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인터뷰] 한푼 두푼 모은 전재산 기부한 경비원 아저씨, 정봉호 씨
[365인터뷰] 한푼 두푼 모은 전재산 기부한 경비원 아저씨, 정봉호 씨
  • 김리선 기자
  • 승인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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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평생 모아 마련한 집과 예금 전액, 의료 구호 단체인 '국경없는 의사회'에 유산 기부
정봉호 씨는 칠십 평생 발로 뛰며 한푼 두푼 모든 전 재산을 기부했다. 그의 선행은 각박한 현대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안기고 있다. 현재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기부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했다./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의료 구호 단체인 '국경없는 의사회'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 같은 서민도 기부를 할 수 있느냐"고 묻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목소리였다. 가능하다는 말에 한 걸음에 사무실로 달려온 정봉호(1947~) 씨는 그 자리에서 칠십 평생을 모은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유산 기부에 동참한 정 씨의 아름다운 선행은 각박한 현대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안기고 있다. 

정 씨는 32년 전 병으로 아내를 잃은 후 홀로 남매를 키웠다. 넉넉치 못한 집안 사정으로 고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 전선에 뛰어든 후 청소부, 영업 사원, 해외 건설 근로자 등 닥치는대로 현장에서 발로 뛰며 한푼 두푼 돈을 모았다.

풍요롭진 않지만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평소 마음 속 깊이 품었던 기부를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노원구의 작은 아파트와 갖고 있던 예금 기부를 약속하며 유언 공증까지 마무리했다.

최근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국경없는 의사회' 사무실에서 만난 정 씨는 <인터뷰365>와의 인터뷰에서 "장례비만 남기고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떠날 작정"이라고 말했다.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차곡차곡 더 모아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그는 "기부 후 삶이 바뀌었다.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유산 기부에 동참한 정봉호 씨/사진=인터뷰365

발로 뛰며 칠십 평생 한푼 두푼 열심히 모은 돈 유산 기부

몸으로 뛰어서 번 돈 더 보람느껴 

기부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

-유산 기부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기부는 생각만큼 행동으로 실천하는게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평소 나눔활동에 관심이 있으셨는지요. 

기부에 대한 관심은 오랜 전부터 있었습니다. 평소 TV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접하고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아프리카로 직접 갈 수만 있다면 봉사를 하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죠. 그런데 혼자 애 둘을 키우며 하루 하루 힘들게 살다보니 여유가 없었지요. 생각만 했지 실행으로 옮기긴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할 줄 아는건 힘쓰는 것 밖에 없었어요. 살아오면서 닥치는대로 물불 안가리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습니다. 이자를 조금이라도 더 주는 은행을 찾아다니면서 모았죠. 적은 액수로 시작했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한푼 두푼 모으니 액수가 커지더라고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삶에 조금 여유가 생겼고,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나도 남을 도울 수 있을 정도가 됐구나 싶었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중소형 아파트와 예금 모두 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유산 기부는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우연히 TV를 보다가 '국경없는 의사회'의 영상이 나오는 걸 보고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저 같은 서민도 기부를 할 자격이 되냐고 물었는데, 환영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사무실로 찾아가 우선 상담을 받았어요. 기부를 해도 괜찮은지 물어보더라고요. 난 괜찮다, 전부 다 하겠다고 했죠. 그리곤 유산 기부 약정을 위해 변호사 사무실에서 유언 공증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에 수십명씩, 많게는 수백명씩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보니 안되겠다 싶더라고요. 생전이라도 기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우선 만기가 돌아온 예금을 찾아서 4000여만원을 기부했습니다. 유산 기부는 제가 세상을 떠나야 가능하니까요. 

-평생 힘들게 모은 재산을 기부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고민은 없으셨는지요. 

주변에서 한두푼도 아니고 아깝지 않냐고들 많이 물어봐요. 아까웠으면 제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나로 하여금 꺼져가는 생명들을 다시 살릴 수 있다면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죠. 기부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더라고요. 보통 유산 기부는 고액만 가능한 줄 알았어요. 돈 많은 사람들이나 유명인들만 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지, 저 같은 서민들도 할 수 있을 꺼란 생각은 못했어요. 제 나이가 73세인데,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해요. 죽기 전에 이 세상에 뭔가 남길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 싶어요.

