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김두호가 만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서현석
[인터뷰365] 김두호가 만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서현석
  • 김두호 인터뷰어
  • 승인 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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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무대가 인생무대인 소리문화의전당 서현석대표
- 음악, 연극, 영화 기획 제작 분야의 전문성 구축
- 국내 최고의 공연장 CEO로 마지막 소망 이뤄
전주의 대형 복합문화 공간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이끌고 있는 서현석 대표는 30여년간 공연 뿐 아니라 연극과 영화 기획, 연출, 제작 분야를 아우르는 손꼽히는 공연 전문가다. 초등학교 시절 아동극 배우로 재능을 인정받아 일찍이 무대와 인연을 맺은 그는 소극장 '산울림'의 극장장을 시작으로 88서울패럴올림픽 개폐회식 총연출, '벚꽃동산', '햄릿' 등 다수 연극 기획·제작, 영화 '내 마음의 풍금' 제작 등 숨가쁘게 달려왔다./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전주)] 전주의 대표적인 명소 중의 하나인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서현석(1955∼ ) 대표는 관객과 청중을 대상으로 한 각종 공연프로그램의 기획, 연출, 제작 분야에서 손꼽는 전문가의 한사람이다. 그의 영역은 연극과 영화의 기획, 제작활동까지 뻗쳐 있다. 

일생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줄 공연프로그램에 매달려 살아온 그에게 크고 멋진 공연장 CEO는 늘 희망사항이었다. 마침내 지난 1월 소리문화의 예향인 전주에서 국제적인 시설규모로 건립된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그를 운영책임의 적임자로 불러들였다. 전주세계소리축제를 비롯해 연간 470여 건의 각종 공연 프로그램을 무대에 올리는 대형 복합문화공간이다. 국내 최고 최대 규모의 공연 시설로 두세 번째 안에 포함된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이끄는 서현석 대표.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전주의 대표 명소이자, 연간 470여 건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대형 복합문화공간이다.

황홀하고 신명나고 감동적인 공연문화의 중심에서 살아가는 서현석 대표는 초등학교 시절 아동극 배우로 재능을 인정받아 일찍 공연무대에 넋이 빠진 사람이다. 대학에서도 배우로 활동했지만 졸업 후는 제작스태프로 소극장 <산울림>의 극장장으로 출발, 88서울패럴올림픽 개폐회식 총연출, 서울시 주관 ‘서울정도 600년 시민 큰잔치’, ‘97 동계유니버시아드’ 성화 채화식, 광복 50주년 기념행사 등 대충 100여 회 옥내외 각종 공연 행사의 제작 연출 활동 이력이 30년을 넘어섰다.

영화 <내 마음의 풍금>도 제작해 대종상과 청룡영화제에서 주요 부문상도 받아내고, 기획 제작한 연극으로 중앙일보 연극제작상도 받았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2001년 개관당시 예술감독으로 참여한 연고가 있어서 대표가 되어 다시 돌아간 것은 예정된 수순일 수 있다. 서현석 대표를 그의 일터에서 만났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집무실에서 서현석 대표/사진=인터뷰365

- 전주는 도심에 국제 관광지가 된 한옥마을이 있고 도처에 전통문화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 도시의 새로운 명소가 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CEO의 자리도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

"국내에서 두 번째 가는 공연시설이다. 공연물을 기획하고 연출 또는 제작하며 살아온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크고 화려한 공연장을 운영하고 싶은 것은 꿈이었다. 그 소원을 성취한 셈이다. 그러나 정말 단순하고 간단치 않다. 이 거대한 공연 공간이 시민과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활기 있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동시에 찾아와 대표로 일을 시작하는 날부터 단 하루도 마음 놓고 쉬질 못했다. 꿈과 희망에 무거운 책임감을 함께 맞이한 처지가 됐다."

나는 성공한 아역 배우였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시설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3개층 2,037석의 객석과 200명이 동시 출연할 수 있는 첨단 무대시설의 모악당, 666석 규모로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가능한 첨단 무대 설비의 연지홀, 2개층 202석의 국악 중심 공연장인 명인홀, 로마 원형극장을 연상케 하는 7000석 규모의 아름다운 노천극장, 3개층 면적 4,114㎡ 규모의 전시공간인 갤러리SORI, 6개국 동시통역시설을 갖춘 250석 규모의 국제회의장이 주요 시설이다. 울타리 없는 녹지공원에 세워진 소리문화의전당을 ‘마당 깊은 집’으로도 부르고 있다."

