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정 대사의 일본 역사기행](15) 세계화의 크리도(credo), 보고 배우자
[장시정 대사의 일본 역사기행](15) 세계화의 크리도(credo), 보고 배우자
  • 장시정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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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박 14일간의 일본 여행기를 마치면서
오사카 도톤보리(신사이바시 글리코맨 앞쪽) 아케이드 상가/사진=장시정

(14) 꿈에 그리던 교토를 다시 갔다 이어서

인터뷰365 장시정 칼럼니스트 = 13박 14일간의 일본 여행, 평소 내가 관심을 가졌던 역사 현장 위주로 여행 목적지를 선정했다. 그래서인지 유람 여행이라기보다는 수학여행이 되었다. 고즈넉한 여수를 느낄 틈도 없이 강행군을 했다.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 큰 실수 없이 여행을 마쳤다.

평소 늘 마음이 쏠렸던 일본에 대한 호기심이 이 기간 중 일거에 분출되었다. 밉든 곱든 일본은 알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까, 여행이 끝난 지금 일본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졌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13박 14일의 여정...신칸센 이동거리만 3680㎞, 걸음수는 총 26만 8000보 

14일 간의 일본 여행 중 여행 첫 3일간 패키지여행 시 탔던 관광버스./사진=장시정

신칸센을 타고 오사카를 기점으로 동쪽으로 도쿄로 갔다가 다시 오사카로 와서 서남쪽으로 가고시마, 야마구치까지 갔다가 또다시 오사카로 돌아와서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 도쿄에서 가고시마까지가 1,318㎞이니 서울, 부산 간 427km의 3배가 넘는 거리다. 신칸센으로 이 구간과 가고시마/나가사키 간 322㎞를 왕복한 것을 포함하여 3,680㎞를 신칸센으로 달렸다.

​이 노정에서 일본 역사 각 시대마다의 단면을 눈에 담고 피부로 느꼈다. 나라에서는 나라시대를, 교토에서는 헤이안시대를, 가마쿠라에서는 가마쿠라시대를, 다시 교토에서 남북조/무로마치시대와 전국/모모야마시대를, 닛코에서 에도시대를, 그리고 도쿄에서 에도시대와 메이지시대를 보았다.

교토의 금각사. 무로마치 시대의 매우 일본스러운 건축이다./사진=장시정

​​여행 14일 동안 걸음걸이 수가 26만 8000보가 되어 하루 평균 2만 420보를 걸었다. 아마도 내 생애 가장 역동적인 날들이 아니었는지. 돌아와서 몸무게를 재어보니 떠날 때보다 1.5~2kg 정도 늘었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고도 몸무게가 늘다니 자못 놀라웠다. 4년 전인 2019년 여름 독일 자유여행 때는 반대로 1.5~2kg 빠져서 돌아왔었다. 무슨 차이일까? 혹시 내가 독일 병정이 아니라 토착 왜구 체질이란 말인가?

이번 일본 여행에서 느낀 점,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점들을 독자 여러분들과 공유해 본다. 물론 사람마다 느낌이나 생각은 다르게 마련이다. 오해는 말자.

1. 고대 한국과 일본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가까웠다

교토의 기요미즈데라(淸水寺), 백제 이주민 아치노오미의 후손이 8세기 말 세웠다./사진=장시정

​일본 열도 서부와 한반도 사이를 잇는 해상 세력의 활동이 이미 신석기 시대인 조몬시대에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듯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 간의 인적, 물적 교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활발했다. 역사 기록으로는 663년 백촌강 전투 이후 일본이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했다지만 그 이전은 물론 그 후에도 고구려, 백제의 유민들이 계속 일본에 정착하였고 이들을 통한 문물 교류가 있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이런 교류가 남긴 족적을 보았고 또 이런 사실들이 주로 일본 측의 역사 기록에서 명확히 드러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일본의 기록문화는 우선 시기적으로 우리를 앞선다. 고사기나 일본서기가 우리 최초의 정사라는 삼국사기보다 400년 이상 앞섰다. 여기에 양과 질, 그리고 보존 측면에서 우수하다. 11세기 초 겐지모노가타리는 세계 최초의 현존하는 근대 문학작품이다.

2. 백제 분국인가, 임나부인가?

도쿄의 황궁을 둘러싼 해자/사진=장시정

​쓰시마섬에서는 한반도식 산성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왜군이 백촌강 전투에서 패한 뒤 한반도로부터의 공격을 막기 위해 쌓은 것으로, 한반도와 일본의 가깝고도 먼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준다. 즉, 한일 간에는 교류와 함께 단절의 의지도 병존했다. 그래서인지 과거 한일 간의 밀접한 교류에도 불구하고 지금 일본 문화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 사찰이나 신사에서 볼 수 있는 건축 양식이나 조각, 공예, 회화도 닮은 듯하지만 그 가운데에 현격한 다름도 볼 수 있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으로 봉건 막번체제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건 사실이지만 부강한 국가의 기초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집적되어 왔다. 짧게 잡아도 도쿠가와 막부 때인 17세기 초부터다. 교토의 니조성이나 오사카성을 보더라도 그 축성술이나 예술성이 놀라울 정도다. 헤이안시대의 도타이지나 가마쿠라 시대의 다이부츠(大佛)도 마찬가지다. 16세기 피렌체 금속세공의 대가였던 벤베누토 셀리니도 미처 생각조차 못 했을 다이부츠 대불은 세계 금속 예술의 극치다.

