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인터뷰]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의 한국 정착기 "그녀의 나라 한국이 이젠 제2의 고향"
[365인터뷰]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의 한국 정착기 "그녀의 나라 한국이 이젠 제2의 고향"
  • 김리선 기자
  • 승인 201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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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알베르토 몬디, 2007년 '머나먼 이국땅' 한국 정착한지 12년째

-이탈리아 소도시에서 태어나 교환학생으로 떠난 중국행...사랑 찾아 다시 한국행

-잘나가던 직장인에서 방송인으로 전향하며 '제2의 인생' 시작

-작가로도 활약...한국 정착기 담은 여행 에세이 '널 보러 왔어' 출간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한 그는 중국 유학생활 중 만난 한국인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2007년 첫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에서 8여년간 직장인의 삶을 살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출연한 2014년 JTBC '비정상회담'을 계기로 방송인의 길을 걷고 있다. 최근엔 두 번째 책인 에세이 '널 보러 왔어'(틈새책방)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여정은 '도전'과 '모험'의 연속이었다./사진=씨즈온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한국어 잘하는 이탈리아인, 또는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2007년 첫 한국 땅을 밟은 뒤 12년째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알베르토 몬디(1984~)다. 

2014년 JTBC 프로그램 '비정상회담'(2014~2017)에서 유쾌하면서도 지적인 면모로 얼굴을 알린 그는 EBS '조식포함 아파트'(2018), JTBC '날보러와요'(2019), MBC 에브리원 '어서와~한국은 처음이지?'(2017~) 등에 출연하며 소위 '잘 나가는' 방송인으로 꼽힌다. 한국에서 이탈리아를 알리는 것은 물론, 이탈리아에서 한국 알리기에도 앞장서며 양국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주의 평화로운 작은 중세 도시에서 태어난 그는 안락한 삶을 떠나 2007년 한국행을 결정했다.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그가 한국에 정착하기까지의 여정은 '도전'과 '모험'의 연속이었다. 

베네치아 국립대학에서 비인기학과인 중국어를 전공하고 교환학생으로 아무도 찾지 않던 중국의 다롄(대련)으로 떠난 그가 그곳에서 한국인 여자친구를 만나고, '머나먼 이국땅' 한국에 정착해 방송인으로 활약하기까지, 그의 삶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행을 결심했을 당시 썼던 일기장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다. 나의 미래를 내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게 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현실로 이뤄진 셈이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그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학창시절부터 철학과 문학을 탐독한 독서광다운 말이다. 

최근 그는 한국 정착기를 담은 여행 에세이 '널 보러 왔어'(틈새책방)도 펴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이탈리아에서부터 시작된 삶의 여정들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최근 잠실에서 <인터뷰365>와 만난 알베르토 몬디가 들려준 '좌충우돌' 한국 정착기를 담아봤다.

 

머나먼 이국 땅에 정착한지 12년

직장인에서 방송인으로 전향...제2의 삶

우연한 기회에 방송인의 길

한국-이탈리아 교류 앞장

-한국에 정착한 지는 얼마나 됐나?

2007년 한국에 왔으니 벌써 12년째다. 

-한국에서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가 방송인으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처음 방송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우연한 기회였다. 한국에서 이탈리아 맥주 회사와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면서 총 8여년을 직장인으로 몸담았다.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어느 날 알던 단골 카페 사장님이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으니 잠깐 들리라고 하더라. 가봤더니 그 곳에 JTBC '비정상회담' 작가가 있었다.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을 찾고 있다더라. 

-방송 출연 제의를 받고 흔쾌히 승낙했나.

처음엔 생각이 없었다. 당시 자동차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지방 출장도 많았고 야근도 잦았기 때문에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한국어로 방송 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안 되더라. 그땐 심지어 집에 TV도 없었다. 방송은 저와는 너무 먼 세상이었다. 작가분이 '파일럿' 프로그램이니 부담 없이 출연해달라는 요청에 나가게 됐는데, 그 방송이 '대박'이 났다. 하하. 방송 직후 회사에 출근을 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다들 날 알아보더라. 신기했다. 정규 방송으로 편성된 후에는 회사를 다니면서 일요일 마다 녹화를 했다.

