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원 365칼럼 | 노래하는 삼국유사] (5)수로부인의 딸 경덕왕 왕비 삼모부인과 황룡사 대종
[정진원 365칼럼 | 노래하는 삼국유사] (5)수로부인의 딸 경덕왕 왕비 삼모부인과 황룡사 대종
  • 정진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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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원 교수의 인문학 놀이터 이야기]

▶(4) 천지신명이 흠모한 철쭉꽃 여신 수로부인 이어서

인터뷰365 정진원 칼럼니스트 =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라는 책을 2016년에 출판하여 4쇄를 찍었다. '삼국유사'의 여인들을 이야기하자면 필수적으로 정독하게 되는 첫 번째 책으로 '화랑세기'가 있다.

아직은 위서 논쟁으로 조심스럽지만 삼국유사의 이야기를 좀 더 풍성하게 해주고 여성 중심에서 나아가 모계 중심의 바이블이라 할 만한 재조명과 평가가 필요한 책이라 생각한다.

이제 화랑세기의 여인들까지 삼국시대의 세계를 넓혀 종횡무진 역사 속 여인들과 거닐어보기로 한다.

수로부인과 그의 딸 삼모부인의 신격에 대하여

지난 4화 '노래하는 삼국유사'(관련 기사 ▶(4) 천지신명이 흠모한 철쭉꽃 여신 수로부인)에서 수로부인의 딸 삼모부인의 이야기를 잠깐 하였다. 두 여성은 모녀지간일 뿐 아니라 둘 다 보통 사람과는 다른 신격화 될 만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먼저 수로부인은 ‘자용(姿容) 절대(絶代)’라는 미모 대체불가의 여인으로 묘사되면서 총 14수가 전하는 삼국유사 속 향가 한 수 ‘헌화가’와 한시 한 수 ‘해가’로 그 존재감을 폭발시킨다. 성덕왕 시절 강릉태수로 부임해가는 남편 김순정과 동행하면서 벼랑 끝 철쭉꽃을 꺾어 바치게 하는 헌화가의 주인공이자 바다 용왕의 납치에서 구출되는 바다 노래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수로부인의 신격을 정리해보자.

먼저 수로부인의 이름에서 신격을 찾을 수 있다. 가야 시조 수로(首露)왕과 수로(水路)부인의 수로는 산스크리트 ‘sur-’와 연관되는 음차 된 이름으로 볼 수 있다. ‘태양, 최상, 최고’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수로부인은 끊임없이 천지신명과의 교류 교감 속에 납치와 무사 귀환을 반복하고 있다. 바다 용왕의 납치에서 남편과 마을 사람들, 노인의 지혜로 바다 노래를 불러 구출된 뒤에도 수로부인에게 전혀 납치의 공포나 트라우마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바닷속 용궁에서 용왕과 동등하게 상대한 묘사와 대접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물을 관장하는 수신인 용왕과 같은 신격을 엿볼 수 있다.

성덕왕 시절 가뭄으로 인한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한 태수 부임이라는 설과 ‘물길’ 수로(水路)부인이라는 또 다른 상징의 함축적 이름, 바다의 왕이자 물의 왕이기도 한 용왕과의 접촉 등은 수로부인의 기우제 주관, 물의 신 교류의 측면으로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딸 삼모부인도 용왕과 관련시켜 용녀로 신격화하기도 하는데 글쎄 과연 그럴까.

삼모부인은 수로부인과 김순정의 딸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삼모부인이다. 그는 세상에서 제일 예뻤다는 신라 수로부인의 딸이니 엄마를 닮아 얼마나 예뻤을까 궁금해지는 게 인지상정. 그러나 그에 대한 기록은 당연히 없다. 이처럼 삼국시대의 여인들은 이름만 겨우 남아있거나 이름조차 없이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대단한 인물이 무궁무진하다. 궁금증이 몰려온다.

수로부인의 딸이었다면 미모는 차치하고 천지신명에게 납치되었어도 번번이 무사히 돌아와 그 전말기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담대함과 스케일이 큰 성격도 닮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라나 경덕왕의 왕비가 된다. 왕비를 그만두고 10년 후 나타나 황룡사의 종을 주조하고 ‘효정이왕’으로도 불렸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출발한다.

아버지 김순정은 ‘속일본기’에 일본과 대외관계를 지휘하는 재상으로, 신라 최고 직위인 상대등 이상의 상재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신라 실세 중의 실세였다는 말이 된다. 아버지의 정치적 권세와 재력, 어머니 수로부인의 미모와 담대한 신격의 삼모부인의 노래를 필자의 가사로 먼저 들어보자.

