탐욕”을 소재로 서스펜스와 아이러니를 선보인 푸시킨의 원작에 새로운 등장인물을 추가하고 원래 있던 인물의 출신배경을 바꾸는 등 상당부분 변화를 주어 두 주인공이 비극적인 죽음에 이르는 “멜로드라마(melodrama)”를 완성시켰다.

이 때문에 도박에서 승리하는 세 장의 카드의 비밀을 쥐고 있는 늙은 백작부인과 그 비밀을 어떻게든 알아내려는 독일 장교 헤르만의 섬뜩하고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는 완벽한 신랑감을 두고도 엉뚱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리자’와 처음에는 사랑을 갈구하지만 ‘탐욕’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헤르만’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로 둔갑되어 버린다.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2막 장면.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신랑감인 '옐레츠키 공'(이고르 고로바텐코)은 약혼녀 '리자'(예브게니아 무라베바)에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토로하지만 '리자'는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커다란 테이블에는 그와의 결혼이 의미하는 '미래의 삶'이 펼쳐진다./출처=메가박스

오페라의 경우, 푸시킨의 원작과는 다르게 헤르만이 처음부터 리자를 향한 갈망으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리자는 백작부인의 시중을 들기 위해 고용된 양녀가 아니라 실제 손녀딸로 이미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옐레츠키 공’과 결혼을 약속한 상태에 있다.

흥미로운 것은 신분의 차이로 인한 갈등과 사랑의 삼각관계를 조성하기 위해 추가한 것으로 보이는 옐레츠키 공이 오히려 리자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인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그는 리자의 말대로 “지성, 외모, 신분, 재산이 모두 뛰어난” 흠 잡을 데 없이 훌륭한 사람이다.

하지만 결혼을 앞둔 그녀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에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노래한다.

“왜 이렇게 슬픈 거지? 뭐 때문에? 소녀시절의 꿈, 그 꿈은 어디로 가고. 슬픔과 두려움. 왜 자신을 속이는가?”

리자는 아직 헤르만과 사랑에 빠져있지 않다. 단지 자꾸만 눈앞에 나타나는 “두려움과 격정을 감춘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에게 무언가를 원하는 것 같은 “정체모를 사람”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상당한 불편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 앞에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길 수 없어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는 헤르만이 나타난다.

모두가 잠든 밤에 창문을 열어 놓고 “행복과 평화를 앗아간 슬픔에 찬 시선”으로 “추락한 천사처럼” 자신을 바라보던 불길한 남자에게 ‘영혼’을 빼앗겼노라 노래하던 리자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노이엔펠스는 리자가 어딘지 모르게 불길하고 위험해 보이는 헤르만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이유를 ‘열정적인 사랑에 대한 동경’에 둔다.

어려서부터 신분에 맞게 상류사회의 법도를 익히고 기품을 잃지 않기 위해 행동하도록 교육받아 온 그녀에게 헤르만은 모든 정해진 시스템을 뒤집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된다.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1막 장면. 창문이 열린 방에 몰래 숨어 들어와 자신의 속마음을 엿듣는 줄도 모르고 "추락한 천사"처럼 불길한 모습으로 자신을 음울하고 슬픈 시선으로 바라보는 낯선 남자에게 '영혼'을 빼앗겼음을 노래하는 '리자'(예브게니아 무라베바).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1막 장면. 창문이 열린 방에 몰래 숨어 들어와 자신의 속마음을 엿듣는 줄도 모르고 "추락한 천사"처럼 불길한 모습으로 자신을 음울하고 슬픈 시선으로 바라보는 낯선 남자에게 '영혼'을 빼앗겼음을 노래하는 '리자'(예브게니아 무라베바).출처=Salzburger Festspiele/Ruth Walz

열정과 욕망에 모든 것을 내맡긴 채 행동하는 헤르만은 사실상 그녀가 늘 궁금해 하던 ‘미지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노이엔펠스는 이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해 옐레츠키 공이 진실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와의 삶이 펼쳐낼 리자의 ‘미래’를 보여준다.

