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 '일본 역사기행' 연재 이어 '미국 서부 여행스케치' 연재
인터뷰365 장시정 칼럼니스트 = 지난 9월 7일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미국 서부를 여행하고 10월 1일 귀국했다. 오랫동안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해외를 많이 다녔지만 미국 서부를 보지 못했었다. 웬만하면 가보았을 라스베가스도 못 가봤고, '자연이 펼쳐 놓은 지상 최대의 쇼'라는 그랜드캐년도 보지 못했으니 이번 미국 여행은 필연적이라고나 할까, 암튼 미국 서부는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곳이기도 하다.
지난 3월, 2주간의 일본 여행은 나 스스로 '역사기행'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처음부터 관광이라기보다는 수학여행을 한다는 기분으로 떠났다. 고즈넉한 여수를 느낄 틈도 없이 강행군했다. 평소 늘 마음이 쏠렸던 일본에 대한 호기심이 이 기간에 일거에 분출되었다. 여행이 끝난 지금 일본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얻었고, 그 궁금증은 더해졌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이번 미국 여행은 진정한 유람 여행을 하고자 했다. 아들 집을 방문하는 김에 여행도 하는 여정이었기에 느긋하기도 했다. 미국의 역사가 일천한 만큼 일본과 같은 역사, 문화 이야기보따리도 없을 듯하다. 물론 미국의 역사도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미국 서부만 해도 원주민이었던 인디언에 이어 스페인과 멕시코가 몇백 년이나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캘리포니아의 도시 이름은 스페인 지배자들이 가톨릭 성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 많다.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가 그렇고, 또 산타바바라도 그렇다. 이런 흥미진진한 역사와 문화가 있지만 나의 일천한 미국 경험이나 지식으로는 역부족이다.
이번 미국 여행기는 가볍게 풀어나가려고 한다. 그랜드캐년이나 요세미티 국립공원 같은 대자연의 이야기도 있다. 지난 9월, 3주간의 미국 서부 여행기, 이제 시작합니다.
미국 서부로 간다
2023년 9월 7일 오후,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타려고 인천공항으로 왔다. 사전 체크인을 해두어서 신속하게 탑승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우리집에는 개 2마리가 있어 부부가 동시에 장기간 여행하기는 어렵다. 15살 노령견도 있어 '돌봐줄개' 같은 개호텔에 맡기기도 걱정이 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교대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지난 8월에는 아내가 한 달간을 큰 아들 집에 다녀왔고, 이번엔 내가 둘째 아들 집에 갈 겸 미국 서부를 여행하려고 한다.
마일리지를 일부 활용하여 비즈니스를 탔다. 32㎏짜리 가방 2개를 부칠 수 있어 아내가 김치는 물론 물김치까지, 무슨 식품점이라도 차릴 기세로 이것저것 가방에 꾸역꾸역 싸서 갖고 가랜다. 내가 미국 통관규정을 찾아서 까다롭게 굴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래서 모성이 강하다는 걸까? 카운터에서 내 가방에 'HEAVY'라는 빨간 딱지를 붙였다.
나는 사실 언젠가부터 장거리 비행에 약간의 두려움 같은 걸 갖게 되었다. 비행공포증(aviophovia)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비행기 타기는 은근히 싫다. 코로나라는 요인도 있었다. 백신을 한방도 안맞았기 때문에 지난 3년 간 해외여행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하긴 그 백신이라는 게 맞아도, 안맞아도 크게 차이가 없는데다 부작용까지 크다 보니 차라리 안맞는 게 나을 듯도 하다.
이래저래 둘째가 미국에 간지도 4년이 넘었는데, 아내는 벌써 다녀왔지만 나는 이번에 처음 가게 되었다. 그것도 아내에게 등 떠밀려 큰 마음을 먹었기에 가능했다. '대한남아'가 뱅기 타는 걸 두려워 하다니, 한때는 지구를 한바퀴 도는 비행 일정도 감당했던 사람이 아닌가, 이래도 한목숨, 저래도 한목숨이다. 타자, 가자! 하하~
아! 1983년 9월 1일 KAL기 격추 사건
기내에 들어오니 이륙하기도 전에 샴페인이 나왔다. 한 잔을 쭉 들이켜 호연지기를 보강했다. 이륙 후에는 바로 저녁식사가 나왔다. 반주로 샤르도네 백포도주를 시켜 연거푸 두 잔을 마셨다. 클래식을 크게 틀어놓고 두려움을 떨치려고 잠을 청하려는데 웬걸 잠이 새버렸다.
