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사랑’과 ‘빛’을 낳은 도시의 전설...뮤지컬 '줄리 앤 폴'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사랑’과 ‘빛’을 낳은 도시의 전설...뮤지컬 '줄리 앤 폴'
  • 주하영
  • 승인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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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 선정작, 연우무대 다섯 번째 뮤지컬
뮤지컬 '줄리 앤 폴' 공연 장면./사진=(주)연우무대
뮤지컬 '줄리 앤 폴' 공연 장면. 2020년 뮤지컬 '줄리 앤 폴' 공연의 특징은 에펠탑에 대대로 살아 온 쥐 '나폴레옹 & 나폴레옹 7세(무대 중앙)' 역의 배우가 젠더프리 캐스팅으로 매 공연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에펠탑의 아랫부분을 본 딴 무대는 실제가 아닌 '동화 속 세상'에 가깝게 구현된다./사진=(주)연우무대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빛의 도시, 사랑과 낭만의 도시 파리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단연코 ‘에펠탑’일 것이다.

노을이 지는 에펠탑 아래에서 키스하는 연인들을 담은 사진은 쉽게 접할 수 있는 파리의 아름다움의 상징이며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파리에서 사랑을 꿈꾸도록 만드는 이미지이다. 파리는 언제부터 ‘사랑의 도시’, ‘빛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주장을 내세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바는 정치적‧사회적으로 격동기에 해당했던 유럽의 19세기를 지나면서 평화와 번영, 자유를 위해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온 많은 작가들과 예술가들, 인상주의 화가들로 인해 시작된 ‘벨에포크(Belle Epoque)’ 시대가 그 시작점이라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프랑스는 혁명의 중심지,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 예술의 중심지로 여겨졌고, 1920년대 ‘재즈 시대(Jazz Age)’를 이끌었던 스콧 피츠제럴드와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작가들을 통해 소설 속에 담겨진 파리의 삶에 대한 동경은 많은 사람들이 파리를 사랑과 연결시키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뮤지컬 '줄리 앤 폴' 캐릭터 컷/사진=(주)연우무대

20세기 이후 에펠탑을 배경으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도시의 야경과 에펠탑 아래 낭만적인 연인들의 모습은 ‘빛과 사랑의 도시’라는 파리의 타이틀을 강화시키는 것들로 작용했다. 영화들은 6~7층 높이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규제하는 도시의 방침으로 인해 323m(건물 81층 높이)의 에펠탑이 상징적으로 강조되는 파리의 스카이라인을 멋지게 영상에 담아낼 수 있었다.

이처럼 현재에는 파리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에펠탑이 착공되고 완성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비난과 장애에 직면해야 했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도시경관을 헤치는 “흉물스러운 철기둥”이라든가, “세우다 만 공장 파이프”, “우스꽝스러운 가느다란 뼈대”라는 힐난에 시달렸던 에펠탑은 완공 후에도 기 드 모파상과 같은 소설가가 에펠탑을 보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에펠탑 안이기 때문에 그 곳에서 식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황당한 일화를 낳았다.

2015년 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 리딩 공모에 당선되고, 2017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되어, 2019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로 선정된 뮤지컬 ‘줄리 앤 폴’이 2020년 1월~3월 대학로 드림아트센터를 통해 소개됐다.

연우무대의 다섯 번째 창작 뮤지컬 작품인 ‘줄리 앤 폴’은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건축을 배경으로 실수로 자석을 삼켜 심장이 자석으로 변하는 병에 걸린 자석 공장 직원 ‘줄리’와 사고로 인해 손을 잃고 철의 손을 가지게 된 서커스 공중 곡예사 ‘폴’과의 동화와 같은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줄리 앤 폴 티저 포스터/사진=(주)연우무대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 퍼커션, 아코디언 등 5인조 라이브밴드를 무대 위쪽에 구성해 풍성한 음악과 함께 관객들이 19세기 후반 파리 에펠탑 앞 마르스 광장에 온 듯 느끼도록 구현된 무대는 실제 파리의 모습보다는 놀이공원이나 서커스 공연장의 모습을 닮고 있다.

