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아리랑' 타이틀로 본 우리영화 파노라마 (30)
[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아리랑' 타이틀로 본 우리영화 파노라마 (30)
  • 정종화 영화연구가
  • 승인 201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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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운규 서거 20주년 기념작인 1957년 '아리랑'
- 청춘스타 신성일이 열연한 1974년 '아리랑'
- 열악한 근로조건을 부르짖었던 1989년 '구로 아리랑'
1926년 '아리랑' 상영을 알리는 신문광고(사진 위), 1957년 단성사에서 개봉된 장동휘 주연의 아리랑(사진 아래) ⓒ정종화

[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까지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제목으로 한 작품이 몇 편이나 될까?

대원군 시대 경복궁 증축을 위해 징발된 전국의 민초들이 지방마다 다르게 부른 '아리랑' 민요를 1926년 나운규가 감독과 주연을 한 '아리랑' 영화로 단성사에 상영하면서, '아리랑'은 일제 강점기의 암울하였던 시대에 애국가나 다름없는 겨레의 노래가 됐던 것이다.   

'아리랑'은 전국 방방곡곡에 펼쳐진 스크린의 개가였고 우리 민족의 비폭력 저항의 영상시이기도 했다. 1930년 속편 '아리랑, 그 후의 이야기'와 1936년 발성영화로 '아리랑 3편'이 발표되면서 나운규의 민족혼을 유감없이 영화로 구가하였다.

동족상잔의 6·25전쟁이 끝난 1954년, 허장강 데뷔작인 이강천 감독의 '아리랑'은 나운규 '아리랑'을 현대판 전쟁의 '아리랑'으로 변경한 반공영화였다.

춘사 나운규 서거 20주년 추모작으로 1957년 장동휘 주연의 '아리랑'이 리메이크 되어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단체 학생관람이 한창이었는데, 필자도 중 3때 처음으로 단성사에서 '아리랑'을 보며 영화의 감동을 맛보았다.

신성일 주연의 '아리랑'(1974) ⓒ정종화

1966년 최무룡은 감독과 주연을 한 '나운규의 일생'으로 타이틀을 달았으나 대중적인 이미지가 약해 후에 '아리랑'으로 병행해 저항의 정신을 스크린에 부각시켰다.

유현목 감독은 1968년 박노식을 주인공으로 '아리랑'을 발표하였고 1974년 청춘스타의 전설 신성일을 전격 기용하여 '아리랑'을 만들기도 했다. 이두용 감독은 2003년 남북화해 무드에 편승해 흑백으로 '아리랑'을 21세기에 내놓았다.

1961년 양주남 감독의 '밀양아리랑'은 사실 '아리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영화로 밀양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아랑'의 원혼을 풀어주는 권선징악의 내용인데 '밀양아리랑'의 민요에 편승해 제목을 붙였을 뿐이다.

박종원 감독의 영화 '구로 아리랑'(1989)ⓒ정종화

1977년 정인엽 감독이 최불암을 주연으로 '아리랑아!'를 우수 영화로 만들었다.

1989년 무명시절 최민식과 신은경이 출연한 박종원 감독의 '구로 아리랑', 코미디언 손창호가 감독한 '동경아리랑'(1990)도 있으며, 최진실의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1991)과 1993년 '여자아리랑' 같은 애로물도 '아리랑'을 즐겨(?) 달기도 했다.

 

정종화 영화연구가

60여 년간 한국영화와 국내 상영된 외국영화 관련 작품 및 인물자료를 최다 보유한 독보적인 영화자료 수집가이면서 영화연구가 겸 영화칼럼니스트. 196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부터 제작된 영화의 제작배경과 배우와 감독 등 인물들의 활동이력에 해박해 ‘걸어 다니는 영화 백과사전’이라는 별칭이 따름. 인터넷과 영상자료 문화가 없던 시절부터 모은 포스터와 사진, 인쇄물 등 보유한 자료 8만여 점을 최초의 한국영화 ‘의리적 구투’가 상영된 단성사에 설립중인 영화 역사관에 전시,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일인 2019년 10월 27일에 개관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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