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앞에 펼쳐진 7천 년 유적지 발굴 현장...발굴단과 마음껏 누벼
【튀르키예(터키) 카이세리 근교 '큘테페' 이야기】
인터뷰365 정진원 칼럼니스트 = 큘테페 여행기를 탈고한 뒤 다시 한번 지난 2022년 햇볕 좋은 가을에 큘테페를 다녀왔다. 이번에는 한국에 갔다 돌아온 최지연 연구원의 안내와 Fikri 발굴단장과 Elif 부단장, 그리고 지한 연구원의 환대를 받으며 점심을 같이 먹고발굴 현장을 취재하러 나온 터키 ‘aTV’ 방송국 카메라에 대고 인터뷰도 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사실 나름대로 나의 중요한 세레모니도 있었다.
2023년 튀르키예(터키) 대지진 후 큘테페 지한의 소식
그리고 2023년 새해가 되고 2월에 유례없는 튀르키예 대지진이 발생했다. 피해가 큰 카흐라만마라쉬(Kahramanmaras)와 가지안텝(Gaziantep)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카이세리(Kayseri) 바로 옆 도시들이다. 우리 도시와 250~320㎞정도의 거리에 있다. 그나마 나의 학생들은 희생되지 않아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지한의 소식이 들려왔다. 하타이도 지진 지역인데 지한의 고향이다. 그의 가족 중 형, 남동생, 이모, 사촌 동생 네 분이 돌아가시고 부모님과 누나만 극적으로 구조돼 앙카라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것이다.
학생 중에는 친척이 아홉 분이 돌아가셨거나, 집이 무너져 오빠가 살고 있는 독일로 피난 간 경우가 있었다. 터키 지방은 우리 나라처럼 씨족 마을을 이루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생들은 모두 겨울방학 내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대학 기숙사에 있다가 고향으로 가는 길이 모두 막혀 돌아 돌아서 4시간이면 갈 거리를 2주일 걸려 도착한 경우도 있었다. 모두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기성세대들이 지구를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킨 벌을 이 젊은이들이 받아야 하다니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터키 인사에 ‘게치미시 올순 Geçmiş olsun’이란 말이 있다. '이 또한 지나가기를. 쾌유를 빕니다.'라는 뜻이다. 부디 이 재난이 빨리 끝나고 복구되기를…
가을 소풍 큘테페
이 이야기를 이렇게 하게 될 줄 몰랐지만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터키의 슬픔이 나의 슬픔으로 다스릴 수 있을까하여 서로 위로와 치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내어 쓴다.
터키는 가을 학기가 1학기이고 봄 학기가 2학기이다. 2022년 여름에 우리나라는 100년 만에 내리는 폭우라고 할 만큼 비가 많이 내렸다. 마치 나의 슬픔을 함께 하겠다는 듯이… 그것은 내 인생 30년을 같이한 한 사나이가 떠나며 뿌리는 눈물이었기 때문이다. 필설로 못할 감정이 아직도 가득하지만 평생 나와 함께 희로애락을 할 줄 알았던 그를 마지막 한 달 반 동안 나는 씩씩하게 마치 연극배우처럼 최선을 다해 편히 보냈다. 그리고 회복되면 함께 오고 싶어 했던 그의 마음 한 조각을 모시고 가을 학기에 맞춰 다시 큘테페를 찾았던 것이다.
우리는 그때 두 가지 약속을 했다. 플랜 A. 최선을 다해 건강을 회복하자. 그리고 터키에 함께 가자. 플랜 B는 먼저 떠나게 되면 소풍을 가서 좋은 자리에 돗자리 깔고 기다릴 것. 그는 소풍을 택했다. 그래서 나도 그와 못다 한 이생의 큘테페로 소풍을 갔다. 10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큘테페 고고학 연구소 방문
이번에는 최지연 연구원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난 봄에 학생 제이넵과 돌무쉬(마을버스)를 타고 왔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트램 종점 가까이 내린 뒤 큘테페 전용 택시를 보내줘 연구소 관계자들 출입구에 바로 내렸다. 최 연구원 안내로 발굴단의 식당으로 직행하였다. 문 앞에 장독대 같은 댓돌 위에 수많은 토기 조각들이 목욕하고 몸을 말리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니 준수한 청년 지한 연구원이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7천 년 고고학 유적지를 발굴 조사하며 대를 이어가는 젊은 세대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거기에 다국적군으로 대한민국의 당찬 최지연 연구원도 당당히 한 몫을 하고 있었다.
연구소는 여러 개의 막사처럼 이루어져 있었다. 조촐하고 소박하였다. 너른 마당에는 길고양이들이 사랑을 듬뿍 받으며 대가족을 이루고 있었다. 터키사람들의 고양이 사랑은 유별나 어린 고양이들은 사람에게 반려묘처럼 거리낌 없이 다가와 안긴다.