현실보다는 환상을 닮은 사랑, 장난감스러운 무대 공간,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의 쥐가 인간의 말을 하고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 숨겨진 이야기를 관광객들에게 전달하는 구성은 마치 ‘구연동화’와 같은 틀을 형성하게 된다.

막이 오르면, “냉철한 이성과 풍부한 감성을 지닌 보기 드문 시인이자 과학자이고 음악가이자 댄서이며 정복자”였다는 쥐 나폴레옹이 자신을 관객들에게 소개한다.

“종의 한계를 뛰어넘는 매력으로 파리 전체를 사로잡았다”는 쥐 나폴레옹은 객석을 향해 “프랑스 파리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기내식은 입에 맞으셨나요?”라고 묻는다.

1889년 파리에서 “흉측한 새장, 비쩍 마른 철사, 차가운 고철”이라 불렸던 곳이자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어디인지 맞춰볼 것을 요청하는 나폴레옹은 그 정답이 다름 아닌 ‘에펠탑’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의 증오와 멸시, 비난과 항의 속에서도 굳건히 건설된 300m가 넘는 높은 철탑, “증오의 고철 덩어리에서 사랑과 낭만의 상징”으로 변모한 에펠탑 뒤에 숨겨진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나폴레옹은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저의 할머니,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전해져 온 이야기, 조금은 이상하고 놀라운 이야기를 이제부터 시작합니다!”

뮤지컬 '줄리 앤 폴' 공연 장면./사진=(주)연우무대
뮤지컬 '줄리 앤 폴' 공연 장면. 실수로 자석을 삼킨 '줄리'에게 공장장은 자석값을 물어낼 것을 요구한다. 화려한 파리의 시내 모습 뒤에 감춰진 노동자들의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삶은 자석 공장에서의 '일화'를 통해 드러난다./사진=(주)연우무대

19세기 후반 유럽의 심장이라 불리던 ‘파리’로 예술가들이 몰려들던 벨에포크 시대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자석 공장에서는 매일 반복적으로 둔탁한 기계소리에 맞춰 자석을 골라내는 직원들의 손이 분주하다. “내 손인지 네 손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바쁜 직원들은 점심시간에 주어지는 잠깐의 휴식시간을 기대하며 오늘도 바쁜 일과를 지속한다.

하지만 형편없는 생산량에 불만을 표시하는 공장장은 “월급을 줄 수 없을 정도”의 위급한 상황이라면서 점심시간을 아예 없애버리겠다고 발표한다.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밥을 먹으라는 공장장의 요구에 반복되는 작업을 무리하게 계속하던 줄리는 그만 실수로 샌드위치가 아닌 자석을 삼켜버리고 만다. 소동이 난 직원들 사이로 등장한 공장장이 줄리에게 말한다.

“그게 얼마짜리인 줄 알아? 자석값은 월급에서 제하겠다. 이의 없지?”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시와 그림, 패션을 중시하는 예술가들의 도시, 물랑루즈(Moulin Rouge)의 춤과 노래, 화려한 쇼를 언급하는 뮤지컬 ‘줄리 앤 폴’은 성장과 이윤만을 목표로 하는 산업사회 도시 파리의 이면을 겨냥한 일화들을 통해 코믹한 웃음과 동시에 씁쓸한 비난을 남긴다.

매주 서커스 관람으로 위안을 얻는 줄리는 우연히 고소공포증에 걸린 공중곡예사 폴과 마주치게 된다. ’한 때 파리를 주름잡았던’ 곡예사 폴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은퇴해야 할 위기에 처해있다.

오랜 경쟁자인 ‘장’의 비아냥거림에 반격할 수 없는 폴은 ’하늘 위의 구름’이 되어 자유로운 바람에 떠다니고 싶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구름들도 언젠가 비가 되어 내리지, 땅 위의 곡예사”라고 노래한다.

