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원 365칼럼 | 노래하는 삼국유사] (2) 신라 미인 도화녀와 진지왕의 사랑 노래
[정진원 365칼럼 | 노래하는 삼국유사] (2) 신라 미인 도화녀와 진지왕의 사랑 노래
  • 정진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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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원 교수의 인문학 놀이터 이야기]
- 맘씨와 맵시가 여물고 아름다운 도화녀(桃花女)와 진지왕

▶(1)처용과 역신 그리고 처용의 아내 이어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라 미인 도화녀(桃花女)는 글자 그대로 보면 자태와 용모가 곱고 아름다웠다(姿容艶美)고 한다./사진=픽사베이

인터뷰365 정진원 칼럼니스트 = 노래하는 삼국유사 첫 회 ‘처용과 처용 아내의 노래’를 쓰면서 설핏 등장한 미인들 중 도화녀가 있었다. 도화녀는 과연 어떤 인물이기에 삼국유사에 등장했을까. 앞으로 이 글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차놀이가 될 것이다.

전편에서 처용이 용왕의 아들이니 처용 역시 용이었다고 가정할 때 처용과 발음이 비슷한 청룡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처용(處容)’의 한자는 ‘얼굴을 그려붙인’ 이후의 이름일 것이다. 처용이 발단이었지만 정작 역병을 물리친 사건의 주인공은 처용의 아내였다. 그 결말이 처용가보다는 ‘그녀’를 목숨 걸고 흠모한 역신의 참회였다. 발각은 차후 문제. 그리하여 나랏 사람들은 처용의 얼굴을 그리고 집집마다 붙여 전염병과 궂은일을 액땜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벽사(闢邪)의 연장선상에서 떠오르는 것은 ‘도화녀와 비형랑’ 모자이다. 처용 부부에서 도화 모자로 등장해 삿된 귀신과 나쁜 일들을 막아주는 주문(呪文) 노래의 특별한 주인공을 맡고 있다. 벽사의 두 상징, 누가 더 강력한가. 처용의 얼굴 그림이냐 비형의 신출귀몰 노래이냐. 이번 글에서는 먼저 주인공 도화녀를 차근차근 만나보자.

자용염미(姿容艶美) 신라 미인의 ‘클라쓰’

도화녀는 글자 그대로 보면 자태와 용모가 곱고 아름다웠다(姿容艶美)고 한다. 그러나 겉모습에서 멈추면 안 된다. 전체 이야기를 통해 도화녀의 아름다움은 굉장히 강단 있고 매력적인 신라 대표 미인의 함축적인 표현이다. 

몇 해 전 고등학교 남학생들 특강에서 삼국시대 삼대 미녀 ‘수로부인, 도화녀, 선화공주’를 모셔 와 진선미 선발대회를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도화녀가 압도적 진으로 몰표를 받았다. 다른 특강에서는 자용절대(姿容絶代) 수로부인이나 내 표심이 들어간 미염무쌍(媚艶無雙) 선화공주가 많았다. 왜 그랬을까. 여러분도 글을 음미하며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삼대 미녀 글을 쓴 지 10년이 지나 다시 도화녀의 마음속 노래를 듣기 위하여 온갖 도화와 관련된 자료를 섭렵하였다. 복사꽃부터 복숭아, 복숭아나무의 상징과 민간 신앙에 이르기까지 도화의 꽃과 나무 열매는 하늘 끝까지 뻗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아름다움은 결국 귀신 쫓는 대단한 아들 비형랑을 낳을 수밖에 없는 필연성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도화는 얼핏 우리가 떠올리는 도화살로만 연상되는 미녀가 아니었다. 도화는 벽사와 무병장수의 상징이자 귀신을 쫓는 역할의 대명사였다. 심지어 처용탈의 사모에 복숭아 세 개가 붙어있던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지금까지 민속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민속신앙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그의 아들 비형랑은 도화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귀신을 진두지휘하는 우두머리 반인반신이어야 했다. 그러려면 아버지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신라의 성스러운 황제 진지왕의 넋이 깃들어 줘야 제격인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삼국유사 삼대 미녀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내가 제일 잘 나가’ 삼국시대 3대 미녀

 21세기에 수로부인, 도화녀, 선화공주가 한자리에 만났다면 어떤 스토리텔링이 이어질까.