사량부인일까 효정이왕일까, 다빈치 코드 가득한 삼모부인

삼모부인의 노래 

내 이름은 삼모부인 
절세 미인 자용 절대 수로부인의 딸이라오 
철쭉꽃 여신이시고 용왕에게 업혀갔던 일로 
절 용녀라 부르는 이도 있지만
내 아버지는 엄연히 강릉 태수 김순정
성덕왕 시절 진골 귀족 이찬 벼슬에 
일본외교를 좌지우지 
일본이 손자 김옹을 통해 극진히 추모할 만큼  
대단한 재상이자 외교통이셨지요 

내 이름은 효정이왕 삼모부인 
경덕왕의 왕비였다오 
왕비보다 부인보다 거룩한 그 이름 
신라 최대 아니 세계 최대 황룡사 큰 종을 만들었을 때 
백성들이 부른 효정이왕이 그중 맘에 든다오 
 
지증왕 다음으로 거물이던 내 남편 
왕자를 낳고자 하여
보름달같은 나의 조카 만월에게 후비를 물려주고 
표훈대사에게 하늘에 청해 얻은 아들 효공왕
그것으로 나는 흔연하였소 

어머니 수로부인 신들을 상대하여 가뭄에 물길을 내셨듯 
아버지 이찬 김순정 일본을 잘 다스려 태평성대 이루었듯이
나, 신라 백성들의 효정이왕이 되어 
금입택 이상댁 종 잘 만드는 장인과 황룡사 큰 종을 만들었지요 

황룡사 구층탑과 장육존상으로 외적을 막아 이룩한  
통일 신라에 걸맞는 국가 대사업 
시아버지 성덕대왕신종보다 네 배 큰 종이었지요 

이제는 고려 때 몽고군이 훔쳐가다 빠뜨린 대종천에서 
가끔 울리는 황룡사 종 
구리 50만근에 빛나는 황룡사 큰 종이 전하는 나의 역사와 비밀들 
그대가 나의 이름을 찾아주시겠소

신라 경덕왕 대(742~765), 그의 부인이자 황룡사 종을 주조한 삼모부인은 삼국유사에 ‘왕력’과 ‘기이’편, ‘탑상’ 편 세 곳에 기록되어 전한다.

왕력에는 경덕왕의 첫 번째 왕비로 출궁하였고 후사가 없다고 전한다. 기이편에는 폐위된 ‘삼모왕비’를 ‘사량부인’으로 봉하고 만월부인을 경덕왕 후비로 삼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탑상편에는 경덕왕 13년(754년)에 황룡사 종을 주조하는데 시주한 사람이 ‘효정이왕(孝貞伊王) 삼모부인(三毛夫人)’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세 가지 단서를 들고 삼모부인의 스토리텔링 퍼즐을 맞춰나가야 한다.

황룡사종은 에밀레종의 4배인 세계 최대의 종

에밀레종이라 불리는 성덕대왕신종. 통일신라시대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한 이 종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이다. 황동 12만근으로 주조되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수로부인의 딸이자 경덕왕의 첫째 왕비 삼모부인이 시주한 황룡사종은 성덕대왕신종의 4배나 더 컸다고 한다./사진출처=국립경주박물관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는 신라의 종은 일명 에밀레종이라고 익히 알고 있는 성덕대왕 신종이다. 이 종은 황동 12만근으로 주조되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고 있다. 그에 비하여 삼모부인이 시주한 황룡사종은 49만 7581근으로 거의 50만근에 육박한다. 성덕대왕 신종의 4배가 넘는 당시 세계 최대의 종인 것이다. 삼국유사 탑상편에 황룡사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신라 제35대 경덕대왕(景德大王)이 천보(天寶) 13년 갑오(서기 754)에 황룡사(皇龍寺)의 종을 주조하였다. 길이가 1장 3치였으며, 두께가 9치였고 무게가 497,581근이었다. 시주한 사람은 효정이왕(孝貞伊王) 삼모부인(三毛夫人)이었다.

