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인터뷰] 세계에 한옥의 美 알리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
[365인터뷰] 세계에 한옥의 美 알리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
  • 박상훈 기자
  • 승인 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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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
-"전 세계에 한국 콘텐츠 알릴 때 가장 행복"
-미술을 나를 표현하는 도구...자연스레 직업으로 생각
-"마음과 정성 담아...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이 중요"
-북촌 한옥 생활 7년...변해가는 북촌 모습에 위기의식 느껴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 씨는 전통의 가치를 지키며 본질을 잃지 않는 디자인을 선보이며 국내외의 뜨거운 주목을 받고있다. /사진=인터뷰365
한옥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디자인을 선보여 주목받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 씨./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박상훈 기자] 양태오(1981~) 씨는 세계에 한국의 전통 문화인 한옥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디자인을 선보여 주목 받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한옥을 향한 그의 애정은 남다르다. 양 디자이너가 지난해 작업한 가회동에 위치한 한옥은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디자인 잡지 '웰페이퍼'에 소개돼 '잊혀지는 전통과 빠르게 움직이는 현대의 균형을 잡은 집'이란 극찬을 받았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전국 국민 행복 최우수 화장실'로 선정된 천안 망향 휴게소 화장실 디자인, 북경 주중한국문화원 접견실도 그의 손에서 탄생됐다.

20대부터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태오양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펜디', 영국 왕실의 침대로 유명한 '사보이어 베드' 등과 협업하며 활동 영역을 세계 무대로 넓히고 있다. 

디자인에 자신의 마음과 모든 정성을 담는다는 그의 말처럼 직접 마주한 디자인 공간은 그와 똑 닮아있었다. 차분하면서 묵직하고, 아름다움을 갖추면서도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 편안함으로 조화를 이룬다. 전통과 현대의 균형을 찾는 그의 디자인 철학이 삶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실내 건축을 전공한 그는 공간 뿐 아니라 가구, 화장품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인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디자인에는 경계가 없다"고 말하는 양태오 디자이너가 공통으로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은 '한국 전통의 가치'다.

전통과 현대가 서로 줄다리기하고 있는 곳, 서울 종로구 소격동 뒷골목에 위치한 그의 새로운 공간을 <인터뷰365>가 찾았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사진=인터뷰365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사진=인터뷰365

 

한옥에 산다는 건 굉장히 특별한 일

-2016년 작업한 '망향 휴게소 화장실 개선 프로젝트'의 경우 한옥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이 돋보이는 디자인으로 '전국 국민 행복 최우수 화장실'로도 선정됐다. 또 지난해 작업한 '가회동 한옥'이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들었다. 

최선을 다해서 한옥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한옥이 유행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현대와 전통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갈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만들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한옥 작업에 대한 관심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다행히도 많은 해외 잡지에서 가회동 한옥에 관심을 가져줬다. 그중에 '웰페이퍼'라는 최고 권위의 디자인 잡지에서 '잊혀지는 전통과 빠르게 움직이는 현대의 균형을 잡은 집'이라고 평가를 해줬는데, 디자이너로서 전통의 가치를 지켜내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생각에 참 뿌듯했다.

양태오 디자이너가 작업한 '가회동 한옥' 거실/사진=태오양스튜디오
양태오 디자이너가 작업한 '가회동 한옥' 거실/사진=태오양스튜디오

-한옥을 디자인할 때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 있다면.  

가회동 한옥의 경우 고객의 의뢰를 받아 작업을 하게 됐는데, 현대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와 전통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가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실 한옥에 산다는 건 굉장히 특별하지만, 많은 신경을 써야한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집을 꾸준히 관리하고 옛 것에 대한 존중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느냐의 문제다. 

한옥은 지켜나가야 할 문화유산이다. 간혹 한옥의 전통의 가치 보다는 결과물 사진 몇 장 보고 돈이나 디자인의 가치로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과물이 어떻든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하지만 내 디자인도 항상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평가든 나쁜 평가든 시간이 흐른 뒤에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

-북촌에 살면서 한옥과 전통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북촌으로 이사 온 지 7년이 넘었는데 변화를 몸소 체험하면서 지켜야 된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자거나 전통을 고수하고 한복 입고 한옥에서 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래로 당연히 나가야 하고 현대에 발맞춰야 하는데, 전통을 어떻게 살아있게 하느냐, 본질을 잃지 않고 어떻게 가치 있게 이어나갈 것이냐를 고민하고 있다.

-최근엔 서울시 홍보대사로도 위촉되었던데.

