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기예술의 전형을 보여준 권성덕 배우의 '로물루스 대제'
[리뷰] 연기예술의 전형을 보여준 권성덕 배우의 '로물루스 대제'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8.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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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제3회 늘푸른연극제' 초대 배우 권성덕, 무대·객석 압도...기억될만한 노배우의 명연(名演)
배우 권성덕의 '로물루스 대제' 공연 장면/사진=늘푸른연극제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왜 권성덕을 명배우라 하는가?

28일 종로 대학로 아르코대극장에서 '제3회 늘푸른연극제'에 초대된 배우 권성덕의 '로물루스 대제'(8.24 ~9.2)를 보면서 그가 명배우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1941년생. 올해 만 77세, 우리나이로 79세. 최근 몇 년 동안 그는 '오랜 기간의 투병생활'로 인해 대사량이 많은 '로물루스 대제'의 타이틀 롤을 하기에는 무리가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당당히 대극장 무대에 섰고, 130분이 넘는 대작을 '명배우'답게 화술, 포즈, 연기의 3박자로 '배우예술의 정수'를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사실 1막 "오 수치스런 황제를 둔 로마여"에서 만난 배우 권성덕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2막 '이런 황제는 없애야 해'에서도 대사나 동작이 간혹 끊기는 듯한 대목도 있어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10분간의 인터미션 후 시작된 3막 '게르만인들이 오거든 이리로 들어오게 하라'부터 권성덕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4막 '여러분! 이리하여 로마제국은 멸망했습니다'에서는 연극이 왜 배우예술인가를 권성덕 배우가 여실히 보여 주었다. 

연극 '로물루스 대제' 공연 장면/사진=늘푸른연극제

예전처럼 당당한 풍채에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깡마른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리한 대사는 극중 로물루스 왕의 희비극 캐릭터와 더 맞닿았으며, 무엇보다 노배우의 대사가 마이크를 쓰지 않고 대극장 객석을 뚫고 나가 명료하게 들렸다.

3, 4막에서 배우 권성덕이 보여준 화술과 일거수일투족의 움직임은 사실주의 연기의 교본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만큼 정교했고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무대는 물론 객석을 압도했다.

그는 소리를 질러야할 대사에서 대사를 낮게 깔았으며, 어느 한 순간에는 소프라노 같은 발성으로 고조된 감정을 내보였다.

걷는 동작, 손의 움직임, 얼굴 표정, 연기의 어느 한부분에도 군더더기가 없었으며, 쉴 때와 달려야할 때를 정확히 짚어 대사를 했고, 상대배우와의 호흡이나 전체 앙상블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큰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제3회 늘푸른연극제'의 '로물루스 대제' 커튼 콜에서 배우 권성덕과 이승옥./사진=정중헌

배우 권성덕이 예전의 기량을 되살려 무대에서 자유롭게 연기하게 해준 '수훈갑'은 연출가 김성노였다고 본다. 대형무대를 보기 힘들어진 요즘 그는 최근에 아르코대극장에서만 '두 영웅', '반민특위' 등의 대작을 연출해 내 인정을 받았을 뿐 아니라 대작의 맨파워를 구축했다.

이번 '로물루스 대제'에서도 김성노는 자신의 특기인 용병술을 잘 구사했다. 오로지 권성덕 배우를 빛나게 할 수 있는 연기파들을 그의 주변에 포진시킨 것이다.

국립극단 출신의 이승옥을 왕비 역으로, 김종구를 게르만 수장 역으로 배치해 안정감있는 구도를 형성했다. 여기에 권성덕과 호흡이 맞는 이인철을 비롯해 배상돈·문경민·민경록·노석채·이창수, 그리고 동양대학 졸업생이 주축이 된 동양레퍼터리의 이준·임상현 등과 10여명의 젊은이들로 무대를 채워 수준급의 미장셴을 연출해 냈다.

연극 '로물루스 대제' 공연 장면/사진=늘푸른연극제

특히 이번에는 이호성·유정기·김춘기·김명중·이영수 등 연기파들을 합류시켜 생동감을 더했다. 등장 인물만 35명. 김성노 연출은 10여명의 중견 개성파 연기자들이 로물루스 역 권성덕을 에워싸게 해 '노배우의 귀환'을 예를 다해 영접했다. 4막 클라이맥스의 몹신은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이 대작의 대미를 장식 하는 데는 손색이 없었다.

2시간이 넘는 '로물루스 대제'에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뒤렌마트의 원작이 워낙 짜임새 있고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의 멸망사를 뒤렌마트 특유의 비판의식으로 그려낸 희곡의 대사들은 역설과 풍자와 재치로 넘쳐나 의자에 등을 기댈 여유를 주지 않는다.

"진정한 희극만이 비극을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웃고 보면서도 비극으로 빠져드는 극작술의 묘미에 매혹되기 때문이다.

이 대작을 제대로 하기가 우리 여건에서 매우 어려운데 그래도 이번에는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었다. 닭들과 담장이 덩굴로 형상화한 황제의 별장 무대는 허술한 구석도 있지만 극 분위기를 받쳐주는데 한 몫을 했다. 의상 역시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인물의 개성을 다양하게 살려내려 한 노력이 돋보였다.

'로물루스 대제' 공연이 끝난 후 커튼콜 무대에서의 배우들 /사진=정중헌

명불허전. 좋은 원작에 명배우가 있었기에 이번 대작이 빛났다.

더욱이 이번 무대가 훈훈했던 것은 노배우를 위한 연출의 배려와 배우들의 헌정이 아름다워서였다. 시종 역을 맡은 유정기 문경민의 맛깔스런 연기가 권성덕의 옆을 지켜주었고, 아들 같은 역할인 이영수의 명쾌한 호연과 공주 역 임솔지의 상큼한 매력도 권성덕을 크게 보이게 했다.

이승옥·이인철·김종구·이호성 등 명배우들은 경연하듯 하지 않음으로써 주인공 권성덕을 빛내주었다. 이것이 연극의 앙상블이고 매력 아닐까.

2018년 8월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앞으로도 기억될만한 노배우의 명연(名演)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이런 기회가 흔치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장대비가 와서일까. 노배우의 이 멋진 아우라를 공유해야할 관객이 많지 않았다. 이번 '늘푸른연극제'는 뒷말이 무성해 축제가 축제 같지 않다는데 이것은 원로배우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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