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인터뷰] '팔순의 작은 거인' 박승배 원로감독, 단편영화로 영화인생 2모작시대 열다
[365인터뷰] '팔순의 작은 거인' 박승배 원로감독, 단편영화로 영화인생 2모작시대 열다
  • 김두호
  • 승인 201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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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배 영화촬영감독, '난쏘공', '어우동' 등 100여 편 남긴 촬영장의 작은 거인
-첫날밤 신부 두고 촬영장 달려간 영화인생 반세기
-정지영·이규형·박찬욱 등 신인 데뷔작품만 10여편
일생을 충무로에서 보낸 박승배 영화촬영감독. 박 감독이 촬영한 작품은 이원세 감독의 '엄마 없는 하늘아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장호의 '외인구단', '어우동' 등 1990년대까지 100여 편에 이른다. 팔순인 그는 현재도 단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제작활동을 하며 제2의 삶을 살고 있다./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영화가 관객들의 호평을 받아 성공을 하면 화려한 갈채는 출연 배우와 연출 감독이 차지한다. 촬영 감독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들의 이름에 가리어 시선을 끌지 못한다. 잠깐 떴다가 사라지는 자막이나 홍보물에 이름 석자가 소개될 뿐이다.

박승배 (1939∼ ) 촬영감독은 충무로시대 제작현장에서 활동한 손꼽는 명장 중의 한사람이다. 키도 체형도 작고, 목소리도 나직하다. 행동거지나 성품도 공손하고 차분하지만 카메라를 잡으면 작은 체구에서 매섭고 열기에 찬 집념의 직업혼을 드러낸다. 그는 영화촬영 현장에서 늘 그렇게 긴장을 풀지 않고 일생의 대부분을 충무로에서 보냈다.

1960년대 초 '자유부인'을 연출한 한형모 감독의 제작팀에서 촬영보조기사로 일을 시작해 이원세 감독의 '엄마 없는 하늘아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 이장호의 '외인구단', '어우동', 'Y의 체험' 등 1990년대까지 촬영작품이 100여 편에 이른다.

그 중에는 정지영·이규형·송영수·김홍준·박찬욱 감독 등의 데뷔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많은 신인 감독들이 충무로에 등장하면서 편안하게 작업을 함께 할 수 있는 착하고 감각 있는 촬영 파트너로 선뜻 그를 찾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의 영화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놀랍게도 오래전 은퇴한 영화인으로 잊혀진 전조명 원로감독, 박 감독이 9편의 작품을 함께 한 이원세 감독(인터뷰365 인터뷰인물 목록 참조) 등 세 사람이 손을 잡고 단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제작활동을 하고 있다.

단편영화는 장편영화 진출을 앞둔 영화지망생들의 활동 분야가 되고 있지만 이들 원로들이 추구하는 단편 창작활동은 작품 세계와 추구하는 목적이 그들과 차별화 된, 백전노장 직업 영화인의 새로운 활동 경지를 열어가는 또 하나의 새로운 좌표가 되고 있다.

나이와 디지털시대의 변화에 주눅 들지 않고 영상창작의 열망을 단편영화로 돌려 은퇴 없는 영화인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낸 박승배 감독을 만났다.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하고 있는 박승배 영화촬영감독/사진=인터뷰365

■단편영화로 영화인생 2모작시대 개척

-지금도 영화를 찍는다고요?

전조명 선배님과 며칠 전 하루 종일 팔당호반에 있는 양평 양수리 촬영 헌팅을 하고 왔어요.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전조명 감독과 완성한 10분짜리 단편 다큐멘터리 ‘교동도의 꿈’을 스마트폰 영상으로 보여주며 밝은 표정으로 작품 주제와 배경을 설명했다. 전조명 감독(1934∼ )은 1959년 ‘3인의 신부’ 촬영감독으로 시작해 김수용 감독의 ‘갯마을’을 비롯, ‘김의 전쟁’(김영빈 감독). ‘영원한 제국’(박종원 감독) 등 150여 편에서 촬영감독으로 참여하고 직접 연출한 작품도 ‘절망은 없다’ ‘서산대사’ ‘세 남매’ 등 20여 편에 이르는 원로 영화인이다.)

