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궁전’을 통해 전달된 ‘집단 기억’...로베르 르빠주 ‘887‘
‘기억의 궁전’을 통해 전달된 ‘집단 기억’...로베르 르빠주 ‘887‘
  • 주하영
  • 승인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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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 풍경] 캐나다 퀘벡 ‘엑스 마키나(Ex Machina)’ X 로베르 르빠주(Robert Lepage)의 1인극
로베르 르빠주의 '887' 공연장면. 스크린을 배경으로 미니어처로 펼쳐지는 '퀘벡 시티(Quebec City)'의 모습./사진=LG아트센터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나의 기억에는 내가 지나온 시대의 기억이 담겨있다. 나를 지나쳐간 사람들, 나와 함께 해 온 사람들, 내가 거쳐 간 장소들, 내가 겪은 사건들과 바라본 삶들,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들...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아프게, 어떤 때는 슬프게 또 어떤 때는 즐겁게 나름의 빛깔을 품은 채 두뇌 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기억들은 나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라 할 수 있다.

과거는 나를 설명하는 근원이고, 현재를 결정하며, 미래의 나를 완성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과거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은 과거와의 조우, 즉 나의 기억들과의 만남과 화해가 새로운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긍정한다.

기억은 본질적으로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집된 기억들은 개인의 성격에 ‘흔적’을 남긴다.

우리의 기억은 세상 혹은 타인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형성되고 회상될 때마다 조금씩 변화된 버전을 다시 저장한다. 외부의 사물과 상징들은 기억을 촉발하고, 때로 실제 경험한 것이 아님에도 우리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보유하는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을 형성한다.

로베르 르빠주의 '887' 공연장면. 1970년 10월 퀘백 해방 전선(FLQ)의 분리 독립을 향한 과격한 움직임이 영국 외교관인 제임스 R. 크로스와 퀘벡주 노동부 장관 피에르 라포르트를 납치하고 결국 라포르트 장관의 사체가 발견된 사건은 수천 명의 연방군이 퀘벡주를 에워싸고 총을 겨누며 검문을 하고 주민들을 억압하고 체포하는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사진=LG아트센터

프랑스의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에 따르면, 기억은 순수하게 남겨지기 보다는 국가, 세대, 공동체의 사회그룹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고 공유되며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개인은 자신이 속해 있던 사회적 상황에 따라 집단 기억과 관계를 맺으며 기억을 재배치하고, 실제 그 사건에 참여하고 경험한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일종의 ‘증인’ 역할을 하며 공동의 기억을 형성할 수 있다.

가령, 역사 속에서 충격을 불러왔던 사건의 중심에 있지 않았더라도 여러 매체와 다른 사람들을 통해 혹은 가족 구성원의 경험을 통해 목격자로 위치하게 되는 사람들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공포와 두려움을 공유한다. 개인의 기억은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감정, 느낌, 인상을 공유하게 되고 공동의 기억 풀(pool)을 형성한다.

최근 LG아트센터에서는 캐나다 퀘벡 출신의 종합예술 연출가이자 극작가, 배우, 영화감독인 로베르 르빠주의 2015년 작품 ‘887‘ 공연의 막이 내렸다.

1994년 배우와 작가, 디자이너, 음악가, 곡예사들이 모여 종합예술을 지향하는 창작단체로 설립된 ‘엑스 마키나’의 총책임자라 할 수 있는 르빠주는 ‘안데르센 프로젝트(2005)‘, ‘바늘과 아편(2013 리마운트 버전)‘, ‘달의 저편(2000)‘등을 국내에 소개하며 한국 관객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연출가이다.

천재적인 연출과 놀라운 상상력으로 주목을 받으며 2005년 태양의 서커스 ‘카(Kà)‘, 2010년 ‘토템(Totem)‘의 연출과 대본을 맡은데 이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뉴욕 메트 오페라와 함께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Ring” cycle)‘을 연출해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 르빠주는 사실상 “대규모의 스펙터클보다는 좀 더 친밀하고 규모가 작은 작품을 선호”하는 예술가라 할 수 있다.

