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인터뷰] 80년대 청춘문화 선도한 천재감독 이규형
[그때 그 인터뷰] 80년대 청춘문화 선도한 천재감독 이규형
  • 김두호
  • 승인 2020.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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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스케치' 이규형 감독 암투병으로 7일 62세로 별세
-"내 인생은 일하는 짐승이었다”
이규형 감독
이규형 감독/사진=인터뷰365

7일 암 투병 중 타계한 이규형 감독은 1980년대 다채로운 청춘문화를 선도한 천재감독이었다. 

1957년생으로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사랑 만들기' 시나리오를 써 작가로 데뷔했고, 자작 소설 '블루 스케치'로 영화감독이 됐다.

1987년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로 청춘문화의 뉴 웨이브시대를 연 그는 제26회 대종상영화제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 감독은 1998년 김혜수 김세진 주연의 '어른들은 몰라요'를 비롯, '굿모닝 대통령'(1989), '난 깜짝 놀랄 짓을 할꺼야'(1990), '공룡선생'(1992), '헝그리 베스트5'(1995) 등을 연출했다. 당시 신인 배우였던 허준호, 독고영재, 천호진, 조민수, 김혜수 등 스타들을 발굴했다. 

연출 뿐 아니라 글 솜씨도 뛰어나 베스트셀러 작가 겸 소설가, 그리고 칼럼니스트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감독 활동을 접고 10여년간 일본에서 생활해온 그는 꾸준히 집필 활동을 해왔다. 

<인터뷰365>에서 2008년 9월 8일 게재된 이규형 감독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이규형 감독의 새로운 포부 3가지

이규형 감독
이규형 감독/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공항에서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떠나는 젊은이들의 설레는 표정과 마주칠 때마다 언제나 영화감독 이규형을 생각한다.

그는 배낭여행의 1세대였다. 해외여행이 어렵던 시절에 여행 가이드처럼 체험정보를 공개하면서 바람을 일으킨 선발대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취미활동이었고 직업은 영화감독이다. 또 있다. 시나리오 작가 겸 소설가였고 신문잡지의 칼럼니스트 겸 저술가였다. 베스트셀러가 된 저서만 20여권이 넘는다. 50여권이 넘는 저서 중에는 소설도 있지만 일본어 가이드북에서 돈벌이를 위한 경제정보 책자도 있다. 모두가 청소년을 비롯한 청년기 젊은이들의 꿈과 생활지식이 연계된 창작성 기록물이다.

이규형은 1980년대 다채로운 청춘문화를 선도한 재주꾼이고 천재였다. 정력적인 그의 활동은 동시에 몇 개의 매체에 연재 칼럼을 게재하면서 애니메이션 영화 <헝그리 베스트5>를 찍기도 했다. 이규형의 본업인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면 또 끝이 없다. 대학시절에 자작 시나리오로 최연소 영화감독이 된 사람.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를 연출해 1987년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면서 청춘문화의 뉴 웨이브시대를 연 인물이 이규형이다. <어른들은 몰라요> <굿모닝 대통령> 등 모두 화제작들이다.

그는 어느 해 국내활동을 정리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기발한 젊은이답게 한강 유람선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도쿄로 건너가 그곳에서 10년 넘게 살았다. 필자는 대중 문화의 복판에서 쉬지 않고 화제를 토해낸 이규형의 활동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기자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이규형 감독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궁금하다고 생각하면 무엇인가를 들고 나와 주목을 받았던 그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지난 3일 충무로국제영화제가 개막된 국립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여전히 의욕만만한 청년으로 살아 있었다. 그는 이제 영화감독을 직업에서 떼어내고 기획자 겸 프로듀서로, 그리고 새로운 연기학교의 교육자로 다시 한번 일어설 워밍업을 하고 있다.

