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가 만난 人] '女프로듀서 1세대' 김진희 회장 "아흔 앞둔 지금도 꿈 꾸며 산다"
[김두호가 만난 人] '女프로듀서 1세대' 김진희 회장 "아흔 앞둔 지금도 꿈 꾸며 산다"
  • 김두호 인터뷰어
  • 승인 2022.07.0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365] MBC 첫 여성 교양제작국장 출신 PD 김진희

- '절망은 없다', '태권동자 마루치'등 연출

- MBC떠나 서울예대 교수 거쳐 영상기업 창업

- 창작에 대한 열망 여전해...남은 생애 문화사업 헌신하고 파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 김진희(1936∼ ) 전 MBC 교양제작국장은 1960년대 라디오시대에 국내에서 전인미답(前人未踏)이었던 여성 프로듀서의 길로 맨 먼저 들어선 방송 연출 분야 1세대 커리어 우먼이다. <전설따라 삼천리> <절망은 없다>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등 라디오시대 고청취률의 히트 프로그램이 그의 연출작품이다. TV가 등장한 뒤에는 명작으로 꼽히는 <아리랑 아리랑> <역사의 고향> <소나무> <장승> <도깨비>를 비롯한 교양 다큐 영상프로 연출의 맏언니 프로듀서로 굳건하게 활동영역을 지켜나갔다.

꽃같이 화사했던 청장년기를 시간과 창의력이 격돌하는 시청률 경쟁의 방송국에서 보내는 동안 여자 프로듀서로 기죽지 않고 활동할 수 있었던 삶의 이면에는 지금의 직업 직장여성들이 상상할 수 없는 암묵적 양성불평등 사회에서 겪은 설움과 분노, 인내와 투쟁의 고백들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온다.

MBC 첫 여성 교양제작국장 출신으로 방송 연출 분야 1세대 커리어우먼 김진희 회장. 방송사를 떠난 후에도 서울예대 교수를 거쳐 영상 제작전문 기업 ‘이소도’를 창업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재단설립을 준비하고 있다는 김 회장은 문화사업에 헌신하고 싶다고 했다. 아흔을 눈앞에 둔 지금도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1980년대 초입에 브라운관의 천지개벽이라고 할 컬러TV시대가 열렸다. ‘청취자 여러분’이 ‘시청자 여러분’으로 바뀐 원색 TV영상 프로그램의 전파송출이 방송의 대로를 열어가면서 프로듀서라는 직업도 남녀 인재들에게 선망의 인기 직종으로 떠올랐다. 차츰 방송사도 늘어나고 치열한 시청률 경쟁 환경이 프로듀서들에게 거친 스트레스로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으나 MBC의 맏언니 프로듀서는 흔들리지 않는 초심을 지키며 교양 문화 다큐 제작 부문의 사령탑인 첫 여성 교양제작국장을 맡기도 했다.

방송사를 떠나면서 바로 서울예술대로 옮겨 후진양성에 열정을 바치고 정년퇴임, 이어서 영상 제작전문 기업 ‘이소도’를 창업, 공연예술과 시문학의 융합을 시도한 독창적인 프로그램 <음유시인의 도시 - 청색늑대>로 새로운 공연 콘텐츠의 장르를 열기도 했다.

아흔을 눈앞에 둔 지금도 영상문화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재단설립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김진희 원조 프로듀서를 만났다. 

나이 의식 않고 꿈 꾸며 산다

- 근황부터 전해주시지요.

"내가 참 예전사람인가 봐요. 가끔 오래전에 헤어진 지인들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안부를 나누려고 전화를 하면 아직도 살아 계시냐는 친구들도 더러 있어요. 가깝던 유길촌(전 MBC제작국장) 사우도 얼마 전 떠나가더군요. 며칠 전에는 라디오 시절부터 친하던 최불암(배우) 씨에게 전화했더니 아주 반갑게 만나자고 응답을 해와 기분이 좋았어요.

내 근황? 나 아직 멀쩡하게 내 나이를 의식 않고 일을 벌이려는 꿈을 꾸며 살아요. 서울예대 정년퇴임 후 영상기업 <이소도>를 창업하고 각계 인사 100명을 참여시켜 한국영상창조회란 단체도 창립해 기발한 영상포럼도 주최 했지만 창의적인 문화콘텐츠로 주목을 받은 것 뿐 재정적인 기초를 구축 못해 손을 놓았어요. 지금은 아주 획기적인 구조의 미래형 문화재단을 준비하고 있는데 코로나 사태로 동작을 중단하고 있습니다."

- 미래형 문화재단이라면?

