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 우리의 미래에는 무엇이 있을까?...연극 '렛 뎀 잇 머니'
2028년 우리의 미래에는 무엇이 있을까?...연극 '렛 뎀 잇 머니'
  • 주하영
  • 승인 201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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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독일 도이체스 테아터(Deutsches Theater Berlin)의 2018년 9월 초연작
안드레스 바이엘 연출의 '렛 뎀 잇 머니(Let Them Eat Money. Which Future?!)' 
연극 '렛 뎀 잇 머니'의 독일 공연 장면. 납치된 인물들의 속박된 상태와 고통, 두려움과 같은 것들은 천장에 설치된 긴 줄에 거꾸로 매달리거나 줄에 몸을 감는 아크로바틱 동작들을 통해 표현된다. 유럽위원회 의원 '롤뢰그'와 전직 노동조합원이자 기본소득 협회 설립자인 '로써'는 갇혀 있는 동안 동병상련을 느끼며 서로에게 이끌린다.
연극 '렛 뎀 잇 머니'의 독일 공연 장면. 납치된 인물들의 속박된 상태와 고통, 두려움과 같은 것들은 천장에 설치된 긴 줄에 거꾸로 매달리거나 줄에 몸을 감는 아크로바틱 동작들을 통해 표현된다. 유럽위원회 의원 '롤뢰그'와 전직 노동조합원이자 기본소득 협회 설립자인 '로써'는 갇혀 있는 동안 동병상련을 느끼며 서로에게 이끌린다./사진=LG 아트센터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2018년 ‘세상은 우리의 생각만큼 끔찍하지 않다’는 주장을 통계자료로 뒷받침하며 전 세계가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에 갇혀있다고 주장한 한스 로슬링의 책 <팩트풀니스(Factfulness)>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극적인 것에 열광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실제보다 “세상이 더 무섭고, 폭력적이며, 가망이 없는 곳”이라고 여기지만 실제 통계자료는 세상이 예전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 안전한 곳으로 변모해왔으며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이전보다 훨씬 부유해졌음을 드러낸다.

로슬링은 세계은행과 유엔의 통계를 근거로 2017년 현재 세계 인구의 75%가 중간 소득을 유지하고 있으며, 고소득 국가까지 합친다면 9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훨씬 발전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여전히 부유한 나라와 빈곤한 나라가 존재하지만 20년 전만 하더라도 29%에 달했던 세계 극빈층의 수치가 2017년 9%로 감소했다는 통계는 분명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연극 '렛 뎀 잇 머니'의 독일 공연 장면./사진=LG 아트센터

하지만 사람들은 삶이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느끼지 못하며 세계의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로슬링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 인간의 기억은 과거의 모습을 쉽게 잊고 대상을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기술의 발전과 언론 자유의 확대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소식을 빨리 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지만 그로 인해 극적인 사건, 고통과 재난으로 점철된 사건들의 보도가 넘쳐나게 되었고, 인류의 고통을 감시하는 능력 또한 놀랍도록 개선되었다. 셋째, 세계가 점점 나빠진다는 것은 단지 느낌일 뿐 명확한 자료나 근거를 바탕으로 한 생각이 아니다. 사람들은 세계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문제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면에서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느낌을 표현하는 것뿐이다.

로슬링은 심각한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우리가 안심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두려움에 빠져 과도하게 극단적인 세계관을 형성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과거의 발전을 인정하고 인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가진 채 현재 발생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판단하는 일, 그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능력은 다름 아닌 “사실충실성(factfulness)”에 입각한 세계관의 형성이다. 세상은 악화되는 동시에 개선되고 있다. 단, 극적인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간의 특성 탓에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더 많이 전달되고 영향을 미칠 뿐이다.

최근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인 독일 도이체스 테아터(Deutsches Theater Berlin)의 2018년 연극 <렛 뎀 잇 머니(Let Them Eat Money. Which Future?!)>는 로슬링이 주장한 것과 전혀 다른 미래를 펼쳐 보인다.