청소부, 영업사원, 해외근로자 등 안해본 일 없어

아파트 경비원으로 '열일' 지금도 일할 수 있어서 행복해

-현재도 일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10년 째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을 찾아서 하는 스타일이라서 다들 좋아하세요. 일하는게 너무 즐겁습니다. 저는 아직 건강하니 돈을 벌 수 있쟎아요. 일하고 싶어도 못하고, 먹을 것도 없고, 병원에 가기도 힘든 사람들에 비하면 전 행복한거죠. 

-기부 소식을 들은 주변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동료나 주민분들도 이번 기부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계시더라고요. 많이들 놀라합니다. 일하는 것도 힘든데, 기부 하는게 납득이 안된다는 분들도 있어요. 그럼 당신도 해봐라, 그럼 마음 자체가 달라질꺼다고 오히려 제가 권유합니다. 제 인생은 기부 이후 달라졌어요.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기부에 대해 자녀분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전혀요. 흔쾌히 아버지 뜻대로 하라고 했어요. 딸 역시 오랜 기간 동안 매달 10만원씩 국제구호단체에 후원하고 있습니다. 딸의 모습을 보고 저도 처음 기부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자식들이 모두 건강하니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으면 했지요. 제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장사 지낼 장례비만 남기고 깨끗하게 마무리짓고 떠날 작정입니다.

유산 기부에 동참한 정봉호 씨/사진=인터뷰365

-가족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자녀로는 1남 1녀가 있습니다. 딸(40)은 결혼했고, 현재 미혼인 아들(42)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32년전에 병으로 아내를 먼저 보내고 30여년간 홀로 둘을 키웠지요. 아내와 함께 살 때는 몰랐는데, 아내가 떠나고 나니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아내도 살아있었다면 내게 기부 잘했다고 했을 겁니다. 너무 착했거든요. 저도 착하게 살면 천국에서 아내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동안 살아오신 삶이 궁금합니다.

1947년 대구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시절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문경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지요. 문경에서 오래 살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께서 33세의 젊은 나이로 일찍 돌아가셨어요. 살아 생전엔 초등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하셨던 분이셨는데, 중국 만주에서도 교포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셨던 훌륭한 분이셨죠.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어머니가 홀로 8남매를 키우셨죠. 어머니 혼자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가정 형편이 안좋아 학교도 힘들게 마쳤습니다. 고교 졸업 후 바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청소부도 해봤고, 기관차 선로 조차 관리원, 책 출판사 영업, 가방도 만들었어요.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 중동 지역에서 건설 근로자로 일하기도 하고. 힘들었지만 열심히 살았습니다. 몸으로 뛰어서 번 돈이라서 더 보람을 느낍니다.

유산 기부에 동참한 정봉호 씨. 정 씨는 "기부 후 감사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세 단어가 제 일상 용어가 됐다"고 말했다./인터뷰365

기부로 삶 달라져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한푼 두푼 더 모아 꺼져가는 삶의 등불 되고파

-이젠 일터에서 떠나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고 싶지는 않으신지요. 

지금까지 쉬어본 적은 사우디아라비아 다녀온 후 딱 일주일이예요. 아무것도 안하면 지루해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하하. 집에 못있어요. 쉬는 날엔 시장에 가거나 산에 가요. 열심히 살고 있는 시장 사람들을 보면서 인생공부도 하고요. 일하는게 즐겁습니다. 경비일을 은퇴하게 된다면 또 제게 적합한 일을 찾아 나서야죠.

-굉장히 정정해 보이십니다. 건강 비결이 있다면요.

아직까지 뛰고 운동을 합니다. 40kg시멘트 포대도 번쩍 들어요. 그 모습을 보고 "개미허리인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냐"고 놀라해요. 건강이 가장 큰 행복이죠.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겁니다. 

-기부 이후 달라진 변화가 있다면요.    

기부를 한 이후로 매사가 다 바뀌었죠. 일하는 것도 즐겁고요. 이전에는 기분에 따라 살았어요. 성질도 많이 냈는데, 기부 이후엔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더라고요. 매일 스스로 잘못한게 있나 다시금 돌아봅니다. 감사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세 단어도 제 일상 용어가 됐어요. 이런 단어들을 언제 쓸까 싶었는데, 참 쓸 때가 많더라고요. 늘 티끌만한 것이라도 감사하고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소망을 말씀해주세요.

착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돈으로 인해 세상이 너무 각박해졌어요. 제가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한푼 두푼 더 모아서 세상의 꺼져가는 생명들에게 삶의 등불을 비춰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아야죠.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interview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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