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가 만난 人] '문무(文武)'를 겸비한 특공무술창시자 이원익 TK그룹 회장 (1)
[김두호가 만난 人] '문무(文武)'를 겸비한 특공무술창시자 이원익 TK그룹 회장 (1)
  • 김두호 인터뷰어
  • 승인 202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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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익 세계특공무술연맹 총재 겸 TK그룹 회장-배우 최선아 부부를 만나다 (이원익 편)
- 미국 시민권 포기하고 자원 입대...특전사 복무하며 군 특공무술 개발
- 전세계 특공무술 전파로 세계 570여개 지부...유단자가 되기 위해선 한국어와 애국가 알아야
- 6개 계열사 TK그룹 수장으로 혁신 행보...경호회사·영화사·종자사업·플랫폼 개발까지
- 국내 첫 CD녹음 영어 교재 제작 등 저서만 17권...40년간 봉사활동으로 온정 베풀어
이원익 세계특공무술연맹 총재 겸 TK그룹 회장과 1980년대 인기 여배우 최선아 부부. 현재 6개 계열사를 이끌고 있는 이 회장은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입대, 군 특공무술을 개발한 인물이다. 결혼과 동시에 사실상 연예계를 은퇴한 최선아 씨는 이 회장과 미국에서 행복한 가정을 일구며 세계특공무술연맹 제자들의 '대모'역할을 해왔다./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 2019년 10월 21일 인천국제공항에 떠들썩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에 입국한 미국 전 재무부 장관(빈센트 코발리스)을 비롯 영화 '신시티', '300' 제작자와 프로듀서, 배우 등 25명의 유명인들로 구성된 '세계특공무술연맹의 대표단'이 한 남자를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랜드 마스터(Grandmaster, 스승)'라 칭하며 극진히 예를 갖춘 인물은 특공무술창시자이자 세계특공무술연맹 총재인 이원익(1959~)TK그룹 회장이었다.

재미 교포 출신인 이 회장은 대학 시절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 군 특공무술을 개발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있다.

이 회장은 전세계에 특공무술을 전파하며 반평생을 무도인으로 살아왔지만, 인생철학인 '문무겸비(文武兼備)'를 몸소 실천해온 인물이다. 6개의 계열사를 이끄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영화 제작자, 작가, 기획자 등 다방면에서 활약해왔다. 1984년부터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시작한 봉사활동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 회장의 자산은 바로 사람이다. 그가 배출한 제자들은 전세계에서 정치가, 경제인, 장군 등 각 분야에서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4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끈끈한 사제(師弟)관계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 회장의 아내는 놀랍게도 1980년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누비던 인기 여배우 최선아(1962~) 씨다. 영화 '사랑만들기'(1983), '짧은포옹 긴 이별'(1983), 안녕도오쿄'(1985), '춤추는 딸'(1986), '입을 연 석류'(1986) 등 문여송 감독의 영화 작품과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하며 1980년대를 주름잡던 미녀 배우였다. 결혼과 동시에 사실상 연예계를 은퇴했던 그는 35여년간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로 행복한 가정을 일궜다. 현재는 남편이 이끄는 세계특공무술연맹의 '대모' 역할을 도맡으며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다. 영화 제작자로도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원익-최선아 부부와의 인터뷰는 3시간이 훌쩍 넘게 진행됐다. 최 씨는 35년 전 결혼 당시를 회상하며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아내는 남편을 향해 "이 사람 자체가 나의 감동체"라고 말했다. 이들의 삶의 여정을 2회에 걸쳐 게재한다.

美시민권 포기 후 자진 입대...시민권 포기위해 이민국 갔더니 '퇴짜'

이원익 세계특공무술연맹 총재 겸 TK그룹 회장. 일반인들에게 특공무술을 전파해온 그는 특공무술을 전세계 570여개의 지부를 거느린 세계적인 무술로 성장시켰다. 그가 배출한 제자들은 전세계에서 정치가, 경제인, 장군 등 각 분야에서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사진=인터뷰365

- 이 회장이 만든 특공 무술의 첫 시작은 한국에서의 군입대로부터 비롯됐다고 들었다. 시민권을 포기하고 군대에 자원 입대를 한 계기가 있었나.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12살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대학 4학년 시절 기말고사를 앞둔 시기였는데, 함께 공부하던 룸메이트가 갑자기 짐을 쌌다. 유대인 친구였다. 자신의 나라에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데 나라를 지켜야 한다며 1초의 고민없이 이스라엘로 떠났다. 이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나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데, 고국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곤 군대를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입대했다."

