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찰나...연극 '인테리어즈'
실재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찰나...연극 '인테리어즈'
  • 주하영
  • 승인 20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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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영국 스코틀랜드 극단 배니싱 포인트의 2009년 작품,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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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테리어즈' 공연장면. '폴'과 여자친구 '오로라'는 폴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Video Killed The Radio Star'에 맞춰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다./사진=국립극단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미래의 관점에서 오늘을 본다면,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 하지만 앞날을 알 수 없는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바라고, 원하고, 계획하고, 맹세하며 오늘을 계속한다. 더 나은 내일을 소망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언젠가 다가올 행복을 믿고 또 하루를 보낸다.

만약 세상을 떠난 영혼이 주변을 맴돌며 곧 불어 닥칠 미래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드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들 역시 모든 것을 만지고 느끼며 사람들 속에서 고군분투했던 과거를 갖고 있다.

그들은 오늘의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세상의 어떤 것도 가져갈 수 없음에도 그토록 무언가를 바라는 우리의 헛된 노력이 안타깝고 불쌍할까? 아니면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채 끝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우리의 무지함이 한심하고 답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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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테리어즈' 공연장면. 불 켜진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이는 저녁 파티 모습은 행복해 보인다. 파티의 주최자인 할아버지 '피터'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 'Wherever I Lay My Hat (That's My Home)'을 따라 부르고 있다./사진=국립극단

최근 명동예술극장에서는 국립극단의 해외초청작으로 선보인 스코틀랜드 극단 배니싱 포인트(Vanishing Point)의 연극 ‘인테리어즈(Interiors)’의 막이 내렸다.

1999년 글래스고(Glasgow)에 기반을 두고 설립된 극단 배니싱 포인트는 “쉽게 잊을 수 없는 시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관객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마술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와 추상성을 강조하는 “매우 시각적이고 멀티미디어적인 극단”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려왔다.

2009년 에든버러에 위치한 트래버스 씨어터(Traverse Theatre)에서 초연된 연극 ‘인테리어즈’는 영국 전역을 거쳐 주요 국제 페스티벌로 뻗어나가며 “우리 자신의 일상과 똑같이 닮은 세상”을 무대 위에 그대로 구현할 뿐 아니라 “삶의 가변적 속성에 대한 감동적인 명상”을 제공하는 작품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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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테리어즈' 공연장면. 흰색 모자에 흰색 옷을 입은 여인은 창 밖에서 저녁 식사 파티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여인은 파티에 모인 사람들의 속마음을 관객들에게 알려주기도 하고 상황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사진=국립극단

사실 연극 ‘인테리어즈’는 191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벨기에의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의 1895년 연극 ‘인테리어(Intérieur)’에 영감을 받아 새롭게 각색된 작품이다.

원래 줄에 매달린 인형 ‘마리오네트(Marionette)’로 공연되는 극으로 고안된 원작은 3개의 창문을 통해 거실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 밖에서 딸아이의 ‘불행한 죽음’이라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온 노인과 낯선 사람이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가족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탁자에 팔꿈치를 괴고 생각에 잠겨 있는 어머니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아버지, 곤히 잠들어 있는 막내와 수를 놓고 있는 두 딸의 평화로운 일상이 산산조각날 것임을 알고 있는 노인과 낯선 사람은 그들에게 다가온 비극이 남의 일만이 아님을 인식한다.

문을 꼭 걸어 잠그고 바깥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하지만 결국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다가오는 불행”을 막을 수 없음을 인식한 노인은 낯선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늘 사건이 일어난 뒤에야 깨닫지. ... 일상에 무언가 첨가되지 않으면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

그는 인간의 삶에 도사리고 있는 보편적 불안의 요소가 “상관없는 사람들도 함께 고통을 짊어지도록” 만들고 누구에게나 스며드는 “공기나 빛처럼 고통을 나누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죽음과 불행, 고통과 연민, 삶의 가변성에 관한 마테를링크의 통찰은 운명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기에는 ‘배우’보다 줄에 의지해 조종당하는 ‘마리오네트’가 더 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했다.

객석에서 바라보는 무대 모습. 극단 배니싱 포인트는 "쉽게 잊을 수 없는 시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매우 시각적이고 멀티미디어적인 극단"으로 알려져있다. 관객들은 완전히 "제 4의 벽"으로 자리하며 창 너머의 삶을 관찰하는 입장에 놓인다.
연극 '인테리어즈' 공연장면. 객석에서 바라보는 무대 모습. 극단 배니싱 포인트는 "쉽게 잊을 수 없는 시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매우 시각적이고 멀티미디어적인 극단"으로 알려져있다. 관객들은 완전히 "제 4의 벽"으로 자리하며 창 너머의 삶을 관찰하는 입장에 놓인다./사진=국립극단

하지만 극단 배니싱 포인트의 예술 감독인 매튜 렌튼(Matthew Lenton)은 관객들을 타인의 삶을 “관음증(voyeurism)”적으로 관찰하는 위치에 고정시키고 완벽한 “제 4의 벽(the fourth wall)”이 되도록 만들어 무언극을 펼치는 배우들을 ‘인형’처럼 보도록 하는 다른 선택을 선보였다.

