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가 만난 백건우] 이제야 밝히는 내인생 희로애락
[김두호가 만난 백건우] 이제야 밝히는 내인생 희로애락
  • 김두호
  • 승인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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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피아니스트 백건우

- 사진 찍기는 어릴 때 시작한 취미생활
- 작가 데뷔는 과장 표현이지만 맞는 말
- 한 때 영화감독 꿈꿔
- "아내 윤정희가 배우로 사랑받는 모습 지켜보며 행복했죠"
백건우 피아니스트/사진=인터뷰365<br>
백건우 피아니스트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 오랜만에 백건우(76) 피아니스트와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자리를 함께했다. 국내 연주 일정으로 체류 중인 강남 쪽 호텔 부근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3시간 동안 지나간 인생 이야기며 지금 현실적으로 겪고 생각하는 문제를 두고 문답 대화를 나누었다.

몇 달 만에 만난 건장한 체구의 백건우 피아니스트는 이날 자신보다 작은 몸집의 필자를 품에 안아주며 따뜻한 정감의 반가운 인사를 해왔다. 그는 언제 만나도 조용한 목소리, 품격 있는 언행, 그리고 평화로운 온기를 느끼게 하는 남자로 변함이 없었다. 최근 9월 20일 자 조선일보에 ‘피아니스트 백건우, 사진작가로 데뷔한다’는 제목의 뉴스가 실렸다.

그의 이번 귀국 일정에는 슈만 신보 이후 2년 만에 발표한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 발매기념 연주가 잡혀 있다. 스페인 작곡가인 그라나도스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작곡가지만, 그의 곡은 스페인 민족음악의 낭만적이고 따뜻한 선율과 함께 세련되고 다채롭고 열정적이고 인간적인 매력을 안겨준다고 소개했다. 특히 백 피아니스트는 그라나도스의 피아노 모음곡 고예스카스를 40여 년 전 뉴욕에 머물 때 음악회에서 듣고 감동을 받았다는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건반 위의 구도자’란 호칭이 따라붙는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난데없는 ‘사진작가 데뷔’란 기사는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파리에서 활동하며 서울을 오고 간 백건우 윤정희 부부와 40년이 넘도록 가깝게 인연을 이어온 필자도 궁금해 그것부터 물었다.

내 제1희망은 ‘영화감독’이었다

- 사진작가 데뷔라니 오늘 조간신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내용을 보니 틀린 것은 없지만 ‘데뷔’란 말은 좀 부담스럽네요. 사진찍기와 영화감상은 평생을 두고 틈틈이 즐겨온 나의 취미 세계입니다. 이번 음반의 표지와 속지 사진이 내가 찍은 작품이죠. 영화 보기와 사진 찍기는 미국 유학(줄리아드 음악학교) 시절인 15살 무렵부터 비롯됩니다. 앵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작품이 될 수도 있고 기념사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어요.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 앨범에 수록된 사진을 설명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앨범에 수록된&nbsp;모든 사진은 백건우가 스페인 연주 여행 당시에 찍은 것들이다./사진=인터뷰365&nbsp;<br>
지난 19일 진행된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앨범에 수록된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앨범에 수록된 모든 사진은 백건우가 스페인 연주 여행 당시에 찍은 것들이다./사진=인터뷰365

- 대만에서 사진전도 준비 중이라는데

“대만에는 나의 연주뿐만 아니고 내 음악 밖의 활동에도 관심이 깊은 팬들이 많아요. 오는 11월 대만 연주 일정이 잡혀 있는데 그때 대만 공연관계자들이 나의 작품 사진전을 준비 중입니다. 그렇게 시작을 하게 되면 파리에서도 전시회를 추진하려고 해요. 그렇지만 작가 활동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사진작가들이 함부로 행세한다고 건방지다 말할 겁니다.”

-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배우와 결혼까지 하게 된 것 같군요.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인 윤정희 여사 증세는 지금(9월 말 현재) 어떤지요?

“현재의 치료의학으로는 회복을 기대할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더 심해지지 않기로 바라면서 가족과 간병인, 도우미들이 매달려 뒷바라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점점 힘들어지고 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 가면 야단을 치고 큰소리로 소란도 피웠는데 이제 그런 기력도 없어서 가까이 의사와 치료시설이 있는 전문 병원으로 옮겨야 할지 걱정하고 있어요.”

피아니스트 백건우/사진=빈체로<br>
피아니스트 백건우/사진=빈체로 

- 평생을 두고 화제가 되는 영화는 모두 관람을 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지요. 명색이 영화평론가라는 저보다 영화 분석과 비평에 더 깊이가 있다는 생각을 할 때도 많았습니다.

“사실 고백하지만 내 꿈은 첫 번째가 영화감독이었어요. 두 번째가 사진작가였고요. 카메라를 둘러메고 다닐 때도 많았어요. 피아니스트는 희망 순위 세 번째였는데 내가 내 인생을 맘대로 바꿀 수도 없는 숙명 같은 거로 봐야지요.”

- 영화에 빠져들게 한 잊을 수 없는 작품은요?

“헤아릴 수 없이 많아요. 안소니 퀸, 앨런 베이츠 주연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비롯해 ‘아라비안나이트’, ‘아라비아의 로렌스’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작품은 모두 좋아했지요. 몇 번씩 할리우드가 있는 LA로 가려고 생각하다가 평생 동경만 하고 지나갔습니다. 다시 산다면 필경 영화감독을 할 겁니다.”