경덕왕과 첫 왕비 삼모부인의 출궁

경덕왕릉/사진=경주시청
경덕왕릉/사진출처=경주시청

그는 이 종을 만들어 황룡사에 시주하기 전에는 경덕왕의 첫 번째 왕비였다. 그러나 둘 사이에 자식이 없었다. 경덕왕은 지증왕에 버금가는 음경 8치로 크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것을 하나의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결국 자식이 없어 왕비를 폐위하고 ‘사량부인’에 봉하였다고 한다. ‘부인’도 왕비나 왕모, 왕비의 어머니 등에 붙일 수 있는 호칭이고 ‘사량’도 신라 주요인물들이 등장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로 알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이다. 단지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폐위되기에는 석연치 않은 것이다. 신라시대의 혼인풍속도는 현대와 달리 꽤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후비 만월부인과 아들 효공왕에 얽힌 이야기

경덕왕은 후비로 각간 김의충의 딸로 만월부인을 맞이하였는데 삼모부인의 조카라는 설이 있다. 그 말은 삼모부인은 김의충과 남매간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렇지만 만월부인과의 사이에서도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다. 급기야 15년 만에 표훈대사의 힘을 빌어서야 겨우 아들이 어렵게 태어난다.

'삼국유사'에는 혜공왕의 출생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던 경덕왕은 고승인 표훈대덕에게 아들을 얻도록 하늘의 상제(上帝)에게 청하게 한다. 표훈은 하늘로 올라가 상제를 만나고 내려와 딸은 얻을 수 있지만 아들은 안 된다고 왕에게 전했다. 왕이 딸을 아들로 바꾸게 해 달라고 청하자 표훈대덕은 다시 상제를 만나 아들로 태어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상제는 그렇게 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했는데, 이 경고대로 원래 여자가 되어야 했으나 남자로 태어난 혜공왕은 어려서부터 여자의 놀이를 즐겼으며 치장하기를 좋아하고 도사들과 어울려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라가 크게 혼란스러워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8살에 즉위해 어머니 만월부인이 섭정을 하게 되는데 도적들이 일어나 나라가 어려워지자 효공왕은 결국 김양상(37대 선덕왕)과 김경신(38대 원성왕)에게 시해되고 만다.

만월부인 역시 15년 동안 자식이 없어 마음고생을 톡톡히 하다가 표훈의 천기누설을 무릅쓴 노력으로 아들 효공왕을 낳지만 정치 불안이 싹트는 신라 하대가 시작되는 기점의 인물이 되는 것이다.

삼모부인과 황룡사종 시주의 역학관계

경주시 구황동 320-2에 위치한 경주 황룡사지 경주시
경주시 구황동에 위치한 경주 황룡사지. 황룡사는 고려 고종 25년(1238)에 몽고의 침입으로 모두 불타 없어져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사진출처=경주시청

그렇다면 왕비가 아니어도 사량부인이란 칭호를 받고 시아버지를 기리는 ‘성덕대왕 신종’의 4배 크기의 황룡사 종을 주조하게 되는 삼모의 재력과 정치적 권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황룡사의 장육존상과 구층탑’은 신라 삼보에 속해 이웃나라들이 넘볼 수 없는 특별한 신라의 정체성을 간직한 절이었다. 이제 통일 신라를 상징하는 황룡사 종을 주조해 화룡점정 할 때이다. 국가 대사업인 이 일은 어마어마한 경제력뿐 아니라 권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삼모부인에 대하여 눈여겨볼 것은 ‘효정이왕 삼모부인’이라고 한 ‘효정이왕’의 존재이다. 학자마다 설이 분분해 성덕왕 때 중시 벼슬의 ‘효정’으로 보기도 하고, 삼모부인과 동격을 이루는 호칭으로 보기도 한다. 만일 삼모부인을 효정이왕이라고 불렀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야에는 김수로왕과 더불어 허수로왕 허황옥이 있었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부인 알영이 동등한 성인으로 함께 통치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삼모부인은 단지 출궁 된 왕비이거나 진골 아버지의 후예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보다 더 큰 세력을 지닌 왕과 동등한 위상의 존재였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삼모부인은 만월부인의 고모

삼모부인의 아버지 김순정은 성덕왕 대 활약한 인물로 경덕왕이 왕이 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중시인 김옹이 김순정의 손자로 경덕왕대 등장하며 김순정이 대일외교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김옹은 만월부인과 남매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둘 다 삼모부인의 조카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선비와 후비가 대립 관계가 아니고 상호 결속하여 경덕왕을 보필하는 관계가 설명되는 것이다.

김순정과 수로부인 사이에서 자녀 삼모와 김의충이 태어난다. 김의충의 딸 만월부인과 김옹은 김순정의 손자요 삼모부인의 조카이다. 삼대에 걸쳐 이어지는 권력과 삼모부인의 재력이 황룡사 종을 주조하게 되는 관계를 보여준다.