또한, 그는 “눈으로는 보되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관객들이 사람들의 ‘내면(interior)’을 파고들고, 실체를 노출하며, 그들의 삶이 품고 있는 ‘불안’을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유령처럼 보이는 초현실적인 존재의 ‘목소리’를 배치했다.

그는 2010년 공연 프로그램을 통해 마테를링크가 제시하고자 한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삶이 통제되는 느낌”과 인간이 일상 속에서 품게 되는 “희망과 두려움, 굽이마다 마주하게 되는 비극들을 포착”함과 동시에 “내면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관객들과 같은 위치에서 인물들을 관찰하며 관객들이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답을 할 수 있는 ‘목소리’를 배치하게 되었음을 밝혔다.

렌튼은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도시에서 흔히 경험하게 되는 “불이 밝혀진 창문을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상황”이 실제 극의 아이디어로 발전되었다고 말한다.

관객들은 인적이 드문 추운 겨울 밤 “깜깜한 어둠에 둘러싸인 작은 빛의 상자”처럼 보이는 집 안을 바라보며 ‘유령’처럼 타인의 삶을 맴도는 존재가 된다.

관객들은 불 켜진 타인의 집을 '관음증'적으로 들여다보는 고정된 위치에 놓이고, 배우들은 무언극을 펼쳐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속내는 흰 옷 입은 여인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유령과 같이 초현실적인 존재인 흰 옷의 여인은 피터의 저녁 식사 파티에 모인 사람들의 미래에 대해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연극 '인테리어즈' 공연장면. 관객들은 불 켜진 타인의 집을 '관음증'적으로 들여다보는 고정된 위치에 놓이고, 배우들은 무언극을 펼쳐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속내는 흰 옷 입은 여인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유령과 같이 초현실적인 존재인 흰 옷의 여인은 피터의 저녁 식사 파티에 모인 사람들의 미래에 대해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렌튼은 북극의 삶에 대해 “지역사회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사람은 겨울을 견디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미쳐버리거나 북극곰에게 잡아먹힌다”고 설명한 어떤 이의 말에 상상력을 더해 “일 년 중 가장 밤이 긴 날, 세차게 불어오는 겨울바람으로 인해 극심한 추위를 느끼는 가운데 가족과 친구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 할아버지 피터(Peter)의 집”을 무대 위에 구현한다.

“삶에 대한 재확신”을 얻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품기 위해 해마다 마련되는 피터의 저녁 식사 자리에는 굶주림으로 날카로워진 북극곰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산탄총을 어깨에 둘러메고 온 7명의 손님들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으나 커다란 창 너머로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관객들이 존재한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하얀 식탁보가 덮인 테이블 위에는 와인 잔과 접시, 포크와 나이프, 스푼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벽에 걸린 그림과 거울, 하늘이 엿보이는 작은 창, 장식장 위에 놓인 가족사진과 피아노는 누군가의 거실임을 드러낸다.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집을 물들이던 노을은 점점 그림자가 길어진다.

객석으로 모든 관객들이 입장하고 공연을 시작할 무렵이 되면 붉은 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창문 위로 달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윗옷은 모두 갖춰 입었으나 아직 바지를 입지 않은 할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테이블을 찬찬히 살펴보고 관객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듯 창밖을 향해 빙긋 웃어 보인다.

연극 '인테리어즈' 공연장면. /사진 출처=극단 배니싱 포인트 홈페이지(Phtography by Tim Morozzo) 

하지만 그는 눈이 쌓인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혼자 미소 지었을 뿐 누가 창 밖에서 자신의 집을 들여다보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관객은 유령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손녀딸로 보이는 젊은 금발의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는 벽에 걸린 작은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고 머리를 매만지며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다.

할아버지는 냄비를 들고 들어와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두리번거리더니 부엌으로 사라진다. 이제 할아버지는 바지와 양복 재킷을 갖춰 입는다. 손님 맞을 준비가 다 된 모양이다.

현관문이 열린 듯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눈발이 집안으로 스며든다. 산탄총을 들고 두꺼운 방한복을 입은 한 여인이 케이크를 손에 들고 들어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의 제스처를 바라볼 뿐 관객들은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다.