-안정된 직장을 떠나 방송인으로 전향했는데. 방송인의 삶을 택한 이유는.

방송을 시작한 후 2년간 직장생활과 방송을 병행했다. 방송 1년차 때는 주말에 나가서 녹화를 했고, 2년차엔 방송인으로 많이 알려지면서 회사 측에서도 많이 배려 해주셨다. 그러나 점점 고민이 쌓여갔다. 그때가 결혼 3년차였는데, 아내와 함께 보낼 시간이 없었다. 내 개인 시간도 없었으니까. 둘이 많은 대화를 나눈 끝에 직장과 방송 중 하나만 하기로 결정했다. 방송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재미 있었고, 자유시간이 많다는 장점이 있었다. 해볼 수 있을 때까지 해보자는 생각에 방송 활동에 주력하게 됐다.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했을 당시 알베르토 몬디/사진=JTBC 

-얼마 전엔 이탈리아 방송에도 나왔다고.

나도 몰랐던 일이다. 이탈리아 친구들의 연락이 쏟아져 알게 됐다. 이탈리아 TV방송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5분 정도의 영상을 내보냈는데, 그 영상에 내가 나왔다더라. 친구들이 보내준 영상을 보니, 맨 첫 장면에 제가 나오더라. 그리고 이 영상엔 BTS(방탄소년단)도 나온다. 급이 틀린데. 하하. 함께 소개되어 기분이 좋았다.  

또 며칠 전 유명한 이탈리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연락을 해와 인터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한국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부쩍 늘었다. 그동안 이탈리아에 한국을 많이 알리고 싶어서 노력을 해왔고 현지 신문에 기사도 몇 번 나가기도 했는데, 다시 이런 기회가 생기니까 기분이 좋다. 나중에 제대로 한국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6년엔 한-이탈리아 문화·사회적 유대 강화에 기여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이탈리아 국가 공로 훈장도 받았다.  

영광이다. 상을 줄 사람이 없어서 저한테 주신건가 얼떨떨했다. 하하. 양국 교류에도 힘써야 하고, 이탈리아 커뮤니티나 기관을 위해 일을 해야 되는 등의 공로가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 이탈리아 대기업 두 곳을 다녔고, 상공회의소 이사회에서도 활동을 많이 했다. 방송을 하면서 양국 교류 역할도 하고, 이탈리아 신부님이 운영하는 '안나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경험들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방송 외에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주한 이탈리아 상공회의소 이사회 활동을 하다가 3년 전부터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내 이탈리아 회사에서 일하면서 7년 전부터 인연을 맺은 곳이다. 

2017년 말에 발달장애인분들이 만드는 클랜징바 천연비누업체인 사회적 기업도 창업했다. 대학원 다니면서 알던 분들과 함께 동업했다. 피부과 의사도 계시고 사회적 기업 전문가도 계시다. 각자 일을 하고 있지만, 좋은 일을 해보자는 뜻을 모아 4명이 의기투합해 시작했다. 

 

작가로도 활동...두 번째 책 '널 보러 왔어' 출간

이탈리아에서부터 한국까지 오기까지 '성장 에세이' 

-작가 활동도 열심히다. 최근엔 두 번째 책인 '널 보러 왔어'도 펴냈다. 

책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점 자체가 내겐 행운이다. 2017년 첫 번째로 출간한 '이탈리아 사생활'은 이탈리아의 사회와 문화를 소개한 책이다. 반응이 좋았다. 많은 분들이 '한국 사생활'도 들려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래서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쉽지 않더라. 제가 이탈리아인에게 한국을 소개할 수는 있지만, 한국인에게 한국을 소개한다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니까. 문화를 소개하다보면 제 의견이나 판단이 들어가게 되는데 조심스러웠다. 문화는 좋은 문화, 나쁜 문화가 없고, 정답도 없으니까. 

-고향인 베네치아에서 부터 현재 방송인이 되기까지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한국을 쓰면서 제가 경험하는 한국의 이야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이 부분만 쓰면 이상해서 이탈리아에서부터 한국까지 오게 된 과정을 모두 다 쓰게 됐다. 한국 문화책을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자서전 느낌이 강하더라. 내가 자서전을 낼만한 사람도 아닌데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성장 에세이'로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이 책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책의 인세는 사회복지법인 '안나의 집'에 전액 기부하기로 했다고.  

