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한국 판토마임의 선구자, 원로연극인 최청
[인터뷰365] 한국 판토마임의 선구자, 원로연극인 최청
  • 서영석
  • 승인 20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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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1세대 마임이스트이자 극작가, 원로 연극배우로 활약
- 마임 연구하는 연극인으로 활약...장막 마임극 대표작 '벌레'로 마임 예술의 저변 확대
-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 서고파
한국 1세대 마임이스트이자, 국내 판토마임 권위자 원로 연극인 최청./사진=서영석

인터뷰365 서영석 인터뷰어 = 대사 없이 몸짓과 표정만으로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는 무언극, 판토마임(팬터마임)은 한국에서 그리 유명한 장르는 아니다. 그러나 판토마임은 연기의 기초 학문으로 꼽힌다. 연기자들에게 판토마임은 연기를 다져나가기 위한 필수 항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로 연극인 최청(1942~)은 한국 1세대 원로 마임이스트이자, 국내 판토마임 권위자로 불린다. 단편적이거나 길어야 3~5분대 마임 작품이 대부분이었던 시절, 20분짜리 장막 판토 마임극 '벌레'를 탄생시키며 마임 예술의 대중화와 저변 확대를 이끌었다.  

고희를 훌쩍 넘은 현재에도 마임이스트이자, 연극인, 그리고 극작가로 50여 년간 무대와 함께 호흡해온 최청 원로 마임이스트의 인생 스토리를 <인터뷰365>가 담아봤다. 

파란만장했던 어린시절...문학 소년 꿈꾼 학창시절

한국 1세대 마임이스트이자, 국내 판토마임 권위자 원로 연극인 최청.
한국 1세대 마임이스트이자, 국내 판토마임 권위자 원로 연극인 최청.

- 고향은 어디입니까.

1942년 이북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어요. 3살 때까지 살았으니 거의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해주에서 태어나 중국 만주 봉촌에서 해방 전까지 목재상을 하셨던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8.15해방이 되면서 해주를 거쳐 인천에 머물렀죠. 

-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워낙 어렸을 적 기억이라 희미하지만 목재소에서 검도를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련한 그림자처럼 어른거려요. 목재상을 하시던 아버지는 일제의 강권에 못 이겨 탄약 상자를 납품하다 해방 후 공산주의자들에게 맞아 세상을 떠났고, 형과 누이동생은 그 당시 유행병으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 그야말로 악몽과 같았던 파란만장한 유년기를 보내셨습니다.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어머니께서 당시 밀주를 제조해 술집에 납품을 했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지요.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평생 연극 동지인 고(故) 정진과 전무송을 만났습니다. 동방극장의 지하 동방 뮤직홀에서 시 낭독 회를 개최해 친구인 정진이 대신 낭독을 하는 등 낭만의 젊은 날을 보내기도 했지요. 

-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나봐요. 

고교 시절에 틈틈이 시(詩)를 쓰기도 했습니다. <밤의 눈동자>, <낙엽> 등이 인천일보의 독자 투고해 몇 편이 게재되기도 했지요. 문학 소년의 꿈을 꿨던 조용한 학생이었어요. 

운명처럼 만난 마임...마임 연기의 진수 '벌레'

-문학 소년이 마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인천 성광중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배우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충무로 3가에 소재하던 2년제인 중앙예술원에 적을 뒀지요. 중앙예술학원 재학 시 본과를 마치면 2학년 때 연극과 1년을 해야 했는데, 연극과 시절 운명적으로 마임을 만나게 된겁니다.

당시 연극과 수학 당시 커리큘럼에 연기 수업의 한 부분으로 집중력과 상상력 배양 훈련으로 마임이 있었는데 외모가 특출나지 않았기에 유독 관심이 많았습니다. 연극 연출가 한재수 선생의 지시로 마임의 시범 조교를 하면서 더욱 자신이 붙어 시범을 보이면서 틈틈이 작품을 보완, <벌레>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서울에는 중앙예술원를 포함해 연기를 가르치던 3개의 학원이 있었는데, 유치진이 운영하던 을지로 1가의 아카데미연기학원, 을지로 2가의 한국배우학원 등이었다. 아카데미 연기학원에는 신구, 전무송, 이호재, 한국배우학원에는 전세권, 신성일 등 훗날 한국의 기라성 같은 배우, 연출들이 수학하고 있었다.

특히 그가 수학했던 중앙예술학원에는 MBC사장을 역임했던 최창봉을 비롯, 내면연기에 MBC PD 최성진(최상현), 영화개론에 영화감독 유현목, 희곡론에 차범석, 연기·연출에 한재수(당시 동국대 국문과 출강) 등 강사진이 초호화였다. 훗날 이들은 맡은 영역에서 한국 최고의 반열에 오른다. 연극의 평생 친구인 故 김흥우 교수도 이 학원에서 만났다. 김흥우 교수는 대한민국 연극영화과의 양대 산맥이자, 동국대 연극영화과의 대들보로 불린다. 영화배우 신성일, 탤런트 신구, 전무송, 연극배우 이호재, 방송국 PD 은퇴 후 다시 연극 연출가로 자리매김한 전세권(가수 전인권의 형)이 동시대를 함께 했다. )

한국 1세대 마임이스트이자, 국내 판토마임 권위자 원로 연극인 최청.
한국 1세대 마임이스트이자, 국내 판토마임 권위자 원로 연극인 최청./사진=최청 제공

- 마임 연기의 진수로 꼽히는 <벌레>가 탄생된 거군요.