관객들은 오로지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상황을 짐작한다. 집을 비추고 있던 초승달은 조금씩 모습이 커지며 둥글게 변한다. 어디선가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온다.

“보세요! 저들을 봐요! 저 작은 집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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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인테리어즈' 공연장면. 흰 옷을 입은 여인의 위치는 관객과 동일하다. 집 주변을 배회하는 초현실적인 존재로 '무언극'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흰 옷의 여인은 "내면의 생각을 전달"하고 사람들의 삶에 숨 쉬고 있는 작은 희망과 비극들을 노출한다. /사진=국립극단

모습이 보이지 않는 한 여인이 집 안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상황에 대해 설명한다. 일 년에 한 번씩 파티를 여는 피터의 집에 초대된 도로시(Dorothy), 폴(Paul), 폴의 여자 친구 오로라(Aurora), 그리고 동네 청년 다비드(Davide), 낯선 사람 존(John)이 차례로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이전과는 다른 머리 스타일과 드레스 차림의 손녀 올리비아(Olivia)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의 저녁식사는 오랜만에 모인 송년회나 연말모임의 친구들이 보통 그러하듯 겉으로는 화기애애하지만 속으로는 저마다의 생각을 품은 채 ‘사교’라는 이름의 시간을 더한다.

집 주인이 내놓은 와인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겉으로는 괜찮은 척 예의를 차리고, 축복의 말을 건네며 모두를 향해 건배를 청하지만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어색하게 마무리 짓는다.

못 부르는 노래에 감동한 듯 반응하지만 이내 참을 수 없다는 듯 고통의 제스처를 취하고, 음식을 앞에 두고 시작된 지나치게 긴 기도는 배고픈 사람들의 짜증을 배가시킨다.

대부분의 사교 관계가 그렇듯 사람들은 예의를 갖추고 서로에게 녹아들기 위해, 누군가의 빈자리를 메우고 관계를 맺기 위해, 미소를 머금고 친절한 태도로 반응하며 모든 노력을 다한다.

그들의 머릿속을 맴도는 내면의 생각들은 보이지 않는 여인의 목소리를 통해 차갑고 냉소적이지만 애정과 위트를 담아 전달된다.

흰색 모자에 흰색 옷을 입은 여인은 유리창 너머에 있는 사람들과 다름없이 살던 때를 회상한다. 살아있는 삶을 느끼고 싶을 때가 간혹 있지만 "모든 것을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는 여인은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 다른 집으로 가 볼 것"임을 말한다.
 연극 '인테리어즈' 공연장면. 흰색 모자에 흰색 옷을 입은 여인은 유리창 너머에 있는 사람들과 다름없이 살던 때를 회상한다. 살아있는 삶을 느끼고 싶을 때가 간혹 있지만 "모든 것을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는 여인은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 다른 집으로 가 볼 것"임을 말한다./사진=국립극단

갑자기 흰 모자에 흰 옷을 입은 여인이 조명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내고, 객석 뒤쪽에서부터 천천히 무대를 향해 걸어내려 온다. 그녀는 마치 어둠 속을 흩날리는 눈송이처럼, 하얀 눈밭을 어슬렁거리는 북극곰처럼, 혹은 집 주변을 맴도는 유령처럼 거실 창 밖에 머물며 집 안에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는 관객들의 궁금증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에 답하고 그들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관객들과 똑같은 위치에서 각자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유리 창 안의 사람들을 바라본다.

올리비아의 콘택트렌즈가 빠져 소동이 발생하고, 겨우 찾아낸 렌즈를 도로시가 입 속에서 헹궈 올리비아의 눈에 넣어주는 황당한 장면이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코피가 터진 존으로 인해 손님들이 북새통을 떠는 장면의 폭소는 모두 덤이다.

누군가는 사랑을 확신했던 청혼에 거절당해 상처와 충격에 휩싸이고, 그를 비웃고 깔깔대던 다른 누군가는 막상 자신이 거절당하는 아픔을 겪게 되자 바로 의기소침해진다.

