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근하게 감싸주는 어머니 같은 아리산
인터뷰365 정진원 칼럼니스트 = 오늘은 7000년 전 타임머신(관련기사 참조 ▶튀르키예(터키) 카이세리 근교 '큘테페' 이야기)에서 내려 21세기 4월의 튀르키예(터키) 카이세리를 걸어보려고 한다. 이즈음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터키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터키에서 트레킹을 시작하게 된 히스토리
2000년도에 이 도시에 와서 몇 년간 한국학과 설립을 담당하고 돌아가 2021년에 다시 복귀할 때 북한산을 다니던 배낭도 소포로 부쳐왔다. 터키 오면서 아쉬웠던 것은 매주 하던 '북한산 중턱산악회'였다. 그때는 갖은 이유로 매주가 아니라 매월로 넘기기 일쑤였고 한동안은 바쁘다며 끊다시피 한 북한산 산행이 외국에 가려니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40대 중후반 희귀병에 걸렸었다. 그때 나를 낫게 해준 북한산이자 지극정성 나를 살리려던 산행 멤버들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기에 더욱 그랬다. 십수 년 동안 유럽과 터키를 오가며 한국학 교수와 특강, 답사를 학생들과 하면서 특히 터키의 아름다운 산하를 트레킹하는 모습을 꿈꾸곤 하였다.
그런데 터키에 오자마자 내 인생의 쓰나미가 다이나믹하게 1년 반 동안 나를 사정없이 휩쓸었다. 나라는 마차를 굴러가게 했던 두 바퀴가 생을 마감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곳에 처박혀있던 나의 배낭과 산행의 역사가 서린 등산 소품들이 그대로 나와 함께 서울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아슬르 호자(교수)와의 만남
지난 3월 아제르바이잔 국립 바쿠세계언어대학교에서 터키 국립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연구소가 국제학술대회를 공동으로 개최하였다. 마침 에르지예스대학교에 근무하는 아제르바이잔 아슬르 교수가 한국학과 스태프 열댓 명을 모두 자기 가족들에게 부탁해 저녁 식사에 초대한 것이 발단이었다.
우리는 그저 간단한 식사 자리인 줄 갔다가 최소 한 달 치 식량은 좋이 차려진 잔칫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참고로 아제르바이잔은 그야말로 터키와 친형제 국가이면서 튀르크인의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이다.
그러나 옛소련에서 독립한 국가에다 아르메니아와 영토분쟁이 있어 근현대 역사가 아주 복잡한 나라이기도 하다. 터키보다 잘 살 리가 없는 작은 나라의 가족들이 자기 딸이, 언니가, 누나가, 조카가 부탁했다고 해서 거의 마을잔치처럼 차린 식탁을 보고 나는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되었다.
나야말로 영문모른 채 빈손으로 그저 깍두기로 따라갔는데 이들은 최소 일주일 전부터 음식을 장만한 것 같았다. 초대받은 터키 교수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그저 방문 선물로 로쿰같은 터키 디저트를 들고 갔는데 온 씨족 마을이 합세해 잔칫상을 차리다니….
나는 터키로 돌아오자마자 아슬르 교수를 수소문했다. 서울에서 들고 간 화장품이며 한국이 그려진 소품들을 들고 찾아갔다. 그렇게 해서 친해진 아슬르 교수는 싱글로 환갑을 맞이하는 동안 터키에서 10년째 그야말로 'too much social'로 살고 있었다.나는 도깨비 방망이를 얻은 것이었다. '금 나와라 뚝딱' 묻기만 하면 답이 나왔다. 우연히 트레킹 이야기를 차 마시러 가서 하니 바로 페이스북 친구인 무스타파 베이(남성 존칭)를 연결해주었다.
첫 번째 알리(Ali)산 트레킹
그렇게 지난주부터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는 알리산이었다. 내가 보통 '아리산'이라 부르며 '어머니산'이라 칭하는 산. 이 산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아침에 눈 뜨면 창문으로 보이는 산이다. 마치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생긴 이 산은 나를 그야말로 푸근하게 감싸준다.
하루는 구름모자를 쓰고, 하루는 새가 지저귀는 화창한 얼굴을 보여주고, 겨울에는 설산이 되고 지금 봄에는 앞마당 버드나무의 초록으로 싱그럽게 계절과 날씨를 알려준다. '오늘은 바람이 부니 따뜻하게 입고 학교에 가거라. 이제 봄이 왔구나' 말을 걸어주는 산이다. 그래서 한동안 매일 사진을 찍었다. 아리산 사진전이라도 열 지경이다.
그러나 아리산 등산은 그림의 떡. 나는 자타공인 길치이다. 자주 길을 잃어 생각지도 못한 곳을 가고 거기서 뜻밖에 행운 같은 장소와 사람을 만나곤 하였다. 쓰다 보니 내 인생도 그런 것만 같다. 우연의 연속, 일부러 길을 잃은 것만 같은 인생의 행로.
그러니 아리산이 눈에 뻔히 보이지만 걸어가 볼 생각을 못 하고 대학교 안 교수 숙소와 인문대만 다람쥐 쳇바퀴를 돌고 있었다.