운항 정보를 보고 있자니 비행경로가 러시아의 캄차카반도 밑으로 지나간다. 갑자기 1983년 9월 1일 소련의 KAL기 격추 사건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당시 나는 군대에서 이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소련은 단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고 그 조종사는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떴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그 특유의 잔인함이 있다. 2014년 7월 암스테르담을 떠나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말레이시아 민항기가 친러시아 반군의 러시아 미사일에 격추되어 약 300명의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푸틴은 이를 우크라이나 분리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위장하면서 러시아와의 연관성을 딱 잡아떼었다. 러시아 방송들은 심지어는 우크라이나가 푸틴을 암살하려다가 엉뚱한 비행기를 격추했다고도 했다. 현대전은 하이브리드 전쟁이다. 실제 전선에서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도 가짜 뉴스가 판치는 정보전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트롤부대나 중국의 우마오당, 그리고 북한의 정찰총국이 그 최전선에 있다. 이제 곧 김정은이 푸틴을 만나러 간다고 한다. 이들은 과연 어떤 흉계를 꾸밀까?
기내에서 영화 '범죄도시2'를 보았다. 마동석과 손석구의 액션이 돋보였다. 사실 이런류의 방화는 처음인데, 작년에 출시되어 관객 동원 천만을 넘은 대작이라고 한다. 실제로 필리핀에서 일어난 납치, 살해 사건을 영화화한 것인데 영화의 주 무대는 베트남 호치민이었다. 그래서인지 베트남에선 수입이 거부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부수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은 국내 거주 중국인들에 의한 범죄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제트 스키를 타고 중국에서 밀항해 온 사건도 매스컴을 장식했지만, 이들이 서해안으로 밀항하는 이유는 무얼까? 중국 해군이 서해안을 내해화하려는 시도와 함께 이젠 서해안이 최전방이 되어 가는 기분이다.
공항 입국장서 생긴 해프닝...농업대국 캘리포니아와 김치
이럭저럭 10시간 40분의 비행이 끝나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했다. 입국심사관이 여행목적을 묻길래 아들 집을 방문하고 여행도 한다고 했더니, 뜬금없이 식품류와 김치를 가져왔냐는 질문이 바로 돌아왔다.
세관원이 해야 할 질문을 입국심사관이 하다니, 어쨌든 그렇다고 했더니 내 여권을 조그만 철가방에 철커덕 넣어 다시 나에게 주면서 세관원에 신고 후 찾아가란다. 분명히 김치는 통관 가능한 품목으로 알고 가져 왔는데, 이런 불쾌한 대우를 받다니 기분이 언짢아졌다.
암튼 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지는 짐가방을 찾아서 세관원에 가니 내 가방을 핸드캐리까지 모두 X-ray 검사대에 올려놓으란다. X-ray대를 통과하고 나서 별것 없었는지, 세관원은 여권을 돌려주면서 홈메이드 김치냐고 농담까지 던졌다.
조그만 해프닝이었지만 미국에 식품을 가져가는 경우, 조심해야 한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농업의 비중이 큰 나라다. 미국에서 가장 다양한 기후를 갖고 있어 오렌지, 사과, 포도 같은 과일이나 양배추, 브로콜리, 당근 같은 채소, 그리고 아몬드나 호두 같은 견과류 등 다양한 채소와 과일이 연중 내내 공급된다. 포도주도 생산한다. 그래서인지 외국에서 반입되는 식품류나 동식물류의 통관이 까다롭다고 한다.
살아있는 동식물은 물론 육류가 조금이라도 포함된 식품은 통관이 거부된다. 예를 들면 라면 스푸에 육류가 들어있는 라면은 통관이 불허된다. 하지만 우리의 최대 관심사인 김치는 상업적 용도가 아니라면 괜찮다.
지난 36년 간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출입국이나 세관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녔는데, 이번 해프닝으로 내가 이제 야인으로 돌아왔다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사실 누구든지 국경을 넘을 때는 휴대품에 신경써야 한다. 특히 남의 부탁으로 뭔지도 모르는 물건을 갖다 준다든가 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것이 마약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장시정 칼럼니스트
장시정은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석사를 마쳤다. 지난 36년 간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며 외교 일선에 몸담았다. 수차에 걸친 독일어권 근무 중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에 걸쳐 나타나는 모델적 제도와 현상에 관심을 갖고 관찰했고 2017년 <한국 외교관이 만난 독일모델>을 저술했다. 동 저서는 2018년 상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 사회과학 분야에 선정됐다. 퇴직 후에는 2019년 홋카이도 대학 방문학자로 일본에 머물렀고, 2023년 1월과 3월에 외교안보, 정치, 경제, 사회 에세이집인 <아직,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레트로 대한민국>을 출간했다.
- Copyrights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