연극 '렛 뎀 잇 머니' 서울 공연 포스터 컷. 2018년 9월 독일에서 초연된 연극 '렛 뎀 잇 머니(Let Them Eat Money. Which Future?!)'는 2019년 9월 20일~21일 서울에서 해외 첫 공연을 선보였다.
연극 '렛 뎀 잇 머니' 서울 공연 포스터 컷. 2018년 9월 독일에서 초연된 연극 '렛 뎀 잇 머니(Let Them Eat Money. Which Future?!)'는 2019년 9월 20일~21일 서울에서 해외 첫 공연을 선보였다./사진=LG 아트센터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인 브렉시트(Brexit)로 촉발된 유로존의 붕괴와 이민자의 문제, 최근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인공지능과 생체과학 기술이 가져온 노동력 대체현상, 기후변화가 야기한 식량 부족과 미세 플라스틱입자의 두뇌침투로 인한 신종 질병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10년 후인 2028년 유럽이 직면하게 될 미래는 지극히 암울하고 두렵기만 하다.

136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도이체스 테아터는 2017년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가(Which Future?!)”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0년 후의 미래와 위기에 관한 가상의 시나리오는 250여명의 환경, 경제, 노동, 기술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참여한 리서치와 토론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2018년 4월 훔볼트 포럼(Humboldt Forum)에서는 리서치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가장 긴급하고 첨예한 문제들에 관해 이틀간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심포지엄에서는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여러 사람들과 문화, 정치, 경제, 과학 분야의 전문가들, 사회와 국가에 대해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연구자들이 열띤 토론을 쏟아냈고, 도이체스 테아터는 그 결과물들을 축약하고 덜어내는 과정을 통해 2018년 9월 연극 <렛 뎀 잇 머니>를 초연했다.

2018년 4월 도이체스 테아터와 훔볼트 포럼과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심포지엄 'Which Future?!'.
2018년 4월 도이체스 테아터와 훔볼트 포럼과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심포지엄 'Which Future?!'./사진=LG 아트센터

2년에 가까운 연구기간, 13개의 워크숍을 통해 얻은 여러 전문가들의 예측은 기본소득, 기후변화, 국가와 민주주의 체제의 해체, 인공섬 건설, 신종 질병과 생체 바이오 칩, 기술로 인한 노동력 대체 등 많은 문제들을 노출하며 연극 <렛 뎀 잇 머니>의 2028년이라는 가상의 미래 속에 현실로 구현되었다.

2018년 지구 온난화로 인해 극심하게 악화된 기상변화는 유럽연합으로 이주하려는 이민자들과 원조요청을 증가시킨다. 페이스북과 페이팔을 통해 부를 축적한 슈테판 타르프는 인공지능 관련 사업에 뛰어든다.

또한, 파킨슨병과 유사한 떨림과 피로, 기억력 이상 등의 증상을 보이는 신종 질병 ‘트레머(Tremor)’가 발생한다. 미국의 자본가들과 러시아의 신흥 재벌들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으며 바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인공섬 건설을 시작하고, 2022년 인공섬 ‘오션시티’를 건설한 타르프는 제약회사 노바 연구소를 통해 트레머를 진정시킬 수 있는 칩 기술을 비밀리에 개발하고 임상실험을 실시한다.

한편 부상으로 인해 배달 업무를 한 동안 쉴 수밖에 없었던 유르겐 반도프스키는 모든 배달 업무가 이미 드론으로 대체되어 버렸음을 깨닫게 된다.

연극 '렛 뎀 잇 머니'의 독일 공연 장면. 차가움과 불모를 상징하는 '철제'와 '소금'으로 구성된 무대는 '유럽이 처한 삭막한 경제 상황'과 '기계에 의해 점유되고 강탈되는 인간의 삶'을 드러낸다.
연극 '렛 뎀 잇 머니'의 독일 공연 장면. 차가움과 불모를 상징하는 '철제'와 '소금'으로 구성된 무대는 '유럽이 처한 삭막한 경제 상황'과 '기계에 의해 점유되고 강탈되는 인간의 삶'을 드러낸다./사진=LG 아트센터

소규모 농장들은 지속되는 가뭄과 기상악화, 대규모 농장만을 상대로 하는 대형 농약 회사들로 인해 대기업에게 땅을 매입 당한 뒤 퇴거된다. 가뭄은 내전을 불러오고 난민들은 갈 곳을 잃는다. 원인을 모르는 질병 트레머는 이제 전 세계로 번지고, 감염자들은 격리된다.