백건우 피아니스트/사진=인터뷰365DB<br>
지난해 인터뷰365 생명존중캠페인 '살자TV'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을 당시 백건우 피아니스트./사진=인터뷰365DB

- 우리 영화사에서 윤정희 여사는 빼놓을 수 없는 화려한 한국영화 황금기 은막의 히로인입니다. 잘생긴 천재 피아니스트를 남편으로 만난 순간부터 또 한 편의 드라마 주인공이 되어 많은 사람의 사랑과 선망의 눈길을 받고 살며 오랜 세월을 두고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살아오셨는데요.

“내 인생에서도 진희 엄마를 만나는 그 시기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즐거움에 취해 살았습니다. 영화배우와 결혼하는 것이 나에게는 환상을 맞이하는 행복이었지요. 아하, 그러고 보니 우리 부부는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사건도 겪었지요.”

- 1977년 유럽에서 발생한 북한 납치미수 사건이군요. 친북 동포 화가의 초청으로 스위스로 갔다가 유고슬라비아 공항에서 극적으로 탈출해 파리로 돌아간 사건이었지요. 국내 신문들이 연일 대서특필해 나라 안이 떠들썩했었지요.

“그때 진희 엄마는 임신 6개월째였어요. 24시간 동안 벌어진 그 사건은 악몽이었지만 지금도 트라우마가 남아 있을 정도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드라마였어요. 간혹 자다가도 그 순간이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요. 식은땀이 나 물 한 컵을 들이킵니다. 어느 해 유치원에 다니던 어린 진희가 귀가를 안 해요. 유치원에도 없고 집에도 안 왔으니 우리 부부는 졸도라도 할 만큼 공포에 떨었어요. 유괴라고 생각해 경찰로 달려갈 참에 마을 입구에서 발견했어요. 경비원과 함께 잠시 놀고 있는 거였지요.”

2008년 필자와 인터뷰 당시 백건우-윤정희 부부. 1년 내내 이어지는 세계 각국 연주 여행길에도 늘 함께였던 잉꼬 부부였다./사진=인터뷰365DB&nbsp;
2008년 필자와 인터뷰 당시 백건우-윤정희 부부. 1년 내내 이어지는 세계 각국 연주 여행길에도 늘 함께였던 잉꼬 부부였다./사진=인터뷰365DB 

- 팔순을 눈앞에 두기까지 긴 세월을 두고 세계 여러 도시를 바꾸어 가며 연주 여행을 해오셨습니다. 마음에 남아 있는 행복하고 짜릿한 공연 추억도 많겠지요?

“많아요. 아주 강렬하게 남아 있는 연주 무대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라흐마니노프(1873∼1943) 피아노곡 전곡을 2일간 연주해 러시아 음악계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을 때가 문득 떠오릅니다. 공연 극장 사상 처음이라는 극찬이 쏟아져나왔어요. 보통 5명이 나누어 연주하는 곡을 혼자서 해낸 건데 거대한 공연장에 좌석이 모자라 복도까지 의자를 채워 객석을 만들었던 광경이 기억나요. 런던에서도 8000명이 운집한 연주 무대에 앉기도 했지만, 러시아 공연에 비할 바가 아니었어요.”

- 건강 유지를 어떻게 합니까?

“피아니스트는 연주 동작이 모두 운동입니다. 마음이 연주곡에 집중해 잡념이 끼어들 자리가 없고 몸은 손가락에서 팔, 발가락 끝에서 머리끝까지 리듬에 맞추어 저절로 전신 운동 작용을 합니다. 피아노에서 그런 건강 에너지가 나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도시의 골목길을 걷는 취미가 있어요.”

필자는 국내 연주 일정으로 체류 중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눴다./사진=인터뷰365

- 세계 연주 여행길을 동반하던 아내가 병상에 있는 것이 가장 큰 고통처럼 보입니다. 앞으로의 여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매일 생각하지요. 자유롭고 평화롭기를 바라지만 조용히 연주만 하며 살 수 없는 일들이 벌어져 힘들고 혼란스러워요. 진실이 가려지고 무너지는 문제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어요. 지금 우리 사회가 전통적인 도덕, 기본적인 예절문화가 붕괴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 한동안 처가 가족과 소송문제로 마음고생도 많았던 것 같은데 이제 해소가 되었습니까?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서울남부검찰청이 계류 중인 나의 고소사건 기록을 검토하고 재수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면서 경찰에 재수사 요청을 하였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 윤정희 여사에게 건강에 따른 기적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알츠하이머 환자를 간호해보지 않은 사람은 함부로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곁에서 지켜 본 사람만이 그 가족의 심경을 헤아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진희 엄마는 연기 활동을 그만둔 지 오래지만 언제나 주인공, 주연배우, 스타의 환상을 버리지 않고 살았어요.

솔직히 남편으로 힘들 때도 많았어요. 그런데도 파리에서는 무명의 한국인이지만 귀국하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여배우의 모습으로 살아와 지켜보는 가족들도 행복했었지요. 팔순을 앞둔 지금 지나간 우리 가족의 삶을 돌이켜 보면 웃고 즐거워하고 행복했던 시간만큼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도 많았답니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김두호
김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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