그녀를 “하인처럼 섬기고 친구처럼 사랑하겠다”는 옐레츠키 공의 애절한 고백 사이로 아이들이 하나씩 둘씩 등장한다.

리자는 커다란 식탁에 앉아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이는 아이들을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본다. 남자 아이 한 명과 여자 아이 두 명, 마지막으로 갓난아기를 안은 유모가 등장하자 리자는 도망친다.

오프닝 장면과 합창 장면, 막간 장면 등을 통해 연출가로서 자신만의 ‘해석’을 담는 것으로 유명한 노이엔펠스는 첫 장면부터 커다란 철창상자에 갇힌 채 등장하는 ‘흰 옷을 입은 아이들’을 배치시킨다.

가슴이 엄청 부각된 흰 드레스를 입은 나이든 유모들은 마치 개들을 산책시키기라도 하듯 줄에 묶인 아이들을 산책시킨다. 잠시 후 아이들은 여전히 줄에 묶인 채 러시아의 적을 무찌르기 위해 열심히 훈련받는 병사들로 변모한다.

사회에는 지켜야 할 코드가 있고 따라야 할 규율이 있다. 시스템은 어려서부터 마음껏 놀 수 없고 규정된 행동을 하도록 제어하는 ‘억압’을 통해 유지된다.

노이엔펠스는 동영상 인터뷰에서 “리자는 남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여성적 이미지에 갇혀 있지 않고 완전히 독립적인 여성으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는 편한 길을 두고 오히려 취약하고 위험해 보이는 길로 들어서는 독립적인 두 사람이 잘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만남’을 이어가고 ‘어쩔 수 없는 욕망’을 드러낼 때 관객들이 인간의 본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어 그는 평범한 한 사람을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만들고 비정상적인 강박증에 휩싸인 광기로 몰고 가는 데에는 분명 “어떤 특정한 것들을 강요하는 사회, 특정한 욕망을 억누르도록 만드는 사회”가 존재하고, 인간은 그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찾게 되며, 그것이 “그 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수월한 길”이라고 믿게 될 때 ‘파국’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고 덧붙인다.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2막 장면. '옐레츠키 공'(이고르 고로바텐코)과 '리자'(예브게니아 무라베바)가 참석한 무도회 장면. 연출을 맡은 '한스 노이엔펠스'는 모든 가치가 흑과 백으로 나뉘는 '억압적인 사회'를 드러내기 위해 무대와 의상을 검정색과 흰색으로 표현한다./출처=메가박스

무대와 의상은 모든 가치를 흑과 백으로 나누는 사회를 강조하듯 검정색과 흰색으로 통일된다.

단, 사회에서 유일하게 ‘아웃사이더’로 여겨지는 헤르만과 ‘과거’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스페이드의 여왕’인 늙은 백작부인만 ‘색깔’을 드러낸다.

헤르만은 줄곧 붉은색 군복을 입고 광기와 강박증이 심해질수록 맨살을 드러내며 재킷을 벗어 던진다.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향해 솟구치는 뜨거운 열정과 과도한 욕망은 헤르만이 입고 있는 붉은 색 재킷이 풀어헤쳐진 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털이 수북한 가슴을 통해 상징된다.

한 때 탐욕과 욕망에 불타올랐던 백작부인 역시 붉은 색의 장갑과 구두를 착용하고 있지만 그녀는 80세라는 나이를 부인하려는 듯 ‘젊음’을 상징하는 연두색 원피스를 입고 있다. 그녀의 머리는 이미 다 빠져 한 줌도 남아있지 않지만 ‘오렌지 색’ 가발로 가려져 있다.

노이엔펠스는 사회의 획일적인 가치와 제도들이 잠깐의 행복과 화려함 속에 머물다 거센 ‘폭풍’에 휘말려 결국 ‘무덤’만 남겨놓고 사라지는 인생에 비할 때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해골만 남은 뼈에 온갖 보석을 치장한 예카테리나 2세를 향해 환호하는 사람들을 배치함으로써 표현한다.

