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인터뷰] '기생충' 봉준호 감독이 말한 이선균-조여정 소파신의 의미
[365인터뷰] '기생충' 봉준호 감독이 말한 이선균-조여정 소파신의 의미
  • 김리선 기자
  • 승인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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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연출작 '기생충'으로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황금종려상 수상 쾌거

-'기생충' 이선균-조여정의 소파신 "타인의 사생활을 목도하는 흐름의 정점"  

-예술인 집안...영화인의 삶,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화가였던 아버지의 영향 받아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서 최우수작품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2019년은 봉준호 감독 뿐 아니라, 한국 영화사에 의미있는 해로 기억될 것 같다. 

한국 영화 100주년이자 그의 장편 영화 데뷔 20주년을 맞은 올해, 봉 감독은 그의 일곱 번째 연출작 '기생충'으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다.

'플란다스의 개'(2000)를 시작으로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에 이르기까지 기존 장르의 틀에 갇히지 않고 허를 찌르는 상상력을 선보여온 그가 내놓은 '기생충'은 '봉준호 장르'의 최정점이라고 할 만큼 봉준호다운, 봉준호스런 영화다.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가족희비극으로, 극과 극의 삶의 조건을 가진 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어설픈 의도'와 '몇 번의 우연들'이 겹치며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빠져드는 두 가족의 운명은 공생(共生)을 꿈꾸는 것 자체가 점차 공상(空想)이 되어가는 현대 사회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지난달 30일, 영화 개봉 당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365>와 만난 봉준호 감독은 재치가 넘쳤고 유쾌했다. 그는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실제 반응이 궁금하다며 "극장 '잠행'에 나서겠다"고 웃었다. 

봉준호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 우선 황금종려상 수상을 축하한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 영화 역사상 큰 획을 그었다.  

공교롭게도 올해가 100주년이더라. 폐막식 리셉션 파티때 이냐리투 심사위원장과 얘기를 하다가 "올해가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은 해"라고 말하니까 굉장히 놀라하시더라.(웃음)

-수상 직후 '기생충'의 배우 송강호와 함께 무대에 올라 그에게 마이크를 건네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20년 우정도 있겠지만, 배우나 스태프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상을 받게 된다면 당연히 함께 올라가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함께 무대로 가자고 했더니 쑥스러워하더라. 함께 무대에 올라가서도 (송)강호 형님을 뒤에 있게 할 수 없었다. 이 위대한 배우가 병풍이 되면 안 되니까. 원래 카메라 뒤에 있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내가 뒤로 가야지 않겠나. 또 강호 형님의 소감도 들어보고 싶었고. 

그동안 시상식을 보면 감독이 배우나 프로듀서와 함께 무대에 올라간 사례가 많다. 친분이 있는 프랑스의 로랑 캉테 감독은 2008년 '클래스'란 영화로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당시 수십 명의 고교생 배우들과 함께 무대 위에 함께 오른 적도 있다. 

홍경표 촬영 감독 등 시상식에 함께 올라가고 싶은 스태프들도 많았다. 홍경표 촬영 감독은 '마더'때부터 10년 넘게 저와 3-4편의 영화를 함께 해왔다. 시상식 당일날 작품 준비로 태국에 머무르면서 인터넷으로 봤다고 축하해줬다. 또 이하준 미술감독, 최세연(의상), 김서영(분장) 씨 등 아티스트들에게도 고마웠다.  

영화 '기생충'으로 한국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 종려상의 영예를 안은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사진=CJ엔터테인먼트<br>
영화 '기생충'으로 한국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 종려상의 영예를 안은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사진=CJ엔터테인먼트 

-황금종려상 수상 직후 가진 포토타임에서 주연 배우 송강호를 향해 마치 프로포즈를 하듯 무릎을 꿇고 트로피를 바치는 퍼포먼스도 화제였다. 

제 몸이 동글동글해서 무릎 꿇는 자세가 잘 안 나왔더라. 날렵하게 딱 각이 잡혀야 했는데. 하하. 

-동료 감독들의 축하도 많이 받았나.