"내 인생은 일하는 짐승이었다”

이규형 감독/사진=인터뷰365
이규형 감독/사진=인터뷰365

- 일본에서 돌아온 후 몇 해가 지났다. 근황이 알려지지 않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 어떻게 지내는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시대와 세대가 달라졌다면 나도 변해야 한다는 과제를 두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물밑에서 벽돌 쌓는 시간을 가졌다. 벽돌을 아무리 부지런하게 쌓아도 그 노력이 수면위로 나타나지 않으면 실체가 보이지 않고 보람이 없는 것인데 아직도 나는 신념을 가지고 벽돌을 쌓고 있다.

- 지금 새롭게 물밑 작업을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공개할 수 있는가?

우선 일본에서 크게 성공한 ‘오키나와 액터스 스쿨’을 벤치마킹한 ‘영종도 액터스 스쿨’의 설립을 추진중이다. 오키나와 액터스 스쿨은 오사카와 도쿄까지 분교를 만들어 성공적인 연기학교의 모델이 되고 있다. 초등학생과 중학교 학생 수준의 소년소녀들을 조기에 발굴, 기숙사에 입주시켜 3년간 연기 화술 댄스 음악 외국어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게 해 연기 인재를 조기 양성하는 일종의 연기사관학교다.

- 영종도라면 국제공항터미널이 있는 곳이 아닌가?

그렇다. 공항관리공단에서도 패션 아일랜드의 조성과 함께 유치를 환영하고 있다. 중국 등 아시아권 학생의 입학도 염두에 두고 위치를 정했다. 교장은 임실 예원예술대 코미디학과 강의를 하며 제자 40명 중 20명을 3개 방송사 개그맨 공채시험에 합격시킨 개그맨 전유성 씨가 맡기로 했다. 이 사업은 HOT 보아 소녀시대 동방신기를 발굴한 연예기획자 김경욱 씨도 참여하고 있다.

- 교장까지 정했으면 매우 구체화 된 것 같다. 또 다른 계획이라면?

이제 나는 내 스스로의 재능이 영화감독이나 작가보다 기획자나 프로듀서 쪽에 더 강하다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그것이 옳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나 공연 등 문화사업에서 기획자나 프로듀서가 내 직업에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일본 자본이 연계된 문화 투자기업이 영화 프로듀서 활동을 제의해 왔다. 감독은 1년에 한편을 만들기도 어렵지만 프로듀서라면 연간 5편 이상이 가능하다.

- 변신이 기대된다. 또 있는가?

인터넷 시대가 발전하면서 인터넷을 마주칠 때마다 울컥 치미는 분노 같은 게 있다. 1990년대 초 인터넷문화가 조금씩 문을 열던 초기에 한 포털사이트를 만들었다가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다. 그 무렵 네티즌이 가장 많이 몰렸던 사이트로 히트 1위까지 기록하고도 수익모델을 제대로 운영 못해 실패했던 한이 남아 있다. 대형 포털들은 대부분 그 후에 등장했다. 언제나 그걸 풀 생각을 했는데 곧 다가설 IPTV 시대에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 여전히 일에 대한 의욕과 포부가 젊을 때와 같아 보인다. 이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만든 영화도 8편이지만 수많은 신문 잡지에 원고를 기고하면서 출판된 책도 50권이 넘는다. 도대체 그런 창작물량을 어떻게 감당해 냈는지 궁금하다.

주변사람들이 ‘일도 짐승처럼 하고 식욕도 짐승처럼 왕성한 사람’이라고들 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1년에 5권 이상씩 60여 권을 만들면서 모두 히트시키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살았다. 그러다가 성공한 야구선수가 3할3푼3리의 타율을 보이듯이 나도 그 정도는 베스트셀러를 내놓았다고 자위하며 웃곤 한다.
 

이규형 감독
젊은시절 이규형 감독

- 책 중에는 대중문화를 비롯해 경제나 생활정보 또는 어학 관련 저서도 있다. 원래 고교시절부터 장학퀴즈왕으로 다양한 지식을 뽐냈지만 공부할 시간도 필요했을 것 같다.

