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오스카 최고상 수상한 아시아 첫 여성 제작자 곽신애 대표 "봉준호 감독, 오스카 여정 내내 톱스타"
[인터뷰365] 오스카 최고상 수상한 아시아 첫 여성 제작자 곽신애 대표 "봉준호 감독, 오스카 여정 내내 톱스타"
  • 김리선 기자
  • 승인 20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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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제작자로 오스카 최고상 '작품상' 수상...첫 아시아 여성 제작자로 이름 올려
- 30여년간 영화인의 삶...영화전문기자 출신에서 2016년 제작자로 변신
- "제작자로서 확신 얻어...앞으로 더 해도 될 것 같아요"
- "봉 감독과 장면 의미에 대한 토론 한 적 없어...'뭐 먹을까' 얘기만"
- 영화인 집안...오빠는 '친구' 곽경택 감독, 남편은 '은교' 정지우 감독
곽신애 바른손 대표/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역사상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한 곽신애 바른손 E&A(이앤에이) 대표.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은 아시아 여성 제작자 최초다./사진=CJ엔터테인먼트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오스카 4관왕'을 거머쥔 영화 '기생충'을 제작한 곽신애 바른손E&A(이앤에이)대표는 이 영화의 숨은 조력자로 통한다. 곽 대표는 할리우드 중심의 오스카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을 수상하며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 여성 제작자로서 이름을 올렸다. 

곽 대표는 30여 년간 영화계와 함께 해왔다. 1990년대 영화전문기자 출신인 그는 '청년필름', 'LJ필름' 등 에서 기획마케팅과 바른손 영화산업부 본부장을 거쳐, 2013년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로 선임됐다.

첫 제작 데뷔작인 엄태화 감독의 '가려진 시간'(2016)에 이어 이듬해 곽경택 감독의 '희생부활자'(공동제작)를 내놓았다. 그리고 세 번째로 참여한 작품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기생충'은 제작자 인생에서 여러모로 그에게 뜻 깊은 영화다. 

'작품에 민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한때 제작자란 길에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을 시기, '기생충'을 만났다. 마지막이란 마음으로 영화에 매달렸고, 눈부신 성과를 안겨줬다.   

"제작자로 있으면서 제가 이 일을 계속 해도 될까, 늘 그게 제겐 화두였어요. 제가 못해서 폐를 끼치면 안 되니까. 그러나 '기생충'을 통해 이 일을 좀 더 해도 되겠구나란 확신이 제겐 큰 수확이죠."

그는 "내 작품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봉 감독님이 보내준 신뢰, 그리고 영화 관계자들의 믿음으로 무난히 제 역할을 다한 것 같다"며 겸손해했다. 봉 감독과의 차기작에 대해 "현재 썸타는 중"이라고 웃는다.    

이젠 곽 대표는 곽경택 감독의 동생이자 정지우 감독의 아내가 아닌,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대표 제작자로 거듭났다. "재미도 있고 작품성도 뛰어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곽 대표의 '2막 인생'은 현재 진행 중이다. 다음은 <인터뷰365>와 가진 곽신애 대표의 일문일답. 

곽신애 바른손 대표/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 이앤에이 대표/사진=CJ엔터테인먼트

- 작품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트로피를 사무실에 놓았는데, 상을 바라 볼때면 '이상하다, 저 상이 여기 왜 있지?' 실감이 안 난다. 회사 직원 분들도 구경하려고 종종 찾는데, 영화 포스터 앞에 서게 한 후 트로피를 쥐어주고 사진을 찍어준다. 하하.

- 수상 직후 주변의 반응이 궁금하다.

정말 어마 어마하게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던 것 같다. 영화계 제 지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라. 너무 자랑스럽고 기쁘다며. 시상식이 끝날 때 쯤 우연히 제 핸드폰을 봤는데, 축하 카톡 메시지만 500여개가 쏟아졌다. 문자도 셀 수 없었다. 모두들 감사드린다. 

- 작품상에 수상자로 호명됐을 때 심정은. 

