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람 냄새'나는 배우 유해진이 전하는 순둥이 같은 영화 '말모이'
[인터뷰] '사람 냄새'나는 배우 유해진이 전하는 순둥이 같은 영화 '말모이'
  • 박상훈 기자
  • 승인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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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험 영화에 녹여..."어릴 적 알파벳 몰라 군대 갈 때까지 혈액형 잘못 알았다"
-"매 작품이 도전...작품에 잘 녹아들고 싶다"
-촬영하면서 한글 사랑 커져..."현장에서 일본어 덜 쓰려고 노력"
배우 유해진/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유해진/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인터뷰365 박상훈 기자] 배우 유해진이 2019년 새해 첫 한국 영화인 '말모이'를 통해 웃음과 감동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섰다.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까막눈 판수(유해진)가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을 만나 사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전국의 우리말과 마음까지 모으는 이야기를 그린다. 

유해진이 맡은 김판수는 감옥소를 밥 먹듯 드나들다 우연히 조선어학회 사환이 된 캐릭터다. 유해진은 한글을 깨우쳤던 어린시절 경험을 더듬어 '까막눈' 판수라는 캐릭터에 녹여냈다.

그는 "제 이름 석자만 쓸 줄 알고 한글도 모르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어린 시절이었다"며 "당연히 알파벳도 몰랐다. 군대 가기 전까지도 혈액형을 잘못 알고 있었다"고 웃었다. 

극 속 판수는 명문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덕진과 어린 딸 순희 남매를 키우는 홀아비로 까막눈이지만 말은 청산유수, 허세 또한 일품이다. 다니던 극장에서 잘린 후 조선어학회에 심부름하는 사환으로 취직한 그는 사십 평생 처음 '가나다라'를 배우고 회원들의 진심에 눈을 뜬 후 '말모이'(사전의 순 우리말)작업에 같은 뜻을 가진 동지로 함께 한다.

연출을 맡은 엄유나 감독이 '말맛'을 살릴 배우는 유해진 뿐이라며 시나리오 작업 단계부터 그를 염두했다는 말처럼, 유해진은 맞춤 옷을 입은 듯 영화의 중심을 완벽하게 잡아낸다. 

원톱 주연작으로 대성공을 거둔 '럭키'(2016)이래 '택시운전사'(2017), '공조'(2017), '1987'(2017) 그리고 '완벽한 타인'(2018)등 늘 인상 깊은 연기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켜온 그다. "매 작품이 도전"이라는 그는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가장 어렵다"며 겸손함을 드러냈다. 

영화 '말모이' 개봉에 앞서 만난 인터뷰 현장에서도 유해진은 과하지 않은 특유의 '말맛' 넘치는 입담으로 끊임 없는 웃음을 안겼다. '사람 냄새'가 가득한 배우였다. 

배우 유해진/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유해진/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 사람 냄새 나는 배우 유해진 "작품에 가장 잘 녹아드는 게 제일 어려워"

-늦었지만 '완벽한 타인' 500만 돌파 축하한다. 

'완벽한 타인'은 바람직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소재도 신선한 면이 있고 그런 작품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어디 가서 이런 얘기를 못 했는데 이 자리를 빌어 많은 분께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싶다. 요즘 다들 '1000만', '1000만'해서 그렇지 얼마나 힘든 숫자인가. 진짜 감사하다.

-'말모이'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어땠는지.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일단 '나랑 잘 맞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감독이 나를 그리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그러니까...지나면서 이렇게 이렇게 하면 괜찮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같이 하게 됐다.

-배우로서 좀 다른 걸 해봐야겠다, 그런 도전 의욕이 생기는 작품은 아니었나?

도전 의식 보다는 어떤 작품이든지 '잘 녹아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매 작품이 도전이다. 관객들이 '그냥 유해진 모습 같네'라는 작품 역시 나한테는 도전의 작품이었다. 그것보다 '안 어울리던데, 따로 놀던데?'라는 소리가 더 위험한 소리니까. 작품에 잘 녹아들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대중의 변화 요구에 대해선 아쉬움을 느끼나.