걱정도 된다. 많은 분들에게 알려진 사람도 아니니까. 다만 주어진 일에 있어서 열심히 하는 게 내 소임인 것 같다. 나도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고, 서울의 덕을 보고 있고, 서울이 변화하는 모습을 오래 지켜봤다. 북촌이라는 동네도 고유의 색을 잃고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가회동도 그렇고.

'가회동 한옥' 내부/사진=태오양스튜디오
'가회동 한옥' 내부/사진=태오양스튜디오

공간은 '도구'가 돼야 한다

-작업할 때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은.

이 집이 고객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으로 비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한다. 그래서 공간은 '도구'라는 말을 많이 하는 거다. 예전엔 '예쁜 공간만 만들어주면 되는 거 아니야?'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그 때는 공간이 도구인 줄 모르고 전부인 줄만 알았다. 그리고 소통이 중요하다. 사전에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고객에게 정확한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실패하면 결과물이 정말 난리가 난다.(웃음)

-작업 기간은 어느 정도 걸리나?

주거 공간은 보통 4~5개월 정도 걸린다.

-결과물에서 실패한 경험도 있나?

물론 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너무 창피하고 지금도 얼굴이 뜨거워진다. 근거 없는 자신감에 휩쓸렸던 바보 같은 시절에 했던 실수다. 이제는 그런 실수는 하지 않는다. 그때의 일을 절대 못 잊고, 계속 기억하려고 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아무 관련이 없는 프로젝트라도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늘 그때를 생각한다. 

양태오 디자이너가 지난 2016년 작업한 '망향 휴게소 화장실 개선 프로젝트'. 한옥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이 돋보이는 디자인으로 '전국 국민행복 최우수 화장실'로 선정됐다./사진=태오양스튜디오
양태오 디자이너가 지난 2016년 작업한 '망향 휴게소 화장실 개선 프로젝트'. 한옥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이 돋보이는 디자인으로 '전국 국민 행복 최우수 화장실'로 선정됐다./사진=태오양스튜디오
2017년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사보이어 베드(Savoir beds)와 협업한 양태오 디자이너의 작품 'MOON 01'. 보름달을 형상화 한 디자인으로 '런던 디자인 위크 TOP 10'에 선정됐다./사진=태오양스튜디오
2017년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사보이어 베드(Savoir beds)와 협업한 양태오 디자이너의 작품 'MOON 01'. 보름달을 형상화 한 디자인으로 '런던 디자인 위크 TOP 10'에 선정됐다./사진=태오양스튜디오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은?

누구나 다 힘든 일을 겪고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좋은 일만 있겠나.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너 같이 산전수전 다 겪은 애도 없다'고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돈도 다 잃어도 보고, 스튜디오를 20대 중반에 시작해서 겪을 거 다 겪은 것 같다. 그래서 이젠 겁이 없다. 어떤 일이 생겨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다 떠오른다. 아무리 힘든 일이 일어나도 시간이 다 해결해주고 죽지만 않으면 다 극복하는 것 같다. 요즘엔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빨리 잊는 것 같다. 크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일을 통해서 또 배웠으니까 됐어' 이렇게 사람을 강하게 만들더라.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가 않은데.

그럼. 한두 번 겪어서는 안 된다. 안 좋은 일을 많이 겪어야 된다.(웃음) 나는 진짜 많이 겪었다. 건축을 하고 공사를 하는 게 굉장히 험한 일이다. 그래서 건축과 공간 디자인에 종사하는 분들은 진짜 힘들게 살아왔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존중한다. 이건 누가 도와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사진=인터뷰365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사진=인터뷰365

 

미술은 나를 표현하는 도구...자연스레 직업으로 생각

-디자인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디자인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 시절에도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물건에 관심이 아주 많았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 항상 어머니가 하교 시간에 데리러 오셨는데, 학원이 아닌 갤러리나 박물관으로 가셨다. 전시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시간을 많이 보냈다. 아, 어머니가 갤러리에서 다른 분들과 작품이나 작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실 때 옆에서 나 혼자 지루해했던 기억도 난다.(웃음)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 

어머니가 고미술품 수집을 많이 하셔서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물건들에 둘러싸여 자랐다. 지금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탐미주의자시다. 다 예뻐야 하고, 완벽해야 하고, 정성을 담아야 하고. 항상 버릇처럼 이야기하시는 게 '마음'이라는 단어다. '마음을 담아야 한다, 정성을 담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신다.(웃음) 정성이 담겨있는지 없는지로 평가를 하신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으실 때도 작은 것이더라도 정성이 담겨있어서 좋다, 마음이 담겨있어서 좋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신다. 나도 그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지금도 내 작업을 보고 평가를 많이 하시는데 '저건 마음이 담겨있어서 좋다'는 말을 많이 하신다. 그러다 보니 나도 직원들에게 마음을 담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디자이너를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시기는 언제였나.