대부분 나의 지식은 머리로 쓴 것보다 발로 찾아내고 배우며 쓴 것들이 많다. 직접 체험하고 발견한 지식들이어서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6일만에 터지는 일본어>도 내가 직접 습득하고 배운 지식을 옮겼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일본을 보면 돈이 보인다>는 출판사가 ‘돈’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청계천책이 된다고 반대했으나 나의 고집으로 사용했다. 히트하자 서점가에 ‘돈’자가 든 제목의 코너가 만들어질 만큼 바람을 일으켰다.

- 베스트셀러가 펑펑 터지고 또 영화도 흥행 1위에 오르는 등 신나게 살아오면서 느낀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하하하. 대중문화는 대중이 가장 소중하고 고마운 분들이지만 그분들 참 무섭다. 냉혹하고 비정하게 버릴 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다시 기회를 안준다. 특히 연예인들의 인기는 한번 추락하면 다시 회복하는 사람이 드물다. 한 5년 정도만 조용히 있으면 흘러간 인물이 된다.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는 안성기 조용필 씨 같은 경우는 매우 예외적인 인물들이다. 이 냉정한 문화권에서 살아남으려면 노력만으로도 안된다. 어느날 나는 그 새로운 길을 찾아 일본으로 떠난 거다. 서른살에 서른권의 책을 쓰고 충전의 시간을 가지려고 갔다가 15년을 보냈다.

- 스스로 자신의 삶에서 절정기는 어느 때라고 생각하는가?

1980년대 중반 스포츠서울이 창간될 때 창간 필자로 참여하면서 가장 정신없는 시기를 보낸 것 같다. 100만명의 독자가 원군처럼 나를 지원해 출판 영화 모두 성공하던 시기였다. 지하철에서 내 글을 보며 키득키득 웃는 젊은 친구들의 표정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했다.

이규형 감독
이규형 감독/사진=인터뷰365


- 이제 청춘문화의 기수였던 당신도 중년을 넘어섰다. 일밖에 모르며 보낸 젊은 시절에 회한은 없는가?

빠르게 바뀌는 시대의 변화에 나이 먹는 것이 두렵고 자신감을 잃게 한다. 그런데 언젠가 광화문 서점가에서 내가 쓴 는 책을 사는 독자가 대다수 10대인 것을 보고 아직 나는 글을 쓸 자격이 있구나 하고 용기를 얻었다. 고백하자면 내 책을 사주는 어린 10대들을 보며 감동해 눈물을 찍어냈다.

- 찾아낸 신인 배우들이 많았다. 허준호 독고영재 천호진 조민수 김혜수 김세준 등 지금도 자주 만나는가?

조금전 영화제 개막식에서 천호진을 오랜만에 보며 가슴이 시큰했다. 혈기왕성하게 뭉쳤던 때가 기억나서. 사실 김희애도 내가 고교 때 쓴 시나리오 <내사랑 짱구>로 데뷔했고 이효정 김희선 이정재도 나의 <공룡선생>으로 연기를 시작해 이런저런 인연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 많지만 서로 이유없이 만나며 산다는 게 쉽지 않다.

- 일본에 살며 한일 대중문화나 젊은이들의 생활문화를 비교해서 생각할 기회가 많았을 것 같다. 관련해서 쓴 글도 많이 읽었다. 간단히 정리를 해달라.

내가 일본에 갈 때만 해도 일본 영화나 가요는 우리나라 상륙이 금지됐다. 이제는 개방이 됐지만 젊은이들의 세계나 문화는 정치적 역사적 어떤 벽을 느끼는 시대가 아니다. 그야말로 좋은 주제가 있으면 함께 참여하고 공유하며 서로 개방하는 시대이니 굳이 선을 긋고 비교할 거리가 없다. 일본에서는 연예인이 한류의 주역이지만 우리 서점가에는 지금 일본 책들이 일류(日流) 바람을 이끌고 있다.

- 당신은 20대부터 흰 머리카락이 많았다. 젊어서 죽도록 일하고도 아직 젊어서 흰머리의 소년처럼 느껴진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마시는 것, 먹는 것, 피우는 것 모두 왕성하다. 졸리면 실컷 자고 배고프면 실컷 먹고 산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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