그 상황이 정신없었다. 상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정말 상을 주니까, '아 이게 뭐지?' 너무 놀랐다. 수상 소감 첫 말을 꺼내려는데 입이 너무 건조해 입술이 떨어지지 않더라. 좀 더 우아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그 상황이) 슬펐다. 하하. 처음엔 반갑고 기쁜 마음에 정신없이 사진 찍기에 바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들고 있던 트로피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더라. 트로피 무게가 3kg이 넘는다고 들었다. 평소 신지도 않은 힐은 신었지, 상은 무겁지, 걸어가면서 누가 (트로피를)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웃음)

- 시상식에 앞서 1월 초 본격적으로 오스카 여정을 시작했는데. 시상식 기간 동안 기억에 남았던 일들이 있다면.

('기생충'은 한국 영화계 최초로 '오스카 캠페인'의 대장정을 진행했다. 북미 개봉을 시작한 지난해 10월 전부터 일찌감치 캠페인 예산을 수립하고 북미 배급사 네온(NEON)과 함께 투표권을 가진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을 공략하기 위한 프로모션 활동을 벌였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 송강호를 비롯한 출연 배우들과 스태프들, 제작사 바른손E&A도 바쁜 시간을 쪼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힘을 보탰다.)

시상식 앞서 '오스카 노미니 런천'(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로 지명된 노미니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연례 오찬회)이란 행사를 하더라. 공식 후보를 발표된 후 없던 일정들이 쏟아졌는데, 그 중 하나의 행사였다. 배급사에서는 무조건 참석해야 하는 중요한 행사라 하더라. 100여명 이상의 후보자들을 한 명씩 불러 무작위로 소개하는 행사가 있는데,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할리우드 배우인 브래드 피트, 르네 젤위거, 알파치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등 후보자 모두가 서로에게 박수를 받게 하더라.

이 식순이 끝나면 노미니 확인증을 후보자들에게 나눠주는데, 참석했던 우리 팀 5명은 마치 졸업 사진처럼 기념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당신은 오스카 후보자야"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주는 느낌이었는데, 영광과 명예를 듬뿍 얹어주는 기분이었다. 

또 아카데미 집행진 위원들과 저처럼 작품상에 후보자들이 참석하는 프로듀서 디너에도 참석했다. 15여명이 들어가는 식당 룸에서 식사를 하며 환담을 하는 자리다. 술에 사인을 하게한 후 그 사인을 새긴 술병을 기념품으로 주는데, 마치 챙김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저 뿐 아니라 오스카 후보로 오른 미술 감독님이나 편집 감독님도 각자 그런 자리를 가졌다.

- 오스카가 후보자들에게 선물한다는 기프트 백이 억대 상당이라는 소문도 있던데. 

받지 못했다. 올해만 없다고 들었다. 올해 참여하려는 업체들의 로비 경쟁이 뜨겁다보니 잡음이 많아져서 집행부에서 없앴다고 들었다. 처음엔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었는데, 우연히 기프트 백 리스트를 보고 말을 잃었다. 하하하. 26회 미국 배우 조합상(SAG, '기생충'은 비 영어 영화 최초로 영화 부문 앙상블 상을 받았다.) 당시엔 마스크 팩이라던가 핸드폰 고리 등 귀여운 물품들로 구성된 기프트 백을 받았다.   

- 아카데미 회원 제의도 왔나. 

아니다. 다만 후보 디너 자리에 갔을 때 아카데미 주체 측 위원이 제게 회원이냐 묻더니, "그렇게 될 것"이란 표현을 하더라.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사진=CJ<br>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 배우들과 함께 한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 이앤에이 대표/사진=CJ

영화제 인기 넘버원은 봉준호 감독...유독 '기생충'에게만 '기립박수' 보내

문턱 높은 오스카 수상...8000여명의 아카데미 회원들의 결단 감사해

- 오스카 여정 중 현지에서 느낀 영화와 봉준호 감독에 대한 체감 인기는 어땠는지.

'이 정도로 인기가 많았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국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작품적으로 검증됐다는 확신이 있었음에도, 믿을 수 없었다. 영화의 열기가 사그러지기보다 점점 커지는게 느껴졌다. 1월부터 2월 오스카 시상식까지 한 달을 생각해보면 가는 곳마다 관심이 기대 이상이었다. 

- 분위기가 어느 정도였기에?