이 때 서커스에 늦어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줄리가 갑자기 가슴의 통증을 느끼며 쓰러지고, 그녀를 향해 다가간 폴의 철로 된 손이 그녀의 가슴에 달라붙는다.

깜짝 놀라 손을 떼어낸 폴 앞에 줄리가 깨어난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이 “쾅 하고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면서 심장이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철컹거리다 멈추려는 순간 돌아가신 할머니가 알려준 주문을 외웠다고 말한다.

“에펠르, 라펠르, 디펠르, 아무르!”라는 마법의 주문은 “두려움을 이겨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임을 확신하도록 만드는 용기를 불어넣는 주문이다. 줄리는 자신의 심장이 계속 두근거리며 ‘철의 손’을 가진 폴을 향해 끌리는 것이 ‘사랑’의 감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뮤지컬 '줄리 앤 폴' 공연 장면./사진=(주)연우무대
뮤지컬 '줄리 앤 폴' 공연 장면. 고소공포증에 걸린 공중곡예사 '폴'은 전속력으로 달리다 갑자기 쓰러진 여인 '줄리'를 발견한다. '철'로 된 그의 손은 자석을 삼킨 줄리의 '심장'에 가 철커덕 달라붙고 깜짝 놀란 폴은 당황하여 손을 떼어내려 한다./사진=(주)연우무대

에펠탑을 둘러싼 동화와 같은 사랑 이야기는 2015년 1월 출간된 알리스 브리에르-아케의 그림 동화 ‘마담 에펠: 에펠탑의 사랑 이야기’로 인해 유럽과 미국에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2015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으로 선정된 ‘마담 에펠’은 성공한 삶을 영위하던 행복한 엔지니어 에펠이 어느 날 갑자기 시름시름 앓게 된 사랑하는 아내 캐시를 위해 “눈 깜짝할 사이에 구름에 닿을 수 있는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탑을 세우게 되었다는 상상의 이야기를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쎄실의 미니멀한 그림과 함께 펼쳐낸다.

전 세계를 남편과 함께 거침없이 여행할 정도로 생명력과 에너지가 충만했던 아내는 점점 창백해지고 마른 몸이 되지만 의사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에펠은 아내의 건강을 되찾아주기 위해 밤낮으로 탑 건설에 몰두하고, 탑이 완성되자마자 아픈 아내를 품에 안고 단숨에 탑 꼭대기에 오른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아내를 탑 꼭대기에 내려놓은 에펠은 마르스 광장과 세느강, 회전목마와 파리 시내의 지붕들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아내의 뺨에 생기를 되찾도록 만든다.

실제로 에펠탑의 건축가인 구스타브 에펠은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아내 마거리트의 건강을 염려하는 일이 잦았고, 1877년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쓰러진 아내가 죽음에 이른 뒤 다시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에펠의 나이는 45세, 아내 마거리트의 나이는 32세였다.

1889년 파리세계박람회를 기념하는 건축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언급된 것이 1884년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동화 속 에펠의 사랑 이야기는 철저히 작가의 상상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지만 마지막 문장만큼은 긴 여운을 남긴다.

작가는 이렇게 덧붙인다.

“누가 알겠어요? 그들은 여전히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죠. 소문에 의하면 때때로 밤이면 파리의 가로등이 드리우는 그림자 속에서 그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뮤지컬 '줄리 앤 폴' 공연 장면./사진=(주)연우무대
뮤지컬 '줄리 앤 폴' 공연 장면. 우리에 갇힌 외로운 사자를 바라보며 무심코 '위로'를 건네려 손을 뻗었다가 '철의 손'을 갖게 된 곡예사 '폴'은 자신의 철로 된 손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줄리'를 바라보며 사랑에 빠진다. /사진=(주)연우무대

뮤지컬 ‘줄리 앤 폴’은 이와 유사하게 파리의 에펠탑의 조명 아래 많은 연인들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은 자석을 삼킨 여자 줄리와 철의 손을 가진 남자 폴의 ‘간절한 사랑 이야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서커스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사자가 너무 외로워 보인 나머지 무심코 손을 내밀었다가 철로 된 의수를 갖게 되었다는 폴에게 줄리는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을 손을 갖게 되었네요”라고 말한다.