-‘교동도의 꿈’은 분단의 아픔과 두고 온 북의 고향산천에 대한 실향민들의 향수를 주제로 한 작품이군요.

전조명 감독님은 고향인 평안남도 개천 땅에서 내려와 평생 고향산천을 잊지 못하고 산 실향민입니다. 아무나 사진을 찍지 못하던 일제 강점기 시절, 평양의 사진관집 아들로 자라나 어릴 때부터 피사체에 대한 카메라 작업 시각이 특출한 분입니다. 우리가 준비 중인 47신의 단편극영화 ‘아저씨 나무’의 시나리오도 전 감독께서 직접 집필했어요. 고아로 자란 어린 소녀와 그를 보듬어준 붕어빵 장수인 아저씨, 그리고 소녀의 남자친구 사이에 맺어진 따뜻한 인연 휴먼스토리를 다룬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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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3일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개최된 '이원세감독마스터클래스'에 참석한 박승배 영화촬영감독. 지금까지도 카메라를 손에 놓지 않는 박 감독은 백발의 꽁지머리에 중절모를 쓴 충무로의 '멋쟁이 신사'다./사진=윤진호 영상작가 

- 100여 편이 넘는 장편영화를 만들었던 충무로시대의 대감독들이 시대가 바뀐 지금 단편영화에 관심을 둔 동기가 있을 것 같군요. 단편영화는 주로 장편영화 작가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이 실험성을 토대로 제작하는 경향이 있고 상업성도 없어서 제작비 조달도 쉽지가 않을 텐데요.

영화인은 평생 외길을 걸어도 노후를 보장받지 못하는 무소속의 자유직업인입니다. 여기에다 급격한 디지털 영상예술과 기술의 변화와 함께 영화 종사자들의 세대교체가 다른 분야보다 빨리 와요. 전문 직종을 중도에 다른 직업으로 바꾸기란 쉽지 않아 조기에 은퇴생활을 하는 영화인들이 많고 노령기에는 소외지대에서 힘들게 살아갑니다. 그걸 극복하고 좀 의미 있게 살려면 하던 일을 계속하는 길인데 장편은 힘들어도 단편은 큰 제작비 없이 만들 수 있어서 함께 뜻을 모아 제2의 영상문화 창출에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원세 감독은 은퇴후 알고보니 초교 동기

-이원세 감독과는 많은 작품을 함께 하셨지요?

100여편을 촬영하면서 함께 한 연출 감독이 20여명 넘는데 그 중 전우열 감독, 이원세 감독과 가장 많은 작품을 함께 했어요. 이원세 감독하고는 1977년 흥행에 성공한 ‘엄마 없는 하늘아래’를 속편까지 찍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하와의 행방’, 나훈아가 출연한 ‘3일낮 3일밤’ ‘이방인’ ‘그여름의 마지막 날’ 등 9편입니다.

이 감독과는 전쟁터에서 전우처럼 생사고락 나누며 많은 추억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사람 인연이란 게 묘해요. 서로 수십년을 그렇게 살아도 모르다가 칠순 넘어 옛날 얘기하다보니 우리가 서울 덕수초교 동기동창이더라구요. 전쟁 통에 학교를 제대로 못 다닌 시절이라 그걸 모르고 살았던 거죠.

이원세 감독과 손을 꼭 잡은 박승배 영화촬영감독. 박 감독은 이 감독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하와의 행방’등 9편의 작품을 함께 했다. 박 감독은 "칠순 넘어 이 감독과 덕수초교 동기동창사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웃었다./사진=윤진호 영상작가 

- 함께 작업한 감독들이 한국영화 작품 목록을 들춰보니 20명도 넘더군요.

우리 영화사상 처음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평가받은 강대진 감독의 ‘마부’를 촬영한 최호진 감독 팀에서 독립해 나의 첫 촬영 작품이 1967년 정진우 감독의 ‘폭로’였어요.