'안나의 집'은 이탈리아 신부님인 김하중 신부님이 운영하시는 사회복지법인이다. 김하중 신부님은 한국에 오신 후 40년 동안 봉사에 힘쓰신, 대단하신 분이다. 노숙자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고, 청소년 쉼터도 운영하신다. 예전에 우연히 행사에서 만났는데, 타지에서 남을 위해 일을 하시는 모습이 너무 인상 깊었다. 그래서 나도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가서 봉사 활동을 하고 기부도 해왔다. '널 보러 왔어'가 돈을 벌려고 쓴 책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이탈리아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한국 정착기를 담은 여행 에세이 '널 보러 왔어'(틈새책방)를 펴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이탈리아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사진=씨즈온

한때는 축구선수로 활약...'공부'에 올인 결심

베네치아 국립대서 중국어 선택

-축구 선수 경력이 이색적이다. 

만 5살 때부터 축구를 시작해서 21살 때 그만뒀다. 리그가 엄청 많은데, 1부 리그부터 4부 리그까지 연봉을 받았다. 1부 리그는 연봉이 평균 10억 부터 시작하는데, 난 4부 리그인 '준프로'리그에서 활약했다. 축구만 하는 사람도 있고 투잡을 뛰는 사람도 있었다. 연봉도 꽤 괜찮았다.

그런데 21세에 고민의 순간이 왔다. 축구와 공부 중에 '올인'을 어디에 해야 할까 선택해야 했다. 30대가 되면 선수 생활을 그만해야 할 가능성이 높고, 3부 리그 이상 올라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결국 선수생활을 접고 공부로 전향을 했다.  

-15년 넘게 해온 축구를 그만두기 아쉽지 않았나. 

아쉬웠지만, 유럽에선 흔한 일이다. 축구나 농구, 배구 등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특히 축구는 거의 다 한다. 어느 스포츠 종목이든 스포츠 전문 학교라는 게 없고, 학교 수업이 끝나면 클럽에 가서 훈련을 한다. 난 축구를 하면서 과학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공부를 잘했다.(웃음) 고교 졸업 후엔 대학(베네치아국립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에선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다. 

-중국어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나. 

과학고를 나왔으니,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경제나 경영, 법학, 의대처럼 취업이 보장되는 과를 원하셨다. 흥미가 없는 학과에 들어가 의미 없이 수업을 때우느니 내가 좋아하는 학문을 공부 하고 싶었다. 문학과 철학을 너무 좋아해 고교시절 수학 시간에 문학책을 읽었고, 과학시간에는 철학서적을 탐독 했다. 

그러나 고민은 있었다. 역사학과나 철학과는 심각할 정도로 취업이 너무 안된다는 점이었다. 현실적인 문제였다. 그래서 낸 결론이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다른 나라의 역사와 철학, 문학을 배우면 좋겠다 싶었다. 

베네치아국립대학교에는 중국어와 일본어 전공이 있었는데 당시 일본어가 인기였다. 대학 소개 박람회를 갔더니 마치 '오타쿠'처럼 보이는 애들이 일본어학과에 많이 모여있더라. 그 분위기가 내겐 무척이나 생소했다. 그리곤 중국어학과로 발길을 돌렸다. 당시 큰 인기를 모았던 일본어에 비해 중국어는 비인기 언어였지만 멋있어 보이더라.

그런데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중국어 열풍'이 불면서 입학 당시 1학년이 40여명에 불과했던 학생 수가 내가 졸업할 당시엔 300여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운이 너무 좋았다. 다들 내게 그 당시에 어떻게 알고 중국어를 전공했냐며 놀라한다. 하하. 

중국 다롄에서의 유학 시절 한국인 여학생에 첫눈에 반해

이탈리아 직장 접고 한국행 

-중국어를 공부했는데, 어떻게 한국으로까지 인연이 이어진건가.

