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장시정 칼럼니스트 = 오전에 기요미즈데라(청수사·淸水寺)를 방문한 후 오후에는 반대편인 교토 서북쪽에 위치한 아라시야마로 건너와서 노노미야 신사(野宮神社), 지쿠린 대나무 숲길(竹林小徑)을 지나서 덴류지(天龍寺)와 덴류지 경내의 소겐치(曺源池) 정원을 둘러본 후 도게츠 다리(渡月橋)를 건너가 보았다. 가는 곳마다 화창한 봄 날씨와 어우러진 인산인해의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고류지·호칸지·청수사 등 교토 곳곳에 남아있는 한반도 도래인의 발자취
교토는 수도가 되기 전부터 한반도 도래인들이 건너와 도시 기초를 만든 곳이다. 지금도 교토 곳곳에 선주민(先住民)이었던 신라인, 백제인, 고구려인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대표적인 지역이 아라시야마에서 멀지 않은 우즈마사(太秦) 지역이다. 여기에는 622년 교토에서 처음 세워진 사찰, 고류지(廣隆寺)가 있다. 고류지는 신라계인 하타(秦) 씨 일족의 씨사로 출발했다. 한국의 국보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쌍둥이 불상이라는 일본의 국보 제1호인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소장하고 있다.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한국산 적송(赤松)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신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야시야 다쓰사부로 교토대학 교수는 하타 씨 일족이 수리 공사에 뛰어나 가쓰라강에 제방을 쌓아 농경을 일으켜 우즈마사를 고대 일본에서 가장 큰 생산력을 가진 지역으로 발전시켰고 양잠과 견직 기술도 보급했다고 그의 '교토'에서 언급하고 있다.
589년 고구려 사신 이리사(意利佐)의 후손이 호칸지(法觀寺, 지금은 절은 없어지고 오층탑만 남아있다)를, 711년에는 하타 씨 일족이 후시미이나리(伏見稻荷) 신사를 창건했다. 기요미즈데라(淸水寺)도 백제 이주민의 후손이 780년 세운 절이다.
노노미야 신사(野宮神社)와 덴류지(天龍寺)
오후 일정의 첫 방문지는 노노미야 신사(野宮神社)였다. 이곳은 이세신궁(伊勢神宮)에서 봉사할 미혼의 왕녀 사이오우(斉王)가 1년간 몸과 마음을 닦는 곳이었다. 노노미야는 고정된 장소는 아니다. 사가(嵯峨) 천황 때 이곳을 노노미야로 지정했고, 그 후 사이오우 전통은 고다이고 천황 때 없어졌다고 한다.
겐지모노가타리에도 등장하는 이 신사는 좋은 인연을 맺어주고(良緣 祈願) 출산을 점지한다고 해서 젊은 연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날도 손잡고 이곳을 찾은 많은 남녀 젊은이들로 볼 수 있었다. 신사 입구에서 진기한 흑목(黑木)의 도리이를 볼 수 있었다.(대부분의 도리이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덴류지(天龍寺)는 쇼군이 천황을 쫓아내고 그의 저주를 피하기 위하여 세운 절이다. 가마쿠라 시대 말기에 이르러 제96대 고다이고(後醍醐) 천황은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 세력과 연합하여 가마쿠라 바쿠후의 호조(北条) 가문을 타도하고 친정 복귀에 성공하지만 3년 만에 아시카가와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면서 이곳 아라시야마로 쫓겨와 권토중래를 노렸다.
하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1339년 죽게 되자, 아시카가가 천황의 저주를 피하기 위하여 그의 원혼을 달래려 무소 소세키(夢窓國師)를 개산자(開山者)로 덴류지를 창건하였다. 고다이고 천황 때는 일본 역사에서 두 명의 천황이 대립하는 남북조 시대가 시작된 시기다.
덴류지의 절터에는 원래 9세기 초 제52대 사가(嵯峨) 천황의 황후인 단린 황후가 개창한 단린지(壇林寺)라는 절이 있었고 제88대 고사가(後嵯峨) 천황의 어소(御所)가 이곳에 있었다. 고다이고 천황은 유년기를 이곳에서 보냈다. 덴류지는 임제종(臨濟宗)의 대본산(大本山)이다. 당시 막부에서 중국에 무역선을 띄워 비단과 도자기를 가져와 팔아서 번 돈으로 덴류지를 지었다는데, 당시 중국 비단과 도자기를 일본으로 가져오면 10~20배 비싼 가격으로 팔 수 있었다고 한다.