나의 한계일수도 있지만 변화 자체는 나의 목표가 전혀 아니다. 좋은 이야기를 보여드리는게 내 목표다. 과연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막 변하고 그럴까?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훌륭한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그저 작품에 잘 녹아 들고싶다. 이게 제일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시대극을 하면 정말 그 시대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다.

정말 좋다. 그리고 그런 시대극을 할 때 편하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해서 그런가? 사람의 이야기가 더 짙게 그려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게 작품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나?

물론 재미있고 끌리는 것도 중요하지. 그런데 사람 모습이 어떻게 그려져 있느냐가 중요하다.

영화 '말모이'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말모이'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유해진이 '말모이' 속 판수가 되는 과정

-영화가 판수의 성장기와도 같은 느낌이 들던데 연기할 땐 어땠나.

글을 몰랐던 사람이 알게 되고 무지하고 한심한 사람이 아버지로서 변화하는 두 가지에 초점을 뒀다. 그래서 글을 몰랐던 사람이 알아가는 과정도 무리하지 않게 그려지길 바랬고, 그러면서 글을 지키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의 과정이 좀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말모이'는 대사의 느낌을 잘 살리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감독이 나를 두고 대본을 쓴 이유가 '말맛'을 잘 살릴 것 같은 느낌이어서 그랬다는데 그건 잘 모르겠다. (웃음)

-우리말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됐나?

글자가 쓰여 있는 것만 보다가 우리말의 소중함을 느꼈지. 내가 출연한 장면은 아닌데 원고가 없어졌을 때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절망하는 장면이 있다. 거기에 배우들이 주저앉아 있는걸 봤을 때 '실제로는 저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참 정말로 저렇게 힘들게 우리말을 지켜왔겠구나' 생각이 드니까…사실은 영화를 찍어가면서 많이 느꼈다. 

-판수의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 나갔나.

감독과 이야기도 나누고 내가 어릴 때 동네에 막 침 뱉고 시비 걸고 쌈박질하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 아저씨를 모델로 했다. 

-침 뱉는것도 대본에 없는 설정인가?

그렇다. 예의같은 건 없고 막사는 사람이라는걸 표현한거다. 그런데 판수는 자영(김선영)이 더럽다고 하니까 안 뱉는다. 그런게 '사람의 변화'다. 글을 깨우치는 것도 변화지만 그 과정 안에서 침을 안 뱉는다거나 머리 모양도 바뀌고 이런 것들이 쌓여서 크게 그 사람의 변화가 된거다. 

-침 뱉는 장면은 유해진과 김선영 모두 자연스러워서 대본에 있는 장면인 줄 알았다.

잘하는 사람들과 연기하면 그런 시너지가 있어서 좋다. (웃음)

-판수가 글을 깨우친 뒤의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와 시장을 다니면서 간판 읽을 때가 떠올랐다. 찐빵 하나 먹으려고 따라다니면서 읽은 기억이 난다. 어머니께서 "잘한다" 그러면 또 하나 읽고. 나 때는 자기 이름만 쓰고 학교에 들어갔다. 지금은 영어 알파벳은 다 알고 가지 않나? 그때는 한글도 몰랐으니까. 입학하고 혈액형 검사를 하는데 내게 "혈액형은 '?형 이다'"라고 그러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아나. '아파 죽겠는데 뭐라고 하는 거야?'라고만 생각했지. 하하. '?형 이다'라고 하니까 나는 그냥 B형인 줄 알았다. 그렇게 알고 살다가 군대가서 헌혈을 하는데 혈액형이 뭐냐길래 B형이라고 했는데 O형으로 나왔더라. 그때 내가 O형인 걸 알았다.

-어릴 때 경험이 도움이 됐겠다.

밋밋하게 온실에서 자란 것보다는 여러 경험을 해왔던 게 더 좋은 거구나 생각이 든다.

-영화에 나오는 편지도 인상적이던데 직접 쓴건가?

감정이 들어가는 장면이라 남한테 써달라고 하고 싶지 않아서 왼손으로 직접 썼다.

-완성된 영화에서 빠진 장면들도 있나?