차를 마시고 두 연구원과 동행한 한국학과 김현정 선생, 그렇게 발굴 현장 답사를 갔다. 그야말로 가을 소풍 산책 같은 기분으로 올라가며 한국어로 큘테페의 역사를 듣는다.
발굴 현장을 발굴단과 거니는 특권
왕이 살았던 카니쉬 사라이 유적지에 가니 발굴단장이 터키 aTV 취재진과 발굴 현장을 돌아보고 있었다. 멀리서 발굴단장이 우리 일행을 보고 손짓해 오라고 한다. 유적지 발굴 현장을 들어갈 수 있어 기뻐하며 갔다가 졸지에 우리도 짧게 인터뷰를 하였다.
나는 이곳을 좋아해 2000년도부터 왔는데 20년 만에 다시 오니 그 사이에 4천 년 전 유적이 7천 살이 되어있었다고 하니 모두 웃는다. 김현정 선생은 처음왔는데 서울에서 '메소포타미아 전(展)'을 보고 직접 유적지에 와 영광이라고 하였다.
연구원 설명에 의하면 이 유적지는 층층이 유물이 계속 나와 이번 생에 발굴이 끝날 것 같지 않다고 한다. 사람 키보다 더 커다란 항아리 유적을 바로 코 앞에서 볼 수 있는 특혜를 누렸다. 마치 크레타 섬에 가서 크노소스 궁전에서나 볼 법한 항아리이다.
발굴단 단장의 허락 아래 경비소장의 눈치 볼 것 없이 옛 7천 년 전 왕궁터를 자유롭게 쏘다니는 특혜를 마음껏 누린다. 그리고 지연과 지한 두 젊은 연구원의 구석구석 카니쉬 왕궁과 아랫마을 세계무역센터 카룸의 힛타이트 유적 발굴과 유물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원 없이 듣는다. 어느 날 여기서 나도 발굴단원이 되어 유물을 조사하고 있을 것만 같다. 다음 생에서라도 말이다.
추억과 역사의 큘테페
그들이 떠난 후 나는 다시 웃마을 카니쉬 왕궁터로 다시 올라갔다. 왕궁터 옆 양지바른 곳에 준비한 커피 보온병을 놓고 자유로운 바람으로 동행한 나의 평생지기에게 두 번 절을 하였다. 기도하였다. 부디 이렇게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건강하던 모습으로 소요하기를. 꽃피고 벌나비 천국인 이곳에서 그대도 그렇게 향기롭고 자유롭기를. 정작 그는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것임을 안다. 길을 걸으며 슬퍼하지 않기를, 아프지 않기를, 부디 행복하기를...
튀르키예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수많은 이들의 슬프고 가슴 아픈 이별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을 이제는 안다. 그저 먼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나의 친구, 나의 학생들에게 일어난 일이고 나는 그 땅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터키에 오자마자 지진 어플을 다운받아 매일 지진이 나고 있는 지역을 알림으로 받는 일상을 살고 있다. 이미 튀르키예 사람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이 슬픔을 감당못할 만큼 어리거나 젊을 때가 아니라서, 내가 이만큼 인생을 산 뒤에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슬픔을 알고 남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알게 되었을 때 나의 학생들을 만나서 얼마나 불행 중 다행인가. 그저 ‘세월이 약’이라느니 시간을 견디라느니 입에 발린 위로 대신 묵묵히 옆에 있어 같이 가슴 아파할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큘테페는 이렇게 나에게 마음의 고향이 되어가는 것 같다. 젊어서는 아이와 소풍을 가던 곳, 나이 들어서는 반려자와 마음으로 소풍을 떠나 나를 한 뼘 성숙시켜주는 안식처가 된 곳. 큘테페는 나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다. 언젠가 나도 자유로운 바람이 되어 그곳에서 노닐고 있을 것만 같다.
다음 이야기는 카이세리 4천 미터 설산 에르지예스산과 아름다운 데벨리 마을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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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원 칼럼니스트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K Classic 콘텐츠연구소 소장. 튀르키예(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교수와 헝가리 ELTE대학교에서 한국학과 교수, 서울대 규장각과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여 년간 해외 한국학 학회 발표와 특강, 외국 학생들과 한국 유적지를 답사하고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로 홍익대 문학박사를 받은 국어학자이자 동국대에서 삼국유사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다. 현재 월인석보와 삼국유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하여 국내와 유럽을 중심으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월인석보, 그대 이름은 한글대장경>, <석보상절, 훈민정음 조선대장경의 길을 열다>,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자장과 선덕여왕의 신라불국토 프로젝트>, <삼국유사, 원효와 춤추다>, <여행하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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