먹고 살 방편을 잃은 사람들은 지하로 숨어들어 저항단체 ‘렛 뎀 잇 머니’를 결성한다. 2023년 이탈리아의 유럽연합 탈퇴는 실업과 불안을 더욱 가속화한다.

2024년 의회에서 기본소득 도입이 결정되고 유로화와 암호화폐가 혼합된 형태로 시민들에게 지급된다. 프랑스 남부의 농장에서 퇴거당한 일듄과 옹즈, 딸 지나는 유르겐과 함께 사이버 공격을 중심으로 한 각종 저항운동을 벌인다. 2025년 기본소득은 계획대로 유지되지 못하고 절반으로 삭감된다.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이 폐지되고 대신 타르프가 개발한 생체 이식 칩이 도입되어 시민들의 생체 데이터를 모니터링한다.

신종 질병 '트레머'를 앓고 있는 일듄(화면 위쪽)은 증상을 완화시키는 생체 이식 칩을 개발한 타르프 재단의 임상 실험에 대해 알게 되고, 뇌에 칩을 이식하는 병원에서 유럽위원회 의원인 '프랑카 롤뢰그'(화면 아래쪽)와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의 두뇌에 이식된 칩은 매번 업데이트를 거치지 않으면 다시 원상태로 복귀하는 부작용을 갖고 있으며, 모든 생각과 기억들이 데이터로 기록되고 조정되는 위험을 안고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일듄은 업데이트를 거절하고 삽입된 칩을 절단한다. 옹즈는 붕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납치해 온 롤뢰그를 영상으로 촬영한다.
연극 '렛 뎀 잇 머니' 공연 사진. 신종 질병 '트레머'를 앓고 있는 일듄(화면 위쪽)은 증상을 완화시키는 생체 이식 칩을 개발한 타르프 재단의 임상 실험에 대해 알게 되고, 뇌에 칩을 이식하는 병원에서 유럽위원회 의원인 '프랑카 롤뢰그'(화면 아래쪽)와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의 두뇌에 이식된 칩은 매번 업데이트를 거치지 않으면 다시 원상태로 복귀하는 부작용을 갖고 있으며, 모든 생각과 기억들이 데이터로 기록되고 조정되는 위험을 안고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일듄은 업데이트를 거절하고 삽입된 칩을 절단한다. 옹즈는 붕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납치해 온 롤뢰그를 영상으로 촬영한다./사진=LG 아트센터

타르프가 개발한 앱은 기록된 생체 데이터를 직접 평가하고 전자 진단을 통해 처방된 사항을 사용자가 준수하도록 조종한다. 치료는 최소화되고 병원을 방문할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의 수술은 거부된다. 타르프의 노바 연구소가 개발한 트레머 치료제인 칩은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를 거치지 않으면 원상태로 복귀되는 부작용이 있음에도 인공섬에 위치한 병원을 방문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출시된다.

계속되는 폭염으로 인해 60% 이상의 땅이 염류화되고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자 유럽 시민들은 대륙을 버리고 인공섬의 거주지를 확보하기 위해 재산을 처분하기 시작한다. 2027년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유로화는 붕괴된다.

유럽 대륙에 남아있는 시민들의 약탈과 시위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북유럽연합은 비상상태를 선포한다. 전기, 데이터 네트워크, 음식과 물자의 수송 경로는 경찰과 군인에 의해 통제되고, 시민들에게 전기와 음식이 배급된다.

저항단체 ‘렛 뎀 잇 머니’는 식료품점에 잠입해 강탈한 물건들을 대중들에게 분배함으로써 점점 더 많은 팔로워들을 이끌게 된다. 인공섬으로 이주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시민들은 자신들만의 초공동체를 형성하고, 생존을 위해 빈번한 투쟁을 벌인다.