아무리 화려했던 것들도 결국 ‘시간’을 이겨내지 못한다. 어쩌면 그렇기에 인간은 더더욱 자신에게 결핍된 무언가를 채우고픈 욕망을 절대 놓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연출을 맡은 '한스 노이엔펠스'는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해골의 모습을 한 '예카테리나 2세'와 그녀를 향해 환호하는 사람들을 등장시킴으로써 '화려함' 속에 머물다 거센 '폭풍'에 휘말려 '무덤'만 남겨놓고 사라지는 인생의 '헛됨'을 표현한다.
연출을 맡은 '한스 노이엔펠스'는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해골의 모습을 한 '예카테리나 2세'와 그녀를 향해 환호하는 사람들을 등장시킴으로써 '화려함' 속에 머물다 거센 '폭풍'에 휘말려 '무덤'만 남겨놓고 사라지는 인생의 '헛됨'을 표현한다./출처=Salzburger Festspiele/Ruth Walz

‘사랑’을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신분의 벽을 넘을 길이 없는 헤르만은 침울하기만 하다. 이 때문에 톰스키 백작이 들려준 ‘모스크바의 비너스’라 불리는 카드놀이의 귀재였던 여인의 이야기는 헤르만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사랑에 이끌려 찾아온 세 번째 사랑이 세 장의 카드에 대해 알아내려 할 때 당신은 그 충격으로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라는 예언을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 여인이 리자의 할머니라는 사실은 그에게 마치 ‘운명’처럼 느껴진다. 결국 그는 리자를 만나기 위해 찾아든 백작 부인의 방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나의 영원한 행복이 당신에게 달려 있소. ... 세 장의 카드! 그 비밀을 알려주시오!”

하지만 과거 화려했던 삶 속 자신의 젊은 날에 대한 회상으로 가득 차 있던 늙은 백작부인에겐 그가 ‘세 번째로 찾아온 사랑’으로 여겨질 뿐이다.

그를 끌어안으려 다가서는 여인에게 헤르만이 총을 겨누며 외친다.

“당신에겐 필요 없는 거잖아. 불행을 초래하고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일일지라도 당신은 이미 늙었잖아! 내가 그 죄를 대신할 테니 비밀을 말해주시오!”

백작부인은 그의 총을 가져다 자신의 입 안에 넣고 그를 끌어안는다. 늙은 여인은 갑자기 스르륵 미끄러져 내리며 죽는다.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2막 장면. 리자의 방으로 가기 위해 찾아든 백작부인의 방에서 '헤르만'(브랜던 요바노비치)은 세 장의 카드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스페이드의 여왕'(백작부인)을 기다린다. 백작부인의 방은 온통 흰색으로 되어 있고, 그녀의 초상화는 한쪽 눈만 클로즈업 된 영상으로 표현된다./출처=메가박스  

노이엔펠스는 ‘스페이드의 여왕’이라 불리는 늙은 여인의 죽음 역시 다시 젊어지고픈 ‘욕망’, 다시 사랑받고픈 ‘욕망’을 포기하지 못해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비극’으로 설정한다.

자신을 사랑한다던 남자가 도박에서 이기는 카드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자신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하고 할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은 리자를 끔찍한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다.

마지막으로 헤르만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하고 짐을 싼 채 자정이 다 되도록 밖에서 그를 기다리는 리자의 마음은 초조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녀 앞에 나타난 헤르만의 광기어린 모습은 오히려 리자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그녀는 죽은 ‘스페이드의 여왕’이 자신 앞에 나타나 윙크를 하며 비밀을 알려주었으니 도박장으로 가자는 헤르만을 두고 절규한다.

“오, 이제 지쳤어! 충분히 고통 받았어! 폭풍이 몰아쳐 내 모든 것을 송두리째 파괴해 버렸어! ... 내 운명이 악당의 손아귀에서 놀아났어. ... 저주받은 운명이여!”