차가운 철의 손을 감싸는 줄리의 따스한 온기를 느낀 폴은 그녀를 향한 사랑을 인식한다. 하지만 또 다시 쓰러진 줄리는 의사에게 자석을 삼킨 후부터 심장의 자성화가 진행되어 왔으며, 철과 닿는 일은 심장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진단을 듣게 된다.

폴은 자신으로 인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줄리를 지키기 위해 그녀의 곁을 떠나지만 줄리에게는 자석으로 변해가는 심장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상황들이 계속 발생한다.

급기야 심장 수술비 1만 프랑을 마련하기 위해 철을 끌어당기는 서커스 쇼를 하려는 줄리를 말려야겠다고 생각한 나폴레옹은 프랑스 곳곳에 살고 있는 쥐들을 동원해 폴의 거처를 수소문하기 시작한다. 나폴레옹의 편지를 받은 폴은 파리로 되돌아 와 줄리의 서커스 쇼를 막고,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위험한 고층 에펠탑 공사를 하기로 결심한다.

고소공포증을 앓고 있는 폴은 사랑하는 줄리의 목숨을 구원하기 위해 고층 탑에 올라 자신의 목숨을 위험에 빠트리는 위기에 처한다. 안전장치도 없이 높은 곳에서 두려움에 떨던 폴은 줄리의 할머니가 알려주었다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주문을 기억해 낸다. 마법의 주문은 폴에게 하늘에 닿고 싶어 했던 어릴 적 꿈과 자유로움을 향한 상상을 떠올리도록 만들고 폴은 사랑을 위해 모든 두려움을 극복한다.

뮤지컬 '줄리 앤 폴' 공연 장면./사진=(주)연우무대
뮤지컬 '줄리 앤 폴' 공연 장면. 한 번도 제대로 '춤'을 춰 본 적이 없다는 '줄리'에게 춤을 가르쳐 주는 곡예사 '폴'. 두 사람은 언젠가 화려한 쇼를 자랑하는 '물랑루즈'에 함께 갈 것을 약속한다./사진=(주)연우무대

뮤지컬 ‘줄리 앤 폴’은 줄리와 폴이라는 두 주인공의 동화와 같은 사랑 이야기라는 배경에 에펠탑 건축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사회적 갈등과 파리 예술가 협회의 극렬한 반대, 27개월이라는 촉박한 공사기간 동안 있었던 인부들의 파업과 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허구화해 적절하게 조합한다.

또한, “선거를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외치는 정치인의 검은 욕망을 드러내는 ‘파리 시장’과 “촌뜨기”를 경멸하며 우월감에 도취되어 앞을 보지 못하는 편협한 시선의 ‘예술가 대표’,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위험과는 상관없이 이윤만 추구하는 장사꾼 ‘공장장’과 서커스 단장 ‘장’과 같은 인물들을 통해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을 코믹하게 접목한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함과 동시에 프랑스 기술 산업의 위상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한 목적을 지녔던 에펠탑 건설은 사실상 또 한 번 시장에 당선되기 위한 파리 시장의 “정치적 쇼”로서 추진된다.

“세느강의 대운하 건설”이나 “19세기 신 베르사유 스타일의 시청 건설”을 언급하는 시장은 환경 시민단체의 반발과 세금 부담으로 인해 시민들의 반발을 사게 될 것이라는 청사 직원들의 제지에 분노를 드러낸다.

이에 직원들은 1851년 런던세계박람회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위엄과 화려함을 드러냈던 “가로로 길게 지은” 수정궁(Crystal Palace) 대신 파리의 위상을 상징하고 시장의 인기 또한 더욱 높아질 수 있도록 “세로로 길게” 탑을 지을 것을 제안한다.