자매결연 한 중국의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2003년 다롄(대련)에 위치한 다롄외국어대학교로 떠나게 됐다. 중국 다롄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만난 같은 반 여학생을 보고 첫 눈에 반하게 된거다. 사귀면서 이 여자다 싶었다. 인생에서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게다가 서로 다른 나라에서 만난 것도 신기하다. 지금도 처음 만난지 13년 됐지만 여전히 잘 맞다. 너무나 내겐 큰 행운이다. 

-책의 '널 보러 왔어'에서 '너'는 아내를 지칭하는 건가.

첫 번째는 아내를 지칭하는 거고, 아내를 보러 한국에 왔으니까. 두 번째는 한국이란 나라를 의미한다. 중국에 가기 전에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고 한국인은 만난 적도 없었다. 

중국에선 전 세계적으로 모인 유학생들이 많았다. 수업이 끝나고 매일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을 만나서 식사하면서 어울렸는데, 신기하게도 매일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게 되더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비슷한 면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 

한국 친구들이 많이 생기니까 한국이란 나라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가장 친한 친구들이 한국인들이니까 알고 싶어지더라. 그래서 한국에 보러 왔다는 의미다. 

-어떤 점이 비슷하게 느껴졌나. 

술자리에서 만날 땐 'UN'인데 새벽 1-2시 되면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사람이라곤 한국인 친구들과 나를 포함한 이탈리아친구밖에 없었다. 당시 2006년 독일월드컵 시즌이었는데 새벽까지 남아 함께 축구를 보면서 돈독하게 우애를 다졌다. 하하. 음식 취향도 비슷한 면이 많다. 이탈리아도 피자, 파스타 말고도 한국처럼 매운 음식이 많고, 곱창, 회, 마늘, 채소도 많이 먹는다. 술도 좋아하고.

이탈리아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사진=씨즈온 

-한국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중국에서 이탈리아로 돌아간 후엔 원래 생활로 돌아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도 잘 됐다. 그런데 계속 여자 친구 생각이 나더라. 내겐 너무나 완벽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 친한 친구가 "고민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가라, 우리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 갈 길들이 많지 않냐"고 말하는데, 아, 한국에 가야겠구나 결심했다. 못다한 여행도 해보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이 되서 입사를 코앞에 둔 상황이었는데, 모든 걸 포기하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를 타고 한국에 도착했다. 2007년 5월 첫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행 여정도 남다르다.  

부모님께 말할 명분이 필요했다. 좋은 직장에 입사가 결정된 상황에서, 급작스러운 한국행은 누가 봐도 이해가 안됐을 테니까. 그래서 기차를 꼭 타야했다. 지금 아니면 이런 여행을 갈 기회가 없다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모험과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한국에 갔을 때만 해도 이렇게 정착할 것이라곤 생각치 못했다. 처음엔 2-3달 여행하다가 중국에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재회한 여자 친구와 잘 지내면서 어학당과 대학원(강원대 경제학 석사)까지 다니게 됐다. 한국어 실력도 늘고 한국 문화도 적응하면서 제 인생도 조금씩 변하더라. 취업 후 결혼도 하게 되면서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된 거다. 

-이탈리아에 다시 돌아갈 생각도 한 적이 있나.

취업 때문에 생각은 한 적이 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원회사의 80%정도가 유럽에 있는 외국계 회사였다. 한국어를 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한국인에 비해 차이가 나니까 유럽에 취업의 기회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취업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해보였다. 지원한 한국기업 모두 불합격된 쓰라린 경험도 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한국에서 맥주 회사에 취업이 됐고, 4년을 재직한 후 자동차 회사에 이직해 총 8여년 간을 기업에 몸담았다. 

-한국에 정착한다고 하니 부모님의 반응은. 

내가 행복하면 된다고 하신다. 내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걸 보시니 만족해하신다. 부모님은 내가 자유로운 삶을 사는데 늘 지지해주셨다. 내 남동생도 두 명이나 있으니 외로워하시진 않는다. 하하. 매년 무조건 뵙고, 화상통화도 자주한다.  

부모님이 제가 결혼했을 때 한국엔 한 번 밖에 못 오셨는데, 간호사셨던 어머니가 지난해 은퇴를 하신 후 지난해에만 세 번 한국에 오셨다. 올해 8월에 아버지도 은퇴를 하시기 때문에 앞으로 함께 자주 오실 것 같다.

