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라 미인 도화녀와 진지왕의 사랑 노래 이어서
인터뷰365 정진원 칼럼니스트 = 도화녀의 아들 비형랑의 이야기 차례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노래하는 삼국유사, 오늘은 비형랑의 노래를 들을 시간이다.
처음에는 단지 진지왕과 도화녀의 꿈같은 ‘7일간의 사랑’으로 ‘사랑과 영혼’같은 영화를 찍는 스토리텔링으로 접근했었다. 그런데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도깨비의 원조가 비형랑(鼻荊郞)이라는 사실과 도깨비와 귀신의 어렴풋한 차이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
비형이 ‘목랑(木郎), 두두리’ 등으로 불리는 도깨비의 원조 격이라는 것이다. 도깨비가 귀신들을 부려먹고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 조상들은 도깨비를 귀신들의 우두머리로 생각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를 낳은 도화녀와 진지왕의 위상은 마땅히 그에 걸맞게 신격화되어야 한다. 도화녀는 그냥 복사꽃 아가씨가 아니라 귀신 쫓는 아들의 어머니로서 복숭아로 상징되는 벽사(辟邪)의 화신 그 자체이며 아버지인 진지왕의 석연찮은 폐위와 유폐, 죽음도 다시 생각해야 할 일이다.
그 둘의 관계가 얼마나 비범하였기에 ‘처용’처럼 용왕의 아들도 아닌 폐위된 왕의 아들 ‘비형’이 신출귀몰한 반인반신이 될 수 있었단 말인가. 진지왕은 죽어서 넋조차 성스러운 황제가 되었는데 그가 연모한 도화녀는 왕의 승은도 일언지하에 거절할 만큼 왕을 좌지우지하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복숭아에서 태어났다는 일본의 유명한 옛날이야기 모모타로(桃太郞) 스토리텔링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궁금해진다. 살펴보니 구구절절 비형랑의 내용과 비슷한 모양새이다. 귀신을 무찌른다는 같은 권선징악의 주제는 모태가 비형랑에서 전래되었으리라는 직관도 생겼다.
어릴 때 옛날 이야기로만 듣던 이야기가 이렇게 역사와 만나고 이웃나라에 전해져 랑데부할 때 이야기의 힘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구전이든 문자든 기록이 있어 이렇게 시공을 초월해 날실과 씨실과 엮이는 신기한 경험. 차근차근 풀어나가보자.
처용랑을 능가하는 비형랑
그렇게 도화녀와 진지왕 둘 사이에서 태어난 비형랑(鼻荊郞), 비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신출귀몰한 귀신 무리의 리더로 활약하며 진지왕을 계승한 진평왕을 돕는다. 삼국유사에는 이렇게 전한다.
진평왕이 비형의 소문을 듣고 아이를 궁중에 데려다가 길렀다. 비형은 밤마다 멀리 월성을 날아 서쪽 황천 언덕 위에 가서는 귀신들을 데리고 놀았다.
왕은 비형에게 “네가 귀신들을 데리고 논다니 그게 사실이냐. 그렇다면 너는 그 귀신의 무리들을 데리고 신원사 북쪽 개천에 다리를 놓도록 해라.” 하니 비형은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놓고 그 다리를 귀교(鬼橋)라고 했다.
귀신의 무리들은 비형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하여 달아났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다음 글을 짓고 써 붙여 귀신을 물리친다.
비형랑 주문(呪文) 노래
성제(聖帝) 진지왕의 넋이 아들을 낳았으니
비형랑의 집이 바로 그곳일세.
날고뛰는 모든 귀신의 무리
이곳에는 머물지 말지어다.
(聖帝魂生子 鼻荊郎室亭 飛馳諸鬼衆 此處莫留停)
비형의 출생과 귀신을 제어하는 신통력
비형은 결과적으로 아버지를 폐위시키고 왕 자리에 오른 진평왕이 거두어 키우고, 그는 하룻밤 사이에 ‘귀신다리(鬼橋)’를 놓는 등 신통력을 갖춘 인재로 자라난다. 모든 귀신들의 우두머리이자 능력자로 신격화된 비형. 곧 처용의 얼굴을 그려 붙이면 ‘벽사(辟邪)’의 의미가 되듯이 비형에 대한 노래도 그렇게 부적의 효과를 나타낸다.
그 첫 구절이 심상치 않다. ‘성스러운 황제의 혼이 아들을 낳았으니(聖帝魂生子)’로 시작된다. 성제(聖帝)는 진지왕이다. 그의 태자 시절 이름은 불교 전륜성왕의 이름 넷 중 하나인 금륜(金輪)이었다. 사륜(四輪)은 금은동철(金銀銅鐵)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의 형 이름이 ‘동륜’인 것에 비하면 동생 아름이 가장 높은 금륜인 것도 짚고 넘어갈 일이다. 물론 사륜(舍輪)이라고도 쓰여 ‘쇠’로 읽고 철륜이라 보기도 하지만 필자는 ‘금(金)’의 오기로 본다.