수로부인 : 제가 삼국유사 여인 중 제일 잘 나갔죠. 오죽하면 남편 순정공을 제치고 노옹이 절벽의 철쭉을 꺾어다 바치며 헌화가 노래를 지었겠어요. 게다가 바다의 용까지 유부녀인 저를 납치해 온 동네 사람이 구지가같은 노래를 불러서 구출했을까요. 그 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천지신명이 사랑한 여인이라고 저자 일연스님이 증명하신 바 있죠.

도화녀 : 이거 왜 이러세요. 겨우 스캔들의 여왕 가지고... 저는요 새색시 시절 진지왕이 궁으로 불러 사랑을 고백했어도 절개를 지키느라 꿈쩍도 안 했다고요. 남편이 죽으면 허락해주겠냐고 통사정해 그 순간을 모면할 요량으로 그러마했죠. 그러나 남편이 죽었을 땐 진지왕도 돌아가셔서 저는 별일 없을 줄 알았지만, 왕은 저 세상에서도 저를 잊지 못하고 찾아왔지요. 그래도 내키지 않아 부모님의 허락을 얻은 후에야 겨우 마음을 내줬는데... 보셨죠. 걸출한 내 아들 ‘비형랑’! 사람의 재주를 뛰어넘은 신기하고 비범한 능력으로 하루아침에 다리를 놓고 귀신을 부리는 신출귀몰 훈남! 이 정도 결실은 있어야 잘 나간다 말할 수 있죠.

선화공주 : 세기의 로맨스라고 들어는 보셨나 모르겠군요. 신라와 백제의 정략 결혼이라고도 하지만 신라 공주인 저는 짐짓 사랑에 응하는 체하며 백제를 아울렀죠. 서동에 불과한 내 낭군 백제의 무왕이 되게 한 킹메이커이자 실질적 신라 백제 양국의 퀸이었죠. 신라 황룡사에 비견되는 익산 미륵사. 제가 만들었지요. 물론 금과 돌도 구분 못 하는 서동을 길들인 결과죠. 아버지 진평왕께 금으로 환심을 사고 무왕을 사위로 삼게 하는 댓가를 치른 거죠. 요즘 겨우 미륵사 서쪽 탑 하나를 조성한 사탁의 딸이 백제왕후를 운운하며 내 존재를 가리려 하지만 서천의 소가 웃을 일이죠.

이 내용은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2016)’에서 가져왔다. 전말을 듣고 싶다면 일독하시라. 그럼 ‘자서~히’ 도화녀의 삼국유사와 진지왕의 삼국사기, 그리고 비형랑의 화랑세기를 날실 씨실 삼아 그들의 노래를 직조해 보자.

먼저 삼국유사에 전하는 이야기.

도화녀(桃花女)와 진지왕(眞智王)의 ‘사랑과 영혼’

신라 25대 진지왕 때 사량부의 한 민가 아가씨가 자태가 곱고 용모가 아름다워(姿容艶美) 당시 사람들이 도화랑(桃花娘)이라 불렀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 궁중으로 불러들여 사랑을 나누고자 하였다. 

도화랑은 “여자가 지켜야 하는 것은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일입니다. 남편이 있는데 어찌 다른 이에게 가겠습니까. 더 높은 왕의 위엄이 있더라도 끝내 정조는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라며 거절하였다.

왕이 “너를 죽인다면 어찌하겠느냐.”하니, “차라리 저자거리에서 목을 베일지언정 다른 마음을 가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왕이 “남편이 없으면 되겠느냐.”고 묻자 도화랑이 “되겠습니다.”라고 하였고 왕은 도화를 놓아 주었다.

576년에 왕위에 오른 진지왕은 당시 지도부인이라는 왕비가 있었으나 나라를 다스린 지 4년 만에 주색에 빠져 음란하고 정사가 어지럽자 나라 사람들(國人)이 폐위시켰다.

도화녀를 만난 바로 그 해에 그는 폐위되고 죽었는데 2년 후 도화랑(桃花娘)의 남편도 죽었다.