김지운 감독님은 마침 일 때문에 영화제 기간동안 프랑스에 머물고 계셨는데, 뒤풀이 축하 파티에 오셔서 축하해주셨다. 박찬욱 감독님도 서울에서 진행된 시사회 뒤풀이 행사 때 오셔서 축하해주셨는데, 칸에 가기 전에도 밥을 사주시면서 좋은 결과 있을 것 같다고 덕담을 많이 해주셨다. 감사할 따름이다.

-영화 '기생충' 촬영 당시 제작 스태프들과 표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근로시간을 준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훈훈함도 안겼다.

어느 샌가 저와 이 영화가 '표준 근로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더라. 이미 몇 년간 힘겹게 논의하신 분들이 있는데 우리가 마치 선구자적인 역학을 한 것처럼 보여서 참 민망하다. '왜 쟤네가 생색을 내지?' 이런 잘못된 오해를 받을 수 있을 수 있어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우리가 공헌한 건 하나도 없다. 이미 잘 짜여진 흐름에 동참만 했을 뿐이다. 다른 영화도 이미 그렇게 하고 있고.

72회 칸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 '옥자'가 2017년 제70회 칸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진출했지만, 극장과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간의 갈등으로 영화가 많이 부각되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수상이 남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옥자'때는 이상하게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많았다. 당시 상영 사고도 있었고, 초청을 받아서 갔더니 넷플릭스와 영화제 측이 이미 논쟁을 하고 있었다. 논쟁을 정리를 한 다음에 우리를 초청을 해야지(웃음), 발표해서 사람을 불러놓고 자기네끼리 싸우고 있으니 의아한 상황이었다. 2017년 칸 영화제에서 숱한 화제를 나으며 이슈몰이가 된 것 만으로도 난 만족한다.

당시 스트리밍 플랫폼에 대한 논란으로 영화 자체에 대해 차근차근 얘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이번 영화는 가장 클래식한 방식으로 만들었고 그런 상황이 없었던 점은 좋았다. 칸 폐막식 당일 아침에 프랑스 아트하우스 극장 연합에서 주는 상도 받았다. 본상은 아니지만 극장 연합에서 주는 상이라 내겐 상징적으로 느껴졌다.

-스트리밍 플랫폼 영화를 반대했던 극장측이 주는 상이라는 점에서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일부러 내게 준 건가, 격려하는 건가, 다시는 스트리밍 영화를 하지 말라고 나한테 주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들더라. 돌아온 걸 환영한다는 뜻인 것 같기도 하고. 하하. 

-칸 영화제에서 가진 시사회에서 8여 분간의 기립 박수를 받았는데. 시사회 후 뜨거운 반응과 호평에 황금종려상 수상 가능성이 높이 점쳐지기도 했다.  

이 영화 뿐 아니라 시사회가 끝나면 다들 기립 박수를 오랫동안 많이 쳐준다. 그렇지만 감동적이다. 영화에 대한 평을 떠나서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고생하면서 찍은 그 동안의 노고에 대한 박수라는 생각이 들더라.

시사회가 끝나고 생중계 카메라가 와서 저와 배우들을 계속 찍는데, 1분이 지나니까 더 이상 보여줄 만한 포즈가 없더라. 서구인들은 껴안기도 하고 볼도 부비며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데, 동양인들은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웃음) 2분, 3분 지나니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당시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각이고 레드 카펫을 내려가서 파티 장소도 가야하는데 배도 고팠다. 빨리 해산해야 할 것 같아서 "밤이 늦었으니 집에 가시라"고 말한거다. 하하. 

21일(현지시각) 오후 10시&nbsp;칸 국제영화제 메인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에서 공식 상영된 '기생충'은 상영 이후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다. 칸 영화제를 뜨겁게 달군 배우 이선균, 봉준호 감독, 송강호 등 영화 '기생충'의 주역들. /사진=CJ엔터테인먼트<br>
칸 국제영화제 메인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에서 공식 상영된 '기생충'은 상영 이후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다. 칸 영화제를 뜨겁게 달군 배우 이선균, 봉준호 감독, 송강호 등 영화 '기생충'의 주역들. /사진=CJ엔터테인먼트 

-당시 영상에 "배고프다"는 영어 자막도 봤다.(웃음)

배고프다고 말한 입모양이 찍혔나보더라. 누가 자막을 넣은 건지는 모르겠다.(웃음) 실제로 너무 배가 고팠다. 