유럽 연합 의회가 해체되고 다음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붕괴'의 책임에 대해 묻는 청문회가 진행된다. 외부 서비스업체가 선정되고, 자본가인 슈테판 타르프가 개발한 인공지능 애플리케이션이 모든 인터뷰를 영상촬영하여 저장한다. 유럽 중앙은행 총재인 '프레리히 콘스트'(오른쪽 앞)는 홍채 인식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인공지능의 질문에 대답한다. 하지만 저항단체는 아카이브의 해킹을 통해 모든 기록 데이터를 확보한다.
연극 '렛 뎀 잇 머니' 공연 사진. 유럽 연합 의회가 해체되고 다음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붕괴'의 책임에 대해 묻는 청문회가 진행된다. 외부 서비스업체가 선정되고, 자본가인 슈테판 타르프가 개발한 인공지능 애플리케이션이 모든 인터뷰를 영상촬영하여 저장한다. 유럽 중앙은행 총재인 '프레리히 콘스트'(오른쪽 앞)는 홍채 인식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인공지능의 질문에 대답한다. 하지만 저항단체는 아카이브의 해킹을 통해 모든 기록 데이터를 확보한다./사진=LG 아트센터

2028년 결국 의회가 해산된다. 타르프의 인공지능 앱은 다음 정부를 위해 현재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는 청문회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맡는다. 홍채인식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고 관련자들의 인터뷰 전 과정은 영상으로 녹화되어 인공지능에 의해 저장된다.

하지만 저항단체 ‘렛 뎀 잇 머니’는 아카이브를 해킹해 관련 데이터와 심문자 리스트를 확보하고, 표적을 납치해 심문의 전 과정을 대중에게 라이브로 실시간 송출한다.

연극 <렛 뎀 잇 머니>는 저항단체의 리더인 일듄과 옹즈가 2028년의 ‘붕괴’를 낳은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납치한 유럽위원회 의원 프랑카 롤뢰그와 전직 노동조합원이자 기본소득협회 설립자인 라포 로써의 온라인 심문에 대중을 초대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저항단체 '렛 뎀 잇 머니'의 리더이자 상징인 '일듄'(앞, 왼쪽)과 그녀의 남자친구 '옹즈'. 그들은 2028년 '붕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전직 노동조합원이자 기본소득협회 설립자인 '라포 로써'를 납치한다./사진=LG아트센터
연극 '렛 뎀 잇 머니' 공연 사진. 저항단체 '렛 뎀 잇 머니'의 리더이자 상징인 '일듄'(앞, 왼쪽)과 그녀의 남자친구 '옹즈'. 그들은 2028년 '붕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전직 노동조합원이자 기본소득협회 설립자인 '라포 로써'를 납치한다./사진=LG아트센터

그들은 누구도 ‘붕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이 시점에서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추궁과 취조가 필요함을 토로한다. 그들은 팔로워들이 라이브 영상을 통해 롤뢰그와 로써의 이야기를 심판하고 그들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지 결정해 줄 것을 요구한다.

또한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있는 1,100만 명이 넘는 팔로워들을 향해 물과 데이터, 식료품, 토큰 등을 기부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들이 납치한 책임자들에게 묻는 질문은 하나이다.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스템이 실패한 책임은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가?”

그들은 또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묻는다.

“질문이 없는 자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항상 원으로만 돌고 있는 것일까?”

무대는 철제로 된 좁은 틀 안에 롤뢰그와 로써를 카메라 앞에 세워놓고 일듄과 옹즈가 그 위에 군림하고 있는 모습으로 연출된다. 영상과 팔로워 수, 실시간 시청자들의 댓글은 화면에 영상으로 송출된다. 무대 바닥은 더 이상 농작물이 자랄 수 없는 불모의 땅이 되어버린 유럽 대륙을 상징하듯 온통 소금으로 뒤덮여 있다.

무대는 철제로 된 좁은 공간에 납치한 인물들을 카메라를 향해 세워 놓고 취조와 심문과정을 온라인 실시간으로 생중계한다. 납치당한 인물들 위에 군림하는 저항단체 일원들은 철제 구조물 위에 위치하며 영상은 커다란 화면을 통해 송출된다.
연극 '렛 뎀 잇 머니' 공연 사진. 무대는 철제로 된 좁은 공간에 납치한 인물들을 카메라를 향해 세워 놓고 취조와 심문과정을 온라인 실시간으로 생중계한다. 납치당한 인물들 위에 군림하는 저항단체 일원들은 철제 구조물 위에 위치하며 영상은 커다란 화면을 통해 송출된다./사진=LG 아트센터

납치된 인물들의 속박된 상태와 고통, 죄의식과 두려움과 같은 것들은 천장에 설치된 긴 줄에 거꾸로 매달리거나 줄에 몸을 감는 아크로바틱 동작들을 선보이며 표현된다.

