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인터뷰] 실험극 '건널목 삽화' 거장들의 무대, 마임이스트 유진규·배우 기주봉
[현장 인터뷰] 실험극 '건널목 삽화' 거장들의 무대, 마임이스트 유진규·배우 기주봉
  • 서영석
  • 승인 2022.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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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널목 삽화', 고 윤조병 선생의 대표적 실험극...방태수 연출, 기국서, 윤시중 교수 등 당대 거장들 제작 참여
- '韓 실험극의 대부' 유진규·기주봉 열띤 연습 현장..."무대 연기의 진수 보여줄 것"
제6회 늘푸른연극제 선정작 ‘극단 에저또’의 실험극 ‘건널목 삽화’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마임이스트 유진규와 배우 기주봉./사진=극단 에저또

인터뷰365 서영석 인터뷰어 = “아방가르드 전설들의 귀환”

묵직한 공연이 대학로에서 막을 올린다. 제6회 늘푸른연극제 선정작 ‘극단 에저또’(대표 방태수)의 ‘건널목 삽화’가 개막을 목전에 두고 마무리 담금질에 열을 내뿜는다.

‘극단 에저또’는 이 땅에 진정한 전위실험극 제창을 목적으로 1967년 연출가 방태수를 중심으로 창단된 55년 차 명문 극단이다. 창단 초기 연극계는 대사 위주의 사실주의가 만연했기에 그들만이 정통극으로 인정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공연계에서 대사를 배제하고 몸짓(마임)과 표현의 다양화를 표방해 이단으로 취급받아 연극계 변방에 머물렀지만 1970년 후반 대한민국연극제의 대상 수상을 기점으로 연극계 중심으로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공연은 1972년 초연을 했던 작품으로 한때 대한민국 최고의 희곡작가 반열에 올랐던 고(故) 윤조병 선생의 대표적 실험극이다. 방태수 연출, 유진규, 기주봉 출연에 협력연출 기국서, 무대미술 윤시중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이 참여한다. 제작진 모두가 거의 전설의 인물들이다. 윤시중 교수는 작가 윤조병의 아들이기도 하다. 

50년이 지난 지금 ‘건널목 삽화’는 어떻게 달라질까?

‘건널목 삽화’의 방태수 연출./사진=극단 에저또

‘건널목 삽화’의 공연적 특성은 배우들의 대사에서 뚜렷한 주제의식이 드러나지 않는다. 철도 건널목을 지키는 철도원(유진규 분)과 정체불명의 사나이(기주봉 분)가 뜻 모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공연이 진행된다. 

대사에서는 극적 구성이나 기승전결에 대한 구분도 명확치 않다. 하지만 70년 대 이후 한국 실험극의 대부 자리에 위치했던 두 배우의 등장만으로도 관객에게 압도적 분위기를 제공한다.

현재 세계 일류의 마임이스트로 자리 잡은 유진규와 2019년 세계3대 영화제인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기주봉이 그들이다. 특히 유진규는 1972년 초연 당시에도 철도원으로 출연을 했기에 5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다시 그 배역에 도전하는 셈이다.

기주봉은 영화제 남우주연상으로 한참 주가를 올리는 배우이기도 하지만 이전부터 한국 전위실험극에 ‘극단 에저또’와 거의 쌍벽을 이루었던 ‘극단 76’의 원년 멤버로 수많은 실험극의 무대에서 기량을 갈고 닦았던 배우이기도 하다.

작품의 줄거리는 기차가 지나다니는 건널목을 지키는 철도원(유진규 분)이 부인의 부정을 외면하기 위해 퇴근을 뭉기적거리는 건널목에 사나이(기주봉 분)이 등장하면서 막이 오른다. 사나이가 걸어 왔던 길에 대한 뜻 모를 대사가 이어진다.

서로 간에 의미 없는 대사가 이어지면서 뭔가 모를 긴장감이 무대를 내리 누른다. 그러다 ‘인간의 애매모호한 죽음(열차에 뛰어 들어 자살)’에 대한 대사가 심드렁하게 이어진다.

‘건널목 삽화’ 포스터./사진=극단 에저또

하지만 작가는 인간 행로에 알 듯 모를 듯 ‘숲’이라는 단어를 제공하면서 둘 간의 삶에 대한 간극을 제공한다. 또한 인간 삶에 원초적 에너지인 ‘빛’을 끼워 넣어 갈등을 조장시킨다.

이어서 작가의 번뜩이는 아이디어, 인간의 물리적 합체에 대한 관념을 조장시키고는 드디어는 ‘인간의 물리적 합체(양 팔이 없는 사람과 두 다리가 없는)’를 통해 인간의 비극적 삶에 대한 토로로 이어진다.

마지막에 ‘돼지 왈츠’에서 빵 터지게 하는 작가의 교묘하고도 고도의 극작술이 실험극에 대한 뚜렷한 명제를 제공하고 있다.

즉 ‘숲’과 ‘인간의 물리적 합체’, ‘돼지의 왈츠’를 통해 비극적 인간들의 삶을 조망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문학적 대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언어의 절제와 단절을, 또 걷잡을 수 없는 생각과 생각의 충돌을 통해 관객을 격정과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실험극 ‘건널목 삽화’ 연습현장. 열연 중인 마임이스트 유진규와 배우 기주봉./사진=서영석

연습 분위기는 한마디로 ‘진지함’이다. 진지함을 넘어선 유진규의 고지식함이 간결한 대사와 어우러진 마임이 무대를 압도하며 대사가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한 번씩 터져 나오는 기주봉의 고함소리가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해 관객들을 숨막힐 듯 답답하게 조여 온다.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방태수(77)는 “한국에서 마임극, 전위극, 실험극, 가두극, 행위예술, 해프닝 등...손가락질 많이 받았다. 그러다 1972년 ‘건널목 삽화’ 이후로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소극장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작품은 ‘극단 에저또’가 처음 시도한 소극장 운동으로서의 공연으로 대사 중심의 연극을 몸짓, 행동을 도입해 대사와 몸짓의 만남, 마임 드라마란 이름으로 공연을 시도한 작품이었다”며 “지금부터 50년 전...,50년이 지난 지금 ‘건널목 삽화’가 어떻게 달라질까? 연극이 인간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나도 이번 ‘건널목 삽화’에서 그 해답을 알고 싶다”며 말을 맺는다.