중고등 학생 때부터였다. 사람마다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는 방식들이 다 다르겠지만, 당시의 나는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만들고 방을 꾸미면서 나를 표현했다. 자연스럽게 미술과 예술을 업으로 삼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관심 있는 다른 분야는 없었나?

같은 디자인이지만 원래 지망했던 분야는 패션 디자인이었다. 사실 부모님은 내가 미술 하는 것을 싫어하셨다. 공부도 못하고 맨날 그림만 그리고 그림책, 만화책, 영화만 보러 다니니까. 고등학생 때부터 예술영화도 정말 좋아하고 친구들과 많이 놀러 다녔다. 그러다가 대학에 갈 때 패션을 하고 싶어 했는데 부모님이 너무 많이 반대하셨다. 보수적인 면이 있으셨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자연스럽게 노출을 시키셨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가 패션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땐 반기지 않으셨다. 어머니께서 주변분들께 너무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들으셨다더라.

-부모님은 어떻게 설득했나?

절충안으로 맞춘 게 실내 디자인이었다. 그때 부모님이 '실내 디자인하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 공간, 가구 심지어 사람도 디자인 할 수 있으니까 그걸로 시작해보면 어떻겠니?'라고 하셔서 내 전공이 실내건축이 됐다.

-패션 디자인만 아니면 다 믿어주신 건가.

그렇다. 지금도 다 믿어주고 밀어주신다. 그런데 그 밀어준다는 게 금전적인 부분은 아니다. 사실 예술에서 누가 밀어준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다. 밀어준다고 더 잘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대신 마음으로 가족들이 밀어준다는 게 아주 큰 힘이 되고 또 책임 의식을 느끼게 해준다. 가장 좋은 건 객관적으로 봐줄 수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작업할 때마다 자주 와서 보시고 조언을 해주신다.

양태오 씨의 디자인에는 '마음'이 담겨 있다./사진=인터뷰365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서 만난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 씨./사진=인터뷰365

-패션 디자인에 대해 아쉬움은 남지 않나?

가끔은 지금 일이 너무 힘들어서 싫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부모님 이야기를 듣고 공간을 업으로 삼게 된 게 참 다행이구나 생각한다. 어떤 사람의 삶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일을 한다는 게 책임감도 있고 성취감도 크다. 지금은 공간 디자인이 정말 좋다. 공간을 도구 삼아서 사람들에게 감성적으로 다가갈 수 있고 효과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전달할 수 있다. 또 요즘 같은 시대에는 디자인의 경계도 없어서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을 해외에서도 보냈다던데.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미국 애리조나에서 보냈다. 가족들과 같이 갔었는데 기숙사 생활을 했다. 미국은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강요하지도 않고, 학원도 없었다. 허허벌판에서 자전거 타고 다니고,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서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대학교를 미국 시카고미술대학교로 갔다. 지금 해외에서 일하는 게 대학교 유학도 물론 도움이 됐지만, 언어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초등학생 때 미국에 가서 영어를 빨리 접한 게 큰 도움이 됐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는것이 중요

-부모님과는 같이 살고 있나?

부모님은 은퇴하시고 이민 가셨다. 일 년에 반은 한국에서, 반은 하와이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는 못한다. 이제는 거의 내 한옥에 방문하시는 느낌이다. 항상 안 늙으실 것 같고 내 옆에 있을 것 같은 당연한 존재였는데, 요즘엔 '언제까지 내 옆에 있을 수는 없겠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더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디자이너로서도 더 좋은 모습을 자주 보여드리고 싶다.

-부모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겠다.

쓸쓸하지. 어렸을 때는 외로운 것도 잘 몰랐는데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보면 한편으로는 나이를 먹는 게 참 소중하다. 어릴 땐 부모님이 드라마 보다가 울고, 다른 사람 이야기하다가 우는 걸 이해를 못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다 보니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게 되고, 마음이 더 넓어지는 걸 느낀다. 이런 부분이 디자이너로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북촌에 위치한 양태오 디자이너의 한옥 '청송재'/사진=태오양스튜디오
북촌에 위치한 양태오 디자이너의 한옥 '청송재'/사진=태오양스튜디오

 

전통과 현대가 줄다리기 하는 곳...소격동 뒷골목에 자리한 새로운 공간

-지난해 11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화장품 사업도 시작했는데 의외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나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화장품을 만들게 된 것도 비즈니스로 접근하지 않았다. 한옥처럼 너무나 소중한 유산인 한국의 전통문화를 현대화하고 국제적으로 소개하기 위한 방법을 많이 고민하고 있는데, 그게 한방이었고 화장품이었다. 

