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원 365칼럼 | 노래하는 삼국유사] (1)처용과 역신 그리고 처용의 아내
[정진원 365칼럼 | 노래하는 삼국유사] (1)처용과 역신 그리고 처용의 아내
  • 정진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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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원 교수의 인문학 놀이터 이야기]
- '노래하는 삼국유사' 연재를 시작하며
처용무(處容舞) 

연재를 시작하며

인터뷰365 정진원 칼럼니스트 = 세상 모든 일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삼국유사를 고려시대 최고의 텍스트로 꼽는다. 먼저 삼국사기에는 없는 고조선과 가야, 그리고 삼국시대의 간과된 역사문화를 풍성히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휴머니즘 가득한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 시작부터 13세기 고려말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와 생로병사, 희로애락, 거기서 나오는 인생의 철학까지 삼국유사에 총 아홉 개 편목으로 망라되어 있다. 때로는 ‘기이’한 이적, 천지신명을 감동시키는 ‘감통’, 속세를 떠난 신기한 ‘피은’, 효도와 수행은 둘이 아니라는 ‘효선’에 이르기까지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불가사의를 막론하고 없는 것이 없다.

삼국유사 /출처=문화재청

일연선사(1206~1289)는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13세기를 관통하며 살았는데 수십 년 몽고 전란으로 고려의 백성들이 피폐와 빈곤이 극에 달한 참상을 보았다. 그때 평생을 들여 쓴 백성을 위한 격려와 위로의 책이 삼국유사이다.

우리는 이 땅의 위대한 선조 단군의 자손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그리고 수많은 나라들이 있던 이곳에 중국 못지않게 훌륭한 역사와 문화를 일군 조상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사료와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 간곡히 백성들을 위무하였다. 그 책 갈피갈피마다 일연은 자주 노래를 하고 들려주며 그들이 험난한 시기를 넘기도록 정성을 쏟았다.

우리도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와 4년 동안 세계대전을 치렀다. 전 세계가 피폐해지고 그 후유증은 보이게 안 보이게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나의 경우만 해도 이 시기에 가장 가까운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가 세상을 떠났다. 평생지기 ‘그대 군’과 스승 월운큰스님, 돈연스님, 그리고 아버지께서 문병도 간병도 지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별세하셨다. 이제 그들께 삼국유사의 노래와 못다한 나의 노래도 곁들여 삼국유사 속 주인공들과 한바탕 이생과 전생의 축제 한 마당을 펼쳐보고자 한다.

그동안 나는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2016)’, ‘삼국유사, 자장과 선덕여왕의 신라불국토 프로젝트(2019)’, ‘삼국유사, 원효와 춤추다(2020)’를 단행본 시리즈로 내놓았다. 오래 담아두었던 ‘노래하는 삼국유사’를 풀어낼 시간이다.

삼국유사에는 일연스님이 쓴 49수의 찬시와 전해 내려오는 11수의 향가뿐 아니라 삼국유사 갈피갈피 일연스님이 찾아낸 무수한 인용 한시들이 별처럼 박혀 있다. 그야말로 삼국유사 콘텐츠가 불꽃놀이처럼 펼쳐져 어떤 불꽃을 그릴지 나도 기대된다.

우리가 여전히 알게 모르게 공기처럼 우리의 고전 삼국유사를 숨 쉬고 있는 사실을 아는 이 얼마나 될까. 지금도 찬불가 합창 ‘임의 소식’에 나오는 대피리불고 걸어가는 내용은 월명사의 이야기와 겹치고 수로 부인을 위한 헌화가는 국악의 ‘정가’ 형식으로 불리고 있다. 새로운 K Pop 콘텐츠가 될 삼국유사 보물창고를 열어보자.

용의 아들 처용의 노래

용의 해가 밝았다. 2024년 갑진년은 청룡의 해라 한다. 12간지 열두 띠 중 용띠에, 십간을 오방색으로 분류한 갑(甲)의 청색을 합한 표현이다.

청룡은 사신도의 으뜸이며 우리는 흔히 ‘좌청룡 우백호’라는 말을 쓰곤 한다. 지금은 오른쪽, 오른손잡이 등 ‘옳다’에서 유래된 오른 방향을 더 우위에 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임금을 보좌하는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더 높은 직책이었다. 좌청룡도 당연히 우백호보다 우위에 서 있다.