-올해도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전주세계소리축제가 개최되어 문화 뉴스면의 화제로 올랐지만 20여년 가까이 수많은 공연을 하는 동안 특기할만한 공연은 어떤 무대였는가?

"세계소리축제의 개폐회식 행사는 대표적인 연례 공연행사지만 세계적인 음악, 연극, 무용단 의 예술 공연과 미술작품 전시행사가 꾸준히 개최되어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2011년 개관 10주년 때 이미 공연기록 8400회, 관객 수 470만 명을 기록했고, 첼로 장한나, 소프라노 조수미를 포함한 국내 음악인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아이스발레, 프랑스 현대무용의 최고봉 카를린 칼송 등 세계 빅스타들이 이곳 무대에 올랐다."

18회 전주세계소리축제주 제바람, 소리(Wish on the Winds)일 정2019.10.2.(수)~10.6.(일), 5일간장 소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라북도 14개 시ㆍ군
올해 18회를 맞은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지난 10월 2일부터 6일까지 '바람, 소리'라는 주제로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전라북도 전역에서 개최됐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전주세계소리축제를 비롯해 연간 470여 건의 각종 공연 프로그램을 무대에 올린다./사진=한국소리문화의전당

- 이제 이야기를 공연문화와 더불어 살아온 당신의 라이프 스토리로 옮겨보자. 공연분야로 발길을 옮긴 때는 언제인가?

"나는 연세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은 연세극예술연구회라는 연극동아리를 통해 배우로 연기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군복무 후 극단 세실의 조연출을 시작으로 대학 졸업 후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한 원로 연출가 임영웅 선생의 산울림 소극장 운영을 맡아 공연 스태프로 인생길이 바뀌었다."

- 공연 스태프보다 연기활동을 먼저 했다면 그럼 꿈은 배우가 먼저였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 나는 인천 창영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아동극 배우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1965년 서울 진명여고 대강당인 3.1당에서 개최된 전국아동극경연대회에서 단 한명에게 주어진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그해 TBC(동양방송) 아역 연기자로 공채되어 <우리 집 5남매>라는 드라마에서 이낙훈, 김자옥, 여운계와 공연한 아역 탤런트로 활동했다."

초등학교 시절 아동극배우로 활약했던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는 TBC(동양방송) 아역 연기자로 발탁되어 아역 탤런트로도 활동했다. 서현석 대표의 10살 시절 모습. 

- 그렇다면 배우는 타고난 소질로 볼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런데 운명이 변했다. 내가 중학교 입시 시험이 있던 시절의 마지막 세대였다. 배우로 부러움을 사며 칭찬 속에서 살던 나는 어깨가 으쓱하고 교만해졌다.

내 스스로가 대단한 존재라는 자만심을 가졌다. 바로 그 무렵 중학교 입학시험에 실패해 재수생이 되었다. 충격을 받았다. 좌절감에서 감기몸살 걸리면 반알 정도 먹던 독한 약통의 알약을 한 움큼 털어 넣고 자살기도를 했다. 창피해서 친구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는 괴로움을 참지 못해 집에서 우연히 본 박종화 작가의 <금삼의 피>라는 역사소설에서 사약을 먹고 죽는 내용을 연상하며 그런 황당한 시도를 한 것이다."

최초의 고백, 자살 기도 사건

- 그 다음은?

"병원에 실려 가지는 않았다. 가족들이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 버려뒀더니 밤늦게 일어났지만 후유증으로 2, 3일 고생하고 회복되었다. 우리 형제는 2남 5녀 7남매가 되어 다들 서로 챙겨주기가 쉽지 않았다. 깨어났을 때 한참 울었다는데 사실 이 비밀은 내가 아직까지 별세하신 어머니를 포함해 가족들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최초의 내 인생 고백이다. 나는 깨어났을 때 내가 있는 곳이 사후 세계인줄 알았다. 그 사건 이후 나는 겸손을 배웠다."

- 성장기 학창시절 이야기를 좀 더 계속하자.

"인천에서 출생해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재수를 거친 그 다음해 ‘뺑뺑이’를 돌려 입학을 결정하는 입시제도 1기세대로 서울 배재중학교에 입학하고 이어서 입시 시험을 치던 때 양정고교를 다녔다. 중고교 때는 합창단 활동도 하고 미술 특기자로 상도 받았다.

