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김두호가 만난 '여성영화인 모임'의 얼굴 채윤희 회장
[인터뷰365] 김두호가 만난 '여성영화인 모임'의 얼굴 채윤희 회장
  • 김두호 인터뷰어
  • 승인 201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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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기획 마케팅 분야 개척한 1세대
- 따뜻한 인품의 맏언니로 20년 지켜내
전문직 여성 영화인들의 모임 '여성영화인모임'을 20년째 이끌고 있는 채윤희 회장. 영화기획 마케팅 분야를 개척해온 채 회장은 지난 25년간 '쉬리', '친절한 금자씨' 등 500여편의 작품의 홍보 마케팅을 담당한 올댓시네마 대표이기도 하다.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영화의 연출, 기획, 교육, 제작, 기술, 시나리오, 마케팅 등 각 분야의 전문직 여성 영화인들이 참여해 출범한 사단법인 여성영화인모임이 2020년 4월로 20주년을 맞이한다. 이 단체가 주최 주관하는 여성영화인축제는 올 12월에 20주년 행사를 개최한다.

여성영화인모임 창립 회장의 책무를 20년간 무난하고 조용하게 지켜온 채윤희 회장은 “일하는 여성의 나이는 굳이 밝힐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그는 젊은 생애의 전부를 영화에 바치고 인생의 중반을 넘어섰다. 

1994년에 그는 영화 홍보마케팅대행사 올댓시네마를 창업했다. 25년간 흔들리지 않는 경영 능력으로 굳건한 커리어 우먼의 면모를 보여준 활동 역량을 생각하면 ‘남자 같은 여자’로 생각되지만 오히려 지극히 여성적이고 부드럽고 고운 심성의 영화인으로 소문나 있다. 

뜻밖에도 국립극단 전속 아역 배우의 경력을 가진 그는 영화와 출판 마케팅기업으로 한 때 바람을 일으킨 김정률의 태멘에서 활동을 시작해 1986년 영화시장의 개방 물결을 타고 설립된 영화사 양전흥업에서 김정옥 감독의 영화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고’의 기획 및 홍보 작업에 참여하면서 여성 불모지대였던 영화 기획 분야 선두주자로 등장했다. 

삼호필름 창립작인 이명세 감독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첫사랑’ 등이 그의 기획 작품이다. 이어서 올댓시네마 창업 후 강제규 감독의 ‘쉬리’,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를 비롯해 수입영화 ’컬러 오브 나이트’, ’제5원소’, ’매트릭스‘, ’트랜스포머’, ’러브 액츄얼리’, ’데드풀’ 등 500여 편의 작품들이 그의 손을 거쳐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꿈과 사랑을 담아내는 스크린이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은 거친 숨결이 오가는 영화 흥행세계의 이면에서 강건하고 착실하게 전문직 영화인의 길을 가고 있는 여성영화인모임의 얼굴 채윤희 회장을 만났다.

2000년 여성영화인모임 창립멤버로 지난 20여녀간 여성영화인의 권익 향상에 앞장서온 채윤희 회장. 지난해 여성영화인모임은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을 설치했다./사진=인터뷰365

- 1990년 이명세 감독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기획 작업할 때가 채 회장이 한창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청년기였다. 로맨스 코미디 멜로적인 장르를 조합한 작품에 박중훈·최진실·김보연 등 최고 스타들이 출연해 히트한 작품이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보면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영화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대학 동기 커플이 서로 사랑해 허니문을 맞이하지만 오해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싸우며 순탄하지 않는 과정을 그린 작품인데 달라진 젊은 남녀의 결혼 풍속도를 반영한 점에서 우선 관객들의 시선을 모아 흥행으로 이어졌다. 이명세 감독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연출력이 돋보여 편집도 하기 전에 찍어온 필름을 보며 흥분했던 기억이 새롭다. 

- 여성영화인모임이 8개월 후 20주년을 맞이한다. 태동기 비화를 들려 달라.                 

1999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임순례 감독과 주진숙 교수(전 중앙대/현재 영상자료원 이사장) 등 여성 영화관계자들이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 간의 정보교류와 공동체의식을 갖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누면서 뜻이 모아졌다. 이듬해 4월 영화 제작, 기획, 프로듀서, 교육(대학), 연출, 스탭 분야에서 활동하던 여성영화인 40여 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해 서울 동대문 MMC극장에서 창립식을 가졌다.  

여성영화인모임 채윤희 회장이 '2015 여성영화인축제'에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수상자로 선정된 강수연 씨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다. 

- 여성영화인모임에서 매년 연말에 개최하는 여성영화인축제 행사는 해마다 한해를 마감하는 영화계 뉴스로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축제 프로그램 중 회원들이 자랑스럽게 선정해 시상하는 공로상 부문의 선배 영화인들이 새삼 화제의 인물로 조명을 받는다. 척박했던 시절 연기자나 스탭으로 일했던 선배에게 바치는 공로상과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상패가 매년 따뜻하고 흐뭇하게 돋보인다. 

우리 회원들도 그 분들을 한분씩 모실 때마다 가장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한다. 박남옥(최초의 여성감독), 황정순, 최지희, 김지미, 이경자(영화편집전문), 이미례(감독), 한옥희(독립영화 작가 겸 평론가), 고은아, 윤정희, 강수연, 나문희, 윤여정 씨 등이 주인공들이다.