- 군 입대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다.

"시민권을 포기하려고 미국 이민국을 갔더니 박탈도 아닌 반납과 관련한 법령이 없다며 퇴짜를 맞았다. 하하. 한국대사관에 문의해도 마음은 고맙지만 한국 호적이 말소가 됐을 테니 포기하라는 답변이었다. 그런데 포기가 안됐다. 결국 한국으로 날아가 대사관에 가서야 시민권을 반납할 수 있었다. 자원 입대에는 성공했는데, 그런데 웬걸,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

"입대자 중 내 머리카락만 안깎더라고.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자진 입대라니 의구심이 컸던 거다. 당시 고위급 자제들이 군대를 안가려고 하는 사회 분위기였는데, 나 같은 사례는 처음이었으니 이상할 만도 했다. 이민을 갔던 12살 이후 한국에 호적이 남아있을 리는 없고 신분 확인도 안되니 결국 보안사령부로 끌려갔다. 일주일간 자술서를 쓰며 조사를 받았다. 내 소문을 듣고 박희도 장군(제26대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이 보안사로 찾아왔다. 내가 살던 동네를 구체적으로 묻더니 "이 친구 미국에서 온게 맞다"하시더라. 알고 보니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공부 한 경험이 있어 그 지역을 훤히 꿰차고 있었던 거였다."

그렇게 이 회장은 1987년 공수부대(현 특전사)로 입대했다. 국군 태권도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그를 눈 여겨 본 5공수 여단장 장기오 장군의 지시로 이 회장은 실전 전투무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모든 무술 이론에서 당연시되어온 공격과 방어의 구분을 없애고, 거리의 개념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모든 무술은 자기 기술이 최고라고 한다. 그러나 권총을 쏴야할 거리에 대포를 쏘면 다 죽을 수 밖에 없다. 이건 대포가 좋냐, 권총이 좋냐의 문제가 아니라 거리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이러한 철학을 녹여 특공무술을 완성했다. 20대 젊은이가 개발한 ‘이름조차 없던’ 무술의 등장은 당시 군대에서도 '대사건'이나 다름없었다.

독학으로 배운 무술의 결실 '특공무술'...4년 군복무 후 美서 특공무술 전파

이원익 세계특공무술연맹 총재 겸 TK그룹 회장이 1986년 세계특공무술연맹 창립 당시 육군교육사령관으로부터 받은 세계특공무술연맹 총재 임명장을 보여주고 있다./사진=인터뷰365

- 당시 군대에서의 반응은 어땠나.

"30여명의 장군들이 제가 개발한 무술 강의를 듣고 난리가 났다. 미국에서 온 사병이 거리의 개념, 무술의 공격과 방어의 개념 등 엉뚱한 소리를 하니까. 기존 태권도가 아닌 전혀 다른 무술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니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무도에 대한 철학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우선 몇달간 해보자해서 특전사부터 시작했다. 당시엔 특전무술로 불렸다.

획기적이란 반응이었다. 생전 없는 낙법이 들어가고, 요즘 UFC에서 볼 법한 꺾기 기술이 들어갔다. 급소를 때리고 같은 동작을 반복시켰다. 거리 개념이 잡히니 3개월만 배워도 2-3년 무술을 배운 사람하고 실력이 비슷해졌다. 이 모습을 본 교육사령관이 한국 군대 교육 체계에 특공무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제대날짜가 다가왔지만, 특공무술을 완성하란 특명에 1년을 더 복무해야했다. 하하.

1986년 세계특공무술연맹 창립 당시 육군교육사령관 장기오 중장으로부터 국군전투력 증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세계특공무술연맹 총재 임명장도 받았다."

- 무술은 언제 어떻게 배웠나.