판수의 더 거친 모습이 있는데 그런 모습은 좀 덜 쓴 것 같다.

배우 유해진/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유해진/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 현장에서 우리말 쓰려고 노력

-'말모이'가 유해진에게 가져다준 변화가 있다면.

내가 변한 건 없는 것 같고 한글에 대해서는 그런 것 같다. 현장에서도 우리말을 더 사랑하려고 했다. 

-현장 용어 중에 일본말이 많아서 어렵지 않았나.

많지. 어쨌든 덜 쓰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바꿔 나간 용어가 있나?

나름대로는 늘 그렇게 하긴 했는데, '뎅깡한다'(세트의 벽을 뜯어내는 것)같은 건 안 쓰려고 했다. 웃으면서 시작했다가 자리 잡는 경우 있지 않나?

-'슛 들어간다' 같은건?

그 정도는 그냥 했던 것 같은데. (웃음)

영화 '말모이'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말모이'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 '말모이' 촬영 현장의 중심엔 유해진이?

-딸로 나온 순희(박예나)가 정말 귀여웠다.

다들 얘기한다 아주 나랑 빼다 박았지? (웃음) 다들 영화 보고 순희 얘기를 많이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덕진이(조현도) 얘기도 한다. 귀엽기도하고 생각도 얼마나 건강한 친구인지. 그 친구가 편지를 써서 준 적이 있는데, 편지 내용도 근사하고 글씨도 엄청 잘 쓰더라. 편지를 받고 '참 좋은 놈이구나, 건강한 놈이구나' 생각했다. 공부도 그렇게 잘한다더라.

-편지엔 무슨 내용이 있었나?

촬영 중에 어버이날이 있어서 그때 받은 편지인데... 지금 내용을 잊어버렸는데 아무튼 인사치레가 아니라 덕진이의 마음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정말 기특했다.

-편지는 자주 받나.

거의 없지. 가끔 팬 레터? 아 류준열이 '완벽한 타인' 무대인사할 때 와서 꽃다발을 줬는데 그 안에 편지도 있었다.

영화 '말모이' 현장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말모이' 현장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윤계상과의 호흡은 어땠나.

갑자기 분위기 확 달라지네? 애들 얘기하다가 갑자기 성인 얘기하니까. (웃음)

-2013년에 촬영한 '소수의견' 이후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 

나는 표면적인 인물 감정대로 표현하면 되는 인물인데 (윤)계상이는 그걸 숨겨야 되는 인물이라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거다. 상당히 어려운데 독하게 파고들더라. 내가 큰 도움은 못 됐는데 연기하면서 괴로울 때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그랬었지. 연기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본인이 다시 하려고 하고 '연기에 대한 욕심이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소수의견' 때보다도 술이 많이 늘었더라. 계상이도 더 무르익은 것같다. 그게 연기에 자연스럽게 나온다.

영화 '말모이' 현장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말모이' 현장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엄유나 감독과는 인연이 남다르다.

영화 '국경의 남쪽'(2007) 때는 연출부였고 '택시운전사'(2017)의 각본을 엄유나 감독이 썼다. 이번이 첫 데뷔작인데 정말 대단하다.

-엄유나 감독은 현장에서 유해진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그러던데.

그 이야기는 감독한테 들어야 할 것 같다. 내가 대답하긴 쑥스럽다.(웃음)

-현장에서 호흡은 어땠나.

마음을 열고 많은 얘기를 해서 좋았다. 엄 감독은 항상 본인을 낮추고 귀가 열려있다. 그런 모습이 참 좋았다. 감독 자체가 '말모이'라는 영화와 생각도 그렇고 뚝심 있고 뚝배기 같은 느낌이 비슷하다. 

배우 유해진/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유해진/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말모이' 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그건 보는 분들이 잘 느껴야 되는데. 내가 느낀 매력은 순한 영화인 것 같다. 순희 같은 영화, 순둥이 같은 영화.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새해 첫 영화다. 하루로 쳤을때 아침이다. 아침은 자극적인걸 먹지 말고 순한 걸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든든하게 순한걸 드시고 2019년을 출발하는게 어떨까 싶다. (웃음)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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