여러 시상식을 다녔는데, 봉 감독과 배우들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참석자들이 그 쪽으로 몰리기 시작한다. 어느 날은 저와 일행이 뒤늦게 따로 시상식장에 도착했는데,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이들을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제 일행이 봉 감독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고민하기에 제가 "난 바로 찾을 수 있어, 사람 가장 많은 곳을 보면 되잖아. 저기 봐." 정말 그랬다. 멀리서 내려다보고 "저기다" 하면 그 테이블은 봉 감독의 자리였다. 오스카 직전 시상식까지 그런 풍경이었다. 시상식 시즌의 톱  스타는 봉 감독이었다. 외신에서도 "어제의 인기 넘버원은 봉준호였다"로 제목을 뽑을 정도였으니 과장이 아니었다. 

오스카 4관왕의 수상의 기쁨을 누린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nbsp;©A.M.P.A.S.®&nbsp;
오스카 4관왕의 수상의 기쁨을 누린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을 축하해주는 참석자들©A.M.P.A.S.® 

- 실제 '봉하이브(Bonghive, 봉 감독의 이름에 벌집이란 뜻을 더한 신조어로, 봉 감독을 추앙하는 벌떼)’열풍이 생길 정도로 해외에서 봉 감독의 인기가 뜨겁다고 들었다. 

가는 곳마다 인기가 엄청났다. 시상식에서 후보 영상을 보여주지 않나. 객석 반응이 심하게 차이가 난다. 다른 작품에서는 조용히 박수를 치다가 '기생충'이 나오면 환호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26회 미국 배우 조합상 당시에도 다른 후보 작품 소개 때 조용하던 객석들이 '기생충' 영화를 언급하자 기립 박수를 칠 정도였다. 

오스카에서 노미네이트 된 6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국제장편영화상) 중 봉 감독의 이름이 적혀있는 4개 부문의 오스카 상을 모두 수상하지 않았나. 오스카 본선 투표의 경우 예선과 달리 아카데미 회원들은 모든 분야를 투표를 할 수 있는데, 봉준호란 이름만 보이면 다 체크한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로(웃음) 봉 감독을 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기만으로 보면 오스카 상도 휩쓸 것 같았다. 그런데 제작자조합(PGA)나 감독조합(DGA)에서 상을 못 받다 보니 '조용한 투표권자 층들이 있나보다, 이대로 가면 (오스카 상을) 못 받을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도 들었다.

-할리우드 영화 중심의 오스카는 장벽이 높기로 유명한 시상식인데, 결과적으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총 4개 부문을 수상하며 2020년 최다 수상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아카데미 역사상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하지 않았나.

우리가 상을 받는다는 건 8000여명의 아카데미 회원들이 각자 큰 결단을 모인 거란 생각을 했다. 만약 상을 받게 되면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수상 소감에 진심으로 그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다. 

('기생충'은 오스카 수상 전 이른바 북미 4대 비평가협회상이라 불리는 전미 비평가협회(작품상, 각본상), 뉴욕 비평가협회(외국어영화상), LA 비평가협회(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시카고 비평가협회(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에서의 주요 부문 수상은 물론, 아카데미 시상식의 바로미터라 불리는 미국 배우조합(SAG), 미국 작가조합(WGA), 미국 미술감독조합(ADG), 미국 영화편집자협회에서 주는 최고상들을 휩쓸었다.)

영화 '기생충'의 배우 송강호, 봉준호 감독, 곽신애 바른손 이앤에이 대표. 오스카 4관왕을 수상한 이후 2월 한국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밝게 웃고 있다. 

- 한국에서도 오스카 수상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며 큰 화제였다.  

처음엔 기사들을 읽다가 최근엔 워낙 많이 쏟아지다보니 포기했다. (웃음) 그런데 잘못된 내용도 있더라. 우리가 오스카 레이스 비용으로 100억 원을 썼다는 기사들을 봤는데, 확인이 안 된 내용들이다. 어디서 나온 수치인지 모르겠다. 많은 기사들에서 마치 정설인 것처럼 쓰더라. 기사에서 언급된 '레이스 비용'이란 게 무엇인지, 그 의미도 애매하다. 오스카 상을 타기 위해 쓴 마케팅 비용을 의미한다면 실제 쓰인 비용은 그보다 훨씬 적다. 

-'기생충' 열풍에 지자체 등에서 이를 마케팅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문제가 없는 선이었으면 한다. 이 영화에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잖아요, 폐 끼치고 싶진 않았어요."란 카피가 있다. 이 말처럼 행복을 나누는 차원에서는 좋지만, 폐를 끼치지 않았으면 한다. 사전합의나 상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일들이 정말 많다. 감독님한테 물어보면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 기본적인 사전 절차와 양해조차 구하지 않은 사례가 너무 나도 많다. (곽 대표는 난감한 상황이 많은지 한숨을 쉬었다.) 법에 안 걸린다고 다 괜찮은 건 아니지 않나. 불쾌한 생각이 든다. 행복을 나누는 차원에서만 했으면 좋겠다. 

