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장시정 칼럼니스트 = 9월 28일이다. 새벽 5시 50분 예약 리프트(Lyft) 택시가 10분 정도 빨리 왔다. 도심의 암트랙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아직 6시도 안됐고 길거리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버스 출발은 6시 55분인데, 너무 빨리 가서 동이 트기 전 깜깜한 새벽밤에 길거리에서 기다리게 되지 않을까 했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이런, 너무 일찍 도착했다...우려가 현실로
사실 그 전날 호텔 리셉션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호텔에서 6시 출발하면 암트랙 버스 정류장인 555Mission까지 얼마나 걸리겠냐고. 이 여직원 왈, 모른단다. 그저 어림잡아서라도 얘기해 달래도 모른다는 말만 반복한다. 할 수 없이 트래픽에 걸릴지 몰라서 여유 있게 5시 50분에 예약했다.
그런데 오늘 새벽 떠나기 전 아침도 먹을 겸 리셉션에 갔더니 중년의 남자 직원이 있다. 똑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이 분은 15분 정도면 충분하고 시내에서는 8시가 되어야 트래픽이 생긴다고 자신있게 알려주었다.
질문에 답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략 2가지 유형이 있다. 한가지는 본인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에는 그냥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인데, 매우 합리적인 반응이긴 하다. 내 아들도 그렇다. 아마도 서양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유형으로 생각되지만 사실 좀 답답하다. 묻는 사람 입장에서는 대략적인 것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른 한가지는 잘 모르는 것도 아는 것처럼 대답하는 것인데 많은 한국인들이 이 유형에 속하는 것 같다. 하긴 우리는 Do you~? 또는 Have you~?로 묻는데 우선 yes나 no로 답하지 않고 장황한 설명식 대답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양쪽 다 장단점이 있다. 내가 엊저녁에 물어본 여직원이 융통성을 갖고 대략적인 것이라도 얘기해 주었다면 이렇게 새벽밤에 빨리 오지는 않았을 게다.
새벽 밤거리에서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노숙자들이 드물지만 길거리 여기저기서 모포를 덮고 자고 있었다. 가만보니 정류소 바로 건너편 빌딩은 환하게 밝혀져 있고 그 안에 수위인 듯한 사람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길을 건너가서 그 빌딩 앞에서 10여 분을 서있었다. J.P. Morgan 은행 빌딩이었다.
6시 15분 정도가 되니 길거리에 사람들이 드문드문 다니기 시작했다. 나도 그제서야 인근의 현대미술관 모마(MoMa)에 갔다가 버스 출발 전 돌아왔다. 맹꽁이 같은 호텔 여직원 덕분에 그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모마(MoMa)를 건물이나마 볼 수 있었던 셈이다. 세상 일 뭐가 좋은지 모른다. 걍 부딪혀 가며 살자.
암트랙 버스가 베이브릿지를 건너 에머리빌(오클랜드) 쪽으로 가는데 맞은 편 도로는 이미 출근 차량들로 꽉 차 있었다.
에머리빌 역에서 로스엔젤레스 가는 표를 산타바바라까지만 가는 표로 바꾸었다. 로스엔젤레스 도착이 저녁 9시가 되어 너무 늦을 것 같았다.
9시간 넘는 기차 여행 끝에 도착한 산타바바라
아침 8시 39분 출발 예정이던 기차가 9시를 갓 넘겨 출발했다. 역 창구에서 표를 팔던 여직원이 플랫폼까지 나와 육성으로 기차 연발착 안내를 하고 승객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까지 빚어졌다. 기차에 탑승할 때는 산 호아킨 라인과는 달리 승객들을 플랫폼에 줄세워 놓고 검표를 하면서 좌석까지 지정해 주었다.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 미국의 모습인지? 놀랍기만 하다.
오랫동안 황무지나 메마른 구릉밖에 보이지 않더니 산타바바라 도착 한, 두 시간 전에야 태평양의 푸른 바다가 나타났다. 샌 루이스 오비스포(San Luis Obispo)를 지나서 약 40~50분 후였다. 절경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망망대해 태평양은 때마침 석양의 붉은 빛을 되뿜고 있었다.
9시간 반이 걸려 산타바바라에는 오후 6시 35분에 도착했다. 스페인풍의 역 건물부터 이 도시의 역사를 말해 주는듯 했다. 산타바바라도 그렇지만 캘리포니아의 도시 이름은 가톨릭 성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 많다.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인들이 캘리포니아로 들어와 지은 이름들이다.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리, 샌디에이고가 그렇다.
태평양 해안길 따라 달리는 코스트 스타라이트 기차
그런데 이 태평양 바다 해안길을 따라가는 코스트 스타라이트(Coast Starlight)선의 기차 운행은 꽤 낭만적이었다. 서부개척시대 역마차를 탄 기분이랄까, 존 웨인이 다시 뛰쳐나올지도 모르겠다.
우선은 서행하는 구간이 많았다. 그러다가 기차가 정차하면 승객들이 내려서 담배도 피고 기지개도 켜다가 차장이 타라면 다시 타고 기차가 떠난다. 점심 식사를 미리 주문 받고 매점에서는 간식을 사가라는 방송도 한다. 나도 맥주 한 캔을 사서 마셨다. 샌프란시스코 에머리빌에서 산타바바라까지는 대략 700㎞ 정도인데 이 거리를 장장 9시간 반을 걸려 왔으니 시간당 70~80㎞ 정도 달린 셈이다. 연발착이 암트랙의 트레이드 마크인가.
암트랙 열차 승무원의 역할은 다양하다. 검표만 하는 게 아니고 쓰레기통도 치운다. 역대합실 의자에는 승객만 앉으랜다. 역 구내 화장실은 번호키로 잠겨져 있고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역무원에게 코드를 물어보아야 한다. 어떤 곳은 아예 코드 번호를 창구에 조그맣게 써서 내걸었다. 미국 철도는 화장실 인심에다 의자 인심까지 참 야박하다. 아마도 노숙자들이 모여드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 아닐지.
6시 반에 산타바바라 역에서 내려 호텔 체크인을 하고 거리로 나섰더니 이미 해는 넘어가고 컴컴해졌다. 산타바바라의 대표적인 거리인 스테이트 스트리트(State street)를 조금 걸어가다 36번지 레스토랑에서 먹은 닭가슴살을 얹은 시저 샐러드와 연어 요리는 참 맛있었다. 이렇게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호텔 캘리포니안(Hotel Californian)" 식당이다. 여행을 할 때는 잘 먹어야 한다. 그리고 목마르기 전에, 배 고프기 전에 미리미리 마시고,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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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정 칼럼니스트
장시정은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석사를 마쳤다. 지난 36년 간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며 외교 일선에 몸담았다. 수차에 걸친 독일어권 근무 중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에 걸쳐 나타나는 모델적 제도와 현상에 관심을 갖고 관찰했고 2017년 <한국 외교관이 만난 독일모델>을 저술했다. 동 저서는 2018년 상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 사회과학 분야에 선정됐다. 퇴직 후에는 2019년 홋카이도 대학 방문학자로 일본에 머물렀고, 2023년 1월과 3월에 외교안보, 정치, 경제, 사회 에세이집인 <아직,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레트로 대한민국>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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