- 양성평등이 국가적으로나 사회적 법률적 존중을 받는 시대에 굳이 여성을 앞세우는 것도 시대적인 의미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이제 영화산업 종사자도 각 분야에서 남성 못지않게 많이 활동하고 있지 않는가?

작년 초에 우리는 모임의 계열 활동기구로 ‘든든’이라는 이름의 한국영화성평등센터를 설치했다. 한국영화 산업내에서 성평등 환경조성을 목적으로 만든 것인데 ‘미투’사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고 K감독 성피해 고발 폭로 사태가 터져 설립 의미가 입증됐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어느 직종이든 온전하게 여성의 권리가 보장받기 위해서는 경계심을 해제할 수가 없다. 이를 위해 영화산업 내 성폭력 예방교육 진행 및 강사양성, 피해자상담,법률지원, 성평등 영화정책 연구 및 실태조사, 정책 제안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여성이라고 해서 무엇이든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성문제에서는 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을 지울 수가 없다.

2004년 개최된 제9회 여성주간 행사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은 채윤희 회장. 여성영화인들의 권익과 삶의 질 향상에 노력하고, 여성영화인 모임을 설립하고 운영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 관객 상대 상영관 영화는 상업성을 목적으로 제작된다. 영화를 잘 만들어도 작품 홍보에 실패하면 관객 반응이 예상보다 떨어진다는 점에서 홍보마케팅대행 사업이 결코 만만한 사업분야가 아니다. 올댓시네마 창업 후 지난 25년간 대행한 작품이 500여 편이라는데  영화 홍보마케팅 일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작품 하나마다  꼼꼼이 챙겨야한다. 한국영화의 경우 기획단계에서 촬영 과정, 완성 후 개봉날짜가 잡히게 되면 마케팅 기획안, 선재물 준비, 출연배우와 연출 스태프의 인터뷰 스케줄과 일정을 짜고 영화 홍보물의 동영상까지 다양한 내용의 보도자료를 미디어에 제공해야한다. 관객들이 보고싶게 영화를 잘 포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요즘 같은 SNS 시대에는 정확한 정보 전달이 더 중요해졌다.

- 잊지 못할 사건이나 일화도 많을 것이다.

아직도 아찔한 기억은 1997년 외화 ‘제5원소’의 홍보차 연출자인 뤼크 베송 감독이 서울에 왔을 때 겪은 사건이다. 그 무렵만 해도 영화심의기구에서 가위질을 안 해도 수입사가 영화의 내용 중 흥행에 별로 영향이 없는 부문을 삭제, 압축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장에서 감독이 자신의 작품이 한국에서 함부로 편집당한 것을 알고 극장에서 확인한 후 다음날 아침 바로 출국해 버렸다. 신문 잡지 방송기자들과 인터뷰 약속을 해두고 있는 상황에서 그 지경이 되었으니 모든 스케줄을 관장했던 우리 회사 입장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이 갈 것이다.

- 결국 영화 흥행에 영향을 미치게 한 결과로 이어진 것인가?

아니다. 다행히 예상을 깨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관객들이 몰려 흥행에 성공했던 작품이다.

- 홍보마케팅대행을 맡은 영화가 터지면 그 희열감은 작품 제작자나 출연 연출 스태프 못지 않을 것 같다. 그런 기분을 안겨준 대표적인 작품이라면?

단연 강제규 감독의 ‘쉬리’였다. 수 백 개의 스크린에서 동시 개봉하는 지금 멀티플렉스 영화관 시대가 되기 전 서울 등 주요 도시의 단일 극장에서 개봉영화를 돌리던 시절에 580여만 명의 관객 동원은 지금의 1500만 이상의 히트영화로 볼 수 있다. 그 당시 TV가 9시 뉴스로 보도할 만큼 대박이 난 작품으로 오래도록 행복감에 젖게 했다. 지금의 올댓시네마를 있게 해준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영화인단체총연회가 주최한 제48회 영화의 날 기념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채윤희 회장과 필자. 

- 여성 영화인들의 권익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가 대통령표창도 수여하고 영화인연합회가 주최하는 영화의 날에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영화와 인생의 조우가 운명적으로 보인다.

나는 오빠가 연극 연출가(채윤일 감독)이기도 하지만 초등학교 2, 3학년 때 국립극단의 아역연기자로 활동했다. 지금의 명동 국립예술극장인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출연 작품이 10여 편 된다. KBS 어린이합창단에서도 활동해 예능방면에 끼가 있었던 것 같다.

- 꿈과 사랑, 그리고 일, 삶이 온통 영화 속에서 영화와 함께 피고 지는 일상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영화인생으로 사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퍼센트로 나타낸다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왔고 살고 있다는 생각에서 아마도 70%의 만족감을 나타낼 수 있을 것 같다.  직원 10여 명인 작은 회사지만  별나게 굴곡이 많은 영화업계에서 25년간 우리 직원들 월급을 한 번도 밀리지 않게 꼬박꼬박 챙겨준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다행스럽다. 영화와 더불어 살고 있는 내 인생에 큰 불만은 없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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