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1960년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는 신성일 청춘스타의 데뷔작이다. 부부(배우 김승호·주증녀)를 중심으로 5남매와 사위를 둘러싼 단란한 가족이 엮어낸 홈 드라마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가장, 김승호를 비롯해 전형적인 한국의 주부상으로 주증녀가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큰딸 역의 최은희를 비롯, 남궁원, 도금봉, '신출내기' 신성일과 연기자 3년 선배 엄앵란 등이 보통 사람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며 59년 전 오늘의 핵가족 시대를 예견해(?) 크나큰 경종을 울려준 영화로 극찬하고 싶다. 

온 가족이 장남(남궁원)의 시나리오를 저마다의 해석으로 풀이하는데, 엄마(주증녀)는 '춘향전'으로 스토리를 엮어간다. 큰딸( 최은희)은 춘향으로, 사위(김진규)는 이도령으로 분하고 자신은 월매로 등장해 서울로 떠나는 이몽룡을 다그치는 희화적인 신은 이듬해 '성춘향'을 예고하는 시그널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기상청에 다니는 사위와 '비가 오느냐! 안 오느냐!'를 놓고 한바탕 시시비비 촌극을 벌이는 장면이라던가, 헌 구두를 둘러싸고 형(남궁원)과 동생(신성일)이 벌이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식의 논쟁은 참으로 기발한 이 영화의 백미다.

보험회사에 감원 바람이 몰아치고, 나이 많은 '로맨스 빠빠' 김승호는 실직을 당하고 생계를 걱정한다. 그는 가족들에게 말조차 못 하고 매일같이 파고다공원(탑골공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김승호의 연기는 그야말로 독일의 명배우 에밀 야닝스를 떠오르게 한다. 월급날이 되자 시계방에 가서 애지중지 하던 회중 시계를 잡히고 그 돈으로 월급 인양 가장해 내놓는 장면은 눈시울을 적신다. 아버지의 시계줄에 시계가 없어진 것을 안 가족들은 아빠가 실직당한 것을 알지만 일부러 모른 척하고 오히려 용기를 북돋워준다.

한 달 후 '로맨스 빠빠' 김승호가 집에 돌아오는 날, 모든 가족이 따뜻하게 환영한다. 바로 생일날이었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생일을 축하하며 "해피 버스데이"를 합창하고 사위가 장인에게 선물을 드린다. 선물을 뜯어보라는 가족의 성화에 김승호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풀어보는 순간 감격에 벅차오른다. 바로 그 속에는 시계방에 맡긴 회중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가정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준 감동의 영화이자 민족 배우 신성일이 스크린에 데뷔한 영화임을 잊지 못해 서거 1주기에 회억(回憶)해 본다.

정종화 영화연구가

interview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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