"5살 때부터다. 스승없이 독학으로 연마했다. 영화가 내 스승이었다. 어린 마음에 영화 속 축지법이나 공중 점프 등 액션 무술이 진짜라고 믿었다. 나무를 심어서 점프 연습을 하고 표창이나 단도 던지기 연습을 하며 영화 속 동작들을 몇 번이고 그대로 복습했다. 손가락이 부러질 정도로 목도로 바위 깨기 연습도 했다. 결국은 바위가 깨지더라. 10년간 모래주머니를 차고 자기도 했다."

제대 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82년 경 모교인 텍사스 주립대학교에서 비정규과목으로 첫 무술학과를 개설하고 학생들에게 특공무술을 가르쳤다. 65명으로 시작한 수업은 700명까지 늘어났다. 대학 학장도 그의 첫 제자가 됐다. 1983년 텍사스 어스틴에 세계특공무술연맹 본관이 설립됐고, 1986년에는 제1회 창립 총회를 열고 세계특공무술연맹을 설립했다.

현재 특공무술은 전세계 570여개의 지부를 거느린 세계적인 무술로 거듭났다. 사범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15만명, 그리고 이 회장의 교육을 받은 제자들만 100만명에 이른다. 이 회장은 종주국인 대한민국에 대한 존경심과 예의를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는 철학을 교육에 반영시켰다. 누구든지 유단자가 되기 위해선 한글을 알아야 하고, 애국가 1절은 무조건 부를 수 있도록 가르쳤다. 모든 수련자의 집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으며, 경기용어는 한국어로, '선배'와 '후배'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2019년 특공무술 승급심사 후. 영어로 '특공무술'이라고 적혀있다. 누구든지 유단자가 되기 위해선 한글을 알아야 하고, 애국가 1절은 무조건 부를 수 있어야 한다./사진 제공=이원익

용병 거쳐 경호회사·영화사 운영 '다방면서 활약'...명장면으로 손꼽히는 영화 '300' 액션신 특공무술로 완성

- 이력이 화려하다. 용병과 경호요원으로도 활동했다고.

"용병은 돈을 모아 첫 도장을 차리기 위해서였다. 방학을 이용해 6개월 간 활동했다. 미국 정부 소속으로 트럭을 몰고 국경을 넘어 과테말라까지 지원의료장비를 전달해주는 업무였다. 퍼붓는 총알에 목숨까지 위협 받을 정도로 위험한 고비도 몇 차례 넘겼다. 학교에 복귀하니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내 손에 도장 키를 주더라. 학교에 "마스터(스승)가 도장을 차리기위해 목숨 걸고 용병으로 갔다"는 소문이 쫙 퍼지면서 난리가 났나 보더라. 제자들이 종이, 빈 병을 줍으며 십시일반 모든 돈으로 도장을 마련했던 거였다."

-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 딕 체니 미국 전 부대통령 경호도 맡았다고 들었다.

"경찰이나 군 출신 제자들이 저와 일하고 싶어했다. 나 역시 특전사와 용병 출신이니 경호업무가 제격이다 싶어서 사설무장경호회사인 '블랙쉴드(Black Shield)'를 차렸다. 미국 정부,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인들의 경호를 담당했다. 우리회사 룰이 '봐도 못 본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알아도 말하지 말 것'이었다. 나한테도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 회사가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유명해졌다. 지난 20여년간 이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오고 있다."

왼쪽부터 '씬시티' 프랭크 밀러 감독과 이원익 세계특공무술연맹총재, 배우 데본 아오키. 프랭크 밀러 감독과 데본아오키는 이 회장의 특공무술 제자이기도 하다. '씬시티'는 이 회장이 이끄는 TK시네마 스튜디오에서 만든 첫 영화다./사진 제공=이원익

- 영화 제작 배급사 TK시네마를 이끌며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던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씬시티'(2005)와 '300'의 영화 제작과 액션에도 참여했다. 특히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300'의 액션신이 특공무술인건가.