노이엔펠스는 모든 것을 잃은 절망과 수치심으로 인해 강에 몸을 던지는 리자를 사회에 의해 그려진 하나의 ‘이미지’였던 자신의 ‘실루엣’을 뜯어내고 ‘죽음’을 선택하는 한 여인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헤르만은 그녀가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스페이드의 여왕’이 알려 준 3,7,1의 카드 숫자만 반복하던 헤르만은 도박장으로 향한다.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3막 장면. 단 한 번도 도박장을 찾지 않던 '옐레츠키 공'(이고르 고로바텐코)은 사랑하는 약혼녀 '리자'를 잃고 복수를 하기 위해 '헤르만'과 마지막 도박판을 벌인다. 다른 러시아 귀족들은 모두 검정색 모피 코트나 턱시도를 입고 있는 가운데 이방인인 '헤르만'(브랜던 요바노비치)만 홀로 붉은색 군복을 입고 있다./출처=메가박스

사실 푸시킨의 원작과 다르게 ‘사랑’이라는 서사를 더한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은 헤르만이 그토록 갈구하던 ‘사랑’을 쟁취하고도 ‘세 장의 카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도박장으로 향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할 필요를 낳는다.

토마시니는 헤르만이 왜 ‘도박’에 그토록 강박증을 보이는지에 관해 노이엔펠스가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드라마투르그 이본 게바우어와 노이엔펠스의 대화를 언급한다.

노이엔펠스가 헤르만을 해석함에 있어 주목한 것은 돈이 제공하는 힘과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었던 헤르만이 도박이 제공하는 무작위적 “임의성(randomness)”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성공할 수 있는 패’만 손에 쥔다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유혹은 ‘아웃사이더’로 인식되던 헤르만에게 ‘열정’의 사랑마저 던져버리고 “세 장의 카드”를 위해 도박장으로 달려가도록 만들기에 충분히 강렬하다.

노이엔펠스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오히려 위험하고 모든 것을 잃게 될지 모를 남자 ‘헤르만’을 선택한 리자 역시 인생을 놓고 게임을 한 “도박꾼(gambler)”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사랑을 잃은 옐레츠키 공마저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던 도박장에 나타나 ‘복수’를 위해 헤르만과 마지막 도박판을 벌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오페라 속 모든 인물들은 아무도 알 수 없는 ‘확률’, 즉 위험하지만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을지 모른다는 도박이 제공하는 ‘임의성’에 빠져 각자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생이란 게 뭔가? 선과 악, 그건 꿈에 불과해. 일과 명예, 쓸데없는 소리. 오늘은 너, 내일은 나. 힘들게 살게 아니라 행운을 잡으라고. 운이 없으면 지는 거야. 그게 운명인 것을!”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3막 장면. 마지막으로 '1(ace)'을 건 카드는 '스페이드 퀸'으로 바뀌고 '헤르만'(브랜던 요바노비치)은 절망한다. 카드 속 늙은 여인은 '헤르만'을 향해 미소 지으며 윙크를 보낸다./출처=메가박스

도박이라는 ‘확률’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는 헤르만은 마지막 카드에 돈을 걸며 이렇게 노래한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운이었던 카드는 자신의 모습을 바꿔 1이 아닌 ‘스페이드 퀸’을 드러내 보이고, 카드 속 늙은 여인은 그를 향해 미소 짓는다.

커다란 도박 테이블은 모든 것을 잃은 헤르만의 ‘무덤’이 되고, ‘이방인’은 결국 자신의 ‘결핍’을 채우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른다.

확률로 가득한 삶, 채울 수 없는 욕망, 끝없이 이어지는 결핍... 어쩌면 도박판이나 다름없는 인생에 가진 게 없어 무작정 ‘욕망’을 향해 내달리고 헛된 ‘희망’에 현혹되어 잘못된 ‘선택’을 한 헤르만이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 자신 역시 ‘결핍’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유한한 삶 속에서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어떤 기준에 근거해야 하는 것일까? 결핍된 것을 채우려는 ‘욕망’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탐욕’이 잘못된 것일까?

‘결핍’으로 인해 불타오르는 ‘욕망’을 느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비극’을 피할 수 있을까? 3월 10일까지 메가박스.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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