한국의 음식취향과 가족 중심 문화 비슷 

내 인생의 전환점은 중국어와 다롄

-한국에 살면서 문화적 차이로 힘들었던 때가 있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한다. 대화가 없으면 어색해하고 불편해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친하지 않은 사람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는 조용하다. 그 분위기가 적응이 안됐다. 마치 싸우고 나서 밥 먹는 기분이랄까. 너무 힘들었다. 또 약속도 안했는데 직장 상사가 갑자기 술자리에 부를 때도 이해가 안됐다. 그렇다고 나쁘게 보거나 이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문화가 다를 뿐이니까. 조금씩 적응하게 되더라. 

-비슷한 점은.

이탈리아도 가족 중심이다. 다른 유럽국가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독립하고 혼자사는데 반해, 이탈리아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결혼을 하면서 독립을 한다. 명절에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도 같다. 아내가 한국인이지만 비슷한 면이 참 많다. 주말엔 장인어른, 장모님을 뵈러 자주 가는데, 이탈리아에서도 주말이면 부모님을 뵈러 간다. 이런 문화가 익숙하니까 처갓집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

이탈리아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사진=씨즈온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하면 언제를 꼽을 수 있을까. 

대학교 때 중국어 전공을 선택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중국어 선택으로 인생이 많이 변했다. 중국에도 갈 수 있었고, 조그마한 이탈리아 소도시에만 살던 내가 수많은 여러나라 사람들을 만나고 시야도 넓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유럽에서 로마 역사를 배우고 칸트와 니체만 알던 내가 삼국지란 고전을 알게 되고, 맹자와 공자를 접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거다. 무엇보다 지금의 아내도 만날 수 있었으니까. 

또 중국과 맺은 자매학교 중 교환학생으로 다롄(대련)에 간 것도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22살 내 인생의 첫 번째 모험의 순간이었다. '미지의 나라'인 중국에 간다는 생각에 들떠서 과사무실에 접수하러 갔더니 100여명이 베이징(북경)과 상하이(상해) 두 곳을 선택했더라. 나 역시 베이징행 서류를 이미 준비했는데, 그들과 함께 간다고 생각하니 마치 '모험'이 '수학여행'으로 바뀌는 기분이었다. 

과감히 그 자리에서 다롄으로 목적지를 변경했다. 그 곳을 간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교가 다롄엔 다녀온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왜 가냐고 말릴 정도였다. 그 말을 듣고 바로 가야겠다 싶더라. 하하. 그렇게 한 순간에 지역이 변경됐다. 그리곤 친한 친구들을 꼬셔 나 포함 3명만 다롄으로 가게 된 거다. 그곳에서 전 세계에서 온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식사를 했다. 신기하고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알베르토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제2의 고향이다. 좋아할 수밖에 없는 나라다. 오래 살았기도 하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한국인이니까. 4년 전 아들 레오가 태어나고부터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더 각별해졌다. 누가 한국에 대해 안 좋은 말이라도 하면 화가 난다. '우리'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긴 한데, 한국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더 많아졌다. 내가 머물고 있는 나라이고, 부모로서 아들이 태어난 나라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니까.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나. 

완벽한 부모는 될 수 없지만, 의지할 수 있는 부모가 되었으면 한다. 저를 필요할 때 언제나 제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많은 사랑을 주고 싶다.

-앞으로도 모험의 여정이 이어지는건가. 

저는 모험을 억지로 찾는 사람은 아니지만, 가만히 있는 성격도 아니다. 그래서 책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힘든일이더라도 즐기려고 하는 편이다. 

-목표가 있다면.

장기적으로 계획하기보다는 일이 생기는 대로 움직이는 편이다. 직장을 다녔을 당시 목표가 "일 잘하고, 동료들과 거래처에게 잘하자"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 제 일에 최선을 다하고, 동료들에게 잘하고, 제 고객은 시청자분들이니 고객들에게 잘하자는 생각이다. 물론 제일 소중한 가족에게도 잘하고 싶다. 다른 목표는 없다.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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