그 청룡의 해에 삼국유사 속 용의 아들 처용과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던 그 처용의 아내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물론 그 부부를 돋보이게 하는 역병의 신 역신의 노래도 빠질 수 없다.

처용의 노래

서라벌 밝은 달밤
밤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뉘 것인가.
본디 내 것이지만
빼앗은 것을 어찌하리오.

삼국유사 기이 제2편 ‘처용랑 망해사’에 나오는 처용가이다. 이 유명한 향가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려사’에도 처용의 기록과 노래가 나온다.

신라 옛적에 처용 공(公)
푸른 바다에서 왔다 하네 
자개 이빨 붉은 입술로 
달밤에 노래 부르며 
소리개 어깨, 자주색 소매 
봄바람처럼  너울너울

통일신라 시대에 등장한 처용은 직접화법으로 노래 부르고 고려사에서는 처용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조선 세종임금은 처용을 오방색으로 치장하고 다섯 사람으로 분신한 처용무로 바꾸어 궁중의식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 조선시대 오방무 그림이 지금도 남아있고 연산군은 특히나 처용무를 직접 추기도 하고 군무로 확대 발전시켰다. 남성무용인 처용무에 ‘흥청망청’의 유래가 된 여성 무용단 ‘흥청’을 만들어 성대하게 만들어 지금은 세계유산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처용의 등장

처용 탈
처용 탈 

때는 바야흐로 통일신라 제49대 헌강대왕(憲康大王:재위 875∼886)의 시대, 서울 경주부터 바닷가까지 집이 즐비하고 담장이 서로 이어져 있었으며 초가집이 단 한 채도 없었다. 풍악과 노랫소리가 길에서도 끊이질 않았고 비바람이 사계절에 순조로웠다. 그야말로 태평성대의 시대였다.

헌강왕 5년(879년) 어느 날 대왕이 개운포(학성 서남쪽 울산)에 갔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길을 잃자 천문을 담당한 관리가 아뢰었다.

“이것은 동해 용의 조화입니다. 마땅히 좋은 일을 해서 풀어야 합니다.”

개운포 처용암 지도
개운포 처용암 지도 

그래서 용을 위하여 근처에 절을 지어주도록 하자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흩어졌다. 이름을 개운포(開雲浦)라고 하였다. 동해의 용이 기뻐하며 일곱 아들을 데리고 왕의 수레 앞에 나타나서 덕을 찬미하며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리고 그 아들 중 하나가 왕을 따라 서울에 들어와서 왕의 정치를 보좌하였다. 그 이름이 처용(處容)이다.

헌강왕은 아름다운 아내를 골라 장가들이고 그의 마음을 잡아두려고 급간(級干)의 벼슬도 내렸다.

망해사(望海寺)와 신방사(新房寺)의 유래

망해사 부도탑
망해사 부도탑 

헌강왕이 서울로 돌아온 뒤에 곧 영취산 동쪽 경치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절을 지었으니 망해사(望海寺)라고 한다. 그리고 또 신방사(新房寺)라고도 하니 곧 용을 위해 세운 절이다.

처용과 처용의 아내를 위한 절이 바다의 아들 처용이 사는 망해사이자 둘이 신방을 차린 신방사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깨알처럼 묘사되어 있다.

이상의 내용이 처용가가 나오기까지 삼국유사의 스토리텔링이다. 처용가의 내용은 그저 아름다운 부인을 두고 밤새 노닐다 들어와 보니 외간 남자와 함께 있는 부인을 두고 체념하는 듯한 노래이다.

고려사 이제현의 노래는 처용이 바다에서 왔고 형상은 자개처럼 빛나는 이와 붉은 입술로 달밤에 노래 부르며 춤추는 모습이 봄바람 같았다고 묘사한다. 솔개 같은 튼실한 어깨로 자주빛 한삼을 달 밝은 밤 춘풍처럼 펄럭이는 이. 낮에는 헌강왕을 위해 정사에 힘썼으렷다. ‘처용(處容)’이 발음이 비슷한 청룡일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용을 위해 지은 절이라는 내용으로 보아 한자는 음사이고 용을 나타내고 있음은 틀림없다.