가마쿠라 시대에 만들어진 청동 다이부츠(大佛). 당시 세계 금속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사진=장시정

한반도 고대 기마 전사들이 야마토 평원으로 이동하여 일본 현지 주민들을 지배했다는 것은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존 카터 코벨 여사만의 주장은 아니다. 인류학 박사인 피타 켈레크나도 최근 그의 '말의 세계사'에서 똑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삼국시대에 선진 문물을 왜(倭)에 전해 주었다는 사실과 함께 자부심을 갖게 한다.

더욱이 2010년 10월 아키히토 천황은, 8세기 말 간무(桓武)천황의 모친이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공언하였고, 간무천황 자신도 백제 의자왕의 아들인 덴지천황의 증손자라 하니 간무천황은 부모 양계가 공히 백제의 왕실의 후손이다. 간무천황 이후 역대 천황들이 모두 그의 혈통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 천황가에는 백제 왕실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천황은 백제어로 말한다"라는 말이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편치는 않다. 내 생각에는 선진 문물과 더 나아가 왕실의 혈통까지 전해 주었다는 나라의 문화유산이 왠지 그것을 전해 받은 쪽보다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보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결국 당시 왜(倭)가 백제의 분국(分國)이었나? 아니면 임나부설에서 보듯이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였나? 하는 정치적 헤게모니 문제와도 연결된다.

3. 한국과 일본의 갈림길, 지도자가 달랐다​​

하기의 쇼카신주쿠와 내부에 게시된 메이지 혁명 지도자들 초상/사진=장시정

일본의 발전을 이끈 역사적 지도자나 인물들을 보자면 대부분 실용형 인재였다. 사무라이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던 시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메이지 혁명 시에도 역사의 소용돌이를 무력으로 돌파해 나갈 수 있는 실전형 인물들이 앞장섰다.

그 전형적인 인물이 사무라이와 평민의 혼성 부대인 기헤이타이(奇兵隊)를 조직하고 지휘한 다카스키 신사쿠다. 조슈의 기도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나 아리가토 요리토모, 그리고 사츠마의 사이고 다카모리나 오쿠보 도시미치도 바로 그런 인재들이었다. 실생활과 유리된 채 유교 경전에만 얽매였던 조선의 선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의 유형이다.

4. 한국과 일본, 인종이 다른가?

​지금의 한국과 일본 사회, 그리고 사람들의 외양이나 생각은 많이 다르다. 외양으로 보자면 일본 사람들, 특히 남성들은 눈과 코가 우리보다 크다. 동양인의 특징이라는 찢어진 눈을 거의 볼 수 없다. 터키나 몽골 계통의 북방계라기보다는 멀리 인도로부터 시작하는 남방계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생각이나 행동도 일본 사람들이 더 치밀하고 정확한 편이다. 아싸리 하다는 말 그대로다.

​그러나 거리나 메트로에서 만난 일본 시민들의 외양은 수수했다. 서울에선 이미 볼 수 없는 유행 지난 통 큰 바지나 폭넓은 넥타이를 한 젊은이들도 많았다. 말쑥하기는 하지만 외모에는 그다지 신경을 안 쓰는듯하다. 나는 여기서 일본 사회의 건강함을 느꼈다. 이 사람들이 무서운 거다. 남이 아니라 자신이 기준이 되는 당당한 사람들이다.

여자들은 자전거에 아이를 태우고 다니는데, 이런 모습에서 강건한 독일 여자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차도 소형차 위주다. 우리처럼 체면치레 같은 건 없다. 진정한 자유인들이다. 그럼에도 일본 사회는 우리 기준으로 본다면 극보수다. 반사회적인 행동은 철저하게 응징한다.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 정치인이 수년 동안 매스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일 따위는 결코 없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언제나 많은 남녀노소의 애국시민들로 북적인다. 일본 공산당은 일견 존재는 하지만 실제는 형해화 된 존재다.

5. 일본의 외국인들은 고급 인력이다

신주쿠 오모이데요코쵸의 야키도리 선술집. 외국인으로 붐빈다./사진=장시정

​일본 거리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서양인들을 보는 건 일상적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한국인 같은 아시아인들도 많다. 일본에서 외국인이라면 한국에서 생각하듯 몸빵 하는 노동자만은 아니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고급 인력들이 부지기수다.​

"독일이 없어진다"라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틸로 자라친은 이민자의 자질을 이민 허용의 제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며 값싼 노동력은 해당 기업주에겐 이익이 되겠지만,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는 대대손손 부담이 된다고 했다. 도쿄의 신주쿠, 오모이데요코쵸 야키도리 선술집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도 체크인, 싱가포르인이었는데, 하나같이 고급 인력들이었다.