영화 '기생충' 포스터/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 포스터/사진=CJ엔터테인먼트

봉 감독과 영화에 대한 토론 일체 안 해...'뭐 먹을까' 얘기만 

- 과거를 회상해보면 처음 봉 감독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  

회사와 인연이 있었다. 봉 감독의 '마더'(2009)를 당시 바른손이앤에이 대표였던 문양권 회장이 제작했다. 그때 팀워크가 좋아서 제작이 순조로웠던 것 같다. 당시 '마더'의 프로듀서이자, 영화 '옥자'(2017) 제작에 참여한 서우식 전 바른손 대표를 통해 감독님의 연락을 받았다. 

- 봉 감독과 '기생충'은 언제부터 준비한 건가. 

2013년 봉 감독이 가족 얘기라고만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사이즈는 '마더' 정도가 될 것이라고만 간단하게 얘기했다. 그리고 2015년 4월 시놉시스를 처음 봤다. 

- 시놉시스의 첫 인상은 어땠나. 

정말 재미있었다. 등장인물들이 여럿 나오는데, 선명했다. 강하고 셌다. 각자 개성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약간 유머러스한 코드도 있었다. 다만 클라이맥스와 엔딩은 '이런 식이었으면 좋겠다'는 톤으로만 적혀있었다.  

- 봉 감독은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란 명성답게 꼼꼼하고 세심한 장면들을 완성하기로 유명하다. 봉 감독이 특별하게 주문한 사항들이 있었나. 함께 일해보니 어땠나.

봉 감독처럼 시나리오를 쓰는 감독님들의 경우 시나리오 전체가 요청이자 요구다. 시나리오 전체를 주문서라고 생각했다.

봉 감독은 허투루 예산을 쓰지 않는다. 영화를 준비하며 한 가지 난관에 빠진 적이 있었다. 다른 장면들은 어떻게든 가능 할 것 같았는데, 영화 속 기택네 동네 침수 장면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난감했다. 어느 정도 사이즈의 동네인지, 앵글이 어디까지 잡히느냐 따라 예산이 다르니까. 이 솔루션을 감독님이 합리적으로 조절해주셨다. 전면 벽과 문만 있으면 된다며 여기까지 세트로 만들고 나머지는 CG로 가자 딱 정리해주더라. 봉 감독은 영화에 쓰지 않을 장면에 돈을 쓰지 않는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계신다. 연출부나 제작팀, 미술팀도 그 취지에 맞춰서 짰다. 

-영화 속 '짜파구리'가 전 세계적으로 화제였다. 조리법에 대해 연구도 했나.

시나리오에 이미 쓰여 있던 거다. 감독님은 먹어보지는 않고, 음식의 특징과 콘셉트가 재미있어서 시나리오에 썼다고 하더라. 연출부에서 '짜파구리'를 준비를 했는데, 미리 짜파구리 레시피를  만들어 놨다.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영화 속에 "야 짜파구리가 뭐야"라는 대사가 있는데 "인터넷 검색해봐"라고 대답하면 인터넷 화면에 레시피가 검색되는 장면이 나올 수 있도록 미리 준비했다. 

- 영화를 촬영하면서 봉 감독과 영화에 대해 얘기를 자주 나눴나. 장면에 내포되어 있는 상징이나 의미라던지.

영화에 대한 그런 얘기를 나눈 적이 한 번도 없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했고, 어떤 영화를 만들려는지 알았다. 이심 전심이랄까. 송강호 선배님도 감독님과 영화에 대한 토론은 일체 안한다. 만나면 뭘 먹을지, 맛있는 메뉴가 뭔지 이런 얘기가 위주다. 하하. 

곽신애 바른손 대표/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 이앤에이 대표/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인 집안' 오빠는 곽경택 감독·남편은 정지우 감독 화제..."'기생충' 성과로 제작자로서의 확신이 큰 수확"

- 이번 수상에 대한 가족의 반응이 궁금하다.

오빠(곽경택 감독)는 신기해하면서 (곽 감독의 말투와 억양을 흉내 내며) "신애야, 와, 네가...브라보!" 이렇게 놀라더라. 하하. 