“높아지는 인기”라는 말에 매혹된 시장은 무조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을 건설할 것을 주장하고, 결국 300m가 넘는 탑을 건설할 수 있는 소재로는 ‘철’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뮤지컬 '줄리 앤 폴' 공연 장면./사진=(주)연우무대
뮤지컬 '줄리 앤 폴' 공연 장면. 또 한 번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 화려한 "정치적 쇼"를 벌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파리 시장'은 청사 직원들로 하여금 세계의 주목을 받을만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을 것을 요구한다. /사진=(주)연우무대

뮤지컬 ‘줄리 앤 폴’은 실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소송과 질타, 모진 비난과 방해공작, 엄청난 자산의 투자와 끝없는 타협으로 비로소 300m에 달하는 철탑 건설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이라는 인물을 언급하지 않는 대신 파리 시장의 ‘정치적 욕망’이라는 설정을 더한다.

1887년 착공 시작 3주 만에 프랑스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들 47명이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한 달 만에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가 주축이 된 ‘300명의 예술위원회(Committee of Three Hundred)’가 탄원서를 제출한 역사는 “섬세한 예술혼을 갉아먹는 야만적인 탑의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절대적인 투쟁”을 계속할 것을 외치는 예술가 대표의 ‘오만한 태도’를 강조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예술가 대표는 “기술과 진보, 성취와 발전”을 과시하려는 파리 시장을 미적 감각과 공감 능력이 결여된 “욕심 많은 정치인”이라고 비난한다.

한편, 파리 시장은 낭만적인 풍경만을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하는 예술가들이 산업과 기술이 중심이 되는 “철의 시대”임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잘난 척만 하고 목소리만 높여댄다”고 비난한다.

에펠탑이 완성되고 전야제를 위해 폭죽이 터지는 속에서 줄리는 심장 수술을 받지만 이미 자석으로 변해버린 심장을 구원할 길이 없음을 알게 된다.

전 세계의 시선이 파리에 모이는 세계박람회 개막식 날 철탑의 철거와 시장 사퇴를 주장하며 물감을 퍼붓겠다는 예술가 대표와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예술가들의 저항을 몰아내겠다고 대립각을 세우는 파리 시장의 갈등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간다.

이 때 폴의 손으로 완성된 에펠탑의 꼭대기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찬란한 빛이 파리 시내를 온통 뒤덮는다.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던 사람들은 갑자기 “주뗌므(Je t'aime)”를 외치며 사랑의 눈길로 서로를 바라본다.

뮤지컬 '줄리 앤 폴' 공연 장면./사진=(주)연우무대
뮤지컬 '줄리 앤 폴' 공연 장면. 심장의 계속되는 자석화 과정을 가능한 늦추기 위해 '철'로 된 것은 무엇이든 피해야 하는 '줄리'를 보호하려는 '폴'은 그녀의 곁을 떠날 것을 결심한다. /사진=(주)연우무대

“에펠르, 라펠르, 디펠르, 아무르!”라는 주문은 세상을 사랑으로 충만하게 만들고, 에펠탑 꼭대기에 마주 선 줄리와 폴 두 사람은 “철과 자석”처럼 강렬하게 서로를 당기는 사랑으로 함께 춤을 추지만 결국 비극에 이른다. 그들의 사랑은 슬픔과 아픔을 남기지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의 마법’이라는 전설을 남긴다.

사람들이 에펠탑을 바라보며 ‘사랑’을 꿈꾸는 것은 끝없이 복제되어 온 에펠탑이 가진 ‘꿈’이라는 이미지와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온 ‘사랑’의 은유가 이미 ‘에펠탑’이라는 기호 속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터 파리가 ‘사랑의 도시’라 불리게 된 것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랑’이라는 기호가 살아있는 한 우리는 해질녘이 되면 노을 속에 길게 드리워진 에펠탑의 그림자 속에 함께 앉아있을지 모를 줄리와 폴, 캐시와 에펠의 흔적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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