이와 같이 삼모부인은 수로부인과 김순정의 딸이자 경덕왕의 첫째 왕비로 역사에 등장하여 성덕대왕신종의 4배가 넘는 황룡사종을 주조하는 역할로 수로부인에 버금가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삼모부인은 경덕왕의 후사를 잇는 데는 실패하였으나 황룡사 위상에 걸맞는 당시 세계 최대의 종을 만들어내는 위업을 이룩한다. 황룡사 구층탑이 선덕여왕과 자장율사의 사촌남매간의 국가적 프로젝트였음을 감안해 보면 삼모부인도 여전히 왕과 결속한 왕비 이상의 역할을 하여 ‘효정이왕’이라는 별칭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삼모부인의 아버지 김순정

아버지 김순정은 702년 성덕왕대 강릉태수를 시작으로 725년 상재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경덕왕대까지 신라와 일본에서 대활약한 인물이었다. 그가 죽자 일본에서 애도를 표하고 비단과 면포로 부의할 정도로 대일 우호관계의 중심인물이었다. 어머니 수로부인 또한 그저 김순정의 아내의 역할이 아니라 기우제의 임무를 띤 나라의 제사장, 사제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삼모부인의 존재를 밝히는 일은 8세기 신라의 왕권과 대일관계, 수로부인의 직분까지 풀어낼 다빈치 코드일지 모른다.

황룡사 종이 빠졌다는 경주 대종천의 비밀

대종천 갈매기떼/사진=경주시 홈페이지
겨울 대종천 갈매기떼 풍경. 대종천은 토함산을 감싸돌아 동해 바다로 흘러드는 이곳에 황룡사 대종이 빠졌다고 해서 대종천(大鐘川)이라 부르게 되었다./사진출처=경주시청 홈페이지

황룡사종은 그러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고려 시대 고종 25년(1238) 몽골의 침략으로 경주 황룡사의 구층탑을 비롯한 문화재가 많이 불타버리고 황룡사 종 또한 몽골군들이 탐내어 그들 나라로 가져가게 되는 운명에 처했다.

뱃길을 운반하려고 토함산 너머에 있는 하천을 이용하여 배를 띄웠을 때 문무왕의 화신인 호국용이 배를 대종천에 폭풍을 일으켜 배를 침몰시켰다는 것이다. 당연히 종도 바다 밑에 가라앉았는데 그때부터 황룡사 대종이 빠진 ‘대종천’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고 풍랑이 심하게 일 때마다 대종 우는 소리가 동해 일대에 들린다는 것이다.

한편 물결이 일렁일 때마다 은은히 울리는 종소리는 감은사의 종으로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빠뜨린 것이라는 일설도 있다.

삼모부인의 신격 다빈치 코드

황룡사 9층목탑을 1 10크기로 재현한 모형탑
경주 황룡사역사문화관에 전시되어 있는 황룡사 모형탑. 황룡사 9층 목탑을 1/10크기로 재현했다./사진출처=경주시청

경덕왕의 왕비 자리를 박차고 나와 십 년 공들여 ‘황룡사’, 신라 삼보 중 ‘황룡사 장육존상’과 ‘황룡사구층탑’이 있는 신라의 호국사찰에 ‘황룡사 대종’을 만들어 거는 주인공. 삼모부인의 이야기를 하였다.

장육존상은 인도의 아쇼카왕이 실패하고 만 재료로 만든 불상이고, 구층탑은 자장율사와 선덕여왕이 국운을 걸고 이웃 아홉 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지은 탑이다.

황룡사 종을 만든 삼모부인을 ‘효정이왕’으로 불렀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경덕왕의 왕비였지만 왕비를 그만두고 오히려 왕으로 불린 위상에서 우리는 왕위의 왕, 신격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삼모부인의 짧은 세 토막의 이야기는 8세기 신라 하대로 접어드는 왕권과 신권, 잃어버린 황룡사의 대종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여기까지 엮어 보았는데 이제 시작이다. 삼모부인이 담고 있는 수많은 다빈치코드들을 풀어 줄 눈 밝은 독자를 기다린다.

정진원 칼럼니스트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K Classic 콘텐츠연구소 소장. 튀르키예(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교수와 헝가리 ELTE대학교에서 한국학과 교수, 서울대 규장각과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여 년간 해외 한국학 학회 발표와 특강, 외국 학생들과 한국 유적지를 답사하고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로 홍익대 문학박사를 받은 국어학자이자 동국대에서 삼국유사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다. 현재 월인석보와 삼국유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하여 국내와 유럽을 중심으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월인석보, 그대 이름은 한글대장경>, <석보상절, 훈민정음 조선대장경의 길을 열다>,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자장과 선덕여왕의 신라불국토 프로젝트>, <삼국유사, 원효와 춤추다>, <여행하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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