- 마치 곽 감독이 떠올려지는 말투다.  

워낙 긴 세월을 오빠와 함께 했으니까. 하하. 

- 이른바 '영화인 가족'란 점도 화제가 됐다. (곽 대표의 오빠는 영화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고, 남편은 '해피엔드', '은교', '유열의 음악앨범' 등의 정지우 감독이다.) 

제가 영화잡지인 '키노' 기자로 재직했을 당시엔 관련 매체도 적고 영화계도 작아서 영화계 사람들과 거의 다 알고 지냈다. 그러다 보니 유학을 끝낸 오빠가 졸업 단편을 들고 영화제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나, 단편 영화를 찍던 남편을 소개할 때엔 "키노 박신애 기자의 오빠, 또는 남편"이런 식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남편이 영화 '해피엔드'(1999)로 이름을 알리면서 그 때부터 '정지오 감독의 아내'로 소개가 되더라. 당시 전 기자를 그만두고 충무로에서 홍보파트에 일하고 있었기에 저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오빠가 영화 '친구'(2001)로 한국 영화 역사상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을 당시엔 어디가나 '곽경택 감독 동생'으로 불리더라. 심지어 "사촌이 아닌 '친동생'"이라며 소개가 되더라. (웃음)

이렇게 '곽경택 감독의 동생이자, 정지우 감독의 아내'로 십 수 년을 살다가 지난해 '기생충'으로 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상황이 달라진 거다. 두 사람이 장난처럼 "칸 이후 우리가 (포털사이트에서) 연간검색어로 떨어졌다"고 농담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으니 수십 년간 반대상황을 겪은 저로서는 미안하고 난처한 심정이었다. 그동안 본인들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해온 감독님들인데, 제가 큰 상을 받았다해서 제 업적이 그들보다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는 거니까. 제 지인들이 저에 대한 축하를 그들에게 하는 것도 제 입장에서는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 30년간 영화계에 몸담아왔지만, 직업은 조금씩 바뀌었다. 영화전문지 기자로 출발해 영화 기획 마케팅 등을 거쳐 제작자가 됐다. 당초 제작에 대한 욕심이 있었나. 

어릴 때는 제작자가 자동으로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육아나 저의 상황들로 녹록치는 않았다. 제작자가 아니어도 영화 분야에서 직업을 이어갈 수 있다면 된다고만 생각하다 얼떨결에 제작자가 된 거다. 지난해와 올해 이 영화로 좋은 성과를 얻으면서, 내가 이 일을 해도 되나, 그런 고민들을 털어버렸다. 적어도 좀 더 해도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점이 가장 큰 변화다. 

곽신애 바른손 대표/사진=CJ엔터테인먼트
곽신애 바른손 대표/사진=CJ엔터테인먼트

- 한국 여성 영화인으로서도 큰 성과를 거뒀다.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은 아시아 여성 제작자 최초 아닌가. 제작자로서 이 영화가 갖는 의미도 남다를 것 같다.  

전 제가 좋은 제작자인지는 모르겠다. 제가 같이 참여하는 스태프나 감독들에게 폐만 끼치는 사람은 아닐까, 나 때문에 영화에 혹여 손해를 주는 건 아닌가 이런 고민들이 제작자로서 늘 화두였다. 작품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일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 작품을 만났고 일단 해보자란 마음으로 시작했다. 게다가 봉 감독님 작품 아닌가.

그런데 이 작품을 하면서 봉 감독님이 보내준 신뢰, 그리고 영화 관계자들의 믿음으로 무난히 제 역할을 다한 것 같다. 다음 작품도 이번 처럼 열심히 하면 되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 점이 제겐 큰 수확이다.  

- 제작자로서의 철학이 궁금하다. 

단순히 오락을 위해 잠깐의 즐거움을 주는 영화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마음에 감정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기억에 남는 영화가 좋다. 그렇다고 관객들과 소통이 제대로 안되는 건 싫다. 이상적인 얘기 겠지만, 재미도 있고 작품성도 뛰어난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 
 
-계획하고 있는 차기작은 있나. 

준비는 하고 있지만, 투자와 캐스팅이 끝난 작품은 아직 없다. 

-봉 감독과의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되나.

구체적으로 얘기를 한 적은 없다.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니다. 마치 썸 타는 단계다. 하하.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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