<벌레>의 작품 내용은 억압에서의 해방, 자신의 몸에 들어온 벌레를 배출하려는 노력으로 자유를 갈구하는 작품이었어요. 당시 한국일보에서 한국 연극의 부흥을 캐치프레이즈로 연극 발전에 많은 공을 쏟을 때였는데, 1967년 한국일보 초청으로 세계적인 마임이스트 롤프 샤레 내한 공연이 있었습니다.

한국에도 마임이스트가 있다며 신문사 기자들이 인천 집까지 찾아와 롤프 샤레와의 만남을 주선했어요. 롤프 샤레가 묵고 있었던 동대부근 엠버서드 호텔에서 <벌레>를 공연하는 영광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당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었던 롤프 샤레가 <벌레>공연을 자기에게 할 수 있도록 부탁을 하기도 했지만 어린 나이에 ‘작품을 빼앗길까’ 거부를 했어요. 돌아보면 제게 찾아 온 천우의 기회를 놓친 것에 지금도 후회됩니다. 

(1975년 지금으로 치면 ‘문화가 산책’ 정도 되는 TV 방송에서 TV최초로 판토마임 극 <벌레>를 선보였는데 같은 프로에 출연했던 타극단의 공연이 너무 표현주의에 침몰돼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방송으로 세상에 보이지는 못했다. 1985년 대학로 문예회관개관기념 대학로 축제에 거리 극으로 <벌레> 공연을, 2002년에는 3.1로 창고극장에서 모노드라마 <일요일의 마네킹>(정진 작, 연출)과 더불어 <벌레>를 1개월간 공연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판토마임협회 주관 행사에 초청되어 후배들 앞에서 <벌레>를 선보이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배우의 길을 걷다...배우로서, 그리고 극작가로서 다방면 활약

- 연극 배우로도 활약하셨지요.

중앙예술원을 졸업하고 1961년 10월 <회색의 크리스마스>(하유상 작, 맹후빈 연출, 원각사)로 배우 데뷔를 했습니다. 1962년 오학경 작 <꽃과 십자가>, 동년 10월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이화여대 교수셨던 홍복유교수의 번역으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기자로 참여를 했지요. 

1965년 <디텍티브 스토리>를 국립극장에서 공연 했고 동년 국립극장에서 <수리매> 공연 전 시인 김성민의 초청으로 시극동인회 사무실에서 당시로서는 정식으로 판토마임 <벌레> 공연을 했습니다.

1968~69년은 한국일보주관, 주최로 전국의 각 지방을 돌며 순회 공연하는 이해랑 이동극장에서 전국순회공연을 다녔어요. 보리 고개 시절 <잘 살아보세>는 정권의 힘을 빌어 최고급 식당, 호텔 등 최상급 대우를 받으며 호사를 누리기도 했지요.

(최청은 극작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1994년 환경문제를 다룬 희곡 <개미 전쟁>을 월간 「문학 세계」에 발표, 2010년에는 월간 「한맥」에 소설 <인천 갈매기>를 연재했다. 이 작품으로 서초문학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 외 희곡 <누드 택시><명동> 등을 극작하기도 했다.)

생활고에 무대를 등지고 직장인으로…창작과 병행 "무대 설 날 기대"

한국 1세대 마임이스트이자, 국내 판토마임 권위자 원로 연극인 최청.
한국 1세대 마임이스트이자, 국내 판토마임 권위자 원로 연극인 최청.

- 직장에도 몸담고 계시다고요.

결혼 후 생활고에서 벗어나야 했죠. 무대를 떠나 1977년 한국일보 출판국에 몸담으며 월급쟁이가 됐죠. 1988년까지 근무하다 1997년 한국임업신문사 취재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슬하의 2남 1녀는 모두 출가했고요. 

- 직장인의 삶을 살면서도 무대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최근에도 무대에서 녹슬지 않은 연기력을 선보이며 노익장을 과시했는데요.

2019년 절친인 탤런트 정욱과 연극 <서교수의 양심>(김영무 작, 송훈상 연출)에 출연했습니다. 최근에는 모 극단에서 기획 중인 유보상 작(作) <뺑덕엄마> 섭외가 들어왔어요. 금년 가을이나 내년 봄쯤 막을 올릴 예정이어서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요.

늦은 나이에 비로소 무대가 연기가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또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고도를 기다리며>를 하고 싶습니다. 

(최청은 78세란 나이가 무색하게 직장 생활과 창작활동을 병행하며 노후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외롭고 힘든 길을 오롯이 걸어 온 그에게 다시 한 번 무대에서의 환희의 기회가 주어지길 바랄 뿐이다.)

 

서영석

인터뷰365 기획자문위원. 극작가 겸 연극연출가로 극단 「에저또」를 거쳐 다수의 연극에서 연출, 극작, 번역 활동. 동국대에서 연극학 석사를, 중앙대에서 연극학 박사를 취득했다. 동양대 연극영화학과, 세명대 방송연예학과 겸임 교수를 지냈으며, 현 극단 「로뎀」 상임연출이자, 극단 「예현」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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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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