산행 리더 무스타파 베이(Mustafa bey)
그런데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이다. 아리산을 등산하는 날. 무스타파 베이(Mustafa bey)는 나를 픽업하러 왔는데 이미 그 차에 네 명의 멤버들이 타고 있었다. 그래서 첫날 총 다섯 명이 아리산 산행을 하였다.
여기서 리더 무스타파는 오른쪽 다리에 장애가 있어 목발을 짚고 산행한다는 점이다. 초면이고 터키말도 안 통하고 해서 묻지는 않았지만, 정상인 못지않은 체력과 대단한 스포츠맨이라고 아슬르는 전한다. 나이도 우리 나이로 60대인데 기골이 장대하고 튀르키예 대지진 소식을 듣자마자 2시간 후에 달려가 하타이지역에서 열흘 동안 봉사하였다고 한다. 터키의 진짜 사나이를 만난 것 같다.
그리고 커튼 가게를 하는 로즈 가든이란 의미의 귤 친 하늠(여성 존칭)과 무스타파의 직장동료이자 귤 친의 사촌 동생 하비베 하늠, 그리고 고등학생 케리만 하늠 이렇게 조촐한 우리 트레킹 멤버이다.
아리산은 처음에 완만하게 올라가다 제법 가파르게 올라가는 돌산도 있는데 우리의 대장 무스타파는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같이 전혀 개의치 않고 앞장을 선다. 평지나 능선에서는 마지막을 유지하다가... 아리산 정상에 가까이 가자 카이세리의 자랑이자 우리 대학교의 이름이기도 한 해발 4천 미터의 에르지예스산이 위용을 드러낸다. 멀리 있는데 눈앞에 있는 산처럼 다가온다.
조금 더 올라가니 패러 글라이딩하는 장소가 나온다. 이른바 정상이다. 거기엔 어린 딸과 패러글라이딩을 준비하는 젊은 아빠가 있었다. 꼬맹이에게 물어보니 전혀 무섭지 않단다. 그러나 결국 달려나갈 때가 되자 다시 되돌아오다 다리가 풀려 스태프에게 안겨 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빠만의 멋진 단독 비행. 나는 보기만 해도 무서웠다. 이제는 심신의 컨디션이 따라주지 않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무엇이든 젊을 때 망설이지 않고 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패러글라이딩 준비하는 곳 옆에서 각자 싸 온 도토리 점심을 나눠 먹는다. 그야말로 학교 안 사람들이 아닌 학교 밖 터키사람들과의 만남과 교유가 즐겁기만 하다. 아직 터키는 우리나라 수십 년 전 대가족의 따뜻한 정서가 그대로 살아있다.
직장동료 트레킹에 옆집 사는 사촌 자매들을 모아 함께 일요일을 보내다니…. 문제는 거의 의사소통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의 기초 터키어는 맥을 못 추고 그들의 영어 실력은 '오케이'가 전부인 수준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쉽게 친해졌다. 역시 점심을 함께 나눠 먹은 '밥심' 덕분이다. 각자의 말을 하면서 각자의 깜냥껏 알아듣고 배려를 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쯤 쉬고 싶겠지, 물이 마시고 싶겠지, 간식을 먹을 타이밍이지 하면서 눈치껏 준비한 걸 내놓거나 자기가 먼저 행동을 개시한다. 그럼 나도 주섬주섬 카이세리 특산 햄인 '파스트르마'를 꺼낸다. 그럼 아 그건 꼭대기 가서 먹어야지. 넣어둬. 라는 리더의 지시가 들린다. 거의 이런 개떡같이 말하고 찰떡같이 알아듣는 묘미도 트레킹의 재미를 배가한다.
하산길의 에르지예스
점심을 먹고 평탄한 길로 하산 코스를 잡아 하염없이 포장 안 된 찻길로 내려간다. 그랬더니 에르지예스산이 점점 가까워지며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셀피로 여러 각도의 포즈를 취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올라올 때 카이세리의 시내가 보이는 여정이었다면 내려갈 때는 초록이 가득한 들판의 모습이 보인다. 뒤늦은 벚꽃들이 만년설 산과 어우러지는 모습이 일품이다.
이렇게 나의 카이세리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다음에는 두 번째 ‘뷴얀마을’ 트레킹과 7개국이 모여 축하하는 나의 국제적인 생일파티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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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원 칼럼니스트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K Classic 콘텐츠연구소 소장. 튀르키예(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교수와 헝가리 ELTE대학교에서 한국학과 교수, 서울대 규장각과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여 년간 해외 한국학 학회 발표와 특강, 외국 학생들과 한국 유적지를 답사하고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로 홍익대 문학박사를 받은 국어학자이자 동국대에서 삼국유사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다. 현재 월인석보와 삼국유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하여 국내와 유럽을 중심으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월인석보, 그대 이름은 한글대장경>, <석보상절, 훈민정음 조선대장경의 길을 열다>,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자장과 선덕여왕의 신라불국토 프로젝트>, <삼국유사, 원효와 춤추다>, <여행하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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