대학에서 다시 연극서클에 참여해 오화섭 지도교수를 비롯해 차범석, 오현경, 표재순, 오태석, 정하연, 유덕형, 장재훈 선생 등 연극분야 쟁쟁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공부보다 연극 활동에 더 심취했다."

- 공연 스태프로 참여한 것은 언제인가?

"1979년 광화문 성공회 건물 한쪽에 있는 세실극장에서 조세희 원작소설의 연극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공연할 때 채윤일 연출가의 조연출로 시작했다. 그 후 임영웅 연출가의 연출팀에서 활동하다가 산울림 소극장 운영을 맡았고, 뒤에 중앙일보 사업체인 호암아트홀의 영화 연극 해외공연을 담당하면서 그 길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 극단도 창단하고, 공연전문 기업도 설립하고, 영화 제작도 하며 바쁘게 달려온 것 같다.

"산울림 극장 운영을 그만두고 극단 ‘동행’을 창단했다. 그러다가 88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축제행사로 영어연극을 연출하면서 당시 박세직 조직위원장의 평가와 인정을 받아내 난생 처음 푸짐한 한우갈비 대접을 받아가며 패럴올림픽 연출 총감독으로 발탁됐다. 그게 호암아트홀 스카우트의 동기로 발전해 내가 호암아트홀 있을 때 <모던 타임즈> <마농의 샘> <하얀전쟁> <부용진> 등의 국내외 영화가 많은 화제를 남겼다." 

- 기획 또는 제작에 참여한 대표적인 공연 작품은?

"프랑스 국립극단 코미디프랑세즈 초청공연과 볼쇼이발레단 공연, 러시아 말리극단의 <벚꽃동산>을 비롯해 이해랑 연출의 <햄릿>, 극단자유 김정옥 연출의 <도적들의 무도회>, <화니와 마리우스>, 실험극단 윤호진 연출의 <클레오파트라> 등이다."

공연은 관객과의 두뇌 게임이다

- 이벤트 전문회사도 창업해 운영하지 않았는가?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1986년 아시안게임 직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벤트’란 말을 도입해 사용한 것으로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벤트월드라는 회사의 본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93년 대형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기는 불운이 따라와 1년간 치료 요양생활을 했다.

그 후 영화 홍보와 이벤트 대행 사업체인 아트힐을 창업했다. 그 무렵 내가 수입한 프랑스 영화 <마르셀의 여름> <마르셀의 추억> 등이 무난히 흥행에 성공해 그 결과물로 1998년 이병헌 전도연 주연의 <내 마음의 풍금>(이영재 감독)이라는 20억짜리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 작품으로 전도연이 대종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감동적인 멜로 작품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돈을 벌지도 못했지만 별로 손해를 보지도 않았다. 그 후 각종 영화제에서 우수작으로 평가받은 <아홉살 인생>도 내가 기획한 작품이다."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사진=인터뷰365

- 영화와 연극 작품 제작보다 각종 이벤트를 기획하고 연출한 공연작품이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내 이름과 즐거운 이벤트를 영어로 조합한 ‘조이슈즈’라는 회사를 2004년에 설립해 그로부터 서울시가 주최하는 영화를 비롯한 각종 예술 문화 역사 기념축제 공개입찰에서 나의 회사가 제출한 콘텐츠들이 우수성을 인정받아 다양한 장르의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벤트라면 후회 없이 기획하고 연출하고 제작해 어디서든 주제만 던져주면 멋진 그림이 저절로 떠오른다."

-한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대가의 경지에 오른 자신감이다.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지혜로운 지침을 경험철학을 통해 한마디 한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공연은 관객과의 두뇌 게임이다. 모든 인간이 언제나 찾고 느끼고 향유하고 싶은 것은 오감을 통한 즐거움이다. 그 가운데 보고 듣고 느끼는 즐거움의 대상으로 가장 큰 구실을 하는 것이 공연물이나 이벤트 프로그램이다. 그런 분야의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반드시 관객의 머리를 넘어서, 그들과 두뇌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창의성의 카드를 내밀어야 한다.

관객은 시대와 사회 변화환경에 따라 아주 섬세하고 영리하게 변화한다. 관객들의 머리를 압도하고 앞서지 못하는 콘텐츠는 결코 관심을 모으지 못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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