"프랭크 밀러 감독과 '씬시티'(프랭크밀러 감독이 데뷔한 첫 장편 영화로, 그는 이 회장의 특공무술연맹 제자이기도 하다.)에 이어 '300'에서도 함께 했다. '씬시티'는 우리 영화사(TK시네마) 스튜디오에서 만든 첫 영화로, 내가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 작품이 성공해 '300'에도 제작했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무술이 특공무술이다. 처음엔 스파르타에 무슨 무술이냐 반대도 많았지만, 300명이 100만명의 적을 이기려면 특공무술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제작 당시만해도 다들 망할거라면서 ‘씬시티’로 돈벌더니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다."

프랭크 밀러 감독의 '씬시티'와 '300'모두 
영화 '300'포스터. 프랭크 밀러 감독의 '씬시티'와 '300'에 등장하는 액션신 모두 이원익 회장의 특공무술로 완성됐다.

6개 계열사 TK그룹 수장..."기아와 빈곤 퇴치 위해 종자 사업에도 뛰어들었죠"

이원익 세계특공무술연맹 겸 TK그룹 회장/사진 제공=이원익

-세계특공무술연맹 이외에도 영화사, 경호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이끄는 회사 그룹TK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TK그룹에는 세계특공무술연맹을 비롯해 영화 제작 및 배급사 ‘TK시네마’, 블록체인기반 플랫폼 개발업체 ’metarising’, 종자개발업체 ‘마이크로 투버’, 텍사스 WTI원유 시추 및 수출업체 ‘라이온 케이트 에너지’, 사설무장경호회사 ’블랙쉴드’ 등의 6개 계열사가 속해 있다.

다양한 분야 같지만, 사실 내 사업이 도망가봤자 거기서 거기다. 다 연결 되어 있다. 처음에 한국서 가르친 특공무술을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도장 차린다고 용병이 됐고, 이후 이를 기반으로 경호 회사를 차리게 됐다. 그리고 특공 무술 훈련을 위해 매입한 땅에서 기름이 나와서 원유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미래의 식량문제와 세계적 기아 및 빈곤 퇴치를 위해 종자연구와 재배에도 전념하고 있다. ’마이크로 투버’란 회사를 설립한 배경이다. 아사(餓死)를 막기위한 목적으로 시작한 씨 감자 개발에 성공했고, 사포닌 쌀도 개발해 국내외로 판매되고 있다. 이미 친환경 농업 시스템을 구축했고, '마이크로 투버팜' 농장 시스템을 도입해 최첨단 증식공법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병충해에 강한 종자를 대량 증식해 프라이빗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투버 종자 추적 시스템(TSCM)으로 유통과 서비스 과정의 전체 이력을 플랫폼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원익 회장은 미래의 식량문제와 세계적 기아 및 빈곤 퇴치를 위해 ’마이크로 투버’란 회사를 설립하고 종자연구와 재배에 전념하고 있다./사진 제공=이원익

커피 원두에도 관심이 많다. ’커피델라’(Coffee Della)는 에디오피아 아바야 예가체프G1의 원두를 사용함으로 품질과 향, 커피가 가지고 있는 최상의 맛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에디오피아에서 도착한 당일 200g으로 소분 포장해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유통, 판매를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 마스크 분야에도 진출해 의료용 마스크 2만장을 텍사스 병원 의료 시설에 기부하기도 했다. 디자인과 기능성을 강화해 개발한 ‘배트(BAT)마스크’는 지난해 세계슈퍼모델 공식마스크로 선정될 정도로 인정받았다. 아내가 직접 만든 디자인으로 특허도 받았다.

과거에도 그래왔듯이, 나는 혁신과 진보를 바탕으로 한류 문화상품을 개발하고 콘텐츠와 플랫폼 개발로 미래 비전을 만들고 있다."

- 땅에서 원유가 나왔다니 흥미로운 이야기다.

"누가 들으면 부자인 줄 알겠다. 하하. 특공무술을 총까지 가르치기 때문에 야외 훈련이 필요하다. 규모가 차가 70대에서 많게는 100대 정도다. 한달에 한 번씩 야외훈련을 나가는데, 이를 위해 한국에서는 엄두도 못 낼 땅을 저렴한 가격에 매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와서 땅에 기름이 나올 것 같다며 테스트를 해도 되냐고 묻더라. 하라고 했지. 그랬더니 기름이 발견된거다. 재벌이 될 줄 알고 그날 잠도 못 잤다. 근데 별 볼일 없더라고. 하하. 지상권은 내 것이지만, 지하권은 기름을 뽑는 사람이 임자였다. 난 일정금액의 땅 사용료만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제자들의 권유로 원유 사업에도 뛰어든 거다. 사람들이 내게 맨날 밥사라고 하지만, 사실 속 모르는 소리다. 하하."