극은 저항단체가 납치한 롤뢰그와 로써를 라이브로 심문하는 장면과 인공지능 청문회에서 기계에 의해 질문되고 저장되는 중앙은행 총재 프레리히 콘스트와 자본가 타르프의 인터뷰 장면으로 구분된다.

홍채인식이 한 번에 되지 않는 불편함이나 입력되지 않은 정보를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 언어 인식의 불능으로 인해 저장되지 않거나 삭제되는 인터뷰 기록의 발생과 같은 인공지능의 문제는 유르겐이 자동화된 병원 시스템에 문의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가 보이스 인식을 하지 못하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카테고리를 찾을 수 없어 결국 포기하고 마는 에피소드와 연결되며 객석에 웃음을 선사한다.

연극 '렛 뎀 잇 머니'의 독일 공연 장면. '붕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납치된 두 인물 유럽위원회 의원 '롤뢰그'와 전직 노동조합원이자 기본소득 협회 설립자인 '로써'는 갇혀 있는 동안 서로에게 끌린다.
연극 '렛 뎀 잇 머니'의 독일 공연 장면. '붕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납치된 두 인물 유럽위원회 의원 '롤뢰그'와 전직 노동조합원이자 기본소득 협회 설립자인 '로써'는 갇혀 있는 동안 서로에게 끌린다./사진=LG 아트센터

정치, 경제, 기술, 환경이 복잡하게 얽힌 유럽의 여러 문제들을 심문과 인터뷰, 각 인물들의 속내, SNS를 통해 표출되는 메시지들로 쏟아내는 극의 진행방식은 다소 산만하고 관객들에게 이해의 어려움을 낳는다.

하지만 정확하게 맥락을 꿰지 못하더라도 인물들이 관객들을 향해 던지는 의미심장한 대사들이 극이 궁극적으로 질문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도록 만든 점은 장점이다.

통치권과 헌법이 아닌 ‘상법’을 선택한 세상이 마주하게 될 결과가 무엇인지, 서로 반대편을 향해 질주하는 두 대의 기차가 충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현재를 돌아보지 않고 미래에 도달했을 때 닥칠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일지 묻는 연극은 관객들이 디스토피아의 세상을 너머 “과잉도 궁핍도 아닌 열심히 고민하고 노력해서 얻은 진실”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연출을 맡은 안드레스 바이엘(Andres Veiel)은 훔볼트 포럼 심포지엄에 관한 동영상에서 2008년에 발생했던 금융 위기와는 또 다른 차원의 새로운 ‘위기’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 위기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위기를 잠깐 멈춰 서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시간”이라고 간주한다면 연극은 그러한 위기를 제시하고 생각과 질문, 의심과 상상의 과정을 모두 거치도록 만드는 완벽한 예술임을 강조한다.

연극 '렛 뎀 잇 머니'의 전체 무대 사진. 바닥을 덮고 있는 '소금'은 지속되는 가뭄과 이상기후로 인해 염류화가 진행된 탓에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유럽 대륙의 '불모와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
연극 '렛 뎀 잇 머니'의 전체 무대 사진. 바닥을 덮고 있는 '소금'은 지속되는 가뭄과 이상기후로 인해 염류화가 진행된 탓에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유럽 대륙의 '불모와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사진=LG 아트센터

실제로 극은 2018년 세계 석학이라 불리는 8명의 학자들에게 인류의 미래를 질문한 인터뷰를 정리한 책 <초예측>에서 언급된 내용들이 거의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향후 30년 내에 우리가 내리게 될 결정들이 생명의 전체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 선언했고, 기술의 발전 속도로 인해 모든 것들이 지나치게 빨리 변화하는 탓에 “누구도 10년 후, 20년 후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인류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학자로서 미래를 묻는 질문에 “최악의 상황까지 포함해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며, “무용계급(useless class)”의 출현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경고함으로써 인류가 미리 방어태세를 갖추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했다.