그후 이혁수의 ‘복수’, 임권택의 ‘바람같은 사나이’, 박종호의 ‘고향무정’, 김영걸의 ‘미니 아가씨’, 그리고 전우열 감독과 ‘영시의 부르스’를 비롯해 14작품을 함께 했고, 하한수의 ‘눈내리는 밤’, 하길종의 ‘여자를 찾습니다’, 최하원의 ‘비정지대’, 최현민의 ‘젊은도시’, 최훈의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 이성민의 ‘사랑의 계절’, 이영우의 ‘판문점 도끼살인사건’, 김수용의 ‘산불’, 고응호의 ‘팔불출’, 심우섭의 ‘여자는 괴로워’, 이장호의 히트작인 ‘어우동’ ‘y의 체험’ ‘이장호의 외인구단’을 포함해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도 내가 촬영했어요.

- 첫 작품을 준비하는 신인감독들이 박 감독과 파트너가 되어 데뷔 작품을 내놓은 경우가 많았어요.

새삼 기억해보니 많군요. 1968년에 데뷔한 전우열 감독부터 시작해 ‘목소리’의 김영걸, ‘성황당’의 문상훈,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의 정지영, ‘블루스케치’의 이규형,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의 송영수, ‘꼬리치는 남자’의 허동우, ‘달은..해가 꾸는 꿈’의 박찬욱, ‘장미빛 인생’의 김홍준, ‘No3’의 송능한, ‘숲속의 방’의 오병철 감독들이 떠오릅니다.

박승배 영화촬영감독/사진=인터뷰365

■허망하게 지나간 첫날밤의 추억

- 한 해 200여 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되던 1960년대 영화인들은 대다수 철야 작업으로 죽을 고생을 하며 영화 찍은 고생담을 얘기합니다. 비화를 시작하면 끝이 없겠지요?

그럼요. 대중문화로 영화가 판을 치던 시대니까 영화인들의 직업 긍지도 대단했고 크랭크 인을 하면 제작시간을 앞당기려고 물불 안 가리고 작업을 했어요. 촬영장비도 열악하고 소도구 나 세트 시설도 온 몸을 동원하게 되어 사고도 많았어요. 그런 시절에 장가를 간 나는 첫날밤도 그냥 넘긴 것이 내 인생의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젊은시절 촬영현장을 누비던 박승배 촬영감독 (3)" "젊은시절 촬영현장을 누비던 박승배 촬영감독 (1)" "젊은시절 촬영현장을 누비던 박승배 촬영감독 (2)"
젊은시절 현장을 누비던 박승배 영화촬영감독/사진=윤진호 영상작가 

-영화 때문에 첫날밤을 포기한건가요?

첫날밤을 맞이했지요. 그런데 신랑구실을 안한 게 아니라 못한 겁니다. 하하.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구체적인 정황을 들려주시지요.

전우열 감독이 가족 소개로 만난 착한 색시(신순임)와 1976년 12월 28일 대한극장 옆에 있던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한진영화사 한갑진 사장이 특별히 제공한 제작차량을 타고 인천 올림퍼스호텔로 갔어요. 철야 촬영 작업을 반복하다가 잠깐 결혼식 올리는 시간과 그날 첫날밤 하루를 쉬게 된 것이죠.

몸이 파김치가 된 상태로 호텔방에 들어갔으니 신부가 샤워를 하고 있는 중에 잠에 골아 떨어졌고 깨어보니 아침이었어요. 신부는 잠자는 신랑을 깨울 수 없었으니 한심하게 뜬눈으로 지켜보며 밤을 새웠고 나는 깨어나는 길로 허겁지겁 촬영장으로 내달렸어요. 내가 가야 카메라가 돌게 되어 수많은 스태프와 배우들이 나만 기다리고 있으니 어쩝니까.

-그래서 신부는 언제 맞이했는가요?