그리고 10일이 지난 어느 날 밤중에 갑자기 왕은 평상시와 같이 여인의 방에 들어와 말한다. “네가 옛날에 허락한 말이 있지 않느냐. 지금은 네 남편이 없으니 되겠느냐.”

도화녀는 쉽게 허락하지 않고 부모에게 고하니 “임금의 말씀인데 어떻게 피할 수가 있겠느냐” 하고 왕에게 보냈다.

왕은 7일 동안 머물다가 갑자기 사라졌으나 여인은 이내 태기가 있었다. 달이 차서 해산할 때 천지가 진동하더니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이름을 비형(鼻荊)이라고 했다.

도화녀의 강단 있는 아름다움

도화녀(桃花女)의 아름다움 ‘자용염미(姿容艶美)’를 나는 일차적으로 자태와 용모가 섹시하고 아름다웠다 정도로 해석했지만 여기서는 맘씨와 맵시가 여물고 아름답다로 글을 풀어나갈 것이다.

도화녀의 ‘도화(桃花)’ 또한 ‘-살’이 붙어 이성들을 유혹하거나 과도한 호색과 음욕으로 화를 입는다는 뜻으로 쓰여져 왔다. 주로 호색은 남성에게 음욕은 여성들에게 사용되는 표현이었으나 현재는 이성의 주목을 끌고 연예인이 될 선호 사주로 꼽는 등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해석도 달라지고 있다.

도화 만발한 조치원 복사골에 간 적이 있다. 마력적인 분홍 꽃잎에서 점점 안으로 선홍빛이 깊어지는 꽃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소용돌이처럼 빨려 들어가 아뜩한 느낌을 받았다. 치명적인 황홀한 유혹이라고 할까.

그러나 '삼국유사' 어디에도 그녀에 대하여 ‘도화살’과 결부된 폄하하는 표현은 나타나지 않는다. ‘사량부 민가의 여자(沙梁部之庶女)’로 소개하거나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不事二夫)’고 하여 지조와 정절의 대표로 나온다. 그것도 현재 왕 노릇하고 있는 진지왕 앞에서 당당하고 결연한 표정으로 하룻밤 사랑은 목숨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다. 진지왕과 도화녀의 첫 만남을 뮤지컬 형식으로 노래해보자.

도화녀와 진지왕의 첫 만남 노래 

도화녀 : 나 어릴 적 복사꽃 아가씨로 불리었다네 
신라하고도 사량부 아름다운 마을에서 
맘씨 맵시 사랑스럽고 어여쁜 도화 아기씨 
시나브로 짙어지는 분홍빛 사랑 약속하고 
낭군을 맞이 했다네 
복숭아처럼 수밀도처럼 달콤한 신혼 시절 
나라 임금님이 나를 부르시네 

진지왕 : 과연 듣던대로 곱디 곱고 어여쁘고나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 
그대와 사랑을 하고지고 

도화녀 : 어이 얼어 자리 므스 일 얼어자리*  
결혼한 새악시에 두 남편이 웬 말씀인가 
어찌 사랑하는 낭군 두고 왕인들 안기리 
임금보다 높다 하되 결단코 나눌 사랑 없사으리 

진지왕 : 아뿔싸 나의 불찰이로다 
듣던 대로 맵시 맘씨 아름답고 여물도다 
그러나 사나이 마음 내친 김에 짐짓 묻노니
그대를 죽인다면 어찌하겠느냐 

도화녀 : 그런 하수를 두신다면 더욱 쉬운 일 
차라리 저자거리에서 목을 베소서 
임금께 드릴 마음은 한치도 없으리이다  

진지왕 : 아 천하의 사량부 도화부인 
몰라 뵈었소 나의 잘못을 용서하오 
잠시 복사꽃보다 귀한 그대 모습에 눈이 멀었소 
그대의 정조를 지켜주는 일 또한 나의 사랑이리니 
훗날 남편이 없으면 그때 다시 인연을 기약합시다