처용의 아내

처용의 아내는 지극히 아름다웠다(其妻 甚美). 아마 삼국유사 속 많은 미인처럼 진선미를 갖춘 재색을 겸비한 모습이었을 터. 이 극강의 아름다움에 역신(疫神)마저 그녀를 흠모하였다. 흠모(欽慕), 보기만 해도 기뻐 동경하고 사모한다는 뜻이다. 거의 상사병 수준이다. ‘그래서 사람으로 변신하여 밤중에 처용의 집으로 가서 슬며시 그 여자와 잤다(疫神欽慕之 變爲人 夜至其家 竊與之宿)’

여기서 한문을 보인 이유는 언제 어떤 사람으로 변신했겠느냐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늦은 시간에 들어올 사람은 당연히 남편 처용뿐이다. 역신은 십중팔구 처용의 모습으로 변신했을 것이다. 아무리 신라시대가 풍속이 자유롭다고 한들 처용의 아내가 모르는 남자가 은근슬쩍 다가온다고 호락호락 마음을 내어주진 않았을 것이다. 무려 헌강왕이 발탁한 ‘미쓰 신라’ 미인이 아니던가.

당대의 미인은 그야말로 외모는 거들 뿐 지혜가 겸비되어야 미인이 될 수 있다. 서동요의 선화공주는 신라의 공주로 백제의 서동을 무왕으로 만드는 킹메이커였고 수로부인은 천지신명의 흠모를 받아 바다 용왕과 산신의 납치에서도 늘 무사히 당당하게 나타나 영웅담을 풀어놓는 카리스마 미인이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그저 처용의 아내로만 치부하기에 그녀의 역할은 지극히 막대하지 않은가. 두 남신이 사랑하고 서로에게 예를 갖추어 가며 스스로 역병을 거두어 가게 한 결정적 역할을 한 주인공이 누구인가. 바로 용서와 화해의 능력을 발휘한 아름다운 처용의 아내이다.

애초에 원인은 처용에게 있었다. 그처럼 어여쁜 아내를 두고 밖에서 밤늦도록 노닐다니...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처용도 그 상황을 짐작하고 남았을 것이다. 그제야 자신의 불찰을 깨닫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다가 물러갔다. 그렇다면 이 난감한 상황을 파악한 아내는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삼국유사의 내용과 삼국사기 등을 참고하여 필자의 손을 빌려 그녀의 마음을 들어보자. 

처용 아내의 노래

1. 
나는야 세상에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인 
기와집 처마가 끝없던 태평성대 신라 
서라벌에 살고 있었다네

임금님 소개로
용왕의 아들 처용을 만나 
신방을 차렸다네
구름 걷힌 개운포
바다가 보이는 망해사라네 
처용낭군 서라벌 달 밝은밤 나들이 다녀올 적에 
역신이 처용인양 내 곁에 누웠네 

돌아온 처용 
당신을 두고 나간 나를 용서하오
늘 사랑하오마는 
당신의 뜻대로 하시오 
그대의 뜻을 따르리다
춤추고 노래하며 자리를 비켜주시네 

2.
나는야 영원한 처용의 아내 
역신이여 무릎 꿇고 잘못을 빌라 
다시는 내 앞에 우리 앞에 얼씬거리지 않겠다고 
맹세하여라 
저멀리 아주 멀리 우주 멀리  
삿된 전염병을 가지고 떠나버리라 
써억 물럿거라

오랫동안 처용의 아내는 오해를 받아왔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용모로만 호도되고 아무 남정네와 잠자리를 한 헤픈 신라 여성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도화살의 원조로 여겨지는 신라 도화녀도 삼국유사에서는 진지왕이 죽음으로 협박해도 변치 않는 정절 깊고 아름다운 새색시로 서술되고 있다. 일연스님의 장점은 남녀를 차별하지 않고 공히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서술태도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처용의 아내는 오해를 사도록 써놓았을까. 우리에게 부러 그 수수께끼를 찬찬히 풀어보도록 한 것인지도 모른다.