“배우와 관객이 서로 교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친밀한 무대”를 통해 새로운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르빠주는 ‘887‘이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돌아보도록 만드는 작품이 되기를 희망한다.

로베르 르빠주의 '887' 공연장면. 기억을 구성하고 연결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시냅스(synapse)'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르빠주./사진=LG아트센터

매우 “자전적인 픽션(autofiction)”이라 일컬어지는 ‘887‘은 르빠주의 어린 시절 기억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공간인 “퀘벡 시티 머레이가(街) 887번지(887 Murray Avenue in Quebec City)”를 중심으로 1960년~70년에 이르는 캐나다 퀘벡주의 역사를 담아낸다.

캐나다는 제국주의 시대 영국과 프랑스 간 식민지 영토 싸움이었던 ‘7년 전쟁’이 1763년 프랑스의 패배로 끝나자 영국의 식민지로 남겨졌다가 1867년 캐나다 자치령으로 독립하게 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를 군주로 하지만 연방정부의 지도자인 총리(Prime Minister)의 조언에 따라 임명된 총독(Governor)이 대리자 역할을 하는 캐나다는 주도권을 쥔 영국계 주민들과 누벨프랑스(Nouvelle-France)의 전통과 문화를 고수하려는 프랑스계 주민들의 갈등으로 인해 현재까지 분리주의자와 연방주의자의 정치적 문제를 안고 있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공용어로 사용하는 캐나다에서 가장 넓은 지역과 두 번째로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퀘벡주는 캐나다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프랑스어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통계에 따르면, 810만 명의 퀘벡주 인구 가운데 약 80%가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다.

1957년 ‘퀘벡 시티’에서 태어난 르빠주가 다루고 있는 캐나다의 역사는 지배층이었던 영국계 주민들과 하층민 노동자 계층이었던 프랑스계 주민들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분리주의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던 1960년부터 1966년에 이르는 퀘벡의 ‘조용한 혁명(Quiet Revolution)’과 1968년 분리 독립을 목표로 했던 퀘벡당(Parti Québécois)의 창당, 그리고 1970년 퀘벡 해방 전선(FLQ)의 피에르 라포르트 납치사건과 그로 인해 야기되었던 ‘10월 위기(La crise d'Octobre)’와 같은 격동의 시간들을 아우른다.

로베르 르빠주의 '887' 공연장면.  르빠주가 40주년을 기념하는 '시의 밤' 행사에서 미셸 라롱드의 시 'Speak White(하얗게 말하라)'를 암송하는 모습./사진=LG아트센터

작품의 출발은 르빠주가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퀘벡의 시인 미셸 라롱드(Michele Lalonde)의 시 ‘Speak White(하얗게 말하라)‘를 ‘시의 밤’(Nuit de la Poésie) 행사에서 낭독해 줄 것을 요청받은 일에서 시작된다.

프랑스어와 영어를 이중으로 사용하며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라롱드의 시를 40주년을 기념하여 1970년에 낭독되었던 것과 똑같이 재현하고자 하는 행사는 르빠주로 하여금 시를 완벽하게 암송할 필요에 놓이도록 만든다.

하지만 3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달하는 시를 도통 암기할 수 없었던 르빠주는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에 관해 여러 질문들을 품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의 전화번호는 기억하면서 현재의 번호는 잊어버리고, 사랑했던 사람의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 어린 시절 부르던 노래는 기억해내는” 기억의 구조에 관한 질문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이라 할 수 있는 “소문자 h”에서 시작된 역사가 자신이 살았던 퀘벡 시티의 역사인 “대문자 H”로 연결되는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훑게 된다.

르빠주는 연출가의 노트를 통해 “기억이라는 주제가 연극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말하는데, 역사 속에서 특정 체제나 권력들이 말살하고자 했던 것들이 늘 노래와 시, 연극과 같은 예술 장르를 통해 “살아있는 기억”으로 전파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기억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며, “개인적인 기억 탐구”로 시작된 작업이 “계급투쟁과 정체성의 위기로 복잡했던 1960년대의 퀘벡을 불러내리라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고 덧붙인다.