-칸 영화제에서 영화가 첫 공개됐을 때 기분은.  

시사회 당시 영문 자막에 자꾸 눈이 가더라. 자막이 적절히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느라 배우들의 모습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사실 자막 작업에 공을 많이 들였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 부터 함께 자막 작업을 해온 달시 파켓과 함께 자막 작업을 했는데, 감독으로서 짚어줘야 할 부분들이 있다보니 모든 장면에 관여해 완성했다. 한국 시사회 당시엔 자막 없어서 오롯이 영화에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이선균-조여정의 소파신 "타인의 사생활을 목도하는 흐름의 정점"  

난장판, 취조 장면 즐겨..."이건 내 분야"

-이번 영화에서도 '난장판' 같은 소동극 분위기가 있다.

'카오스' 같은 혼동, 무질서의 상태의 느낌을 즐긴다. 찍을 때 흥분이 된다. "이건 내 분야다"라는 느낌이 든다. 난장판 같은 장면이나 취조 장면을 찍을 땐 온몸의 혈관이 좋은 느낌으로 확 역류하는 기분이랄까. 이 영화에서도 '짜파구리' 시퀀스처럼 많이 등장한다. 난장판, 깽판이 휘몰아칠 수 있는게 장르 영화 감독의 특권 아닐까 싶다. 

-극 중 이선균-조여정의 소파신은 강렬하면서도 파격스럽게 다가온다. 이 장면이 갖는 영화 속 의미가 궁금하다. 

'기생충'은 야함을 목표로 달려가는 영화가 아니다. 이 장면에선 부부의 각자 캐릭터가 드러난다. 여기에 성균 씨의 캐릭터가 하나 더 얹어지는 느낌이 좋았다. 극 중 성균 씨는 매너와 젠틀함으로 포장된 캐릭터지만, 사적인 공간에선 일부러 상스럽게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데, 둘의 그런 모습이 이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도 맞아 떨어진다.

이 영화는 타인의 사생활을 아주 근거리에서 신랄하게 목도하는 톤으로 진행된다. 마치 실내극 처럼 이 영화의 90%이상이 두 집에서 진행되는데, 집은 사적인 공간아닌가. 보통 우리가 타인들과 예의로서 유지하는 기본적인 거리가 있는데, 영화에선 그 거리가 무너진다. 카메라가 선을 많이 넘고 있다.

타인의 사생활을 부담스러울만큼 목도하는 전체적인 흐름의 정점에 있는 장면이 그 소파신이다. 그 최소한의 거리가 무너진 상태에서 서로 다른 계층 간에 절대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 이런 상황들과 맞물려 야한 듯 야하지 않은 듯하면서도 리얼한 부분이 긴장감을 안겨준다. 

선균 씨, 여정 씨와 상의를 많이 한 후 열심히 준비했다. 일단 부부로 등장하니 애매하게 헛헛한 신음소리만 넣지 말고 리얼하고 가감없이 촬영하자고 했다. 촬영 당시엔 시간을 많이 허비 안하고 비교적 순조롭게 찍었다. 

영화 '패러사이트'(기생충) 스틸컷/사진=CJ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속 냄새가 중요한 장치로 쓰인다. 냄새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이야기지만, 결국 더 넓게 보면 인간의 예의에 대한 이야기다. 그 예의에 대한 최후의 마지노선이 붕괴됐을 때 어떤 파국을 맞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봤을 때, 냄새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큼 무례한 것은 없더라.

