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가 만난 人] 세계특공무술연맹의 '대모'된 은막의 스타 최선아 (2)
[김두호가 만난 人] 세계특공무술연맹의 '대모'된 은막의 스타 최선아 (2)
  • 김두호 인터뷰어
  • 승인 202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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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익 세계특공무술연맹 총재 겸 TK그룹 회장-배우 최선아 부부를 만나다(최선아 편)
- 1980년대 인기 미녀 여배우로 활약...결혼 후 미국서 35여년 간 행복한 가정 일구며 '제2의 인생'
- 남편이 총재로 있는 세계특공무술연맹 '대모'...영화 제작자로도 활동 예정
이원익 세계특공무술연맹 총재 겸 TK그룹 회장과 결혼해 미국에서 행복한 가정을 일구며 세계특공무술연맹 제자들의 '대모'역할을 해온 1980년대 인기 여배우 출신 최선아 씨. 결혼과 동시에 사실상 연예계를 은퇴했지만, 이젠 배우가 아닌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며 영화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이원익-최선아 부부의 인터뷰가 끝날 무렵, 인터뷰 장소였던 이 회장의 집무실을 찾은 장남 이원영(사진 중앙)씨와 함께한 가족의 모습을 '인터뷰365' 카메라에 담았다. 이원영 씨는 14살에 텍사스 주립대학에 최연소로 입학해 로스쿨과 의대를 다닌 수재로, 현재 메타버스 플랫폼 분야에 몸담고 있다./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 2019년 10월 21일 인천국제공항에 떠들썩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에 입국한 미국 전 재무부 장관(빈센트 코발리스)을 비롯 영화 '신시티', '300' 제작자와 프로듀서, 배우 등 25명의 유명인들로 구성된 '세계특공무술연맹의 대표단'이 한 남자를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랜드 마스터(Grandmaster, 스승)'라 칭하며 극진히 예를 갖춘 인물은 특공무술창시자이자 세계특공무술연맹 총재인 이원익(1959~)그룹TK 회장이었다.

재미 교포 출신인 이 회장은 대학 시절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 군 특공무술을 개발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있다.

이 회장은 전세계에 특공무술을 전파하며 반평생을 무도인으로 살아왔지만, 인생철학인 '문무겸비(文武兼備)'를 몸소 실천해온 인물이다. 6개의 계열사를 이끄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영화 제작자, 작가, 기획자 등 다방면에서 활약해왔다. 1984년부터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시작한 봉사활동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 회장의 자산은 바로 사람이다. 그가 배출한 제자들은 전세계에서 정치가, 경제인, 장군 등 각 분야에서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4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끈끈한 사제(師弟)관계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 회장의 아내는 놀랍게도 1980년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누비던 인기 여배우 최선아(1962~) 씨다. 영화 '사랑만들기'(1983), '짧은포옹 긴 이별'(1983), 안녕도오쿄'(1985), '춤추는 딸'(1986), '입을 연 석류'(1986) 등 문여송 감독의 영화 작품과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하며 1980년대를 주름잡던 미녀 배우였다. 결혼과 동시에 사실상 연예계를 은퇴했던 그는 35여년간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로 행복한 가정을 일궜다. 현재는 남편이 이끄는 세계특공무술연맹의 '대모' 역할을 도맡으며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는 최선아는 영화 제작자로도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원익-최선아 부부와의 인터뷰는 3시간이 훌쩍 넘게 진행됐다. 최 씨는 35년 전 결혼 당시를 회상하며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아내는 남편을 향해 "이 사람 자체가 나의 감동체"라고 말했다. 이들의 삶의 여정을 2회에 걸쳐 게재한다.

美 공항에 도착하니 깔려 있던 레드 카펫

1980년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누비며 인기를 누렸던 최선아 씨. 35년여가 흐른 지금도 여전히 당시 미모를 간직하고 있었다./사진=인터뷰365 

- 남편과의 러브스토리가 궁금하다.

남편이 나를 보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미국 댈러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 당시 서울과 직항도 없을 때여서 로스엔젤레스를 거쳤다가 왔다.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고 와서 한국에서 나와 데이트를 하고 돌아가곤 했다.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고 오가는 그를 보니 내가 안되겠다 싶었다." 

곁에 있던 남편 이원익 회장은 "3개월을 한 주도 안빠지고 아내와 데이트를 하러 한국을 갔다"고 웃었다.

- 남편의 어떤 점이 매력이 있었나.

"본인에 대한 얘기는 많이 안 했다. 진짜 남자구나 싶었다."

이원익 회장과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최선아 씨./사진 제공=최선아

- 결혼과 동시에 소리 소문 없이 연예계를 떠났는데.

"결혼을 앞둔 선배들의 기자 회견을 보면서 배우자를 향한 언론의 관심이 과도해 보였다. 좋은 기사만 나오지 않더라고. 남편한테는 무리하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남편을 따라 조용히 미국으로 떠났다."

- 공항에 도착했을 당시 레드카펫이 깔려있었다고 들었다.

"오스틴 국제 공항에 도착했더니 비행기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그 길에 레드카펫이 쫙 깔려있는거다. "원익씨, 이 비행기에 대통령이 탔나봐. 우리 뒤로 빠지자" 했더니 그냥 가자더라. 민망한 마음을 무릅쓰고 따라갔더니 500여명의 외국인들이 도열해 장미 한송이 씩 들고 서있더라. 알고보니 모두 남편의 제자였다. 1988년 결혼식을 올리고 미국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그리곤 미국에서 35여년을 살았으니, 한국에서 보낸 시간보다 더 많다."