로베르 르빠주의 '887' 공연장면. 르빠주는 프랑스 대통령의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던 시간에 비해 너무나 짧고 허무하게 지나가버린 퍼레이드와 드골 대통령의 현명하지 못한 발언을 회상하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준다./사진=LG아트센터

그는 “가장 아득한 기억조차도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불완전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을 지적하며 ‘887‘은 “대의를 추구하는 성인의 담론이 아니라 사춘기 이전의 기억, 즉 정치적인 것과 시적인 것이 융합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나 모이어와 마르틴 게스만의 책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두뇌 속에 저장된 기억을 나중을 위해 예비해두는 차원을 넘어 끊임없이 새롭게 처리하고 다듬는다.

이는 “당면한 과제에 맞게 기억의 내용을 재구성하기 위함”이고, “미래를 계획해 나중의 행동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현재에서 바라보는 미래가 좁게 느껴질 경우 기억은 “한 때 가능한 미래였던 것”을 되돌아보는 과거로의 회귀를 행하는데, 이는 “전체 삶의 발원지이자 시초”라 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모이어와 게르만은 “그런 기억은 우리를 세계가 우리 앞에 열려 있던 과거로 되돌려놓는다”라고 말한다.

로베르 르빠주의 '887' 공연장면. 어린 시절 "매우 중요한 사람들만이 탈 수 있는 차"라고 인식하고 있던 '링컨 차'를 타고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의 퍼레이드를 시연하고 있는 르빠주./사진=LG아트센터

르빠주의 시를 암기하지 못하는 좌절감은 자신의 노화가 기억에 문제를 불러온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감과 함께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던 할머니가 엄마, 아빠와 함께 4명의 자녀가 생활하고 있던 좁은 아파트로 오게 되었던 ‘어린 시절 과거로의 회귀’를 실행하도록 만든다.

사실상 라롱드의 시를 기억하기 위해 2500년 전 고대 그리스 시대의 기억술인 “기억의 궁전(memory palace)”을 자신의 머릿속이 아닌 무대 위에 실행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는 작품은 ‘머레이가(街) 887번지 아파트’라는 건물을 르빠주의 키 높이에 달하는 미니어처로 구현한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세트를 통해 관객들을 르빠주의 어린 시절로 인도한다.

마테오리치가 기원전 5세기 경 그리스의 음유시인이었던 시모니데스의 기억법을 소개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는 ‘기억의 궁전’은 장소를 기반으로 한 기억 저장소라 할 수 있다.

암기를 목표로 하는 개인은 우선 특정 장소를 상상하고 움직일 동선을 생각한 후 지점마다 기억해야 할 것들을 배치한다. 장소는 친숙한 공간일수록, 크고 자세한 공간일수록 더 많은 정보를 담는 것이 가능해진다.

또,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이미지를 감정이나 경험과 연관시킬수록 보다 쉽게 기억할 수 있다. 기억을 꺼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만든 구조물로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는 이 기억법은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동선의 지점들을 실제로 걸어보는 행위를 하거나 장소들의 청사진을 직접 그려보는 행위를 통해 기억을 강화시킬 수 있다.

로베르 르빠주의 '887' 공연장면. '기억의 궁전'을 자신의 머릿속이 아닌 무대 위에 실행하는 르빠주는 자신의 키 높이에 달하는 미니어처로 구현한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887번지 아파트' 건물을 360도로 회전해보이며 다양한 공간들을 선보인다./사진=LG아트센터

르빠주는 자신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이라 할 수 있는 ‘887번지 아파트’를 기억의 궁전으로 설정한다.