말도 마세요. 제대로 신부를 맞이한 시기가 이듬해 2월입니다. 안산 해안 오이도의 있는 염전지대에서 ‘엄마 없는 하늘 아래’를 찍을 때 비로소 촬영장 부근에 출연배우 정영숙씨가 허름한 개인집 방 한 칸을 얻어줘 신혼기분을 달랠 수 있었어요. 계산을 해보니 그로부터 딱 10개월 만에 큰 아이가 태어났으니 남자 구실을 제대로 하는데 1년이 걸린 것이지요.

■이만희 감독의 천재성에 경악

-촬영 작품을 보면 앞서 거론된 작품 외에도 ‘석화촌’ ‘태백산맥’ ‘산불’ ‘달빛 사냥꾼’ ‘게임의 법칙’ ‘축제’ 등 화제작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촬영 에피소드가 있다면?

많지요. 문득 떠오르는 일은 내가 영화진흥공사에서 국책영화를 만들 때 이만희 연출의 ‘들국화는 피었는데’의 김덕진 촬영감독이 사고로 쉬게 되어 내가 남은 작업을 하게 되었을 때 이만희 감독의 영상 감각이 천재에 가깝다는 것을 실감한 일이 있어요. 숲 속의 건물로 돌진해 들어오는 탱크의 포신을 찍기 위해 와이드로 앵글을 열어두고 있을 때 이 감독이 망원을 요청해요. 상식 밖의 엉뚱한 요청이라 이해할 수 없어 머뭇거렸지만 그의 생각이 확고해 그대로 실행했는데 영상에 나타난 결과를 보고 악 소리를 냈습니다. 거대한 구멍의 포신이 그대로 스크린을 찢을 듯이 덮치는 영상으로 살아난 것이지요. 그게 천재성입니다.

그리고 이원세 감독과 ‘난쏘공’을 찍을 때 그 척박하고 소외된 염전지대의 풍경과 함께 고생한 배우와 스태프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 속에서 되살아 날 때가 많아요. 영화 내용도 어둡고 슬펐지만.

"젊은시절 촬영현장을 누비던 박승배 촬영감독 (3)" "젊은시절 촬영현장을 누비던 박승배 촬영감독 (1)" "젊은시절 촬영현장을 누비던 박승배 촬영감독 (2)"
젊은시절 현장을 누비던 박승배 영화촬영감독/사진=윤진호 영상작가  
1988년 88서울올림픽 기록영화제작현장의 박승배 감독
1988년 서울에서 개최된 '서울올림픽' 당시 기록 영화 제작 현장에서의 박승배 영화촬영감독/사진=윤진호 영상작가  

- 박 감독은 대학에 영화학과가 등장하던 초기 한양대 영화학과 2기로 졸업하셨는데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영화인이 드물 때였지요?

우연이었어요. 나는 경성전기공고를 졸업하고 친척의 소개로 ‘자유부인’의 한형모 감독이 설립한 한형모프로덕션의 이성휘 촬영팀에서 영화 일을 시작했어요. 어느 날 한형모 감독께서 한양대에 영화과가 신설됐으니 젊을 때 공부를 해야한다면서 당시 윤봉춘 영화인협회 이사장의 추천을 받아 입학토록 권하셨어요. 그 분 덕분에 영화작업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대학을 다닐 수 있었지요.

한 평생 카메라와 함께 해온 박승배 영화촬영감독. 팔순인 현재도 단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제작활동을 하고 있다./사진=인터뷰365

-극영화 작품만 아니라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 공식 기록영화 촬영,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단국대, 상명대 겸임교수로도 활동하셨고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이력도 화려합니다. 카메라와 함께 한 스스로의 생애에 어떤 감회를 느끼세요?

한쪽 눈을 카메라에 접합시킨 시간 속에서 내 인생이 지나갔습니다. 긴 세월인데 지나고 보니 눈 깜짝하는 순간에 내 젊음이 사라진 것이지요. 가끔 내 작품을 다시 볼 때마다 열심히 살아온 내 흔적을 흐뭇하고 자랑스럽게 맞이합니다.

 

동영상 촬영 및 편집=윤진호 영상작가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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