바이엘 또한 같은 입장을 견지한다. 바이엘은 “우리의 목적은 논쟁을 일으키고 미래에 대한 가치관을 충돌시킴으로써 현재의 교창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찾는 것”이며, 인류가 “매번 최고 속도로 같은 벽을 향해 달려드는 ‘충돌시험용 마네킹’과 같은 존재로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결국 연극 속 저항단체 ‘렛 뎀 잇 머니’는 모든 것이 연결된 붕괴 사태에 명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팔로워 수가 급감하고 사람들은 식량과 물, 데이터를 무료 배급해주는 단체에 보다 관심을 가지며 흩어진다.

모든 문제를 새로운 기술 개발과 거래, 타협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는 '슈테판 타르프'(가운데)는 스스로 저항단체 '렛 뎀 잇 머니'에 사로잡혀 그들만의 인공섬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미 좌절과 분노, 광기로 치우친 일듄과 옹즈는 타르프를 사살하고자 한다.
연극 '렛 뎀 잇 머니' 공연 사진. 모든 문제를 새로운 기술 개발과 거래, 타협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는 '슈테판 타르프'(가운데)는 스스로 저항단체 '렛 뎀 잇 머니'에 사로잡혀 그들만의 인공섬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미 좌절과 분노, 광기로 치우친 일듄과 옹즈는 타르프를 사살하고자 한다./사진=LG 아트센터

한편, 문제가 생길 경우 다른 기술 개발과 거래, 협상을 통해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타르프는 인공지능에게 저항단체에게 자신이 납치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것을 명령한다.

저항단체를 만난 타르프는 그들을 위한 인공섬을 제안하지만 “무엇을 위해 싸워 왔는지 잊은 채” 절망감에 휩싸여 분노와 광기로 흐르게 된 일듄과 옹즈는 타르프를 사살하려 한다.

하지만 상황을 이해할 수 없게 된 지나는 타르프를 풀어준다. 타르프가 기술을 개발하는 목적이 모든 이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통제를 되찾기 위한 목적”임을 알게 된 지나는 이렇게 외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우정을 바탕으로 한 소통이야. 나는 나만의 방식을 찾을 거야!”

저항단체 '렛 뎀 잇 머니'의 구성원들. 해커로서 사이버 공격을 주도하는 '옹즈'(왼쪽), 전직 배달원이었으나 드론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유르겐 반도프스키'(왼쪽 뒤), 저항단체의 리더이자 신종 질병 '트레머'를 앓고 있는 '일듄'(오른쪽), 엄마로 인해 자연스럽게 저항단체에 가담했지만 자꾸만 '의문'이 생기는 일듄의 딸 '지나'(오른쪽 뒤). 전직 노동조합원이자 기본소득 협회의 설립자인 '라포 로써'는 붕괴에 대한 책임 추궁을 위해 납치되어 줄에 매달린 채 묶여 있다.
연극 '렛 뎀 잇 머니' 공연 사진. 저항단체 '렛 뎀 잇 머니'의 구성원들. 해커로서 사이버 공격을 주도하는 '옹즈'(왼쪽), 전직 배달원이었으나 드론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유르겐 반도프스키'(왼쪽 뒤), 저항단체의 리더이자 신종 질병 '트레머'를 앓고 있는 '일듄'(오른쪽), 엄마로 인해 자연스럽게 저항단체에 가담했지만 자꾸만 '의문'이 생기는 일듄의 딸 '지나'(오른쪽 뒤). 전직 노동조합원이자 기본소득 협회의 설립자인 '라포 로써'는 붕괴에 대한 책임 추궁을 위해 납치되어 줄에 매달린 채 묶여 있다./사진=LG 아트센터

급작스럽게 선회하는 결론은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이상주의적으로 들리지만 이는 로슬링의 주장처럼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리 두뇌의 특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지나의 말처럼 자극적인 콘텐츠에 반응하는 팔로워들에 의해 힘을 얻거나 잃게 되는 가변성이 아닌 확고한 어떤 것, 즉 “우정을 기반으로 한 진정한 소통”일 것이다.

단지 너무 빨라진 속도와 요동치는 세상에 익숙해진 탓에 견고함을 바탕으로 한 소통이나 흔들리지 않는 우정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 버렸을 뿐, 정말로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바탕으로 한 희망과 기대, 최악의 시나리오를 냉철하게 분석함과 동시에 미래를 향해 낙관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 “가능성 옹호론자”의 저항정신, 바로 그것이 아닐까?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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