좌반구와 우반구 둘로 나뉘는 두뇌구조를 닮은 아파트 건물은 4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러 방향으로 면을 돌리면 같은 색깔로 맞춰지는 360도 회전이 가능한 큐브처럼 르빠주의 과거 속 아파트와 현재 자신의 아파트 공간, 바(Bar), 크리스마스 때마다 방문했던 이모와 이모부의 2층집, 퀘벡을 방문한 영국과 프랑스의 국가 원수들이 퍼레이드를 펼쳤던 광장 등으로 변모한다.

아파트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배경과 가족관계, 내밀한 사연들의 방출은 객석의 웃음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사실상 영국계와 프랑스계 주민들이 겪는 갈등과 정체성의 혼란을 보다 개별적인 차원에서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아일랜드계 카톨릭교도의 문화와 전통을 엄격하게 고수하는 윗집, 커튼을 살 돈이 없어 빨래를 널어 창문을 가릴 수밖에 없는 프랑스어 교사의 집, 미혼모로 14살에 낳은 아들이 미국에서 팝스타로 성장했지만 결국 캐나다로 되돌아온 집.

이외에도 아이들이 너무 요란스럽게 뛰어대는 바람에 고릴라 패밀리라는 별명이 붙은 프랑스계 가족의 집, 첫 눈에 반해 결혼했지만 프랑스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6명의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영국인 아내와의 갈등으로 인해 밤마다 싸움이 벌어지는 회계사의 집들이 있다. 

그 가운데 영어와 프랑스어를 혼용하는 7명의 가족이 방 3개의 비좁은 공간을 함께 나누며 택시 운전사로 일하는 아버지의 어깨에 기대어 살아가야 했던 르빠주의 집이 있다.

그의 기억은 경제적으로 열악한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던 퀘백주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고충과 두 개의 언어로 나뉜 정체성의 갈등, 계층 차별, 언어적 혼란과 같은 문제들을 노출하게 된다.

1930년대 경제공황의 여파로 8살의 어린 나이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던 르빠주의 아버지는 캐나다 해군으로 입대해 2차 세계대전 때 런던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영어가 유창했다.

로베르 르빠주의 '887' 공연장면.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887번지 아파트 앞에 세워져 있던 자전거와 매일 밤 늦게 택시 운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버지의 택시에 대한 '기억'을 설명하고 있는 르빠주./사진=LG아트센터

아버지와 함께 런던에 거주했던 어머니 역시 영어를 구사했기 때문에 처음에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부부는 영국계 아이들을 입양하게 된다.

하지만 몇 년 후 르빠주와 그의 여동생 린다가 태어나게 되고, 결국 르빠주의 가정은 영국계 캐나다인으로 입양된 두 아이(데이브, 앤)와 프랑스계 캐나다인으로 태어난 두 아이(로베르, 린다)가 끊임없이 영어와 프랑스어로 소통하고 충돌하며 대립하고 화해하는 환경을 구성하게 된다.

르빠주의 예술세계를 연구하는 학자 알렉산더 던예로비치에 따르면, 이러한 특수한 경험은 르빠주가 “캐나다만이 지닌 특수한 문화의 은유”가 되도록 만들었다.

어쩌면 프랑스계 캐나다인들과 영국계 캐나다인들 간의 갈등이 가장 심화되었던 1970년 이후 40년이 흐른 시점에서 지배계급의 억압과 차별, 무시에 저항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장할 것을 외치는 라롱드의 시를 르빠주가 낭독하게 된 것은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르빠주 자신은 1961년부터 1970년에 이르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 속에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밤낮없이 택시 운전을 하며 끝없는 노동을 이어가야 했던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만이 그 시를 읽을 ‘자격’이 있음을 깨닫는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사람들을 구하고 사회 지배층의 언어인 영어를 구사하지만 학교 졸업장이 없어 택시 운전사 외엔 할 수 있는 직업이 없었던 아버지, “저들이 하는 말이 옳아. 하지만 저들이 하는 일은 옳지 않아”라고 말하며 TV 앞에서 12살의 어린 아들과 논쟁을 벌였던 아버지,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를 더 이상 건사할 수 없어 요양원에 보내고 마침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일하러 간다”고 말하며 집을 나선 채 택시 운전사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홀로 ‘슬픔’을 달래야 했던 아버지...

