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총알이 뇌를 관통하는 찰나의 과거 여행, 연극 '중첩'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총알이 뇌를 관통하는 찰나의 과거 여행, 연극 '중첩'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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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적 상상력 돋보인 이우천 작·연출
연극 '중첩' 포스터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뭐 이런 개같은 인생이 있어!!” 이우천 작 연출의 연극 '중첩'을 한국생활연극협회 회원 20여명과 함께 보면서 연극의 상상력에 대해 다시 한번 신선한 충격을 맛보았다.

연극 '중첩'(5월 17 ~26일 SH아트홀)은 6월 2일까지 대학로 일원에서 진행 중인 '제40회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 10편 중 한 작품이다.

일상에 지치고 불행한 삶의 무게를 견디다 못한 현대의 한 남자가 권총 자살을 시도한다.

프로그램 글을 인용하자면, 이 연극은 총알이 남자의 머리를 관통하는 찰나의 순간에 시간과 공간,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비현실이 중첩되는 잔상들을 상징과 은유, 이미지와 판타지의 혼재와 양립 등 다양한 조합을 통해 ‘연극만의 매력’을 추구한 작품이다.

이 연극을 보면서 필자의 경우 '73세를 대과 없이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뭐 그리 순탄치 만도 않았다. 상사에게 사표도 던져보고 이혼도 생각해본 적도 있으나 그냥 여기까지 흘러왔으니 내 팔자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우여곡절이 많았다. 신문 사설 내용을 문제 삼아 검사 12명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3억씩 총 36억원 소송을 제기했고, 지상파 토론 프로가 공정치 못했다고 비판했다가 30억 손배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래도 필자의 경우 대법원에서 언론자유가 우선한다는 승소판결로 명예가 회복됐고 그 뒤의 민형사 건도 합의가 이루어져 원만히 해결됐다.

그런데 이 연극의 주인공 남자(한덕호)는 재수가 '옴 붙었다'. 아들 화장하는 현장에서 와이프와 통화한 후 집에 가보니 아내가 목을 매고 죽어 쌍초상을 치러야 했다. 중학교 때 진실하게 만난 누나 또한 이 남자의 욕정으로 인해 목을 매 죽는다.

엄혹한 시절에 대학에서 민주화 투쟁을 하던 이 남자는 첫 사랑 연인 때문에 조직의 주범을 불고 살아나지만 군대로 떠밀린다. 거기서도 고문관 노릇을 하던 사내는 전장에서 뒷걸음 치다가 쌩고생을 한다.

일상에 찌들어 출근 하던 남자는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은 충동으로 차를 돌려 운전하다가 대형사고로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장면은 급변해 남자는 식인종들이 사는 원시사회에 내동댕이쳐진다. 거기서도 이 남자는 원시인들로부터 종족 번성의 도구가 될 뻔 하다가 마녀같은 할멈을 만나 만사는 때대로 간다는 장황한 훈시를 듣는다.

사내는 가족과의 단란한 행복을 꿈꾸지만 이 연극은 모든 일들이 총알이 뇌리를 스치는 찰나에 일어난 파노라마라는 것을 알고 관객은 머리가 띵해지는 충격과 함께 연극만의 매력에 빠져든다.

연극 '중첩'의 이우천 연출가/사진=서울연극제

'중첩'은 직접 쓰고 연출하는 대학로의 중견 이우천이 연극만이 가능한 상상력을 무대에 펼쳐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재미도 있었다.

누가 보아도 현실 같은 환상이, 환상 같은 현실이 작가 특유의 전개 방식대로 얼키고 설킨다. 현대에서 전개되던 연극은 일순 곤두박질 쳐 원시시대로 회귀한다.

왜 갑자기 원시인들이 우르르 나와 소동을 피우는가가 궁금했는데 주인공 남자가 악몽을 꾼 설정임을 나중에 알았다. 피곤하고 스트레스 많을 때 이상한 꿈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그렇게 현실과 상상이 중첩되는 지점에 작가는 주목했다. 그래서 제목이 '중첩'이다. 시간과 공간이, 의식과 무의식이, 현실과 비현실이 포개지면서 작가는 우리 현대사의 무게에 짓눌린 한 남자의 삶을 굵은 선으로 투영시키고 있다.

무거운 주제를 번득이는 상상력과 연극 특유의 메소드로 풀어낸 이우천의 재능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연극은 볼만한 가치가 있다. 열악한 현실에서 18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경연에 뽑혀 몹신까지 서슴지 않은 연출은 이우천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이 연극에서 가장 돋보인 배우는 주인공 남자 역을 맡은 한덕호이다. 그는 100분동안 시종 뛰고 구르며 벗고 입으며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현대인의 고독한 초상을 온몸으로 표출해 관객들의 연민과 박수를 받았다.

이상한 나라의 할멈으로 등장해 삶의 윤회를 설파한 김화영도 이 작품에서 독특한 아우라로 각인되었다.

연극이 경연 축제를 하는 것은 '중첩'처럼 새로운 주제와 형식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는데 있다고 한다면, 이우천 작 연출의 이 작품은 그처럼 "뭔가 새로움(Something New)"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평가할만 하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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