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50~60년대의 라이벌 김진규와 최무룡의 공연(43)
[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50~60년대의 라이벌 김진규와 최무룡의 공연(43)
  • 정종화 영화연구가
  • 승인 2019.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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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명작 '오발탄'에서 형제로 함께 호흡
-6·25 전쟁을 고발한 '비극은 없다' 등 12편을 공연 
-동지에서 라이벌로 가족사도 비슷한 영화패밀리
-제작 감독, 배우를 섭렵한 불멸의 스타 

 

라이벌 스타이자 동료였던 김진규와 최무룡이 출연한 불후의 예술 영화 '오발탄'/사진=정종화 제공<br>
라이벌 스타이자 동료였던 김진규와 최무룡이 출연한 불후의 예술 영화 '오발탄'/사진=정종화 제공

[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100주년을 맞은 한국 영화 역사상 김진규와 최무룡은 불꽃 튀는 대결을 벌인 스크린 라이벌이다. 1961년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에서 형제로 열연한 두 사람은 해방 후 최고 작품을 함께 출연하며 빛나는 위업을 남겼다.

김진규는 최무룡보다 5살 많은 1923년생이었으나 영화 데뷔는 1년 늦은 1955년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의 반공영화였다. 1928년인 최무룡의 첫 출연작은 최초 간첩 영화인 이만흥 감독의 '탁류'(1954)였지만, 늘 데뷔작을 1955년 김기영 감독과 부인 강효실이 전진희란 예명으로 출연한 '주검의 상자'를 꼽았다. 그러니 두 사람은 같은 해에 출발한 셈이기도 하다.

두 스타는 라이벌로 양분되어 김진규는 '처녀별'과 '옥단춘'등 시대물에 출연하며 인기를 쌓았으며 최무룡은 '유전의 애수'와 '그 여자의 일생'과 같은 현대물로 팬을 확보하면서 한국 영화계 양대 산맥을 이뤘다. 

영화 '피아골'(1955)에서 빨치산 대원으로 출연한 허장강과 김진규/사진=정종화
영화 '피아골'(1955)에서 빨치산 대원으로 출연한 허장강과 김진규(사진 오른쪽). 김진규의 데뷔작이다./사진=정종화 제공
최무룡의 데뷔작이었던 이만흥 감독의 '탁류'(1954) /사진=정종화 제공

그러던 중 1958년 홍성기 감독의 '비극은 없다'에서 김진규와 최무룡은 6·25전쟁이 터진 서울에서 부산까지 피난 상황에서 여대생 김지미를 놓고 어쩔 수 없는 삼각관계가 되는 숙명의 대결을 펼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라이벌에서 함께 공연한 인기의 여세를 몰아 홍성기 감독은 두 사람을 '청춘극장'을 비롯해 '자나 깨나', '재생'은 물론, 1961년 김지미 주연의 '춘향전' 실패를 만회키 위해 '에밀레종'에 함께 출연시키며 대대적인 제작비로 승부를 걸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1962년 '연산군'으로 신영균이 합세해 이른바 '트로이카 남배우'로 삼분될 때까지 김진규와 최무룡은 '이국정원', '청춘의 윤리', '여인숙', '심야의 블루스', '하늘과 땅 사이에', '낙동강 7백리'까지 12여 편을 공연했다. 동지와 라이벌로 동행했던 이들은 불후의 예술 영화 '오발탄'을 탄생시켰다.

라이벌 스타 김진규와 최무룡이 출연했던 홍성기 감독의 '비극은 없다, '청춘극장'
라이벌 스타 김진규와 최무룡이 공연한 홍성기 감독의 '비극은 없다', '청춘극장' 포스터/사진=정종화 제공

아이로니컬 하게도 이들 모두 연기자에서 감독으로 메가폰을 잡았는데, 최무룡은 1965년 '피어린 구월산'을 시작으로 배우로는 가장 많은 17편을 내놓은 반면, 김진규는 1967년 김용익 원작 '종자돈' 1편 만을 레디 고우 한 후 감독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우리 영화 100년 사를 화려하게 수놓으며 1980년대까지 35년을 스크린의 호적수로 공생한 두 사람은 가족사까지 얼비슷하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도 많다.

김진규는 여배우 이민자, 김보애와 부부의 연을 맺었고, 최무룡도 강효실과 김지미가 아니었던가. 하늘나라 별이 된 것은 김진규가 1998년이었으며 최무룡은 1999년이었다. '시네마 천국'엔 5년 앞서 태어난 김진규가 먼저였다.
 

정종화 영화연구가

60여 년간 한국영화와 국내 상영된 외국영화 관련 작품 및 인물자료를 최다 보유한 독보적인 영화자료 수집가이면서 영화연구가 겸 영화칼럼니스트. 196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부터 제작된 영화의 제작배경과 배우와 감독 등 인물들의 활동이력에 해박해 ‘걸어 다니는 영화 백과사전’이라는 별칭이 따름. 인터넷과 영상자료 문화가 없던 시절부터 모은 포스터와 사진, 인쇄물 등 보유한 자료 8만여 점을 최초의 한국영화 ‘의리적 구투’가 상영된 단성사에 설립중인 영화 역사관에 전시,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일인 2019년 10월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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