6. 정갈한 일본 숙소와 음식, 그리고 진정한 서비스 정신

고베의 어느 스타벅스. 줄 서는 자리를 표시해 놓았다./사진=장시정

​일본인들은 친절하면서도 질서 순응적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도 왠지 혼란함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줄 서기의 세계 챔피언이다.

일본은 볼 게 많고, 배울 것도 많지만, 특히 여행하기 좋은 나라다. 에도시대에는 참근교대제로 부터 역참제가 정비되면서 서민들도 일찍부터 여행에 나섰다. 당시 일본 사람들의 여행은 주로 신사나 사찰을 참배하려는 '사사참예(社寺參詣)'의 동기로부터 출발했다. 19세기 초 짓펜샤 잇쿠의 '도카이도 도보여행기'에서도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여행의 실상을 알 수 있다.

도쿄에서 4박 5일간 머물렀던 니와호텔. 아침 식당 창 너머로 보이는 일본식 정원/사진=장시정
시모노세키 어느 일식집에서 먹은 덴뿌라 정식/사진=장시정

​​숙소는 비싸든, 싸든 한결같이 정갈하다. 식당의 질도 평균적이어서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크게 낭패하는 법은 없다. 그리고 혼자 들어가더라도 2인석이나 4인석을 흔쾌히 권해준다. 우리 식당들은 혼자 들어가는 손님을 박대하는 경우가 꽤 있다. 자리가 있어도 받지 않는 경우를 보았다. 일본과는 마인드가 다르다. 1인 손님이 장사에 손해라기보다는 그들도 똑같은 손님이라는 생각부터가 진정한 서비스정신이 아닐까. 일본은 길거리 음식도 맛있고 위생적이다. 내가 이번 여행 중에 많이 걷고 움직였지만 오히려 체중이 불어난 건 접근이 용이한 일본 식당과 건강한 음식 덕분일 것이다.

7. 신칸센은 세계 최고의 기차다

신칸센 열차. (사진 위부터)도카이도 신칸센 열차 N700과 규슈 신칸센 열차 카모메/사진=장시정

신칸센은 벌써 반세기 이상 무사고다. 정확하고 쾌적하고 안전하다. 신칸센은 빨리 달리는 구간에서는 시속 300㎞가 넘는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르지만 몇 번 타면서 안전하다는 신뢰가 생겨 불안하지 않았다. 요즘 연발착을 밥 먹듯 하는 독일의 ICE보다 나은 것 같다. 탈탈거리는 우리의 KTX와는 비교할 수 없다. 마치 벤츠 S 클래스를 탄 기분이다.

8. 시민 친화적인 신불습합의 전통

기요미즈데라 입구/사진=장시정

​사찰이나 신사가 생각보다 훨씬 더 일반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다. 일본에는 사찰이 7만 5천 개, 신사가 8만 개 이상 있다는데, 많은 시민들이 이곳에서 '부정(不淨)'을 떨쳐내면서 마음을 정화한다. 신도는 자연 신앙에서 발생하여 경전이나 복잡한 교리가 없어 접근이 쉽다.

신사가 모시는 가미(神)는 매우 다양하다. 천황을 필두로 많은 역사 인물들부터 개, 고양이 등 동물, 심지어는 무생물까지 가미로 모시면서 주변의 모든 것을 존중하는 마음을 불러온다. 이것이 불교와 혼재되면서 신불습합의 전통도 만들어졌다. 일본에서는 기독교가 힘을 쓰지 못한다.

세계화의 진정한 크리도, 보고 배우자

야마구치의 류리코지 5층 목탑./사진=장시정

​주마간산 격으로 살펴본 '독일병정'의 일본 역사 기행문을 이제 마친다. 작가 한수산 씨의 말대로 벚꽃도 사쿠라도 봄에 피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본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일단 알아야 이기든, 지든 할 게 아닌가. 물론 일본을 이기자는 극일 자세도 꼭 바람직한 건 아니다. 훌륭한 이웃이 있다면 일단 보고 배워야 하지 않겠나, 세계화 시대의 진정한 크리도(credo)다.

 

장시정 칼럼니스트

장시정은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석사를 마쳤다. 지난 36년 간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며 외교 일선에 몸담았다. 수차에 걸친 독일어권 근무 중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에 걸쳐 나타나는 모델적 제도와 현상에 관심을 갖고 관찰했고 2017년 <한국 외교관이 만난 독일모델>을 저술했다. 동 저서는 2018년 상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 사회과학 분야에 선정됐다. 퇴직 후에는 2019년 홋카이도 대학 방문학자로 일본에 머물렀고, 2023년 1월과 3월에 외교안보, 정치, 경제, 사회 에세이집인 <아직,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레트로 대한민국>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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