로베르 르빠주의 '887' 공연장면. 12살의 어린 소년 르빠주는 비 내리는 도시의 아침을 가르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신문배달'에 나선다. 하지만 검열을 지시받은 연방군은 12살 어린 르빠주의 머리에 총을 겨눈 채 신문이 든 가방에 '폭탄'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며 가방을 모두 비울 것을 지시한다. 흩어진 신문을 다시 주워담고 일어서며 '분노'를 느낀 르빠주는 속으로 "폭탄은 내 가방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다"고 외친다./사진=LG아트센터

르빠주는 그렇게 애를 써도 시를 암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비로소 깨닫는다.

원래 백인 농장주들이 흑인 노예들에게 자신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백인의 언어로만 말하라’는 의미로 “Speak White(하얗게 말하라)”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한 시의 제목은 지배계층만의 문화와 언어를 강요하는 오만함과 무례함을 드러낸다.

시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부당하고 언어를 무시당하며 계급으로 인해 억압되어왔던 ‘피지배층의 분노’를 담고 있다.

“우리는 교양도 없고 말도 더듬는 사람들일지 모르지만 밀턴과 바이런, 셸리와 키츠의 언어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아니다”라고 공표하며 시작되는 시는 “우리는 기계 가까이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듣기에 어려움이 있으니 우아한 삶과 위대한 사회에 대해 말할 때는 보다 명확하고 크게 외쳐줄 것”을 강조한다.

고용과 명령만을 일삼는 지배층의 언어는 “죽을 때까지 노동에 몸을 내맡겨야 하는” 피지배층의 언어와 구분되고, 세상은 오로지 ‘이윤 추구’만을 외치며 영혼을 내다 팔고 있다.

시는 “하얗고 투명하게, 분명하고 크게 외쳐야 할 것”은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인 “자유와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며,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임을 피력한다.

로베르 르빠주의 '887' 공연장면. 크리스마스 때마다 아이가 없는 이모와 이모부가 살고 있는 2층 집으로 초대를 받아 갔던 '기억'을 설명하는 르빠주. 전나무 아래 놓여있는 선물들과 벽난로에 걸려있는 커다란 양말, 넓고 화려한 집에 대한 기억은 '빈부의 격차'에 대한 인식을 심어준다./사진=LG아트센터

결국 자신이 시를 암기하는 데 방해가 되었던 것은 이러한 시를 ‘들을 자격이 없는’ 정치인들, 고위관리들, 언론인들과 같은 청중들이었음을 인식한 르빠주는 관객들을 향해 매우 감정적인 어조로 시를 쏟아 놓는다.

라롱드의 1968년 시는 2019년인 현재에도 변한 것이 별로 없는 현실과 여전히 사회 속에 만연한 억압과 차별을 인식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르빠주의 ‘887‘은 어린 시절 기억으로의 ‘회상’의 과정을 통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사회‧정치적 문제들과 현재적 관점에서 재구성되는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역사를 시적이고 감정적인 서사로 표현해낸다.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동’에 임했던 아버지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나누지 못한 르빠주의 아쉬움과 슬픔, 할머니의 죽음에 슬퍼하던 아버지를 위로하지 못한 르빠주의 후회와 안타까움, 사회 자본의 논리와 계층의 분화로 인해 여전히 불공평의 문제를 겪고 있을 뿐 아니라 점점 더 악화되는 듯 보이는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 르빠주의 씁쓸함은 쇼팽의 녹턴 13번과 낸시 시내트라의 ‘뱅뱅(Bang Bang)‘, 팻시 클라인의 ‘당신의 마음에 남은 게 있다면(Leavin’ on your mind)‘과 같은 음악을 통해 관객들의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든다.

‘887‘이라는 기억의 궁전을 통해 전달된 르빠주 개인의 기억은 관객들에게로 전달되어 같은 감정과 느낌을 공유하는 공동의 기억을 형성하고 하나의 ‘집단 기억’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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