역신의 등장

 바로 그때 역신이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처용 앞에 꿇어앉아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공의 아내를 사모하여 이렇게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도 공이 화를 내지 않으시니 감동하여 찬미하옵니다. 맹세컨대 지금 이후로 공의 형용(形容)만 보더라도 그 문 앞에 얼씬거리지 않겠습니다.”

이 말을 노래로 만들어 보자.

역신의 노래 

무릎 꿇고 용서를 비옵니다 
그대 아내 탐한 잘못 
노여워 않으시니 
맹세코 그대 얼굴 
그려진 문 앞에는 
들어가지 않으오리다 

이것은 누구의 힘인가. 처용이 잠시 자리를 피해 옷매무새 고칠 시간을 주었다고 개과천선할 역신었으면 애초에 거짓 사람 모양으로 꾸미지도 않았을 터이다. 그때 처용의 아내는 무엇을 했을까. 두 남자가 춤추고 용서 빌고 하는 대로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을 것인가.

내가 처용의 아내라 생각해보자. 백번 양보해서 외간 남자로 변한 역신을 애인으로 두었다 치자. 왕의 명령을 어긴 여인은 필사적으로 사태를 수습했을 것이다. 또한 역신의 정체를 알았다면 그 누구라도 전염병의 신을 피했을 것이다. 4년 동안 코로나19 시대를 살아보니 어떻던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서도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세상이 아니던가. 여기에 처용의 아내가 노래한 사태 수습과 역신을 짐짓 구슬러 처용에게 조복시키는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나랏 사람들의 노래

이 일로 인해 나라 사람들이 문에 처용의 모습을 그려 붙여 삿된 것들을 물리치고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세상사람들이여 
처용을 그려 
액땜하고 복을 부르세
경사났네 경사났어

사람들은 처용을 그려 문에 붙이고 역병과 삿된 것이 물러갔다 경사났네 노래 부른다. 이것이 처용 아내의 그림자 전략이다. 나라까지 태평성대를 누리게 된 것이다.

전화위복. 이렇게 신라 최고의 태평성대는 초가가 아닌 기와집이 즐비하고 땔나무가 아닌 숯을 만들어 쓰며 해마다 풍년이 들고 국경은 안정되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산신의 노래 

지리다도파도파(智理多都波都波)

처용랑 망해사 이야기에는 처용가 외에도 노래가 한 수 더 나온다. ‘지리다도파도파’라는 산신의 노래이다. ‘지이다도 도읍장파(知而多逃 都邑將破)’로 풀이한 이 노래는 지혜 있는 이들이 다 도망갔으니 나라가 곧 망할 것이라는 참요(讖謠)이다.

때는 헌강왕 통일신라 말기, 백성들이 태평성대와 경사를 노래하고 있을 동안 지신과 산신이 다시 나타나 처용처럼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나라가 망할 것을 경고했다는 것이다. 남산의 신은 상염무를 추고 북악의 신은 옥도령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렇게 신라말 9세기는 저물어가게 되었더란다.

헌강왕은 바닷가 임해전에서 거문고를 타고 신하들은 노래가사 짓기를 하였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삼국유사에서는 태평성대가 다해가고 있음을 같은 가무, 다른 노래로 계속 경고를 하고 있다. 오르막의 끝은 내리막이라는 것을 처용과 처용아내, 역신이 선창하고 산신과 지신이 후창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나. 또는 어떤 노래를 듣고 있나. 역병의 시절 트롯이 부활하고 각종 노래 경연대회가 방송국마다 성황인 지금 그때와 다른가 같은가.

/사진=정진원 교수 제공

정진원 칼럼니스트

튀르키예(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교수와 헝가리 ELTE대학교에서 한국학과 교수, 서울대 규장각과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여 년간 해외 한국학 학회 발표와 특강, 외국 학생들과 한국 유적지를 답사하고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로 홍익대 문학박사를 받은 국어학자이자 동국대에서 삼국유사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다. 현재 월인석보와 삼국유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하여 국내와 유럽을 중심으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월인석보, 그대 이름은 한글대장경>, <석보상절, 훈민정음 조선대장경의 길을 열다>,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자장과 선덕여왕의 신라불국토 프로젝트>, <삼국유사, 원효와 춤추다>, <여행하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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