"<음유시인의 도시 - 청색늑대>란 제목의 공연 프로그램 기억나시지요? 2008년 3월 30일 문화일보 아트홀에서 현대시 100주년 기획 공연으로 화제를 모았을 때 인터뷰365가 뉴스로 보도해준 적이 있어요. 잠든 밤 보름달을 보며 울부짖는 청색늑대의 몽환적인 이미지를 시문학과 융합해 무대에 올린 공연이었지요.

지금 영상예술이나 무대 공연분야도 메타버스 테크놀리지와 연계해 놀라운 콘텐츠를 창출해내야 합니다. 그런 창조적 미래형 공익재단을 만들려고 몇 년 째 준비를 해왔어요.

그 놈의 코로나 사태가 밀어닥쳐 나 같은 노인들을 집안에 묶어두는 별난 시절이 와 그저 주변의 지인들과 탁상공론만 반복해 왔어요. 나는 아직도 저작권과 특허를 수없이 받아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요. 가족도 없으니 내가 가진 물심양면의 능력을 기꺼이 문화사업을 위해 바치려고 해요."

- 지금 여의도 자택에서 동생인 김청자 교수(단국대 공연예술과 명예교수 / 문학박사)와 두 분이 사시지요? 두 분 다 미혼으로 일생을 곁에서 함께 사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 뭐 자랑거리는 아니고 왜 결혼 안하느냐는 질문에 평생 대답을 올바르게 한 적이 없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프라이버시이고 남들에게 밝혀야 할 이유도 없고 해서 그냥 얼버무리며 말했는데 이제 진심을 밝히고 싶군요. 나는 아주 독실한 가톨릭 교회 자매입니다. 생전에 김수환 추기경 님이 우리집에 자주 오실 정도로 가까이에서 저를 보호도 해주셨지만 수녀복을 안 입고 살았다 뿐 수녀라는 의식을 가지고 사생활에서 언제나 기도하는 삶을 살았어요.

프랑스에서 연극전공의 박사학위 논문 ‘꼭두각시 놀음의 연금술적 해석’을 발표해 그곳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한 동생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평생을 단국대 교수로 강단에서 보냈는데 나보다 네 살 적은데 아마 나와 비슷한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고려대 국문과 재학 중 성우 1기 합격하며 방송사 입사...당대 최고 인기프로그램 연출

- 방송국 시절 초창기인 1960년대는 많은 직장사회가 여성이 결혼하면 퇴사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결혼을 안했거나 못한 이유가 그런 데 있을 거라는 주변사람들의 추측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었군요.

"지금 밝히지만 여자가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 두는 풍조가 사실이었어요. 아기 낳고 살림하면서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모습을 아주 구차하게 생각들 했어요. 우리 방송사도 그런 분위기였던 건 부인할 수 없지만 만년 미혼인 나의 속사정은 앞에서 말한 그런 이유가 뚜렷이 있었어요. 그리고 나이가 많은 고참 선배대열에 합세하면서 노골적으로 여자이기 때문에 “X차는 비켜달라(퇴사)”는 상사도 있었어요."

방송 연출 분야 1세대 커리어우먼 김진희 회장. 코로나19사태가 터지기 전 동생 김청자 교수(단국대 공연예술과 명예교수)와 함께 한 제주도 여행길에서. 

- 방송사에 입사하게 된 뚜렷한 동기가 있나요?

"라디오시대에도 최고 인기 프로그램은 연속극 드라마였어요. 얼굴도 안보이고 목소리만으로 눈물나게 감동을 주고 인기를 모으는 성우가 되고 싶은 것이 젊은이들의 꿈이 되었지요. 나도 고려대 국문과 재학 중이던 1961년 MBC라디오 성우 1기로 합격했지요. 그러다가 졸업 후 여자들이 넘보기가 어렵던 드라마와 교양 오락 아동용 프로그램 연출팀으로 진로를 바꾸면서 그 길이 내 인생의 전부가 되었어요."

- 연출 프로 중 라디오 시절에 히트시킨 프로도 많았지요? 국립극장 공모 희극 당선작가로도 주목을 받기도 하셨고.

"가난으로 꿈을 잃고 좌절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계몽프로그램인 <절망은 없다>와 지방의 전래 야담이나 역사 이야기를 극화한 <전설따라 3천리>를 각각 10년씩 이어갔지요. 어린이 청취자를 대상으로 한 <무지개 마을>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등도 대박이 난 프로였지요.

국립극장이 대대적으로 시행한 공모사업에서 희곡 <바리더기>가 당선되어 뉴스 메이커가 되기도 했지만 하는 일들이 많아서 꾸준히 희곡 창작활동을 하지 못한 것도 지나간 내 인생에서 아쉬운 부문이지요."

