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그 이후 사람들 이야기
인터뷰365 정진원 칼럼니스트 =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이름도 아름다운 조계종 산하 국제 공익 재단법인이 터키에 왔다.
가장 지진피해가 컸던 하타이지역 이스켄데룬(İskenderun) 도시에 지진피해이재민을 위한 컨테이너 주택 100채 기부와 그 안에 들어갈 냉반방 에어컨과 인덕션 각 370개를 기부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내가 사는 도시 카이세리 뷴얀시에 지진피해이재민들의 생필품 지원도 쾌척하였다.
마침 조계종 사회부장 범종 스님과 안부를 묻다가 소식을 알게 되어 부랴부랴 이스켄데룬 피해 현장 동행과 카이세리시 뷴얀(Bünyan) 마을에 기부를 연결한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이야기하고자 한다.
아름다워서 비현실적인 지진 재해현장 이스켄데룬 가는 길
이스켄데룬에 가기 위해서는 내가 사는 카이세리에서 출발해 아다나를 거쳐 가야 한다. 카이세리 오토가르(시외버스터미널)에 새벽 4시 20분에 갔더니 아다나 5시 출발 버스가 우리를 태우고 망설임 없이 바로 떠난다. 가끔 터키는 ‘인도’ 같다고 보면 된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 엄격할 것 같다 생각하면 외려 느슨하고 별일 없겠지 하면 별일이 생기는 나라이다. 이번에도 그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럼 9시에 도착 예정이 30분 당겨지겠지 했으나 어김없이 9시에 도착했다. 여기서 ‘이름다운 동행’ 관계자와 취재진을 만나 이스켄데룬 버스에 합류해 2시간쯤 더 달리면 이스켄데룬 도시가 나타난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도시지만 아다나에서 가는 내내 컨테이너와 건축 자재와 장비들을 실은 트럭만이 줄을 잇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새 빌딩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 유리창에 유리가 하나도 없다. 모두 금이 가 있거나 부서져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번듯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도시.
도심 이면도로로 접어들자 갑자기 버스가 출렁거리며 천천히 간다. 지진으로 땅이 갈라진 곳이라 한다. 지진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억세게 운 좋은 인생을 산 내가 불과 두 달 전 전례 없이 강력했던 지진의 현장에 걱정과 불안한 마음을 안고 들어선다.
지중해가 햇살에 반짝이는 항구 도시
도시는 아름다웠다. 지중해가 넘실거리고 햇빛이 찬란하였다. 지중해 도시 안탈랴나 그리스 섬에서나 볼 수 있는 부겐빌리아가 피어있고 살구나무에 살구가 조롱조롱 달려있었다. 그러나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어쩌다 단독주택에는 사는 사람이 있었으나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고층 아파트나 거주 시설은 텅텅 비어 있었다. 잔해는 많이 치워진 상태였지만 여전히 낮은 탄식이 나오는 곳들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이스켄데룬 군청은 다행히 무너지지 않아 우리는 군수를 만나 그간의 상황과 컨테이너 임시거주시설의 진행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마침 이스켄데룬 군청 앞에는 한국전쟁 참전 터키 군인들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이스켄데룬 항구에서 배를 타고 참전을 했다는 군수의 설명이 있었다. 아름다운 동행 상임이사 일화 스님은 그 말을 듣고 그때 도움을 받던 우리가 이렇게 돕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감사를 표하는데 우리 모두 공감하였다.
다행히 바닷가에 문을 열고 있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으며 더욱 이 아름다운 도시에 살다가 하루아침에 가족과 전 재산을 잃은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같이 살던 가족과 터전을 잃고 지내고 있을까. 얼마 전 식구를 잃은 터라 그 마음이 밟히고 밟혔다.
컨테이너 하우스와 텐트촌을 가다
그렇게 행렬을 이루고 도로를 지나던 컨테이너들이 마을을 이루는 곳에 갔다. 이름하여 ‘한국마을(KOREAN VILLAGE)’. 터키 한인회가 중심이 되어 기부한 마을이라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처음에 200채였는데 362채로 늘어났다.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순간이다.
터키인들이 한국 사람을 환대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35년 해외 배낭여행 원조인 내가 장담하건대 세상 어디에서도 이렇게 환영을 받아 본 나라가 없다. 그들은 한국을 정말 좋아하고 한국 사람을 형제로 대접한다.
‘한국마을’은 꽤 컸다. 지금도 계속 컨테이너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 안에 우리 LG 냉난방 에어컨과 인덕션까지 갖춰지면 최소한의 민생고가 해결된다.
현재는 텐트촌에 사는 이재민을 찾아가니 지중해 남쪽이라 5월 초인데도 천막 안 온도는 이미 50도가 넘었다. 그러나 그곳에도 어린이들은 여전히 활기차게 우리를 반기며 ‘규네이 코레(남한)’ 최고라고 좋아하였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사탕이나 볼펜이라도 챙겨오는 건데... 우리를 무리 지어 에워싼 어린이들 앞에서 취재진과 재단 스텝들은 난감하였다.
그랬더니 늙수그레한 전세버스 기사 아저씨가 볼펜을 한 보따리 가져와 산타 할아버지처럼 풀기 시작한다. 아 역시 터키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나라이다. 기사 아저씨는 이런 상황을 예견했던 것이다. 한편 고맙고 미안하였다. 할머니와 아줌마들도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한 할머니는 자신의 누추한 천막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들은 천막촌에서 컨테이너 집에 들어가기를 소원하고 있었다. 컨테이너도 한 사람이 겨우 살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공간이지만 그래도 그곳에는 식수와 샤워 냉난방이 되는 것이다. 부디 부처와 알라의 함으로 이 재난을 극복하기를. 인샬라.
다음 이야기는 카이세리 뷴얀시에 살고 있는 800명 지진피해 이재민을 만나 그들의 고충과 애환을 함께 나누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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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원 칼럼니스트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K Classic 콘텐츠연구소 소장. 튀르키예(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교수와 헝가리 ELTE대학교에서 한국학과 교수, 서울대 규장각과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여 년간 해외 한국학 학회 발표와 특강, 외국 학생들과 한국 유적지를 답사하고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로 홍익대 문학박사를 받은 국어학자이자 동국대에서 삼국유사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다. 현재 월인석보와 삼국유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하여 국내와 유럽을 중심으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월인석보, 그대 이름은 한글대장경>, <석보상절, 훈민정음 조선대장경의 길을 열다>,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자장과 선덕여왕의 신라불국토 프로젝트>, <삼국유사, 원효와 춤추다>, <여행하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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