이로써 최소한 신라 시대의 백성들은 진지왕을 주색에 빠져 정사를 어지럽힌 왕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일연은 이와 같이 자칫 역사적으로 왜곡되거나 폄하될 법한 이야기들도 찬찬히 되새기는 장치를 마련해 행간의 뜻을 전하고 있다.
도화녀와 비형랑
한편 노래는 진지왕의 아들이 대단해 얼씬거지리 말라는 내용인데 ‘삼국유사’의 제목은 ‘진지왕과 도화녀’가 아니라 ‘도화녀와 비형랑’이다. 그 앞의 왕들의 제목은 ‘지철로왕’과 ‘진흥왕’이다. 삼국유사는 왕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도 그 역할의 경중에 따라 쓰고 있다. 그러나 ‘진지왕’이 없으면 이 두 모자의 이야기는 성립되지 않는다. 일연은 ‘도화녀와 비형랑’의 예사롭지 않은 외모와 품격, 능력을 통해 진지왕의 역사적 누명을 벗겨주려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아울러 하게 된다.
왜냐하면 진지왕이 주색에 빠져 황음하고 정사가 어지럽다고 했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은 그렇지 않다. 즉위한 후 대사면을 실행했고 중국 진나라와 수교했으며 백제군을 물리치고 성을 쌓는 등 4년 동안 한 일이 많았던 것이다.
신라시대에는 왕위를 계승하는 성골이라는 골품을 지키기 위한 근친간의 결혼이나 자유로운 애정 풍속이 많았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불륜이 태반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지왕처럼 ‘신사의 품격’을 지키며 한 여인을 죽어서까지 사랑하고 결실을 맺는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이 ‘황음’하여 폐위되었다는 시작은 뭔가 예사롭지 않다. 저자 일연의 숨은 의도를 누가 찾아낼 수 있을까.
도깨비의 원조 비형랑
처용이 용왕의 아들이자 9세기 헌강왕의 발탁으로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처용의 아내가 역신을 상대하여 결과적으로 처용과 함께 역병을 물리쳤다면 도화녀와 비형도 비슷한 점이 있다.
도화녀는 결국 강단있게 지조를 지키고 훗날을 도모해 성인이 된 황제 진지왕과 역시 반인반신의 아들 비형을 낳았다. 비형은 귀신을 부리는 신출귀몰 비범한 청년으로 성장해 진평왕을 돕고 그의 수하가 되었다. 그런데 비형의 행동이 ‘두두리, 두두을’이라 부르는 대장장이나 도깨비 방망이로 상징되는 원조로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평왕의 명령으로 비형이 추천해 나랏일을 시킨 길달(吉達)의 이야기도 많은 다빈치코드를 남긴다. 결국 비형은 여우로 둔갑해 도망간 신통력의 귀신 길달을 처단해 귀신의 무리들을 조복시켰다. 여기서 역신이나 귀신의 무리는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전염병이나 흉한 일들 삿된 것을 통칭한다. 혼령이나 신적인 존재의 힘을 빌어 퇴치하고 싶었던 백성들의 염원을 들어주는 신통력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모모타로 도태랑과의 관련성
이 비형랑의 이야기가 일본으로 건너가 아기가 없거나 못 낳는 노부부나 젊은 부부에게 물에서 떠내려온 복숭아 동자로 사랑받는다.
모모타로(桃太郎)는 일본 전설의 대중적인 영웅으로 복숭아를 뜻하는 ‘모모(桃)’와 남자 아이를 뜻하는 ‘타로(太郎)’가 합쳐진 이름으로 복숭아 동자라 부른다. 묘하게 도화녀의 ‘도’와 비형랑의 ‘랑’이 합쳐진 이름이다.
태어난지 몇 년이 흐른 뒤 모모타로는 부모를 떠나 약탈을 일삼는 귀신(오니)를 없애기 위해 오니가시마(鬼ヶ島)라는 섬으로 간다. 모모타로는 가는 도중에 말하는 개와 원숭이, 꿩을 만나 자신의 임무를 도와줄 친구가 되어 함께 행동하였다. 섬에 도착한 모모타로와 친구들은 오니들의 요새로 쳐들어가 우두머리인 ‘우라(温羅)’와 그의 군대를 무찌르고 항복시킨다. 모모타로는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고 그의 가족들과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그와 관련된 노래도 비형랑 노래에 비해 최근이지만 이렇게 전해진다.