"'여자는 나서지 말라'던 그시절...MBC 첫 여성 국장 승진, 만감 교차했죠"

-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듣던 7080세대에게는 모두가 추억의 프로들입니다. 국내 프로듀서 1세대인 최창봉 사장 시절인 1992년에 교양제작국장으로 재직하셨지요?

"경기여중 시절에 6.25를 겪고 격랑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지켜보며 성장하고 직장여성으로 자리를 차지하기가 어려운 방송사에서 처음 국장직으로 승진했을 때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어디서나 유교문화의 의식이 남아있어서 직장사회는 남성 중심으로 돌아갔어요. 매사에 여자가, 여자는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묵시적 암묵적 룰이 통하던 시절의 마지막 세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 남성 우위의 사회에서 여자로 살지 않고 남자로 사는 여자이셨군요.

"그 말 잘 하셨어요. 난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지지 않았어요. 자정이 넘도록 대작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지만 정신을 잃지 않고 처신을 해서 나쁜 소문을 듣지 않았지요."

MBC 첫 여성 교양제작국장 출신으로 방송 연출 분야 1세대 커리어우먼 김진희 회장.

- 부모님과 집안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아버지는 서울 출신이고 어머님은 개성 출신입니다. 우리 어머님은 105세까지 아주 맑은 정신으로 건강하고 곱게 사시다가 어느 날 거실 의자에 앉아 졸고 계시는 줄 알았는데 잠자듯이 떠나셨어요. 내 나이 여든일 때인데 여의도 주민 중 최고령 나이를 기록하셨지요. 호수돈 여고를 졸업하신 신여성이었고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사관학교에 입학하셨다가 연변에 활동 근거지를 둔 독립군 활동을 꿈꾸며 자퇴하신 이력이 있으셨어요. 3.1운동의 애국함성이 울려 퍼진 아우내장터 가까운 곳에서 사시기도 하셨어요. 아마도 조부께서 넉넉한 재산을 물려주셨던 것 같고 백부께서는 서울 종로에서 큰 포목상을 하며 집안을 이끄셨는데 나는 명륜동에서 태어났어요."

"여전히 창작에 대한 열망 안고 삽니다"

- 어릴 때 기억에 남는 추억이라면?

"내 이름이 그 유명한 시조시인이기도 한 송도 기생 황진이에서 따왔어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고 사춘기 때 왜 하필 기생이름으로 작명했는 지 콤플렉스를 심하게 겪기도 했어요. 아버지가 딸이 출생할 당시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어 크게 화제가 된 이태준 신문소설을 보면서 그만 황진이란 인물에 푹 빠져 있다가 딸 이름으로 가져오신 거라고 해요. 그러나 하필이면 기생의 대명사 같은 분의 이름이라 심리적으로 부끄럽고 싫어했으나 성장하면서 선비들을 압도한 그분의 문학혼과 인품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이태준 작가는 월북해 김일성에게 충성하다가 숙청된 인물로 <향수>의 정지용 시인과 동시대에 활약한 작가였어요."

- 이제 남기고 싶은 말씀, 젊은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시지요.

"내가 서울예대 교수 시절에 ‘시간, 공간, 인간’을 3위 1체 창작 예술의 주제로 내걸고 영상문화 창작사업체인 ‘이소도’를 창립했어요. 문화사업이 목적이지만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으로도 성공하겠다는 야심으로 출범시켰지만 재정적 수지 균형을 맞추지 못해 손을 뗐어요. <이소도>는 삼국시대 이전 옛조상님들이 신령한 땅의 풍요를 기원하며 솟대를 세운 일종의 성역을 의미합니다. 죄인이 그 안에 들어와도 처벌을 못하는 금기성역이 소도입니다.

저와 소통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던 김수환 추기경님도 그 명칭을 좋아하셨어요. 저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창작에 대한 열망을 잠시도 버리지 않고 삽니다. 인생은 평생을 두고 공부하고 그 지식을 지혜롭게 창의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가야 후회가 없습니다. 주어진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옳은 길을 향해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기면 그 뒤를 많은 사람들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게 창의력입니다. 개척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권합니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관련기사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신도림로19길 124 801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737
  • 등록일 : 2009-01-08
  • 창간일 : 2007-02-20
  • 명칭 : (주)인터뷰365
  • 제호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명예발행인 : 안성기
  • 발행인·편집인 : 김두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희
  • 대표전화 : 02-6082-2221
  • 팩스 : 02-2637-2221
  • 인터뷰365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interview365.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