'냄새'는 쉽게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지 않나. 부부 간에도 편하게 할 수 있는 얘기도 아닐 테고. 최소한의 거리가 무너진 상태에서 아주 기묘한 상황에 의해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서로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거리만큼 아주 가까운 거리에 놓이게 되는 데, 이 영화의 특이한 상황들이다. 냄새가 화면에 보이는 것처럼 찍고 싶었다. 결국은 배우들의 표정과 대사에 의해 전달되기 때문에 당연히 배우들에게 많이 의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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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제작 영상 캡쳐 

-영화는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함께 잘 산다'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살아야 공생이 될 수 있고 상생이 될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존엄 내지는 상대를 향한 최소한의 존중과 예의가 유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부분이 붕괴됐을 때 우리는 갑질이라고 표현하는 거고.

김기영 감독 마니아...영화 본 후 '광분상태'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화가였던 아버지의 영향 받아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떠올려지기도 했는데.

김기영(1919~1998) 감독님의 마니아였다. 1990년대 중반, 학교를 갓 졸업한 후 생활비도 없이 가난했던 시절, 당시 영화 속 기택네 집보다 훨씬 작은 아파트에서 살 때였다. 나름 영화학도라고 케이블 영화티비의 유료 채널을 시청했는데, 거기서 김기영 감독님의 영화를 모아서 방영했다.

'하녀', '충녀', '이어도', '육식동물' 등 그 분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몰아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영화를 본 후 나는 완전히 광분상태였다. 부자, 브루주아의 욕정과 욕망, 외부에서 뭔가 침투하는 그런 느낌이 강렬하게 다가오면서 역시 '마스터'구나 싶었다. 영화 '하녀'에서의 계단의 쓰임새, 당시 꼬마 아역배우였던 안성기 씨가 굴러 떨어지던 그 계단 장면도 인상 깊었다. 김 감독님이 살아계셨으면 꼭 이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하녀'와 '기생충'이 동시 상영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스토리의 설계나 미장센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술인 집안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동안 걸어온 영화인의 삶에도 가족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봉준호 감독의 할아버지는 소설가이자 시인인 박태원, 아버지는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화가였던 고 봉상균 전 영남대학교 미대 교수다.)

외할아버지는 마치 동화 속의 인물처럼 다가온다. 북한에서 돌아가셔서 실제로 뵌 적은 없다. 6.25 전쟁 통을 겪으며 외할아버지와 큰 이모는 북한에, 어머니와 다른 4남매는 남한에 살게 되면서 이산가족이 됐다. 고교시절에 '구인회'(九人會)에 대해 배우면서 외할아버지 성함이 나와서 신기했다. 이상 시인과 친하셨다더라. 제가 외탁했다고 하는데, 사진을 보면 저와 비슷하다.

저는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재작년에 돌아가셨지만, 늘 그림을 그리셨고 서가엔 그래픽 책이나 사진집 등 신기한 책들이 많았다. 1970년대 해외 출장이 흔치 않던 시절 외국에서 사 오신 책들인데,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많이 접했다. 나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5살 때부터 만화를 그렸다.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어렸을 때 샷을 직접 그렸다. 이번 '기생충' 역시 모든 스토리보드를 직접 그렸다. 출판사 측 요청으로 조만간 책으로도 출간할 예정이다.

-만화에 대한 관심이 영화에도 영향을 끼쳤나. '괴물', '옥자'에서 소녀의 모습은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떠올려지기도 한다.  

1980년대 TV시리즈 만화 '미래소년 코난'을 좋아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세계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만화에서 '라나'라는 캐릭터를 좋아했는데, 파괴력이 있고 파워풀하다. 중학교 1학년 때 매주 금요일 마다 방영되는 이 만화를 빠짐없이 챙겨볼 정도로 팬이었다. 어느 날은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한다고 결방을 한다기에 방송국에 엽서까지 보냈을 정도였다. 하하. 그림체나 스타일, 동작의 묘사나 패턴 등 연출력에 매혹 됐다. '라나'라는 캐릭터를 보면 '괴물'의 현서(고아성) 캐릭터와도 유사성이 있고, '옥자' 때 돌진하는 소녀의 모습에서도 떠올려진다. '괴물'의 하수구 신에서 단말머리한 고아성 양의 옆모습이 해외 포스터에 쓰였는데, 그 이미지를 보고 미야자키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향을 안 받았다고는 말할 순 없다.