마임이스트 유진규, "50년 지나도 어제 공연처럼 잔상 또렷"

실험극 ‘건널목 삽화’의 마임이스트 유진규./사진=서영석

초연에 이어 50년 만에 다시 철도원 역을 맡은 세계적 마임이스트 유진규(70)는 근 40여년 만에 대사가 있는 배역을 맡았다고. 선뜻 이 작품에 동참한 동기를 “인간의 물리적 합성과 ‘숲’을 통한 인간 여정의 대비 등 작가의 뛰어난 발상에 매료되었다”고 말했다.

- 마임이스트로 주로 활동하셨는데 대사에의 부담감은 없었는지요?

“50년이 지났는데도 어제했던 공연처럼 의식에 또렷하게 남아있어요. 43년 만에 대사 있는 연극이다 보니 대사에의 부담감이 없지 않지만 옛날의 공연의 잔상이 워낙 또렷하게 남아 있어 즉각 참여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나만의 독특한 대사를 쓰기로 했지요. 마임과 어울릴 수 있는 대사...? 의미와 느낌은 몸으로 표현하기로 했고요. 이런 공연 요즘 하는 극단이 없잖아요? 기주봉의 담담하면서 때로는 폭발적인 대사와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는 나의 마임연기와의 앙상블로 종합예술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도 큰 이유겠지요.”

실험극 ‘건널목 삽화’ 연습현장./사진=서영석

- 연기의 기본 중의 기본이 마임인데 요즘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교가 없어요. 개인적으로 아카데미를 통해서 후학을 양성할 계획은 없는지요?

“했었지요. 하지만 일단 극단 운영난으로 아카데미에 신경 쓰기에 어려워서 접었어요. 특히 내 자신이 교육자로서 부족함이 많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적절치 않다는 생각도 들어서 본인의 업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마임은 궁극적으로 개인 예술이기에 그 길에 매진하려합니다.”

- 이 작품의 특장점을 꼽자면?

“사실적인 연극, 사실적인 무대를 만들었는데, 마임과의 앙상블이겠지요. 사실적인 연극이 실험극과의 조화가 가능할까, 이 자체가 이 시대의 새로운 실험이 아닐까 합니다.”

기주봉, "당대 거장들과 함께하는 가슴 벅찬 무대...무대 연기의 진수 보여줄 것" 

실험극 ‘건널목 삽화’의 배우 기주봉./사진=서영석

사나이 역의 기주봉은 작품 참여의 첫 조건으로 희곡의 절묘함으로 꼽는다.

- 작품에 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당연 대사죠. 이제 나도 고참 배우이다 보니 후배들한테 귀감이 되어야 하는데 무대에서 버벅거리면 그런 망신이 없잖아요. 2인극이다 보니 대사 분량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스트레스가 엄청납니다. 피나는 반복연습 대문에 방송 출연도 외면하고 있지요.”

- 당대 거장들과의 작업인데 느끼시는 점은?

“가슴 벅참이지요. 무대 연기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정확히 약속된, 톱니바퀴처럼 짜여 진 연기와 생뚱맞으면서도 뜻 모를 외침들...,연습을 하면서 무대 위에서의 공허감을 느낀 달까? 뭔가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의 연속이지요.”

실험극 ‘건널목 삽화’ 연습현장.

- 공연적 특성을 꼽는다면?

“농익은 연출과 안정적인 무대로 로맨틱 코미디에 식상한 관객들에게 정통 실험극을 보여줄 수 있겠지요.”

코로나에 대비하는 연출의 세심함, 인터뷰 와중에도 결코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는 유진규의 진중함, 동작과 시선 하나에도 허투룸이 보이지 않는 기주봉이 보여주는 연습장 분위기는 그야말로 거장들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전설들의 귀한으로 대학로에 엄청난 실험극의 진수 무대가 펼쳐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둘의 연기에 관객들은 숨 막힐 듯 압도될 것이고 결국 실험극의 진수를 체험할 것이다. 정통실험극의 진수를 볼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개막이 기다려지는 공연이다.

기국서
‘건널목 삽화’의 협력연출로 참여한 기국서 연출가.

‘건널목 삽화’는 윤조병 작, 방태수 연출, 협력연출에 기국서, 무대미술 윤시중, 제작 최유진, 기획 김정숙, 조명 디자이너 김성구, 조연출 심성필 등이 참여한다. 2월 23일부터 27일까지 대학로 씨어터 쿰 극장에서 공연된다. 

서영석

인터뷰365 기획자문위원. 극작가 겸 연극연출가로 극단 「에저또」를 거쳐 다수의 연극에서 연출, 극작, 번역 활동. 동국대에서 연극학 석사를, 중앙대에서 연극학 박사를 취득했다. 동양대 연극영화학과, 세명대 방송연예학과 겸임 교수를 지냈으며, 현 극단 「로뎀」 상임연출이자, 극단 「예현」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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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석
gnjal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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