도화녀 : 훗 그리 하십시오

*조선시대 한우의 시조 중에서

진지왕의 사랑법

경주 진지왕릉 정면/출처= 문화재청
경주 진지왕릉 정면/출처= 문화재청

진지왕 또한 대단하다. 처음에는 죽이면 어쩌겠냐고 위협도 해보았지만 그녀의 태도에 어림없음을 안 뒤에는 남편이 없으면 ‘불사이부’가 아니니 그때를 기다리겠다고 후일을 도모한다. 이러한 성격과 인품의 왕이 정작 ‘황음(荒淫)’하다는 불명예를 안고 폐위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화랑세기'의 기록대로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의 계파 간의 싸움으로 폐위되었다는 내용도 음미해볼 만한 대목이다. '삼국유사'에서는 즉위 4년 후이자 도화녀를 만난 해인 579년 폐위되고 죽었다(是年王見廢而崩)고 하고, '삼국사기'에서도 그렇게 되어 있지만 '화랑세기'에서는 유폐된 지 3년 후에 죽은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화녀를 만난 것은 살아있어도 죽은 거나 같은 폐위된 왕의 시절의 일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재회와 사랑은 그 후에도 쉽게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진지왕이 죽고 도화녀의 남편도 죽은 어느 날 진지왕이 나타나 묻는다.

‘이제 남편이 없으니 되겠느냐(今無汝夫 可乎)’

도화녀는 여전히 쉽게 허락하지 않고 부모에게 그 사실을 고한다(女不輕諾 告於父母). 왕도 절대 굴하지 않는 모습이지만 도화녀도 그에 못지 않다. 그렇게 해서 부모에게 허락받은 ‘7일간의 사랑’, 신라판 ‘사랑과 영혼’이라 할 만하다.

과연 도화녀는 진지왕을 사랑했을까. 첫 대목에서 도화랑(桃花娘)이라고 한 것과 남편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복사꽃처럼 아리따운 아가씨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다가 갓 결혼한 새댁일 것으로 보인다.

진지왕을 처음에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처럼 자기 원칙이나 감정에 어긋나는 행동은 죽어도 하지 않는 성격일 것이다. 남편도 죽고, 왕도 죽었거나 폐위되고 난 후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구월심 일편단심으로 찾아온 그에게 결국 마음을 열게 되었지만 부모의 인정이라는 형식을 거치고서야 진지왕을 받아들인다. 천지신명도 감동했던지 머무는 동안 오색구름이 그 집을 감싸고 방에는 향기가 가득했다고 한다(常有五色雲覆屋 香氣滿室). 진지왕의 사랑 노래를 들어보자.

진지왕의 먼 그대 

어느 봄날 그대와 나 
먼 길 돌고 돌아 
무지개 타고 일곱 빛깔 
꿈같은 사랑을 했네 

그립고 먼 그대 
곱고 여문 일편단심의 빗장이 풀리고 
오색 구름 속
둘이는 서로 사랑을 했네

정다운 그대 얼굴 그대 모습
복숭아꽃 분홍빛 심연 속에 
아뜩한 그 얼굴 
그립고 사랑스런 그 얼굴

살아서도 죽어서도 잊지 못할 나의 사랑 
유폐된 왕이어도 넋이 된 왕이어도  
서로를 사랑한 이 순간 
우리는 사라져도 사랑의 결실은 영원하리 

다음에는 이 두 사람의 7일간의 사랑으로 태어난 반인반신 아들 비형랑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귀신과 도깨비의 유래,나아가 비형랑에서 전래되었을 게 틀림없어 보이는 일본의 모모타로(도태랑)의 유사성도 파헤쳐보기로 하자.

정진원 칼럼니스트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K Classic 콘텐츠연구소 소장. 튀르키예(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교수와 헝가리 ELTE대학교에서 한국학과 교수, 서울대 규장각과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여 년간 해외 한국학 학회 발표와 특강, 외국 학생들과 한국 유적지를 답사하고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로 홍익대 문학박사를 받은 국어학자이자 동국대에서 삼국유사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다. 현재 월인석보와 삼국유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하여 국내와 유럽을 중심으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월인석보, 그대 이름은 한글대장경>, <석보상절, 훈민정음 조선대장경의 길을 열다>,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자장과 선덕여왕의 신라불국토 프로젝트>, <삼국유사, 원효와 춤추다>, <여행하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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