저녁 식사 파티는 청혼을 거절한 오로라가 집을 떠나고, 그 뒤를 이어 폴이 떠나고, 다비드가 작별인사를 하면서 마무리에 접어든다. 다비드에게 거절당한 올리비아는 일찍 잠자리에 들겠다며 일어서고, 도로시는 자신이 가져온 케이크를 도로 가져가겠다며 부엌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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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인테리어즈' 공연장면. '다비드'에게 거절당한 피터의 손녀 '올리비아'는 의기소침해 있고, 포크 스튜가 메뉴로 제공된 탓에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한 채식주의자 '도로시'는 자신이 가져온 케이크를 도로 가져갈 궁리를 하고 있다. /사진=국립극단

한편, 디저트로 나온 푸딩이 너무 맛있어서 바닥까지 긁어먹던 존은 피터가 모두를 배웅하러 나간 사이 다른 사람이 남기고 간 푸딩을 또 하나 집어 든다. 이제 식탁에는 존과 피터가 남아있을 뿐이다. 피터는 내내 비어 있던 흰색 의자를 창밖을 향해 돌려 세우고 관객들을 바라보며 앉는다.

존과 피터는 달이 밝게 비춘 하얀 눈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들이 사실상 보고 있는 것은 이제껏 모습을 숨긴 채 그들을 관찰하고 있던 관객들이다. 피터는 바로 앞에서 창문에 손을 마주대고 있는 흰 옷 입은 여인을 보지 못한다. 여인은 이번이 피터의 마지막 연말 파티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녀는 저녁식사를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의 미래를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4주 뒤 피터는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고 폐렴으로 인해 죽게 된다. 청혼을 거절당한 폴은 2년 뒤 실비아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만 평생 오로라를 잊지 못한다.

북극 지역을 반드시 벗어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던 다비드는 정확히 1년 뒤 원인을 알 수 없는 심장마비로 수영장에서 사망한다. 푸딩을 맛있게 먹고 있는 존은 이 집을 나선 뒤 공원 벤치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몇 년 뒤 페루로 여행을 갔던 도로시는 장염이 끝내 낫질 않아 시름시름 앓다 죽음에 이른다. 누군가는 오랫동안 홀로 외로이 살다 집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고, 다른 누군가는 늙은 나이에도 젊은 남자와 즐기다 요란하고 소란한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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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인테리어즈' 공연장면. 추운 겨울 밤 암흑 속에 불이 밝혀진 창문을 통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피터의 저녁 식사 시간의 흐름은 우측에서부터 점점 둥글게 커지며 왼쪽으로 이동하는 달의 모양과 별의 흐름을 통해 표현된다. /사진=국립극단

여인은 묻는다. 먹고 마시며 누군가의 체온을 느끼고 사랑하는 일이 모두 과거의 신기루가 되어버린 존재에게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하찮게 느껴지는지 사람들이 가늠할 수 있을까? 삶에서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들이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얼마나 사소하고 허망하게 느껴지는지 사람들이 과연 알 수 있을까? 치열하게 추구하고 욕망했던 모든 일들이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스스로를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임을 미리 깨달을 수 있을까? 왜 우리는 이토록 서로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를 쓰며, 의미 없는 만남을 지속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다른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그녀의 말처럼, 집 밖의 세상은 위험이 가득하다는 생각에 두려움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그토록 누군가를 갈망하는 것일까? 도대체 인간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외부의 적인가, 아니면 내면의 적인가? 존재에 대한 두려움인가, 아니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가?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열렬한 팬이었던 마테를링크의 메시지는 사실상 연극 ‘인테리어즈’를 통해 제대로 관철된다.

예술은 관객들에게 “일종의 정지 지점”을 제공해 무언가를 얻고자 끊임없이 갈망하고 바라는 “욕구의 순환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쇼펜하우어의 명제는 연극 ‘인테리어즈’의 독특한 관극방식을 통해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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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인테리어즈' 공연장면. 할아버지 '피터'는 모든 손님이 떠나간 식탁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푸딩을 먹고 있다. 바로 눈 앞에 흰 옷을 입은 여인이 있지만 피터는 그녀의 존재도, 또 그를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의 존재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사진=국립극단

관객들은 창문 너머로 바라본 피터의 일상이 그들만의 일상이 아님을 인식한다. 무대 위 창문 너머의 일상은 우리 자신의 일상이며, 현실이고, 실존이다.

“일상에 무언가 첨가되지 않으면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마테를링크의 말이 사실이라면, 관객들은 연극 ‘인테리어즈’를 통해 자신들의 삶의 미래가 무엇이 될지 새로운 ‘첨가’를 목격한다.

결국 “실재의 본성을 인식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아주 다르게 행동”할 수 있고, “인간이 처한 암울한 조건 가운데 일부를 피할 수 있다”는 쇼펜하우어의 주장은 연극 ‘인테리어즈’를 관람한 관객들을 통해 실현될 수 있을지 모를 가능성에 처한다.

최소한 연극을 통해 자신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관객이라면, 삶의 본질에 대한 그 어떤 이해와 통찰, 인식을 바탕으로 조금은 변화된 새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지 않을까?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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