덴류지 내 수행공간인 대방장(大方丈)의 앞, 뒤로 일본식 정원의 두 가지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연못을 중심으로 자연미를 살린 치센(池泉) 정원 양식의 소겐치(曹源池) 정원과 돌, 모래, 이끼로 산수를 표현하는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이다.
日 최초 고전소설 '겐지모노가타리'에도 등장하는 도게츠교
이 지역의 가쓰라강(桂川)에 세워진 도게츠교는 달이 이 다리에 걸쳐 넘어가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어 도게츠교, 즉 渡月橋라 한다. 세계 최초의 현존하는 소설인 11세기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의 주인공 남녀가 이곳에서 만났다고 한다. 내가 가본 로미오와 줄리엣의 베로나(Verona) 집이나 세기의 연인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만났다는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고래로부터 다리는 일본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다리 건너 강 건너편은 다른 세계이며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다른 세계로의 여정을 의미했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문학 세계에서 다리는 만남과 이별의 장소로 자주 등장한다. 우키요에 목판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홍예다리는 인간과 신의 세계를 나누는 경계였다.
교토에서 오사카로 이동하면서 버스밖 도로 교통사정을 보니 좀 복잡한 것도 같지만 모두 질서정연하게 안전 운전을 한다는 게 한눈에 보였다. 오사카 인근 지역이 메트로폴리탄이다 보니 도시 간 연결 도로는 대부분 고가로 되어있다. 도로 바닥이 정말 매끈하다. 매끈하다기 보다는 울퉁불퉁한 우리 도로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왜 도로의 완성도나 내구성이 이렇듯 다른지 의문이 들었다.
독일 통일 직후였던 1990년 여름, 노면이 엉망인 동독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같은 독일민족이 만든건데 여기는 왜 서독 고속도로(Autobahn)와 이렇게 다른지를 생각해 본 기억이 났다. 동서독의 경우, 사회체제의 상이함이 급기야는 인간의 상이함까지 초래했다. 사회주의에 물든 노동력은 노동생산성이 낮아서 결코 명목 임금처럼 싼 노동력이 아니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은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다. 이상하지 않나? 결국은 둘 중 하나이거나 둘 다 일게다. 배정된 건설비를 떼어먹고 돈을 적게 들여 공사하거나 아니면 정말 기술이 모자라거나 일게다.
오사카 최고층 빌딩, 아베노 하루카스
아라시야마 지역을 본 후 오사카로 와서 오사카 최고층 아베노 하루카스에 올랐다. 이 마천루는 60층에 높이가 300m다. 그러니까 비슷한 층수를 가진 한국의 63빌딩이 250m 임을 볼 때 일본 건물의 층고가 우리보다 많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층고는 건물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60층 꼭대기에 올라가니 오사카 평원에 펼쳐진 메트로폴리탄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녁에는 신세카이의 츠텐카쿠(通天閣), 즉 하늘에 이르는 문이라는 뜻의 100년 전 당시 동양 최고층 건물이었던 64m 타워를 보았고, 인근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패키지 투어의 장점은 안락함이지만 굳이 단점을 말하라면, 특히 일본에서는 개인별로 식당을 찾아가는 것보다 단체 식사의 질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일본의 웬만한 도시에서 괜찮은 식당이라면 늘 손님이 넘친다. 그러니 굳이 외국인 단체 관광객을 받을 필요가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내국인들은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왁자지껄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만큼 인구 대비 식당이 많은 곳도 없다. 유럽이나 일본에서 식당은 비즈니스 영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에 봉사한다는 측면도 강조된다.
교토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관광지임에도 시재정은 늘 적자라 한다. 교토에는 세금 내는 기업보다는 대학이나 절이 많은데, 관광 수입을 다 가져가는 절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종교기관에 면세해 주는 건 일본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다. "수입 있는 곳에 세금 있다"라는 원칙에서 보면 불합리한 제도다. 그래서 교토시는 관광세도 부과하고, 요즘은 아주 비싼 호텔을 짓는다는데, 제대로 돈 내고 관광하거나 아니면 오지 말라는 게 관광 공해에 시달리는 교토시의 의중이라고 가이드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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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정 칼럼니스트
장시정은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석사를 마쳤다. 지난 36년 간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며 외교 일선에 몸담았다. 수차에 걸친 독일어권 근무 중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에 걸쳐 나타나는 모델적 제도와 현상에 관심을 갖고 관찰했고 2017년 <한국 외교관이 만난 독일모델>을 저술했다. 동 저서는 2018년 상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 사회과학 분야에 선정됐다. 퇴직 후에는 2019년 홋카이도 대학 방문학자로 일본에 머물렀고, 2023년 1월과 3월에 외교안보, 정치, 경제, 사회 에세이집인 <아직,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레트로 대한민국>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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