- 저서가 17권이나 된다. 분야도 정치, 경제, 교육, 철학 등 다양하다. 언제 책도 썼나.

"제가 책이나 시나리오 쓰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어로도 쓰고 영어로도 쓰고, 재미있다. 시나리오로 미국 할리우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영어교재 시리즈도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대학을 나와도 영어를 못한다는 말이 많았다. 영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비즈니스 영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제작한 책이 국내 첫 CD녹음 영어 교재였던 '예스 비즈니스'시리즈다. 당시 삼성에서 사원 영어 교육 교재로 채택하기도 했다. 1년 동안 제작했다. 아내 목소리도 녹음되어있다."

아내 최선아 씨는 "남편이 집에 오면 일 속에 파묻어 있다. 밤에 책을 주로 쓰는데, 한번 쓰기 시작하면 방에서 두문분출한다. 한국말이 지금도 능숙치 않는데, 쓴 글을 보면 이 단어를 어떻게 알았을까 생각될 정도로 놀란다"고 말했다.

40여년간 이어온 봉사 활동...서육남 씨와 봉사단체 '이곳에 사랑을' 설립

인터뷰 중인 이원익 세계특공무술연맹 총재 겸 TK그룹 회장과 아내 최선아 씨.

- 1984년 사단법인 '이곳에 사랑을'을 설립해 40여년간 꾸준히 봉사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가수 서육남 씨와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설립했다. 1300회 이상 독거노인, 보육원, 소녀가장 등을 지원했다. 미국 내 한국 전쟁 참전용사들의 손주들에게도 장학금도 지원해왔다.

장애인 고용촉진을 도모하기 위한 '장애인 고용 촉진법'도 이끌어냈다. 1988년 고(故) 조오련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와 합동해 장애인들을 데리고 대한해협 도영에 성공해 국내외적으로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장애인 고용 촉진법을 제정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한번도 외부에서 지원받지 않고 형님(서육남)과 사재를 털어 봉사를 했다는 점은 늘 뿌듯하다. 한국 UN봉사단체로 등록되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장도 받았다."

- 서육남 씨는 기부와 봉사로 연예계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제 회사 창업식 때 형님이 행사 기획을 총괄하시면서 인연을 맺었다. 6.25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난지도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고아원에서 보냈다고 했다. 대화를 나누다 앞으로 불쌍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하자고 의기투합했다."

- 봉사활동에 TK그룹이 지원한 비용을 추산한다면 어느 정도인가.

"정확하게 계산은 안해봤는데 한 100억은 넘을 것 같다."

- 아내인 최선아 씨도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가.

"아내는 세계특공무술연맹의 정신적인 대모나 다름없다. 아내는 제자들에겐 늘 모범이었다. 특공무술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은 별 사람이 다 있다. 가정불화나 폭력가정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누구라도 사고라도 터지면 몰래 가서 어떻게라도 해결을 하고 온다. 그냥 그들의 엄마다, 엄마. 이런 아내에게 감동을 받곤 한다.

연맹을 운영하면 입회비나 단증, 심사비등으로 수입이 들어온다. 그러나 일원 한푼 사적용도로 쓴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당연히 제자들 위해서 써야지"라고 하더라. 그 돈으로 미국 내 수십만평 땅에 특공무술 교육장을 짓고 있다."

남편의 제자들도 아내인 최선아 씨에겐 수양딸, 수양아들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힘들게 출산한 제자가 있으면 손수 미역국을 끓여서 찾아간다. 최 씨는 "나보다 나이는 많아도 마치 자식 같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두호가 만난 人] 세계특공무술연맹의 '대모'된 은막의 스타 최선아 (2)

대담=김두호 인터뷰어, 정리=김리선 기자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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