1980년대 스크린과 브라운관 누비던 미녀스타..."은퇴 후회 없어요"

배우로 활동했을 당시 20대 최선아 씨의 모습./사진 제공=최선아

- 1980년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쳤다. 드라마 '꽃반지'로 1986년 제2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신인연기상'도 수상했다. 결혼 후엔 드라마 '장녹수'(1995)에서 중전 신씨 역으로 얼굴을 비추긴 했지만, 사실상 결혼으로 은퇴 수순을 밟았다.

"영화를 멋모르고 했다. 연기에 대한 기본지식도 없었다. 연기를 알기 시작하고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니 겁이 났다. 연기를 하면서도 남의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달까. 열심히 연기만 했다. 개인 시간도 없다보니 기억에 남는 추억도 없다. 무엇보다 남의 눈에 맞춰 살아야하는 게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살고 싶은데, 그 조차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더라. 그 찰나에 남편을 만났다. 남편의 진실한 그 마음이 보였다. 내가 진짜 만나야 할 사람, 결혼해야 할 사람이라고 느꼈다."

- 미국에서의 삶은 어땠나.

"적응을 잘했다.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다. 주위 사람들 눈에 맞춰 살아야했던 한국을 떠나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않는 곳에 있으니 좋았다. 남편과 늘 함께하면서 제 마음 역시 강단이 생기고 줏대가 생겼다. 인생이 뭔지를 알게 되었달까. 지금은 날 보고 카리스마 있다고들 얘기하는데, 사업을 하다 보니 강단도 생겼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지금도 아침을 새해처럼 기분 좋게 시작하고,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착하게 살려고 노력해왔다. 아이들도 고맙게 잘 커줬다. 제가 중심이 있는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보니 그동안 살아온 제 인생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지금은 주변 사람들 모두 행복하게 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 하나 뿐이다.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원익 세계특공무술연맹 총재 겸 TK그룹 회장-배우 최선아 부부와 대담 중인 김두호 인터뷰어. 최선아 씨가 결혼으로 배우 생활을 접기 전까지 기자와 배우로 인연을 맺었고, 이날 35여년 만에 재회했다.  
이원익 세계특공무술연맹 총재 겸 TK그룹 회장-배우 최선아 부부와 대담 중인 김두호 인터뷰어. 최선아 씨가 결혼으로 배우 생활을 접기 전까지 기자와 배우로 인연을 맺었고, 이날 35여년 만에 재회했다./사진=인터뷰365  

- 자녀는 어떻게 되나.

"1988년생과 1990년생 두 아들이 있다. 큰 아들(이원영)은 14살에 텍사스 주립대학에 최연소로 입학해 로스쿨과 의대를 다녔다. 작은 아들(이준영)도 16살에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 아버지와 모두 동문인 셈이다. 현재 첫째 아들은 대형 로펌 제의도 마다하고 메타버스 플랫폼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둘째 아들은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computer science)를 전공했다. 미국 해병대 ROTC를 중위로 제대하고 현재 인터넷 보안회사를 이끌고 있다." 

- 14살과 16살에 대학 입학이라니 대단하다. 특별한 자녀 교육법이 있는가.

"항상 아이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그 덕분인지 애들이 사춘기 때도 문을 닫고 지내본 적이 없다. 공부 대신 인성위주로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첫째 아들이 대형 로펌 입사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회사를 다녀온 아들이 변호사는 못하겠다고 하더라. ‘갱단 변호를 맡는다면 과연 정의롭게 변호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더라. 사실 첫째 아들은 의사의 길을 가고 싶어했지만, 늘 긴장된 삶을 살아가는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이들이 크면 아버지처럼 주도적으로 시간을 관리 할 수 있는 일을 하길 바랬다. 그것이 사업가였다."

"남편의 제자는 곧 내 자식이나 다름없어"...영화 제작자로 활동 기지개

이원익 세계특공무술연맹 총재 겸 TK그룹 회장과 반평생을 함께 해온 아내 최선아 씨. 그는 "남편의 삶은 감동 그 자체"라고 웃었다./사진=인터뷰365 

- 살아오면서 감동의 순간들이 있다면.

"감동이 참 많다. 하하. 하루하루가 감동이고 감사한 날들이다. 남편이 운영하는 세계특공무술연맹에는 장애인 클래스가 있다. 다른 도장에서 받아주지 않는 소아마비나 시각 장애인 등을 위한 반이다. 남편이 직접 이들을 직접 가르치는데, 웬만한 인내심으로는 교육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는 남편의 삶은 감동 그 자체다. 남편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된 수많은 제자들도 내겐 감동이었다. 서로를 돕고 사랑하는 끈끈한 유대 관계를 늘 느끼고 산다."

- 혹시 방송과 영화출연 제의가 들어온다면?

"감사한 말씀이다. 그러나 현재 나의 인생스토리에서 그러한 계획은 없다. 과거의 나는 이미 지나왔고 지금의 시간을 충실히 하고 싶다. 현재의 내 역할과 모습에 만족한다. 다만, 코로나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영화제작을 직접 할 예정이다."

이원익-최선아 부부에게 6월 5일은 특별한 날이라고 한다. 결혼기념일인 6월 5일은 이 회장의 생일이다. 동시에 세계특공무술연맹창립일이기도 하다. 최 씨는 "남편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어서 그 날에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 이 사람 자체가 나의 감동체"라고 웃었다. 이에 이 회장은 "결혼기념일이 내 생일이니 나로서는 미안한 일"이라고 화답했다. 35여년을 함께 해온 이들 부부서로를 향한 눈빛은 여전히 애틋했다.

대담=김두호 인터뷰어, 정리=김리선 기자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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