모모타로의 노래(桃太郎さんの歌)
모모타산, 모모타로(桃太郎さん、桃太郎さん)
허리에 찬 수수경단(お腰につけたきびだんご)
내게 하나 주지 않겠니(一つ私に下さいな)
드려요, 드려요(あげましょう、あげましょう)
지금부터 귀신을 잡으러(今から鬼の征伐に)
같이 가면 드려요(ついてくるならあげましょう)
이처럼 비형랑과 도태랑은 굉장히 스토리텔링이 닮아 있다. 귀신을 쫓는 수수팥떡의 붉은 색 경단의 벽사 의미도 같다.
복숭아 나무와 도깨비 방망이
그렇다면 복숭아는 도대체 무엇을 상징하는가. ‘회남자’에 보면 하나라 유예라는 나쁜 임금을 복숭아나무로 만든 큰 방망이로 후려쳐서 죽여 폭정을 막았다고 한다. 이 일이 있고난 후 귀신은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옛날에 귀신의 두목이 복숭아나무로 맞아 죽은 일이 있으므로 귀신은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한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복숭아는 오목(五木) 가운데 가장 정기가 좋은 나무로서 이른 봄 찬 기운이 가시기 전에 일찍 피고 잎이 나기 전에 꽃이 먼저 피는 양기의 꽃으로 음기를 쫓는 힘이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복숭아는 양(陽)을 상징하기 때문에 양에 굶주려 떠도는 음귀에게 상징적인 양을 부여하여 귀신을 흡족하게 원을 풀어준다. 그렇게 해줌으로써 해코지를 면하는 데 뜻이 있다. 또 복숭아가 다산의 상징이라 귀신이 무서워한다는 설도 있다.
비형랑의 노래라는 두레박
누구나 한번쯤 짝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못 이룬 채 가슴에 담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선덕여왕을 짝사랑하다 불귀신이 되고 만 ‘지귀’처럼 전 생애에 걸친 운명적 비련으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마음 한 귀퉁이에 비오고 바람불고 눈내리는 날 문득 꺼내보는 한 장의 사진같은 것으로 간직한 채 지내는 것이다.
그러나 왕이 되어서도 마음에 드는 한 여인의 뜻을 존중하고 죽어서까지 기다리며 기필코 사랑을 이루어내는 진지왕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리고 그에게 전혀 모자람 없는 한 여인, 도화. 평민의 신분이지만 어떤 고관대작의 부인이나 공주, 왕비보다 사랑의 정신은 드높았던 신라의 여인의 멋진 모습이다. 한 지아비의 아내로서의 위상과 왕의 총애를 맞바꿀 수 없다는 기상. 도화녀는 미인으로 이름 높았다기보다는 자유로운 사랑이 성행하던 신라 시대에 한 남자에 대한 사랑 천명으로 빛났던 여인이면서 걸출한 비형의 어머니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랑과 영혼’으로 번역되었던 ‘Ghost’라는 유명한 외국 영화가 있었다. 한 남자가 죽어서도 사랑하는 여인을 잊지 못해 무당의 몸을 빌려 사랑을 전한다는 스토리이다. 그 이야기의 원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진지왕과 도화녀의 ‘사랑과 영혼’은 죽어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사랑을 이루고 반신반인의 특별한 아들 비형을 낳는 것으로 귀결된다.
삼국유사 미인 특강에서 도화녀를 선택한 고등학교 남학생들은 또래인 비형랑의 유전자를 알아본 것일까. 그러기 위해서는 도화녀같은 여성상이 이상형이어야 함을 직관적으로 간파한 것일까.
생사를 초월한 사랑과 그 결실이 인간을 구하는 노래의 주인공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건져 올릴 수 있을까. 아직 살아 있으니 생사를 초월할 필요까지는 없는 사랑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얼마나 기다려 봤을까. 그 결실이 반인반신이면 과연 행복할까.
문득 살아있어서 다행이고 아직 넋이라도 기다려 볼 시간이 남아있어 행복하다. 비범하지 않고 건강하고 평범하디 평범한 결실인 것이 더욱 고맙다. 올해는 부디 ‘내 복에 남의 덕에’ 서로서로 마음을 전하는 사랑이 가득한 한 해가 되시기를 빈다. 그 사랑 이루어지도록 비형의 노래 한 가락 부적으로 적어두는 일도 잊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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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원 칼럼니스트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K Classic 콘텐츠연구소 소장. 튀르키예(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교수와 헝가리 ELTE대학교에서 한국학과 교수, 서울대 규장각과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여 년간 해외 한국학 학회 발표와 특강, 외국 학생들과 한국 유적지를 답사하고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로 홍익대 문학박사를 받은 국어학자이자 동국대에서 삼국유사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다. 현재 월인석보와 삼국유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하여 국내와 유럽을 중심으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월인석보, 그대 이름은 한글대장경>, <석보상절, 훈민정음 조선대장경의 길을 열다>,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자장과 선덕여왕의 신라불국토 프로젝트>, <삼국유사, 원효와 춤추다>, <여행하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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