또 1970년대 스튜디오 장인들을 찍은 존 슐레진저 감독의 '마라톤맨'(1978) 처럼 할리우드 영화도 굉장히 좋아했다. 어린 시절에 본 것들은 창작자들의 핏속에 많이 스며드는 것 같다. 대학 동아리나 영화인이 된 후에 보는 영화는 직업적인 시각이 투영되거나 공부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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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아버지께서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미술실장으로 근무하셨다고 하는데.

산업디자인을 하셨다. 1960년대 한국 영화 전성기 시절, 2-3년 정도 국립영화제작소에 계셨다.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 타이틀을 그리셨다. 꼬마 아역 배우 안성기가 실뜨기를 하고 있고 그 위에 '하녀'라고 타이틀이 내려오는데 그 작업을 하셨다. 오래 계시진 않았지만, 당시 영화인들을 많이 접하셨다고 하더라. 넓게 보면 영화인 생활을 잠시 하신 거다. 그래서인지 영화인들은 거칠 다면서 제게 영화 분야는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하하. 영화인들이 무섭게 느껴지셨나 보다. (웃음)

(그는 인터뷰 중 가방에서 태블릿PC를 꺼냈다. 그리곤 1961년 영화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와 함께 있는 20대 시절의 아버지사진을 보여줬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사진들을 찾아서 정리했다"고 말했다.)

-영화인의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땐 반대는 안하시던가. 

부모님 세대가 그러했듯, 월급이 나오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녀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정 하고 싶다면 월급을 주는 방송국에 가서 훌륭한 드라마를 찍으면 되지 않겠냐고 하시더라. 그러면 나는 한사코 영화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취직할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달으신 후엔 지지해주셨다. 1993년 대학에 복학해서 찍은 첫 단편 영화 '백색인'이 단편영화로서는 대작급이였는데, 당시 제작비 600만원이란 거금이 들어갔다. 아버지께서 잘 완성해보라며 제작비 일부를 지원해주셨다.

-아들의 영화를 많이 좋아하셨나.

마지막으로 보신 영화가 '설국열차'였다. 2016년 '옥자'를 찍고 귀국한 직후 아버지께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영화 개봉 전에 돌아가셨다. 영화 '기생충'과 '옥자'를 보여드리고 싶다. 절친한 한 프랑스 배급업체 대표가 '기생충'을 보고 난 후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헌사가 아니냐고 묻더라. 아들과 아버지가 멀리서 전등으로 깜빡깜빡 할 때 서로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나보더라. 나도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봉준호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은 장르의 변주가 돋보인다. 코미디, 스릴러, 공포, 휴먼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다양한 장르를 펼쳐보인다.  

장르를 구체적으로 설계하진 않았다. 자연스럽게 찍혀진 결과물이다. 영화는 사건과 인물을 따라간다. 실제 삶을 장르로 본다면,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뀔 것이다. 아침엔 직장 상사와 공포스런 상황을 보내고, 퇴근 후엔 멜로의 시간을 보낸다. 슬픈데 웃기기도 하고, 무서운 데 애잔하기도 하고 복합적인 감정도 들고. 24시간 동안 각종 상황과 맞닥뜨리면서 이 같이 다양한 감정들이 교차되는데, 오히려 한 가지 장르 톤만 지속된다면 더 이상하지 않겠나. 두 시간 내내 하나의 장르로만 이어진다거나 희로애락 중 하나의 톤으로만 흘러가면 더 어려울 것 같다.  

-'봉준호 장르'란 말도 나온다.  

'인디와이어'(IndieWire)란 미국 매체에서 "이 사람의 영화에 대해 어떤 장르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할 필요가 없다.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는 그 문구를 봤는데, 영화제 기간 통틀어 제일 기뻤던,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앞으로 제 영화를 설명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인용구가 생겨서 기분 좋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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