2013년쯤 불면증이 심했을 때 한방으로 불면증을 치료했다. 덩달아 피부도 눈에 띄게 좋아지더라. 그래서 농담으로 한의사 선생님께 '한약에 좋은 성분이 들어가 있는 것 같으니 성분 검사를 해보자'해서 만들게 된 게 이 화장품이다. 많은 분이 찾아주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난해 11월에 런칭 하자마자 '웰페이퍼' 잡지에서 최고 화장품 라인업 상을 받게 됐다. 국내외 잡지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고 있다. 참 다행이다.

-소격동 뒷골목에 가게를 연 이유가 있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도 않고 일반적으로 많이 피하는 자리인데, 일부러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번화가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예술을 좋아하고, 전통에 관심이 있고, 사람이 마음을 담아서 만든 물건을 존중하는 분들이 오는 장소. 번화한 거리 뒤에 자리 잡은 가게인데, 주인의 정성이 돋보이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또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면서 경복궁도 보고, 국립현대미술관도 보고, 삼청동에 있는 많은 갤러리를 만나고 이곳에 도달했을 땐 그냥 이 화장품을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에 이 가게가 명동 한복판이나 어느 신도시에 있었다면 너무 다른 느낌으로 와닿았을 것이다. 

양태오 디자이너의 가구 전시 '양태오 : 사랑방, 그 안에 머무는 것들'/사진=태오양스튜디오
양태오 디자이너의 가구 전시 '양태오 : 사랑방, 그 안에 머무는 것들'/사진=태오양스튜디오

  

세계에 한국 콘텐츠 알릴 때 가장 행복

-디자인, 전시, 화장품 등 많은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가장 즐거움을 주는 작업은 어떤 것인가?

다 즐거운데 요즘엔 해외에서 전시하고 내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게 가장 즐겁다. 개인적인 즐거움도 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학생 시절 읽고 공부했던 선망의 잡지 '모노클'에 내 작품이 실리고 있다. 잡지를 보고 이메일도 굉장히 많이 온다. 특히 시카고미술대학교 유학생 후배가 '선배님 작품을 잡지에서 보고 반가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국의 디자인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럴 때가 정말 뿌듯하다. '잠 못 자고 열심히 한 보람이 있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세계에 한국을 알릴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 "한국에도 이런 디자인이 있어", "일본과 중국만 있는 게 아니야", "한국이라는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

-일을 많이 할 때는 일과가 어떻게 되나?

나는 올빼미형 인간이다. 주로 밤에 영감을 많이 받다 보니까 새벽 3시 정도에 자는 데 문제는 회사는 9시에 시작한다는 거다. 8시에 일어나서 9시에 자리에 앉는다. 확실히 아침형 인간은 못 된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다들 아침형 인간이라고들 하지 않나. 그래서 '나 크게 성공 못할 것 같아'라는 생각도 많이 한다.(웃음) 아침에 일어나서 명상하고 운동하는 분들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현재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 무엇인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통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지금 우리나라를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작품이 혹평을 받더라도 나중에는 누군가가 나를 밑바탕으로 더 좋은 일을 해주길 바란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사진=인터뷰365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사진=인터뷰365

-연예기획사에 소속돼 있던데 어떤 일을 함께하고 있나.

해외에서는 디자이너가 기획사가 있는 게 일반적인 일이긴 하다. 디자이너가 비즈니스를 혼자서 다 하는 게 버겁다. 돈이나 계약에 신경을 쓰다 보면 디자인 연구할 시간이 부족하다. 많은 분들이 '연기를 하려고 하냐?'고 생각하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웃음) 오롯이 디자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들이다.

-얼마전 강연프로그램 '어쩌다 어른'에도 출연해 화제가 됐다.  

방송 제의가 많이 들어오긴 하지만, 회사와 계약하고 3년 동안 방송은 딱 한 번 tvN '어쩌다 어른'에 출연한 게 전부다. 내가 배운 것들을 전달하고 한옥에 대해서 알려드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서 나갔다. 그런데 단순히 예능적인 요소를 가진 프로그램이나 양태오라는 사람 자체가 주목받는 프로그램은 디자이너가 나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고 회사도 같은 생각이다. 유명세나 방송이 목적이 되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양태오 디자이너를 보고 디자이너를 꿈을 꾸는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왜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 디자이너가 돼서 이 사회와 사람들에게 어떤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디자인이라는 게 화려해 보일 수 있는 직업인데 아름다움과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고 디자인의 본질을 알고 지키는 디자이너가 됐으면 좋겠다.

박상훈 기자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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